중원여행기
프롤로그
2014년 1월 3-5일에 경주 동국대에서 열리는 전국교사불자연합회 수련회 자료집에 들어갈 불국사, 석굴암 자료를 구하기 위하여 경주문화연구교사모임 다음 카페를 방문했다. 공고된 해외문화답사여행 일정을 보았다. 여행 출발 한 달 앞이다. 이미 여행단 모집이 완료된 것 같았다.
올 해는 중국 화북지방의 여러 역사문화 유적들과 명승지를 답사하는 프로그램이 좋았고, 여행비도 코스에 비하여 쌌다. 무엇보다도 내가 오랫동안 한 번 가고 싶어 했던 코스인지라 망설임 없이 따라가기로 작정하였다.
공자님이 자연의 질서를 알게 되었다고 한 지천명의 나이가 되도록 나는 천고의 고전, 사서집주조차 읽지 못하였다. 다행스럽게도, 김용옥 교수가 번역하고 풀어낸 ‘동방고전 한글역주’ 시리즈의 방대한 분량의 <<논어>>, <<중용>>, <<학기>>, <<효경>>, <<맹자>>를 비록 수박 겉핥기식이지만, 몇 해 동안 다 읽은 터라, 나에게는 정말 보람되고 즐거운 수학여행이 될 것이었다.
또한, 문화유산을 공부하는 경주의 선생님들과 동행할 수가 있어서 낯설지가 않았다. 다만, 짧은 일정에 중국의 5악 중 태산, 숭산, 화산, 3악을 오르고, 운대산과 종남산까지 간다고 하니 힘든 여행이 될 것이라는 생각은 들었다. 그나마, 지구온난화로 몹시도 더워진 여름 날씨를 못 견디는 나에게 겨울여행이 오히려 반가웠다.
여행단장인 박문동 선생님께 전화를 드렸다.
“여행 참가 자격은 기본적으로 경주문화연구교사모임의 회원에 한합니다.”
“회원 가입하려면 어떻게 합니까?”
“이형우 회장님 전화번호 문자로 보내겠습니다. 연락하십시오.”
“네, 회원 가입하고, 여권 사본 보내주십시오.”
이형우 회장님께 전화 드렸다.
“포항 대동중학교 김희준입니다. 회원 가입은 어떻게 하지요?”
“연회비를 내시면 됩니다.”
“네, 계좌번호 알려주십시오.”
그리고 회비와 여권 사본을 보냈다. 고맙게도, 이형우 회장님이 한 해 동안의 답사자료집들을 모두 챙겨 보내주었다. 자료집의 내용이 아주 알차고, 많은 정보들이 수집되어 있었다. 경주 선생님들이 아주 학구적이고 활발하게 활동하는 모습이 보기에 아름다웠다. 월성 김씨인 나는 '월성'이라는 아이디를 만들고 카페에 가입하고 문동본색님이 올린 여행공고에 31, 32번째, 마지막으로 아내와 나의 이름을 달았다.
장보고 유적지 여행단에 선발되어 산동지방을 이미 여행하여 이번 여행 코스에 크게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아내에게도 함께 여행가기를 권하였다. 진로상담교사 연수로 지난여름 방학 때까지 함께 여행을 할 수 없었다.
가족이 함께 해외여행을 한 지도 10년이 되었다. 그 동안에 딸아이는 대학생이 되고 곧 중국으로 유학을 가고, 아들아이도 대학생이 되고 일학년을 마치고 군대 입영 날짜를 받으려고 한다. 그 동안 우리 부부의 윤기 나고 칠흑 같던 머리칼도 희끗희끗해져 어느덧, <<맹자>>의 첫머리에 나오는 반백(斑白)의 사람이 되었다.
여느 집처럼, 두 아이가 대학에 진학할 때까지 가족의 삶은 없었다. 아이들은 몸과 마음이 학교와 학원에 저당 잡혔다. 아내와 나는 아침에 일어나 허겁지겁 출근하기 바쁘고, 퇴근하면 피곤하여 텔레비전만 보거나 인터넷을 하다가 잠든다.
