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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베개를 베었더니 미래의 청사진이 (1714.2015.12.8.경북대학교 종강예배설교)
창28:10-22
할렐루야!
오늘 부족한 사람을 불러 주셔서 감사를 드립니다. 먼저 경북대학교 종강예배에 초청해 주셨는데 어떤 말씀으로 함께 은혜를 나눌까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기도하는 중에 대학생활에서의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있는데 그 꿈이 여러분의 인생을 변화시키는 놀라운 은혜가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은 내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꿈을 이야기 하려고 합니다. 여러분에게 진정한 꿈이 있습니까? 꿈대로 되어지시기를 축복합니다. 꿈이 바뀌면 인생이 바뀝니다. 허황된 꿈을 가지고 승리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이루어질 수 있는 꿈을 갖도록 꿈을 바꾸어 보시기 바랍니다.
젊은이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말 가운데 꿈이라는 말과 비전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꿈이나 비전은 같은 뜻을 가진 말입니다. 비전이라는 말은 ‘10-20년 후에 나는 이런 사람이 되겠다’라는 마음을 품고 그 꿈을 이루려고 힘쓰며 살아가는 것을 꿈이라 하고 비전이라고 말합니다. 사람은 이 비전이 있어야 하고 꿈이 있어야 합니다. 특히 젊은이들은 더욱 이 비전과 꿈이 강렬해야 합니다. ‘나는 10년 후에 그리고 20년 후에 이런 사람이 되겠다’라는 이런 목표와 꿈이 있어야 합니다. 사람에게 이런 비전과 꿈이 있으면 오늘 절제하고 수고하고 공부하고 수련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기대나 꿈이 없으면 방종하게 되고 시간을 무의미하게 보내게 됩니다.
1.돌베게를 베고 자던 야곱과 같이 우리도 꿈과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딱딱한 의자에 앉아서 열심히 공부하는 이유는 꿈을 이루기 위함일 것입니다. 돌베게를 베고 자는 순간 야곱에는 꿈에 미래의 청사진이 그려졌습니다. 꿈과 비전이 있는 사람은 막 살지 않습니다. 계획을 세우며 삽니다. 청사진을 그려가지고 삽니다. 사람이 계획을 가지고 산다는 것은 참 중요한 일입니다. 하루를 시작해도 계획을 세워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계획이 없으면 많은 시간을 허무하게 허비하고 낭비하게 됩니다. 시간은 잠깐 지나가 버립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시간이 다 지나가 버린 후에 후회를 하게 됩니다. 그런데 사람이 계획을 세우고 살면 우선 목표가 생기게 됩니다. 목표가 있는 사람은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오늘 노력하고 수고하고 힘쓰게 됩니다. 여러분 노력한만큼 기회는 올 것입니다. 기회는 그냥 오는 것이 아니라 노력해야 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학업에 열중하고 노력한만큼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는 올 것입니다.
오늘 본문 창세기 28장은 야곱이 꿈을 꾸는 사건입니다. 쌍둥이 동생으로 태어난 야곱은 욕심 많고 간사하고 얄궂은 사나이로 어머니 몸에서 태어날 때부터 형 에서의 발뒤꿈치를 잡고 이 땅에 태어납니다. 야곱은 잘못된 꿈 - 욕망으로 똘똘뭉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야곱이라는 이름의 뜻은 ‘붙잡는다. 빼앗는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야망에 붙들린 사람, 잘못된 꿈에 붙잡혀 살던 사람! 그가 야곱이었습니다. 형이 몹시도 시장해 하고 곤비한 틈을 이용해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빼앗습니다. 눈먼 아버지까지 속여 아버지가 장자 에서에게 주어야 할 축복을 가로채 버리고 맙니다.
언제나 잘못된 꿈, 욕망을 이루기 위해선 잘못된 방법, 간사한 계략이 동원되곤 합니다. 몇 번이고 속임을 당한 에서는 동생을 죽이려고 한을 품고 기회를 엿보게 되지요. 하여 야곱은 정든 고향과 따뜻한 부모와 가정을 떠나 도망하는 신세가 되어야 했습니다. 외삼촌이 살고 있는 하란으로 망명길에 올랐던 야곱은 어느날 밤 루스 광야에서 모래를 침대삼고 하늘을 이불삼아 그리고 길바닥에 굴러 다니는 돌판을 베개하여 흐르는 눈물을 문질러 닦고 잠을 청하게 됩니다.
남을 속이고 쫓기는 사람이 갖는 불안감, 죄책감, 가정을 떠난 외로움 - 만감이 교차하는 바로 그 밤이였습니다. 돌을 베개하고 자던 그 밤, 그는 참으로 놀라운 꿈을 꾸었습니다. 깊은 밤 온 땅이 환해지는데 사닥다리 하나가 산을 지나고 구름을 뚫어 하늘까지 높이 연결되어 있었고 하늘의 사자들이 미끄러지듯 오르락 내리락하고 그 위에서 우렁찬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창28:13-15절‘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다, 그리고 너로 하여금 반드시 고향으로 돌아가게 하겠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이는 야곱이 복의 근원이 될 것이며 이 꿈이 이루어 질 때까지 하나님께서 친히 함께 하시리라는 약속입니다. 일찍이 조부 아브라함에게 주신 비전을 그 간사한 야곱을 통해 이루시겠다는 것입니다. 이 시간은 야곱이 매를 맞아야 할 시간입니다. 그런데 이게 왠일입니까? 야곱을 만난 하나님의 제 일성은 축복의 메세지였습니다. 여기에 굳은 심령을 녹이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습니다.
