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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화(文人畵)
글씨와 그림은
중국과 우리나라의 역사에서 오래 전부터
양대(兩大) 예술로 여겨져 왔다.
공구나 재료 상에서 매우 유사하다.
또 그 표현상에 있어서
변화다단(變化多端)한 선조(線條)나
발묵(潑墨) 등에도 유사성이 있다.
또한
‘서화동체론(書畵同體論)’을 앞세우며
서화란 단어로 붙여 쓰여 왔다.
서화는 본래 분별이 없었다고 여기는 것이
상념이다.
소위 ‘서화동체(書畵同體)’,
‘서화동원(書畵同源)’이란
말들이 이를 뒷받침해 준다.
원시의 상형문자는 문자로 보면 문자이고
회화로 보면 가장 고도로 단순화된
예술표현이었다.
당의 장언원(張彦遠)은
『역대명화기서론
(歷代名畵記叙論)』에서
“서화는 한 몸으로
서로 분별이 없었다.”고 하여
‘서화동체’를 주장하였으며,
또 “(생활상에 있어서) 그 뜻을 전할 수
없었기 때문에 글씨가 있게 되었고
형태를 나타낼 수 없었기 때문에
그림이 있게 되었다”라고 하였다.
선조(線條) ; 선, 윤곽, 라인
발묵(潑墨) ; 글씨나 그림에서 , 먹물이 번져 퍼지는 일
서화동체론(書畵同體) ; 서화는 한 몸으로 서로
분별이 없다
서화동원(書畵同源) ; 글씨와 그림은 근원이 같다는 것 ?
문인화(文人畵)의 발전
서화는 서로 다른 모습으로
끊임없이 발전하여
서로 다른 분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오의 조불흥(曹不興),
동진의 고개지(顧愷之),
양의 장승요(張僧繇) 등이
기록상에 나타나는
조기(早期)의 화가들로 알려져 있고,
서예는 그보다 앞서
한(漢)의
최원(崔瑗). 장지(張芝). 채옹(蔡邕).
유덕승(劉德昇) 등이 있다.
이것을 보면
하나의 전문 분야라는 인식에 있어서
그림보다 글씨가 앞선 것을 알 수 있다.
회화는 인물화부터 발달하였다.
당을 거쳐 오대와 송에 이르러 산수화조(山水花鳥)의
전성시대를 구가하여
중국예술의 대표성을 띠게 되었다.
회화의 개념에서 탈피하여 문인들이
문인정신을 가지고
서예적 기법을 위주로 하여
그린 그림을
‘문인화(文人畵)’라고 한다.
문인화가 언제부터 출발하였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구구하다.
명의 동기창은
당의 왕유(王維)를
종조(宗祖)로 삼았지만
이렇다 할 구체적인 자료가 없다.
실제로는 송대에 와서
소동파(蘇東坡)나
문동(文同) 같은 사람들이
서법과 그림에 조예가 깊은
문인이었으므로
정신이나 선조(線條)에 있어서
서화가 동체(同體)란 관념을
현시(顯示)하기에 이르렀다.
원(元)에 이르러 조맹부나 가구사(柯九思)
등에 의하여 좀 더 구체화되었다.
특히 조맹부는
글씨를 왕희지로 돌아가자고
복고를 외친 것과 같이
그림에 있어서도
복고주의를 제창하였다.
남송의 유미사실(唯美寫實)의
우미(優美)하고 정치(精緻)한
작품들이
설묵(設墨)은 있지만
필치가 없음을 꼬집음으로써
당이나 북송의 선조위주(線條爲主)의
풍격으로 돌아가자고 하였다.
그는 문인이었으며 대서법가이고
뛰어난 화가였다.
그의 주장은 시. 서. 화의 융합을
실천할 수 있는 사람으로서의
당연한 귀결이었을 것이다.
조맹부는 “돌은 비백(飛白)과 같고
나무는 주문(籒文)과 같으며,
사죽(寫竹)을 하려면
영자팔법(永字八法)에 통해야 된다.
