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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요세미티 엘캡 ‘노즈’ 1박2일 등반기
등반자, 김용기,윤길수,이지민,김홍례 2008년
캠프장에서 매트리스를 깔고 누워서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을 향해 쭉쭉 뻗어오른 침엽수림 사이로 보이는 하늘에서 금방이라도 떨어져버릴 것 같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별들이 너무나 아름답다. 무수히 반짝이는 크고 작은 별들을 보며 명상에 잠긴다.
1991년 6월에도 나는 엘캡의 꿈을 품고 이곳에 왔었다. 하지만 등반은 하지 못했다. 그 땐 내년에 다시 와야지 다짐했지만 어디 세상살이가 마음대로 되는가? 15년이 지난 2005년 6월 꿈을 안고 다시 찾아왔지만 제10피치에서 캠이 빠지는 바람에 눈물을 흘리며 다시 돌아가야 했다. 난 또다시 엘캡의 꿈을 안고 이곳에 왔다.
내 나이 벌써 57세. 암벽등반을 한 지 33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나이 때문인지 시들해져야 할 등반열정이 급해진다. 해마다 시력이 떨어지고 체력도 떨어진다. 하지만 엘캡 등반의 작은 꿈은 더욱 강해졌다. 지난번에 부러진 다리가 완전하지 않지만 이번엔 지난번 실수를 극복하고 안전하고 완벽한 등반을 해야지 다짐해본다.
이번 미국 암장순례는 6월21일부터 7월9일까지 20일 일정으로 계획을 세웠다. 주요 대상지는 엘캐피탄(El Capitan)의 노즈(The Nose)와 맘모스 근처의 오웬스 고지(Owens Gorge), 라스베가스에 있는 레드락(Red Rock), 조수아트리(Joshua Tree) 등 서부 암장을 두루 대상지로 잡았다.
이번 등반팀은 네파에서 지원하여 ‘네파엘캡등반대’로 하고, 지난번에 같이했던 집사람(이애숙)과 김용기등산학교 강사인 김홍례, 윤길수(에스트로맨 스포츠클라이밍센터 대표)씨가 동행했다. 지난번 노즈 등반에 참여했다
등반준비
노즈는 총 31피치(예전엔 34피치로 등반)로 완경사와 수직벽, 오버행과 페이스, 크랙, 침니, 미세한 크랙 등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진, 엘캡에서 가장 고전적이면서도 대표적인 루트다. 다양한 테크닉과 지구력, 시스템 등 암벽등반에서 사용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요구한다. 등반거리 약 1,600m의 장거리 루트로, 특히 펜듈럼 구간이 많아 주마 트래버스와 펜듈럼의 원활한 시스템 구사능력이 요구된다.
노즈는 대부분 제4피치까지 전날 등반하고 내려와서 하루 정도 쉬고 다음날 주마링으로 제4피치까지 올라 등반을 계속하게 된다. 중간의 테라스에서 비박할 수 있어 포타레지가 필요없는 만큼 짐을 많이 줄일 수 있다. 하지만 등반자가 많이 몰리면 비박지가 모자라 포타레지를 사용해야 한다.
노즈는 제22피치인 대천장을 중심으로 수직벽과 오버행이 시작된다. 수많은 트래버스와 펜듈럼, 미세한 크랙부터 침니까지 다양하다. 이곳에 캠과 너트를 설치하면서 등반해야 한다. 대부분 후등자는 주마링을 하게 되는데, 체력과 지구력, 주마링기술이 뛰어나야 한다.
등반스타일은 경량 속공등반을 할 것인가, 아니면 고전적인 홀링과 전체를 인공등반으로 할 것인가를 등반자들이 성격에 맞춰 결정한다. 최근에는 일본의 유지 히라야마와 독일의 한스 플로린 간의 속도등반에 불이 붙어 히라야마가 몇 년 전에 세운 자신의 기록을 경신하기 위해 7월2일 아침 자신의 기록을 1분 정도 더 단축시킨 2시간43분33초의 경이적인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필자도 몇 년 전 정보와 연습 없이 당일등반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한 마디로 급히 서두르고 너무 얕잡아보았다는 얘기다. 따라서 빅월에서는 서두르는 것보다는 침착하고 안전한 등반이 우선되어야 한다. 이번에 1박2일로 여유 있게 등반한 결과 당일등반의 가능성을 확인했다. 하지만 반드시 한 번쯤은 해보고 당일등반 계획을 세우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장비는 등반자에 따라 다르지만 캠 3~4세트, 너트 1세트, 퀵드로 10개, 카라비나 5개, 120cm 슬링 1개, 60cm 3개, 래더 1조, 로프 60m 2동(인원에 따라 달라짐), 안전벨트, 주마, 캠회수기 등이 필요하다. 이밖에도 물, 포타레지, 의류, 침낭, 식량, 장갑, 랜턴 등 많은 장비가 소요된다. 이들 장비는 등반자의 능력과 등반기획에 따라 조절이 가능하다.던 멤버들이 다시 모인 셈이다. 지난번 실패를 발판 삼아 재도전하는 것이다.