야곱이 그 아침에 땅을 박차고 일어났을 때 그의 가슴은 기쁨과 감격으로 터질 것만 같았습니다. ‘나 혼자인 줄 알았는데, 여기 하나님이 함께 계시는 구나. 이 길이 고독한 나그네 길인 줄 알았는데 하나님께서 동행하시는 길이요 여기가 내 집이요 여기가 성전이요 여기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하늘의 동산이구나. 저주받은 나그네 길인 줄 알았는데 이 길조차 하나님의 섭리였구나’ 이것이 꿈꾸는 인생의 능력입니다. 행복입니다. 온 몸에 힘이 솟아올랐습니다. 그 곳 루스라 불리던 땅을 하나님의 집 ‘벧엘’이라 부르게 되는 것이지요.
루스란 말은 분리라는 뜻입니다. ‘나는 이제 영원히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된 존재, 내 형제 부모로부터 분리된 존재인 줄 알았는데,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는 구나’인생의 가장 큰 위기에서 꿈을 꾸고 인생의 가장 큰 전환점을 갖게 되지요. 인생의 가치는 사명에 있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값어치가 얼마나 될까? 사명, 꿈, 비전만큼 값어치가 있는 것입니다.
슬픔의 밤, 절망에 밤, 고독의 밤이었습니다. 야곱은 슬픔을 안고 ‘인생의 가치’를 찾아보려고 애쓰다가 지쳐서 돌 베개 위에 머리를 얹고 잠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밤에 야곱은 그의 생애에서 전무후무한 꿈을 꾸었습니다. 하늘 문이 열리고 사닥다리 하나가 내려오는데 더 놀라운 것은 그 사닥다리를 통해 하늘의 사자가 오르락내리락하고 그 위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깃들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꿈을 가진 사람을 좋아하십니다. 그 꿈을 이루도록 기회를 주십니다. 인류 역사는 이런 꿈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서 이루어져 왔습니다. 나머지 대다수 사람들은 그 사람들 때문에 더불어 살아가는 것입니다. 야곱이 고향 떠난지가 20년이 되었습니다. 야곱은 그 20년 동안 하루도 빼놓지 않고 고향생각을 하면서 살았습니다. 가슴에 고향에 돌아갈 꿈이 있으면 그 마음은 즐겁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의 꿈대로 고향에 가는 길을 여셨습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지금이 가장 어려운 상황이라면 인생의 가장 전환점을 가질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고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믿음을 갖고 비젼을 갖고 일어서시기를 바랍니다.
2. 돌베게를 베고 자는 인생의 광야는 꿈을 꿀수 있는 기회입니다.
이 시간 여러분은 야곱처럼 쫓기고 있지는 않습니까? 인생의 큰 위기를 맞고 있습니까? 지금 사업도 되지않고, 직장도 어려움을 당하고, 지금 개인적으로 어려움을 당하고 있다면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지금 하나님을 만나야 할 때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의 능력의 손길은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시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사명, 비전을 새롭게 해야 할 때입니다. 지금은 꿈을 꿔야 할 때입니다. 시대가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절망의 그림자가 깊으면 깊을수록 하나님의 사람들은 꿈을 꾸어야 합니다. 자신의 영적침체가 심하면 심할수록 꿈을 꾸어야 합니다. 신령한 꿈을 꾸면 하나님께서 신령한 전략을 주십니다.
여러분 가운데 이런 돌베개 인생을 살아가시는 분이 계십니까? 지금 여러분의 삶이 광야에서 밤을 만나 돌을 베개 삼아 자야하는 야곱의 처지와 비슷하다고 생각되시는 분들이 있습니까? 돌베개 인생은 야곱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경험하는 인생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돌베개 인생입니다. 야곱의 돌베개 인생은 외롭고 고독한 인생이었고 무엇보다도 그를 괴롭힌 것은 미래에 대한 불안이었습니다. 무사히 외삼촌 집에 까지 갈 수 있을까? 그 후 내 인생은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내 인생은 이렇게 끝나는 것은 아닌가? 이런 두려움이 야곱을 더욱 괴롭혔습니다. 거기다가 더 희망을 가질 수 없는 것이 이런 모든 상황을 자기 자신이 만들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는 가정에서 모략과 교활한 수단으로 형의 권리와 축복을 가로챘습니다. 스스로 무덤을 판 격이 되었습니다.
‘광야 또는 빈들’은 믿음의 사람들의 영성을 새롭게 체험하는 매우 중요한 장소입니다. 성경의 인물들이 하나같이 광야를 거처 위대한 신앙의 인물이 되었습니다. 구약의 출애굽의 영웅 모세도 미디안 광야 40년의 훈련 속에서 하나님을 만났고,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서 이스라엘의 출애굽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모세가 이끌고 나온 이스라엘도 역시 40년을 광야에서 우상과 살아 계신 하나님을 분별하는 훈련을 받았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들의 광야 체험은 하나님 앞에서 온전히 사는 사람을 준비하는 기간이었습니다. 이 광야 40년을 거치고서야 이스라엘은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선민 공동체가 형성되어진 것입니다. 심지어 우리 예수님도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에 광야 40일간의 금식 기도를 통하여 출발하신 것을 볼 수가 있고, 구약의 위대한 선지자 엘리야도 광야의 체험을 했고, 예수님의 선구자 세례요한도 역시 광야의 사람이었습니다. 사도 바울도 다메섹 도상에서 회개하고 난 다음 맨 먼저 간 곳이 아라비아 광야였습니다.