만일 이것을 깨닫는 사람이 있다면
서화가 본래 똑같다는 것을
알 것이다”라는 시(詩)를 남겨
서법과 그림에 있어서 선조(線條)의 융합,
또는 서화동원설에 대한 관념에
크게 기여하였다.
또 가구사는 더 진일보하여
“나무줄기는 전법(篆法)을 이용하고,
가지는 초서를 응용하고,
잎은 팔분법(八分法)이나
안진경의 삐치는 법을 사용하고,
목석(木石)을 그리는데는
절차고와 옥루흔의 여세로 한다”라고
토로하였다.
양유정(楊維楨)은
“글씨와 그림은 하나이다.
사대부로서 그림 잘 그리는 사람은
반드시 글씨를 잘 썼으니
그들의 화법(畵法)은
곧 서법에 있는 바이다”라고 하였다.
이후 명에 와서 동기창과
문징명에 이르러
한층 더 체계를 이루었고,
서위(徐渭). 팔대산인(八大山人).
석도(石濤)에 와서 절정을 이루었다.
그 이후 청의
양주팔괴(楊州八怪)를 비롯하여
조지겸. 오창석. 제백석 등으로
이어지는 동안
빛나는 작품들이 탄생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김정희(金正喜). 민영익(閔泳翊).
김용진(金容鎭). 허백련(許百鍊).
손재형(孫在馨). 유희강(柳熙綱) 등
훌륭한 문인화가들이 연이어 활동하였다.
유미사실(唯美寫實) ; 아름다움을 추구하여 거기에 빠지거나
깊이 즐기며 사물을 있는 그대로 그려 냄
우미(優美) ; 우아하고 아름답다
정치(精緻) ; 정교하고 치밀하다
선조위주(線條爲主) ; 필력의 아름다움만을 주로 삼는 것
비백(飛白) ; 글씨의 점획이 새까맣게 써지지 않고
마치 비로 쓴 것처럼 붓끝이 잘게 갈라져서
있기 때문에 필세가 비동(飛動)한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주문(籒文) ; 周나라 宣王(선왕) 시대에 사주(史籒)가 만든 대전
사죽(寫竹) ; 대나무를 그림 ?
영자팔법(永字八法) ; 영자팔법은 해서(楷書)를 쓸 때 기본이 되는 것으로
영(永)이라는 특정 글자의 조형적 특성을 기준으로
모든 글자에 공통적으로 적용하려고 고찰한 운필법이다.
전법(篆法) ; 전서를 쓰는 방법 ?
팔분법(八分法) ; 예서에 동세(動勢)를 가하여 만든 것으로
이 서체는 전한 말기(BC 1세기경)부터 쓰이기 시작하여
이후 후한(後漢)에 이르러 대표적인 한자의 서체가 되었음
절차고(折차股) ; 필획을 전환할 때의 용필 방법 및 그 효과에 대한 비유.
필획이 바뀌는 곳에서의 용필은 원만하면서 힘이 있어야 하고
붓털은 고르게 펴서 붓끝이 휘어지면 안 되는데
이것이 마치 쇠로 만든 비녀의 끝이 둥글게 꺾인 것과 같은
것이라 하여 이름 붙여졌다.
옥루흔(屋漏痕) ; 중국 당대의 안진경이 고안한 서예의 기법으로
가옥의 누수(漏水) 현상과 같이 세로로 선을 그으면서
물이 떨어지는 것처럼 자유롭게 아래로 떨어지게 한다는 뜻
종조(宗祖) ; 한 종파(宗派)의 개조(開祖)
종파(宗派) ; 정파 등 선택에 의해 본류에서 갈라져 나온 집단
개조(開祖) ; 무슨 일을 처음으로 시작하여 그 일파의 원조(元祖)가 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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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화와 서예
문인화는 서예와 마찬가지로
문인의 격조를
그대로 반영하는 것으로 여겨져 왔다.
