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오는 봄날에 퇴근하고 막걸리 한잔 하며 화엄경을 생각한다
화엄경을 보현행원 관점에서 보면 거기에는 우리의 이야기가 있다
고매한 이상 세계의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 사는 이야기가 있다
화엄경 전체가 그렇다
화엄경 읽으면 저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거기는 우리와 다른 고매한 세계가 아니라
우리와 똑같은 고해를 사는 중생들의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그들이
어떻게 부처님을 믿고
어떻게 부처님을 그리워 하며
어떻게 고해를 헤쳐 나가는가가 있다
화엄경을 화엄학
그리고 고상했던 중국 화엄종의 시각으로 보지를 마라
화엄은 별다른 저 먼 세계의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다
찰나가 영원이고 하나가 모두인 것은
저 먼 따로 있는 세계의 이야기가 아니고
웃고 우는
지금 여기 있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https://youtu.be/BvyofrkfnCw?si=fqTJr5SGBKFFTT5k
https://youtu.be/GGSZdNAA1S0?si=P66D8lReuZ-1UF3t
첫댓글 화엄경은 저 먼 나라의 나와 다른 세계의 이야기로 들으면 안 됩니다
저 화엄경에 펼쳐지는 불가사의한 무한 세계가
바로 나의 소식 우리들 모습 이었던 것입니다
화엄은 그런 소식을 우리에게 전해 줍니다
이것을 금하 광덕 큰스님께서는
내생명 부처님 무한공덕생명
보현행원으로 보리 이루리
보현행원으로 불국 이루리
이 간단한 반야 활구로
우리에게 전해 주셨습니다
아!
그러나 슬프고 슬퍼라
이 깊은 우리 큰스님 경계
아시는 분 얼마나 계실까
제가 보건대 의상 화엄과 원효 화엄의 차이도 이런 데 있습니다
의상은 화엄을 저 먼 세계의 남의 이야기로 받아들인 듯합니다 그래서 실천과 구원을 현실에서 찾지 못하고 정토 신앙에서 찾은 듯합니다 관음을 보러 홍련암에 간것도 그런 이유일지 모릅니다
반면 원효는 제가 보기엔 화엄 세계를 바로 우리들 이야기로 본 경향이 강합니다 그러니 더이상 이론 이야기는 그치고 중생 속으로 들어갔겠지요 의상은 해탈을 갈앙 했으나 원효는 추호도 그러지 않았어요 바로 지금 이 자리가 화엄국토 전쟁에 시달리는 우리들이 바로 화엄 생명임을 알았던 겁니다
다만 이런 이치를 모르는 저 힘든 신라 백성을 위해 원효는 표주박을 치며 아미타불을 불렀던 것은 아닌가 합니다
원효는 갈 곳이 없었지만
전쟁에 시달리는 신라 백성은 갈 곳이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갈곳 없는 자리에서
중생을 위해 가는 노래를 불렀던 것이겠지요
나는 부를 필요 없는 노래
나무마하반야바라밀...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