광야나 빈들은 단순한 지리적 용어 이상의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고난과 훈련을 통하여 ‘바른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길’이요, ‘광야’란 ‘하나님을 만나는 통로’가 됩니다. 그러므로 옛 믿음의 선진들이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 일부러 광야로 나갔듯이 오늘 우리는 그런 간절함으로 우리 삶 속에 광야를 통과해야 합니다. 이 광야기간을 제대로 통과할 때 우리는 저 부활의 영광에도 더욱 감격스럽게 참여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3. 돌베게 배고자던 야곱이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 결단한 것이 무엇입니까?
한마디로 야곱은 하나님의 축복이 없으면 살 수 없음을 알고 하나님의 축복은 너무 간절히 사모했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는 장자의 축복을 가로챘습니다. 장자 권은 하나님 앞에 나와 ‘제사 드리는 특권’이 있습니다. 야곱은 하늘과 땅 사이를 이어보려고 노력했던 사람입니다. 야곱은 어디까지나 투철한 현실주의자이면서도 꿈은 하늘에 두었습니다. 후에 얍복강가에서 천사와 씨름을 하면서도 하늘의 복을 탐내고 양보하지 않고 이긴 사람입니다. 그래서 후에는 하늘로부터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받은 주인공입니다.
사기 치고 도둑질한 죄인인 야곱을 찾아오셔서 만나주셨습니다. 야곱은 팥죽 한 그릇으로 굶주린 형 에서를 속여서 장자의 명분을 빼앗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죄를 범하고 자기의 죄로 인한 보복을 두려워하여 도망자의 길을 가고 있는 야곱에게 찾아 오셨습니다.야곱이 한 일을 보아서는 오히려 정죄를 당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하나님 편에서 찾아오셔서 야곱을 만나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극히 불안하고 답답하여 공포에 떨고 있는 야곱을 만나 주셨습니다. 두려움 속에 쌓여 광야에서 돌을 베개삼아 잠자는 야곱은 불안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찾아오신 하나님을 만난 후에 장래에 대한 보장을 약속 받고 용기를 얻었습니다. 하나님은 외롭고 버림받아 고독한 야곱을 만나 주셨습니다. 야곱이 홀로 광야에서 돌 베개를 베고 잠들었을 그때에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야곱을 만나 주셨습니다. 험한 인생길 가는 동안 때때로 야곱과 같이 외로운 경우를 당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외로워 잠 못 이루는 밤에도 우리 주님은 그곳에 찾아 오셔서 위로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포기한 야곱을 만나 주셨습니다. 야곱에게 남은 것이 있다면 연약한 육체뿐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절망 중에 누워 자는 야곱을 찾아 오셨습니다. 인간은 모든 것을 소유하였을 때보다 오히려 모든 것을 포기할 때 하나님으로 충만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절망 중에 있을 때 찾아오셔서 만나주시고 새로운 용기와 희망과 꿈을 주시는 분이 하나님입니다.
10절‘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더니’ 여기 ‘야곱이 브엘세바를 떠났다’는 말은 야곱이 태어나서 자란 곳, 부모 형제와 자기를 그렇게 사랑해 주었던 어머니 리브가를 떠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는 생소한 땅, 생소한 사람들이 있는 하란을 향해 갑니다. 그 곳은 8백 킬로미터나 떨어져 있어 며칠 길을 가야만 하는 먼 길입니다. 그러나 ‘브엘세바’를 떠난 것은 영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떠날 자리를 떠나야 합니다. 그래야 벧엘의 하나님을 만날 수가 있습니다. 브엘세바는 ‘물이 없는 곳, 방황하는 곳’을 의미합니다. 창21:14-15절을 보면 아브라함의 첩 하갈이 그의 아들 이스마엘과 함께 쫓겨나 브엘세바 광야에서 방황한 곳이요, 물이 떨어진 곳입니다. 물은 하나님의 말씀이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광야 반석에서 생수를 내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예수님은 가나 혼인집에서 물을 포도주로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물이 떨어졌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떨어진 곳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고갈 상태를 의미합니다. 은혜가 떨어지면 방황하게 되어 있습니다. 은혜가 떨어지면 시험이 들게 되어 있습니다. 은혜가 떨어지면 신본주의는 사라지고 인본주의가 나옵니다. 그래서 자기의 수단과 방법이 나옵니다. 사라가 은혜가 떨어질 때 인간의 방법과 수단과 요령으로 하갈을 자기의 남편 아브라함에게 주어 이스마엘을 낳게 했습니다. 인간적인 방법으로 얻은 이스마엘 때문에 지금도 중동지방은 편하지 못합니다.
여러분, 은혜가 떨어지면 하나님을 만날 수가 없습니다. 빨리 그 자리를 떠나야 합니다. 어디로 가야합니까? 벧엘로 가야합니다. 벧엘이 어디입니까? 오늘 본문에서 야곱이 하나님을 만난 곳입니다. 벧엘은 하나님의 집(성전)이란 뜻입니다. 하나님의 집과 멀리하면 믿음이 떨어집니다. 오늘날 교회 생활을 엉망으로 한 사람은 은혜가 떨어진 사람이요, 영적으로 방황하는 사람들입니다. 분명한 것은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먼저 영적 방황을 끝내야 무엇이 되어도 됩니다. 영적으로 방황하다 보면 인간의 교만이 머리를 듭니다. 내 방법과 요령이 머리를 듭니다. 이렇게 되면 하나님께 매 밖에 맞을 것이 없습니다.