나 자신은 물론이고, 가족에 대한 존재감도 잘 느끼지 못하는 무기력하고 무관심한 삶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 싫었다. 연수는 없어서 홀가분한 방학이지만 아이들의 스케줄에 여전히 얽매여 있는 아내도 나의 권유에 동의를 하였다. 내 머리 속에는 틱낫한 스님의 영문판 책, <<사랑에 관한 부처님의 가르침들(Teachings On Love)>>의 서문에 나오는 말이 떠올랐다.
“프랑스 작가 생떽쥐베리는 ‘사랑하는 것은 단순히 서로 마주 보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이다.’라고 썼다. 나는 이 말을 많이 되새겨보았다. 어느 날 나는 같은 방향을 바로보고 있던 한 부부를 떠올렸고, 웃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그들이 바라보고 있던 그 방향은 텔레비전이 놓여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더 이상 서로 마주보면서 즐거움을 찾지 못하고 대신에 오락물을 향해 바라보는 이것은 진실한 사랑이 아니다.
그러면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사랑하는 것은 서로 마주보고 같은 방향을 함께 보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바라보는 법을 안다면, 그러면 서로 마주보는 것 또한 놀라운 일일 것이다. 왜냐하면 만일 당신이 서로 마주 보는 법을 알고 다른 사람 속에서 기본적인 선함과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기회를 가진다면, 사랑은 실재하는 어떤 것임을 발견할 기회를 가질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들 각자에게는 실재하는 어떤 것으로서의 사랑을 경험할 기회가 주어져 있다. 사랑은 우리가 강해지는 것을 돕고, 다른 사람과 다른 생명들의 행복을 보살피는 에너지이다.”
아들아이의 입영 날짜가 확정되고, 딸아이의 중국 유학 준비가 임박하여 두 녀석이 모두 방학에 집에 와 있어야 하였다. 하는 수 없이, 미안하지만 아내의 계약금을 돌려받고, 나 혼자만 여행하기로 하였다.
계사년이 갑오세로 해가 바뀌고, 경주 동국대에서 열리는 전국교사불자연합회 수련회 준비를 위하여, 몇 해 전부터 인연이 있는 박문동, 남홍식 선생님과 연락하였다. 여행 예비모임도 수련회 날짜와 겹쳐서 참석할 수가 없었다.
제주도부터 서울까지 전국에서 온 선생님들께 불국사와 남산의 불교문화유산을 설명해주시기로 한 남홍식 교감 선생님과 이형우 회장님을 불국사에서 만났다. 순박하고 소탈한 인상의 이 회장님이 점심 공양을 하며 중국여행 자료집을 건넸다.
여행단에 내가 아는 이름은 박문동, 이형우 선생님 밖에 없었다. 30명의 명단을 익히려고 시도하엿지만 번번히 실패하였다. 아둔한 머리로는 불가능했다. 내 사전에는 불가능이란 말이 들어 있어서 불량품이 아니라는 사실만을 확인할 뿐이다.
다음날, 남홍식 교감 선생님, 최병섭 교장 선생님, 박문동 선생님을 자목 스님이 치유명상을 지도해주는 동국대의 법당에서 다시 만났다. 최병섭 교장 선생님과는 수련회 준비 관계로 몇 번 통화만 하다가, 한 주일 앞에 경주에서 있었던 우리학교 선생님의 문상 자리에서 처음 인사를 드렸다.
오랜만에 만난 박 선생님이 나에게 한 가지 요청을 하였다. 여행 중에 중국 역사 전반에 대하여 개괄적으로 설명을 해 달라는 주문이었다. 오랫동안 문화재 공부를 해 온 분들이고, 회원 중에는 분명 역사교사가 있을 텐데, 새내기인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이 없을 것이라며 사양을 하였다.