문인화에는 문인으로서의 흥취와 멋,
그리고 학문에서 흘러나오는 향기.
또 서법의 신채(神彩)와 형질(形質)이
배어 있어야 된다.
또한 ‘화중유시(畵中有詩)’,
‘시중유화(詩中有畵)’ 같은
사유(思惟)의 미학에 이르는
매우 고차원적인 직관(直觀)
같은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무명씨의 시에서 나오는
문인의 교양조건이라고도 할 수 있는
서(書). 화(畵). 금(琴). 기(棋).
시(詩). 주(酒). 화(花)에서
우러나오는 아취(雅趣)가 맴돌아야 된다.
문인화의 소재로서 가장 대표적인 것은
사군자를 들 수 있다.
매(梅). 난(蘭). 국(菊). 죽(竹)은
그 성격 면에서 문인이 닮아야 할
여러 가지 조건을 갖추고 있다.
고상함. 겸허. 인내. 용기
그 밖에도 은일(隱逸)
같은 것들이 그것이다.
사군자는 용묵(用墨)과
일회성에서 서예와
가장 흡사한 점이 있다.
그러므로 서예부문에서 전각과 더불어
반드시 같이 취급 되어진다.
문인화는 사군자 이외에도
석(石). 송(松). 영지(靈芝).
학(鶴). 해. 달. 등
가까이 하고 싶은 대상은 다 그린다.
또 산수(山水). 인물(人物). 화훼(花卉)에
이르기까지 무언가 느끼는 바가 있어서
일필(一筆)로 그리면
모두 문인화라고 할 수 있다.
문인이 그렸다 하더라도 서예성이 없는
공필화(工筆畵). 사실화(事實畵).
세공화(細工畵) 등은
문인화라고 하지 않는다.
문인화를 낙묵화(落墨畵)라고도 하였다.
이것을 문기(文氣) 있는 그
림이라고 한다.
지금은 문인화의 개념이 많이 달라졌다.
그 가장 큰 이유는
전통적인 문인이 살 수 있는
환경이 되지 못하며
산재해 있는 한학자들이
그 면목을 유지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인이란 개념조차
거의 사라져 버렸다.
다만 전부터 전해오는
문인화의 범본(範本)을 흉내 내어
그 외형만 본뜨고 있는 실정이다.
문인화는 늘 서예와 같이
다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서가들 중에 그나마 옛 유풍을 살려
접근하려는 소수가 활동하고 있다.
문인화가를 자처하고
표현위주로 하는 층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오늘날 문인화풍의 그림도 다양해 졌다.
강열한 채색을 하고
화제(畵題)가 없는 것도 있다.
화제를 한글로 하는 경향도 두드러졌다.
시대의 산물은
그 나름대로 인정받아야 한다.
단지 문인화의 본령(本領)과
진수(眞髓)의 맥이 끊어질까 두려워하고
아쉬워 할 뿐이다.
더욱 문제는 문인화라는 단어를
현 작가들이 쓸 수 있는가라는 것이다.
문인이 아니면서
문인화가라고 자처한다면
웃음거리가 될 소지가 다분하다.
‘직업화가가 아닌 문인이
여기(餘技)로 그리는 그림’이라는
문인화의
사전적인 해석에 주목해야 될 것이다.
신채(神彩) ; 정신과 풍채를 아울러 이르는 말.
신과 같이 뛰어난 풍채
형질(形質) ; 사물의 생긴 모양과 성질
화중유시(畵中有詩) ; 그림 가운데 시가 있음 ?
시중유화(詩中有畵) ; 시 가운데 그림이 있음 ?
사유(思惟) ; 대상을 두루 생각하는 일
직관(直觀) ; 감각, 경험, 연상, 판단, 추리 따위의 사유
작용을 거치지 아니하고 대상을
직접적으로 파악하는 작용
아취(雅趣) ; 고아한 정취. 또는 그런 취미
은일(隱逸) ; 세상을 피하여 숨음. 또는 그런 사람.