4.야곱이 베고 잔 돌 베개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11절‘한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곳의 한 돌을 취하여 베개하고 거기 누워 자더니’이 돌은 버려진 돌입니다. 그러나 야곱이 꿈에서 깨어나 그 돌을 기둥으로 세우고 기름을 부어 하나님의 전의 기둥, 즉 교회의 머릿돌이 됨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더 쉽게 표현하면 이 돌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 머릿돌에 대하여 시118:22절‘건축자의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고 했고, 예수님도 직접 마21:42절‘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동족들에게 버린바 되어 십자가에 달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버려진 예수 그리스도를 교회의 머리로 삼으시고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돌 베개의 영적 의미가 무엇인가? 몇 가지 알아보겠습니다. 돌 베개는 여기서 교회를 의미하기도 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돌 베개를 베었다는 것은 지금 주님과 연합을 이루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① 돌 베개는 평안한 잠을 약속합니다.
사실 베게는 평안한 잠자리의 기본입니다. 푹신한 침대는 없어도 베게는 있어야 잠을 잡니다. 시127편‘여호와께서 그 사랑하는 자에게 잠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은 교회를 베개삼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베개를 잘못 베고 잠을 자려고 하다가 그 베개에 눈물을 적시고 불안에 빠진 사람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삼손은 베개해서는 안될 드릴라의 무릎에 누웠다가 나실인의 영광스러운 표적인 머리를 깍이우고 눈이 빠지는 비참한 처지가 되었습니다. 다윗은 누워서는 안 될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취하여 그의 팔을 베개삼아 누운 것이 그의 한 평생을 부끄럽게 만들었습니다. 돈을 주고 살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참으로 값지고 좋은 것은 돈으로 살 수 없습니다. 어떻게 보면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모두 값진 것들입니다. 침대는 돈으로 살 수 있으나 단잠은 돈으로 살 수 없습니다. 향락은 돈으로 살 수 있으나 평안은 돈으로 살 수 없습니다. 부요는 돈으로 살 수 있으나 행복은 돈으로 살 수 없습니다. 천국 역시 돈으로 살 수 없습니다. 참으로 귀한 생명도 모두 교회에서 믿음으로만 얻을 수 있습니다.
야곱은 그 날 밤 광야에서 여기 저기 굴러다니는 돌 하나를 골라서 베개를 했는데 꿈에 하나님을 만나고 나서 그 돌을 기둥 세우고 기름을 부은 것이 하나님의 성전의 기둥이요, 교회의 기초가 됨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 돌 베개는 하나님의 성전 즉 오늘날 교회의 모형입니다. 여러분, 이 자리가 하나님 안에서 평안한 잠을 약속 받을 수가 있습니다.
② 돌 베개는 축복의 꿈을 꾸게 합니다.
12절‘꿈에 본즉’야곱은 돌 베개를 배고 자다가 계시의 꿈을 꾸었습니다. 하나님은 개인이나 교회나 국가나 축복하시기 전에 반드시 마음 속에 꿈을 주시고 그 꿈을 따라 축복해 주십니다. 빌2:13절‘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꿈)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요셉은 꿈의 사람이었습니다. 그 꿈 때문에 고난도 많이 받았지만 하나님은 그 고난까지도 그 꿈을 이루시는 발판으로 삼으셨습니다. 믿음은 바로 꿈입니다. ‘바라는 것의 실상’입니다. 그렇습니다. 꿈이라는 것은 소망이요, 환상이요, 비전이요, 바라는 것이요, 기대하는 것입니다.
본문의 야곱의 꿈이 ‘영몽’입니다. 야곱이 벧델 광야에서 잠을 잘 때 천사가 하늘에서 사닥다리를 타고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나타나셔서 약속의 말씀으로 위로하는 꿈을 꾼 것입니다. 사실 야곱의 현실은 황량합니다. 아무 것도 없습니다. 가족도, 재산도, 누구의 도움도 얻을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는 이제 혈혈단신입니다. 야곱의 꿈은 무너졌습니다. 이제 다시 꿈을 꿀만한 건덕지도 없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꿈을 꿉니다. 꿈에 사닥다리가 하늘에까지 오르고 있습니다. 야곱은 하나님과 함께 시작합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잠에서 깨어난 야곱이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라고 놀라면서 ‘바로 이곳이 하나님의 전이요 하늘의 문이로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영몽’을 꾸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이 꿈 때문에 야곱은 많은 시련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이 꿈을 꾼 후에도 야곱의 인생은 그야말로 곤고했습니다. 겨우 외삼촌의 집에서 머슴으로 일하면서 얻어먹는 것으로 족한 생활을 하다가 외삼촌의 딸 라헬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7년을 일하면 라헬을 주겠다는 외삼촌의 말에 7년을 죽기 살기로 일했는데, 결혼식에 신부로 나온 것은 라헬이 아니라 언니 레아였습니다. 악덕 기업주의 표본인 외삼촌 라반은 다시 7년을 일해야 라헬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20년이라는 세월 동안 노동력을 착취당하고 인생을 도둑맞았습니다. 웬만한 사람 같았으면 아무리 갈 곳이 없다고 해도 그곳에 남아 있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여곡절 끝에 한밑천 잡아 가지고 탈출하듯이 떠나다가 외삼촌에게 잡혀 죽을 뻔했을 때도 하나님이 라반을 간섭하여 지켜주셨습니다.