그런데, 역사교사가 없다고 하였다. 광막한 중국사의 전체를 문화유산전문가 선생님들 앞에서 내가 강의할 수 있는 것이 실로 없었다. 대학 다닐 때 읽었던 책들이 누렇게 색이 바래고 먼지가 앉아 있는 지가 오래였고, 더구나 중학교에서는 역사가 오랫동안 사회과에 통합되어 있었기에, 세계사의 일부인 중국사에 대한 상세한 지식과 정보들이 이미 내 머릿속에서 증발하였다. 그리고 중국사 전체에 대한 통찰력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아내의 계약금을 돌려받아 여행을 총괄 준비하느라 수고하는 박 선생님께 빚을 졌고, 모처럼 만나서 하는 요청을 거부할 수도 없었다. 장황하게 설명을 하다보면, 지식 자랑으로 비춰지고, 자칫하면 남들로부터 미움을 받을 수도 있었기에, 시간을 물었다. 5분도 좋고 2시간도 좋다고 하였다. 일단 강의 시간에 제약이 없어서 부담은 없었다.
수련회가 끝나고 여행 출발 하루 전까지 방학 중 방과 후 활동, 보충수업이 진행되었다. 중국사의 왕조 이름조차도 기억나지 않았다. 그런데, 여행 전에 제출해야 될 경북작가회의의 <<작가정신> 원고, <포항 내연산과 한시>가 있었다.
중국 여행을 앞두고 한 달 동안 읽기로 작정한 <<사기>>가 또 나에게 짜임새 있게 강의를 한정된 시간에 성공적으로 할 수 있도록 준비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거기에다가 간체자 한자를 익히고 중국어 문장 해독 공부를 하며, 간단한 중국어 여행 회화도 알아두어야 하였다.
결국, 이번 여행의 중심 주제가 될 <<사기>> 독파는 반도 채 읽지 못하고 <공자세가>를 먼저 읽는 것으로 끝냈다. 약속한 중국사 강의 준비는 교무실 내 책꽂이에 장식품으로 꽂혀있던 중학교 역사교과서를 한 번 읽고, 왕조 이름과 흥망의 연도만 메모하는 것으로 마무리 지었다.
작가회의 원고는 편집인에게 제출 기한을 여행 뒤로 늦추어 달라는 요청을 보내고 초벌 원고만 작성하였다. 중국어 간체자 익히기와 문법, 회화 공부는 흉내만 내고 멈췄다. 모두 나의 게으름 탓이다.
시간은 빠르지도 늦지도 않게 그렇게 어김없이 지나갔다. 아내가 옷가게에 데려가서는 여행에 맞는 잠바와 바지를 사라고 하였다. 견물생심이었다. 나처럼 옷을 사 입지 않으면 옷 장사가 망한다고 아내로부터 구박을 받는 나도 파란 잠바에 까만 등산복 바지를 사고 말았다.
또 마트에 가서 비스켓과 초코렛과 사탕을 비롯하여 간식거리를 잔뜩 사 왔다. 생각이 많고 활동이 적으며, 허파 기능은 발달하고 간 기능은 약한 태양인 체질인 나는 역류성식도염 증상이 나타나기 전에 물이든 사탕이든 먹어야 하였다. 근심걱정을 다 놓고서 행복하게 여행을 한다면, 이런 증상은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었다. 여행은 그래서 또 하나의 치유명상인 것이다.
첫댓글 월성님!!!, 시작하셨네요? 무척 기다렸던 글소식입니다. 앞으로도 계속되겠지요?
회장님, 이미 여행기와 자료를 모두 올렸습니다. 지겹더라도 읽어주시고 잘못된 것들을 많이 지적해 주세요. ^^
우와^^ 역시 대단하십니다.
여행 답사기의 진수를 보는 듯합니다
선생님의 서권기가 느껴지는 유익하고 값진 글들 항상 감사 드립니다 ^^
선생님, 이쁘게 봐주시니 고맙습니다. ^^ 틈나는대로 읽어주시고 잘못된 점들을 지적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