예전에, 벼슬하지 아니하고 숨어 살던 학자.
임금이 특별히 벼슬을 내리던 은사(隱士)
범본(範本) ; 본보기(본을 받을 만한 대상)
화제(畵題) ; 그림의 이름 또는 제목.
그림 위에 쓰는 시문(詩文)
본령(本領) ; 본디부터 대대로 내려오는 영지(領地).
근본이 되는 강령(綱領)이나 특질
진수(眞髓) ; 사물의 현상의 가장 중요하고 본질적인 부분.
알맹이. 알짜
여기(餘技) ;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틈틈이 취미로 하는 재주나 일
참고문헌 ; <<서예통론>> 선주선저 원광출판국. 인터넷사전. 바이뚜.
첫댓글 명지서법 금요일에 나갈 서예이론 중 문인화에 대한 내용이다.
방학동안 모두 건강히 잘지냈는지 궁금하다.
그동안 보지 못했던 후배들과 다시 새 학기를 시작하고
또 다시 입성 할 새내기후배들 모두
이번 학기 역시 대 명지서법을 잘 이끌어 나가자 오바~~~~~~~~~~~~~~~~~~
오늘 서예이론은 p350-353 문인화의 발전까지 나갔다
8급 기출문제 시험
최** 92% 김** 100%
다음주부터는 7급2 나가고
오늘은 서예실기는 하지 않았다.
2016년 일학기 회장 정**이는 긍정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다.
회장을 맡아주어 고맙다는 말을 건넸다.
어떻게 쉽게 승낙할 수 있었는지를 물으니,
회장을 맡을 때에도 거절하는 것보다는 받아들이는 것이 더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다는 표현을 하였다.
회장이니 회원 중에 설사 맘에 안 드는 회원이 있더라도 폭넓게 감싸 안고
힘들어 하는 회원도 다 받아들여 나가자고 하였다.
혼자 일을 다 하려 하지 말고 나누어서 하고,
하다보면 회장이 거의 일을 다 할 때도 있을 것이니
급선무인 공부에 전념하면서 나머지는 명지서법 동아리를 위해 힘써달라고 하였다.
쉽지 않은 만큼 얻는 것도 많을 것이고
나중에 이력서에 명지서법 회장이었다는 것을 기록해도 된다고 하였다.
다음 주에는 동아리박람회도 있다고 하였고
벌써 남학생 화장실까지 광고를 하여 놓았다고 하였다.
회원 중에 아는 남학생을 통하여 다 붙이도록 하였다고 하였다.
현재 재학생 중에는 남학생이 하나도 없기에
여학생이 많다는 문구도 써 넣었다고 ...ㅎㅎ
**이가 회장을 하면서 많은 경험을 하고
**이에게도 많은 보탬이되기를 바라고
무엇보다 대명지서법회장 **이에게
명지서법을 맡으면서 마음에 상처를 받는 일이 없기를 바라고
즐거움만 있기를 ~~~~~~~~~~~~~
2021년 3월12일 금요일이다
우리 후배들
학기 시작은 잘했니?
공부만 하지 말고
운동 열심히하여
면역력을 길러
건강하게 살자
오늘 볼 서예이론은
문인화(文人畵)이다
시간 날 때에
참고하여 보자
https://m.cafe.daum.net/bbhy0003/S1GN/63?svc=cafeapp
이번 봄전시는
누가 작품 출품 하려나
연락주라
우리후배들
시간은
학교 강습이 안되니
하전서예에서
수. 오후 4~6시
목. 오후 12시 30~1시 50분
금. 오전 9시30~11시
주중에는
하전서예
3월 수강학생 시간표
보내니 참고하여
연락하고 와라
https://m.cafe.daum.net/bbhy0003/LOy7/1504?svc=cafeapp
집에서 글씨 쓰기 원하는
후배도 연락 바란다.
즐거운 주말되자
오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