또 야곱이 온다는 소식에 형 에서가 군대를 끌고 죽이러 왔습니다. 20년 전의 분노가 이제는 야곱 한 사람뿐만 아니라 그의 가족과 재산을 파괴하려는 순간입니다. 그야말로 다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긴박한 상황에 얍복강가의 기도의 체험으로 형과 화해를 하고 살만하니까 이번에는 딸이 강간을 당하고 그것 때문에 부족간에 전쟁이 일어날 뻔 했습니다.
말년에 이르러서는 자기가 사랑하는 라헬에게서 낳은 아들 요셉이 사나운 짐승에게 잡혀먹었다는 슬픈 소식을 접해야 했고, 마지막 위로로 삼고 있던 막내아들 베냐민 마저 잃어도 할 수 없다며 내놓아 할 고통스러운 현실을 받아들여야만 했습니다. 이 모든 인생 역경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아십니까? 사다리의 꿈, 천국의 꿈이 있었기에 야곱은 소망 속에 견딘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는 여러분들에게 ‘꿈을 주고, 소망을 주고, 비전을 주는 곳’입니다. 교회에서 꿈을 살 수 없다면 그 교회는 이미 죽은 교회입니다. 꿈을 가지십시오, 하나님 안에서 그 분이 능력을 주시면 능치 못함이 없습니다. 할 수 있습니다. 무엇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
병든 사람은 건강의 꿈을 가지십시오, 실패한 자는 성공할 수 있다는 꿈을 가지십시오, 불화가 있는 곳에 화목을 바라보십시오, 성림의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이 강단에서 큰 꿈을 움켜 지시기 바랍니다. 부활의 약속의 꿈을 가지십시오. 저 하늘나라의 영원한 세계를 바라보십시오, 저는 우리교회를 크게 바라봅니다. 이 제단에서 재벌들이 쏟아져 나오고 나라의 기둥들이 쏟아져 나올 줄 믿습니다.
남의 농장에서 일하던 ‘제임스 메이 가필드’는 창고에서 잠자며 지내다가 주인의 딸과 연애하다가 쫓겨났으나 그의 꿈은 대통령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이를 악물고 눈에 불을 켜고 노력해서 35년 후에 그의 꿈대로 그는 미합중국의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소망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무엇이든지 이루어집니다.
③ 돌 베개는 구원에 길로 가는 길입니다.
12절‘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섰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가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하고’구원의 사닥다리는 십자가입니다. 이 사닥다리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입니다. 십자가는 하나님과 죄인을 연결 시켜주는 유일한 통로입니다. 교회를 떠나서는 구원의 길이 없습니다. 오늘 우리 모두 하늘가는 사닥다리를 굳게 붙잡아야 합니다. 그리고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야 합니다. 신앙은 올라가는 것입니다. 어디까지 올라가야 합니까? 물론 국장도 좋고 사장도 좋습니다. 그러나 하늘나라까지 올라가야 합니다.
④ 교회는 하늘 문이 열리는 곳입니다.
12절입니다. 하늘 문이 열리고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축복을 가지고 오고 우리들은 믿음을 가지고 올라갑니다. 여기서 사다리에 대하여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사다리가 내려지는데 하늘과 땅에 닿았다고 했습니다. 무슨 의미입니까? ‘내가 여차하면 내려간다’는 뜻입니다. 또 ‘내가 너를 지키고 있다’는 뜻입니다. 여기는 광야요 여기 나 혼자 있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하나님은 여기에도 임재하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그 말은 ‘야곱아, 너 혼자가 아니고 내가 함께 있다’라는 메시지입니다. 그러니 야곱이 얼마나 용기를 얻었겠습니까? 이 환상은 야곱에게 굉장한 용기를 주었습니다. 이분이 오늘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요한 웨슬레의 동생 ‘찰스 웨슬레’가 미국 식민지 시절 조지아주의 총독 밑에서 전속 부관으로 일한 적이 있습니다. 임기를 마치고 배를 타고 귀국 중에 풍랑을 만났습니다. 배 안이 온통 아비규환이었습니다. 그런데 배 한 칸에 모라비안 교도들이 모여 앉아 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기가 막혔습니다. 모두 비명을 지르고 있는데 그들은 초연하게 앉아서 시편을 읽고 앉아 있습니다. 풍랑이 잔잔해진 후에 찰스가 그중 한사람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무섭지 않았습니까?’ 그러자 대답하기를 ‘하나님은 온 천지의 주인이신데 뭐가 무섭습니까?’라고 대답했습니다. 이 짤막한 한 마디가 찰스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습니다. ‘하나님은 천지의 주인이시다’이것이 믿음입니다. 그러니까 어디를 가든지 겁날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 말에 찰스라는 사람이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자신도 하나님을 믿고 있는 사람인데 이렇게 다를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그 때 시를 지었습니다. ‘비바람이 칠 때 와 물결 높이 일 때에 사랑하는 우리 주 나를 품어 주시네’ 사람들이 그 시가 너무 좋아 곡을 붙였습니다. 그 시가 441장 찬송가 가사가 되었습니다. 그 하나님은 바로 우주를 지배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은 지금 이 시간에도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고 기도를 들으십니다. 그것을 보고 믿을 수 있어야 그 사람이 진짜 신앙의 사람입니다.
