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회
그리고 10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어.
병목이는 자기가 중동에서
벌어온 돈으로 바로 위의 형과 동업으로 조그마한 공장을 하고 있었어.
처음에는 자기 아버님이 하시던 옹기 공장을 하려 했으나
일이 너무 힘이 들고 기술이 없어서 생각을 바꾸었어.
그리고 집에서도 많이 말렸지....
미싱으로 수를 놓고 수놓은 천으로 이불을 만들고 ,
또 한쪽에서는 천 위에 솜을 놓으면
그것을 통채로 미싱을 하는 누비 이불도 만드는 이불 공장이었어
그래서 남대문 시장과 동대문 시장에 납품을 하고
형수님이 조그마한 이불 가게를 하고 있었어.
일이 너무 많아 공장을 확장할까 하는 중이었어.
일하는 아가씨들이 15명 정도이고 밥하는 아주머니와 경리 아가씨
그리고 병목이와 그의 형 이래서 약 20명 정도인 조그마한 공장이었어..
병목이의 나이가 40줄에 가까워 오고 있었으나
아직 결혼은 하지 않고 있었어.
주위에서는 늦었다고 야단들이었으나 정작 본인은 생각이 모양이야.
병목이는 이렇게 생각이 되는게야.
결혼 이야기가 나오고 중매장이가 오고 가고 하면 겁이나더래.
자꾸만 옛날 채린씨 생각이 나고 이젠 돈도 좀 있고 하니까
사람보고 하는 결혼이 아니고 돈 보고 결혼을 하자고 하는게 아닌가,
이런 생각만 든다는게야. 그래서 여자들이 돈만 챙기면 도망을 간다....
중동에서 일 할때 그렇게 열심히 일을 해서 집으로 돈을
보내면 집에서 여자들이 바람이 나고 그 돈으로 도망을 간
사례들을 많이 보아왔고 또 그런 사라들과 이야기도 했으니까...
그래서 그런 피해 망상에 사로 잡혀 있는 것 같았어....
그렇게 나를 사랑한다던 채린씨도 가버린 세상에.....
그래서 자기 자신도 못 믿을 세상에
어떻게 여자를 믿겠느냐 뭐 이런 이야기겠지....
그래서 결혼을 아예 포기한 상태였어....
어느해 10월 말쯤인가?
대구에서 병목이의 가문에 종친회가 있다고 참석하라는 연락이 왔어.
종친회라는 말도 생소한데 참석이라니....
그리고 내용인즉슨 병목이의 가문에 족보도 만들 예정이니
호적등본과 여러 가지 서류를 가져 오라는 내용이었어....
그래서 형과 의논을 하고 쬬다리는 대구로 향했어
대구에 내려서 종친회 장소에 도착하여 생소한 사람들과
족보의 서열을 따져가며 인사를 나누고 있는데
저쪽에 눈에 많이 익은 얼굴이 보이는게야.
다름아닌 남창에 살던 영범이었어.
벌써 몇년이 지났나? 중동에서 돌아와 아버님 산소에 들려 보고
아저씨가 돌아 가셨다는 말을 듣고 남창에 들렸다가
대구로 가서 영범이를 만난지가 벌써 10년이 다 되어가고 있었던게야....
"영범아, 너 영범이 맞지?"
"형 병목이 형이 아닝교? 우짠일로 대구까지 왔능교?"
둘은 서로 얼싸 안았어. "그래 형들은 다 잘 있겠지?"
둘은 거기서 일들을 대강 마치고 근처의 다방으로 들어 갔어.
"그래 영범아 어떻게 살고 있니? 우리가 너무 무심한 것 같구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형이 공장을 팔아서 대구로 이사를 하고
무슨 사업을 한다고 하다가 돈을 다 날리고
우리는 거의 알몸이 되다시피 된게 아인교?
그러나 그냥 그냥 먹고 사는데는 괜찮십니더. 걱정일랑 마이소"
옛날에는 그렇게 밝게만 보이던 얼굴에 그늘이 져 있어 보였다.
"참 형은 돈도 많이 벌었다든데 우째 장가는 못 갔는교?"
"장가...글쎄.....그런데 그 소문이 대구 까지 나 있었어?
세상 참 좁구나. 못 간게 아니라 안간게지..."
"가만 있어 보이소. 참말로 그 채린이 누나 때문에 안간거 아입니껴?
내가 알기로는 그 누나를 엄청나게 좋아했던 걸로 알고 있는데예."
"글쎄 그게 그럴까?...."
"참 가만이 있어 보이소.
내가 그 누나가 어디에 살고 있는지 알 것 같기도 한데예....
그러니까 계린이 누나가 운전면허 시험을 보러 갔다가 거기서 만났다 하데예.
가만히 있어 보이소...."
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내서 한참을 찾더니,
"형요, 보이소. 여기에 주소가 있는기라예,
그래 ㅇㅇㅇ 미술학원 대구 북구....
아 이 주소는 여기서 멀지 안니더. 한번 만나 볼랍니껴?'
너무 순간에 일어난 일이라 말문이 막혀 버렸어.
(그래 나를 버리고 가더니 미술 학원을 하고 있다?....)
그런데 병목이의 가슴이 뛰기 시작했어.
"우짤겁니껴? 만날랑교 안 만날랑교?"
"가만히 가만히 있어봐. 생각을 좀더 해보자구...."
순간적으로 옛날 일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는게야,
서생 바닷가... 옹기굴 앞에서...그리고 그 뒷동산에서 있었던 일 하며...
아~~보고 싶다, 보고 싶어... 그래 그래 만나 보자...
그리고 다방 레지를 불렀어. 전화 번호를 적어 주고....
"전화를 남자가 받으면 사모님을 바꾸어 달라고 하고
왜 그러냐고 하면 우리집 아이를 학원에 보낼려고 하는데
상담을 하고 싶다고 하세요.
그리고 여자분이 받으면 나를 바꾸어 주세요"
레지가 전화를 하고 상대방에게 채린씨냐 확인을 하고
전화기를 병목이에게 넘겨 주었어...
"여보세요 저 병목이입니다. 기억 나시겠어요?"
저쪽에서 한동안 말이 없었어, 그래서 또 불렀지,
"여보세요 채린씨 채린씨," 다급하게 불렀어.
"안녕 하셨능교 오랫만이네예"
아~그 목소리 그 목소리 그 목소리는 아직도 변하지 않았어.
그 때 그 목소리....."저 지금 대구에 와 있는데요 한번 뵙고 싶습니다."
"저도예. 그런데 어떻게 알았능교? 우리집 전화 번호 말입니더."
"그건 만나서 이야기합시다. 금방 갈께요"
채린씨네 학원 근처와 언제쯤이면
만날수 있는지 시간 약속을 하고 영범이와 함께 택시를 탔어.
학원 근처에서 차를 세우고 영범이는 다방에 앉아 있으라 하고
병목이는 차가 올만한 곳에서 기다리고 있었어...
지금이 2시 40분, 10분후면 차에 아이들을 태우고 이 앞에서 서겠지...
옛날 생각하면 정말 많이 변했지.
벌써 40줄에 들어 서고 있었고...머리에는 조금씩 새치도 있고....
잠시후에 승용차 한대가 쬬다리 앞에서 멈추어 섰어.
그리고 클락숀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어.
그리고 문이 열리더니, "병목씨 여기에요 여기요...."
아~~꿈에도 그리던 채린씨의 얼굴이 병목이 앞에 있는게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