천사들이 그냥 오르락내리락 했겠습니까? 올라갈 때는 이 땅의 모든 시름과 한숨, 애통이나 탄식, 그리고 아픔이 나 고난의 기도를 모두 가지고 올라갔을 것입니다. 그리고 내려올 때는 기도의 응답을 담아 가지고 내려 왔을 것입니다. 그래서 천사들이 쉴 사이 없이 오르락내리락 했던 것입니다. ‘격려하고 위로하고 소망을 주는 역사를 이루기 위해서’말입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부리시는 영을 통하여 우리들의 간구와 탄식과 눈물의 기도를 들으시고 이루고 계십니다. 오늘 이 자리가 하늘 문이 열리고 은혜의 사다리가 내려오는 곳입니다. 그 사다리를 타고 구원의 줄이 내려옵니다. 축복의 줄도 내려오고, 사랑의 줄, 생명의 줄, 능력의 줄, 은혜의 줄이 내려옵니다.
또 그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는 것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우리들의 믿음이 올라가고, 기도가 올라가고, 헌신이 올라가고, 순종이 올라가고, 감사가 올라갑니다.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우리들의 사정을 알고 문제를 알고 하나님께 결제 받고자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입니다. 믿어집니까?
그렇다면 이 사닥다리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사닥다리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이어주는 영적인 가교입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중보자는 본문에 곧 사닥다리와 같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닥다리를 통해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고 하나님께서는 이 사닥다리를 통해서 우리를 찾아오시고 만나 주시는 것입니다.
사다리는 우리 예수님이십니다. 어떻게 올라가야 합니까?
위만 바라보고 올라가야 합니다. 믿음의 주요 온전케 인도하신 예수만 바라보고 가야 합니다. 골3:1-2절‘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여기 ‘위엣 것을 찾으라’는 말씀은 ‘하나님을 바라보고 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도 눅9:26절‘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고 하셨습니다. 천국 사다리를 오르는 자는 오직 위만 바라보아야 합니다(히12:2).
사다리를 단단히 붙잡아야 합니다. 만일 사닥다리를 단단히 붙잡지 않고 있다가 놓쳐 버리면 순간 떨어져 죽고 말 것입니다. 천국에 올라가는 우리들이 붙잡아야할 사다리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사다리에 자신을 전적으로 의탁해야 합니다. 사다리에 올라가는 사람은 사다리만을 붙잡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송두리째 떠 맡겨야 합니다. 자신을 맡기지 못하면 올라갈 수도 없고. 내려갈 수도 없습니다. 우리도 사다리가 되시는 예수님께 모든 것을 의탁해야 올라갈 수 있습니다. ‘너의 길도, 염려도, 행사도, 경영도’ 다 주께 맡기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계십니다.
사닥다리는 한 계단 한 계단씩 착실하게 올라가야 합니다. 높은 사다리일수록 천천히. 그러나 쉬지 말고 꾸준히 올라가야 합니다. 이와 같이 성도들의 신앙도 꾸준히 성장해야 합니다. 중간에서 포기하거나 쉬어서는 안 됩니다, 생명이 있는 것의 특징은 계속해서 성장한다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들입니다. 새로 태어난 자들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정상적인 성도라면 꾸준히 성장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믿음의 분량 따라 역사하시는 분이십니다.
⑤ 돌 베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곳입니다.
13절‘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하나님이 서 계신다고 표현할 때는 아주 위급할 때, 아주 어려울 때, 꼭 도와주어야 할 때 나타내시는 표현법입니다. 지금 야곱이 어떤 처지입니까? 외롭고, 쓸쓸하고, 고독합니다. 하나님은 외로운 자에게 나타나주십니다. 서서 있다는 것은 보고 있다는 것이요, 보고 있다는 것은 관심을 가진 것입니다.
대통령이 관심을 가져도 팔자가 늘어지는데 만군의 하나님이 우리를 서서보고 계신다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나는 여호와니’라는 의미는 ‘그분의 말씀대로, 약속대로, 지켜주시고, 이루어주시고, 보호해주시고, 축복해 주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야곱의 할아버지 아브라함 때도 그의 아버지 이삭 때도 그리고 지금 야곱에게 살아 계셔서 함께 해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야곱의 하나님이 지금 이 자리에 계십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야곱에게 자신을 가르쳐 주십니다. 사실 이 문제가 중요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어떤 하나님으로 믿느냐가 중요합니다. 약속을 못 지키고 무능한 하나님이라면 믿어봤자 별 볼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전능하신 엘로힘의 하나님’이십니다. ‘대저 여호와는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⑥ 돌 베개인 교회에서는 기업을 약속 받는 곳입니다.
13절‘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이 기업은 이 땅에서 우리의 생업의 기업이요, 나중에는 저 영원한 천국이 기업이 있습니다. 자손들에게 땅을 물려주는 것, 축복 중에 축복입니다. 그러나 더 큰 축복은 믿음을 물려주어 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⑦ 돌 베개는 계속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곳입니다.
14절‘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서 동서남북에 편만할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야곱의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동서남북 사방에 편만 하리라! 자손의 축복입니다. 혈통의 축복입니다. 지금 야곱은 돌 베개를 베고 자는 외롭고 미약한 존재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에게 엄청난 미래의 청사진을 주십니다.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야곱 자손 중에서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나 천하 만민이 복을 받을 것입니다.
⑧ 돌 베개는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하는 복을 말합니다.
15절‘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내가 누구인가? 하나님이십니다. ‘너와 함께 있어’하나님이 함께 해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한마디로 수지맞습니다. 사41:10-13절‘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 네 오른손을 붙들고 네게 이르기를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할 것임이니라’
‘네가 어디를 가든지 너를 지키며’우리를 지켜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이 우리를 지켜주셔야 합니다. 여러분, 복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먼저 ‘지켜주시는 복’, 그 다음에 ‘채워주시는 복’입니다. 이 복을 받아야 합니다. 그분이 우리의 가정을 지켜주시고 사업장, 자녀들, 건강, 명예, 직위 그 모든 것을 지켜주셔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건강이나 재산을 지킬 수 없습니다. 다니엘을 지켜주셨던 하나님이 우리를 불꽃과 같이 지켜 주셔야 합니다. 시121:4절‘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여러분 계속 복 받는 비결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채워주신 복을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더욱 우리들의 모든 것을 지켜주시고 또 채워주십니다.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보게 할지라’이끌어 내시는 하나님! 절망과 좌절 속에 헤매는 인생들은 소망으로 이끌어 내십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생명 강가로 건져주신 것입니다. 실패 속에서, 질병, 염려, 우수사려 속에 있는 인생들을 이끌어 올리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끌어’주님의 인도하심을 말합니다. 어디까지 이끌어 주십니까? 가나안 땅 가지요, 저 영원한 천국까지입니다.
‘내가 네게 허락하신 것은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떠나지 아니하시고 임마누엘로 함께 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 축복 중에 가장 큰 축복은 ‘하나님이 떠나지 아니하시고 함께 해 주시는 축복’입니다. 한마디로 완벽한 동행이요, 최고의 약속입니다. 여러분, 야곱이 왜 이런 축복을 받았습니까? 오직 그의 믿음 때문입니다. 야곱은 하나님이 복 주시지 않으시면 절대로 살 수 없다는 믿음 속에 살았습니다. 야곱은 또 하나님의 복을 크게 탐낸 자입니다. 여러분 세상 것 탐내지 마시고 하나님의 축복을 탐내십시오. 이것은 거룩한 욕심입니다.
⑨ 돌 베개는 하나님이 지금 이곳에 계시는 곳입니다.
16절‘야곱이 잠이 깨어 가로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그곳이 어디입니까? 19절 ‘그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더라 이 성의 본 이름은 루스더라’,‘벧엘’ 하나님의 집, 하나님의 교회,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이 성전인 교회에 와서 부르짖는 기도를 들으시고 하늘 문을 여시고 응답하여 주십니다. 행여나 이 시간 기도의 문이 닫힌 자가 있습니까? 사업의 문이 닫히고 축복의 문이 닫힌 자가 있습니까? 행복의 문이 닫혔다고 슬퍼하지 마시고 앞길이 질흙같이 어둡다고 낙심하지 마시고 벧엘에서 돌 베개를 찾으십시오! 벧엘은 하나님의 집이요, 하나님을 만나는 곳입니다. 기도하면 하늘 문이 열리고 축복의 문이 열립니다.
5.하나님을 만난 야곱의 반응은 무엇인가?
20-22절‘야곱이 서원하여 가로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사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주사 나로 평안히 아비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하나님을 만난 야곱은 너무나 두렵고도 감격했습니다. 그래서 야곱이 ‘이제 나는 이렇게 살겠습니다’하는 서원 기도를 세 가지를 하고 있습니다.
① 참된 예배 중심의 삶을 살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과 함께 살겠다는 서원입니다. 다른 번역을 보면 ‘여호와께서 나의 주인이 될 것이요’야곱은 그 인생의 행로에서 하나님을 자기의 생명의 주인으로 모셨습니다. 이 신앙이 귀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기 바랍니다.
② 성전 중심, 성전 건축을 서원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땅에서 살다가 하나님 앞에 한 작품을 남겨야 합니다. 부지런히 축복을 받아 우리 성림교회를 서울 한 복판에 봉헌해서 우리의 후손들에게 예배 처를 물려주는 성도들이 됩시다.
성전 건축은 건물로도 비유되지만 엡1:22절에 보면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나의 노력과 헌신과 수고와 기도와 전도와 봉사로 주님의 몸을 이 땅에 이루어간다는 것은 최고의 보람이요 긍지입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세우면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삶을 축복으로 인도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③ 온전한 십일조생활을 서원 했습니다.
말3:10절‘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십일조는 ‘믿음의 씨앗, 축복의 씨앗, 기적의 씨앗’입니다. 야곱의 이 서원을 받으신 하나님은 그때부터 그의 생애에 무한한 능력과 자원을 공급해 주셨습니다. 우리 모두 야곱의 벧엘의 신앙을 본받아 그가 받은 축복을 우리 모두 받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5.꿈이 변하면 인생이 변한다.
사랑하는 여러분, 꿈이 변하면 인생이 변합니다. 작은 꿈이라도 당신을 크게 바꿀 수 있습니다. 꿈을 품으십시요. 갓난아이가 인큐베이터안에서 조금씩 자라듯 작은 꿈을 키워가십시요. 여러분의 꿈이 한두번 좌절했다고 그 꿈을 포기하지 마십시요. 하나님이 주신 꿈은 반드시 이루어 집니다. 실패는 인생의 가장 보편적인 경험입니다. 실패를 두려워해서는 안됩니다. 다만 큰 과제는 어떻게 실패를 딛고 일어서 승리의 미래를 향하여 전진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마19:26) 주에게는 할 수 없는 일이 없으시니이다(Nothing is too hard for God) (렘32:17)
사람은 꿈을 품은 만큰 높아집니다. 그리고 꿈은 사람을 비상하게 합니다. 그래서 귀머거리요 벙어리요 소경이었던 헬렌 켈러는 ‘날 때부터 장님으로 태어나는 것보다 더 불행한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이런 대답을 했습니다. ‘눈이 있어 보기는 보아도 비전이 없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정말 대책없이 초라한 제자들을 앉혀놓고 언제나 꿈 얘기를 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입만 열면 꿈 얘기를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정말 훌륭한 비전 메이커입니다.
예수님은 눈앞의 비전에서 멀고 큰 비전을 품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빈약하고 초라한 꿈을 큰 꿈으로 키워 주십니다. 전도하실 때 처음엔 다음 마을로 가자 하시더니, 나중에는 온 천하 만민에게 가서 복음을 전하라(마가복음 16:15)는 세계선교의 거시적 비전을 품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작은 믿음의 무한한 가능성을 바라보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작은 겨자씨 한 알로도 큰 숲을 이룰 수 있다는 믿음의 무한한 가능성을 심어주십니다. 또 적은 양의 누룩 한 숟가락으로도 밀가루 한 통을 다 부풀게 하는 믿음의 위력을 확신시켜 주십니다. 한 알의 밀 알이 땅속에 묻히므로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는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품게 하십니다.
오늘도 주님은 우리에게 무한한 가능성의 꿈과 비전을 주십니다. 약한 비전에서 강한 비전으로 전환시켜주십니다. 예수님은 연약하고 무능한 제자들에게 예수님 자신보다 더 큰 일을 행할 것이라는 엄청난 가능성의 새 꿈을 품게 하십니다. ‘너희는 나보다 더 큰 일을 행하리라’ 예수님의 의도는 너무나 분명합니다. ‘제자들의 꿈이 바뀌면 인생이 바뀐다. 나의 제자들이 바뀌면 세상이 바뀐다. 역사가 바뀐다’ 기억하십시다. ‘꿈이 바뀌면 인생이 바뀝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 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약속의 말씀처럼 하나님은 우리를 떠나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시간적으로 함께 하실 뿐 아니라 공간적으로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으시는 시간과 공간은 없습니다.그것은 우리가 잘 했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부족할지라도 유효한 약속입니다.
우리가 잘 할 때 만 함께 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부족할 때라도 우리가 주님을 떠났을 때에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광야의 시간에도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고 내가 시험당하여 헤맬 때에도 함께 하시고 탕자와 같이 하나님의 품을 떠날 때에도 주님은 함께 하십니다. 나를 떠나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하나님을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그 하나님께 소망을 두시기 바랍니다. 떠나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붙잡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팔베개에서 평안을 누리며 살게 될 줄 믿습니다.
야곱의 돌베개는 고통스럽고 괴롭고 외로운 모습의 상징이었지만 그러나 야곱의 돌베개는 결코 하나님의 저주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오히려 하나님이 야곱을 사랑하고 함께 하시고 돌봐주신다는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이었습니다. 광야의 돌베개에서 야곱은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고통의 돌베개에서 하나님의 사랑의 평안의 팔베개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인생이 돌베개 인생이라고 느껴질지라도 여러분 절대로 포기하지 마시고 너무 힘들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거기에는 여러분을 향하신 하나님의 귀한 섭리가 있고 계획이 있고 축복이 숨어 있습니다. 돌베개 인생 그것은 결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저주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입니다. 우리를 끝까지 포기하지 아니하시려는 하나님의 열심히 담겨 있습니다. 지금 내가 베고 있는 인생의 돌베개, 그 베개 속애 담긴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이해하시고 오늘 다시 한 번 돌베개를 기념으로 삼아 그 위에 기름을 부으시기 바랍니다. 결심하시기 바랍니다. 현실이 아무리 고통스럽더라도 하나님 만나 은혜 받으면 고통의 돌베개가 도리어 축복의 팔베개, 하나님의 팔베개가 될 줄 믿습니다.
야곱은 이젠가 저젠가 하나님의 때를 기다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제 고향으로 돌아가라는 음성을 기다리며 살았습니다. 그 날을 위해서 20년을 인내하며 일해 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이 처가를 떠나 고향으로 돌아가라는 말씀이 왔습니다. 그러자 야곱은 기다렸다는 듯이 가족들을 이끌고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20년 만에 일입니다. 생각하면 극적인 인생이 아닙니까? 꿈이 있는 인생은 언제나 이렇게 극적이고 감동적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꿈과 비전과 환상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우리 신앙인들이 믿음 안에서 갖는 이 꿈과 비전은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의 생각입니다. 빌2:13절‘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마15:28절에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시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여러분, 우리 모두 꿈과 비전을 안고 살아가는 참 행복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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