다음날 새벽에 랜턴을 켜고 엘캡 하단부에 도착하여 주마링을 시작했다. 몸은 가벼웠다. 모두 자신감에 차 있었다, 이제 목소리를 들으면 알 수 있을 정도로 호흡이 잘 맞는다. 제5피치는 쉽게 갈 수 있는 완경사 크랙이라 제5, 제6피치(약 65m)를 한번에 올랐다. 제6피치는 대형 수직크랙이며 크랙은 양호하고 블랙다이아몬드 대형 캠을 사용했다. 우측 턱 넘어 크랙으로 5m쯤 넘어서면 페이스에 쌍볼트가 나온다.
제7피치는 펜듈럼 구간이다. 20m쯤 내려가서 우측으로 펜듈럼을 해야 한다 펜듈럼을 한 후 양호한 크랙을 따라 곧바로 오르기 시작했다. 올라갈수록 수직벽으로 이어지며 크랙이 넓어진다. 제8피치는 큰 수직크랙을 10m 오르다 줄지어 박혀 있는 볼트의 마지막 부분에서 우측으로 20여m 내려가서 펜듈럼 한다. 후등자를 편하게 하기 위하여 확보물을 설치하지 않고 30여m를 계속 올라갔다.
제9, 제10, 제11피치는 돌트타워로 이어지는 수직크랙이다. 올라갈수록 크랙이 넓어지며 완경사로 이어지더니 넓은 테라스가 나온다. 돌트타워는 3박4일 일정의 등반자들이 1박하게 되는 곳이다. 약간 경사가 져 있으나 4~5명은 그런대로 잘 수 있는 넓은 공간이다.
이곳에서 아침식사를 하기로 했다. 음식과 물을 먹고 나니 살 것 같다. 어제 제4피치에 걸어둔 집사람의 배낭에서 물, 음료수, 과일 등 한 사람 분의 식량을 도둑맞았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남의 등반식량을 털어먹을 수 있단 말인가. 외국인들도 한심한 부류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햇살은 이미 용광로처럼 뜨겁다. 얼굴을 가리지 않고는 뜨거워서 견딜 수 없다. 먹을 것이 좋기는 좋다. 모두들 즐거운 표정이며 여유 있는 표정이다. 나도 지난번과는 달리 확보물 설치에 신중을 기했다. 마냥 여유를 즐길 시간이 없다. 오늘 잠자리가 제24피치인만큼 최대한 빨리 올라가야 한다.
이곳에서 10여m 하강하고 나서 크랙으로 진입했다. 제12피치인 양호한 크랙 40여m를 올라 확보했다. 제13피치에서 나는 방향을 좌측으로 틀었다. 우측으로 계속 가면 기존루트인 엘켑타워로 가는 길이고, 좌측으로 가면 펜듈럼을 하지 않고 가로질러 가는 길이지만, 난이도는 좌측으로 가는 길이 훨씬 어렵다.
볼트 3개를 지나니 수직페이스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별 수 없다. 그렇다고 내려갈 수도 없다. 프리클라이밍으로 돌파해야 한다. 1cm도 안되는 미세한 홀드를 잡고 프리클라이밍을 시도한다. 여기서 떨어지면 우측으로 돌면서 10여m 내동댕이치면서 떨어진다.
대천장의 미세한 크랙
신중한 자세로 마음을 진정시키고 집중했다. 약 500m 고도의 아무런 확보물도 보이지 않는 수직벽에서 프리클라이밍으로 돌파하는 쾌감은 남달랐다. 15m의 페이스를 돌파하여 오르고 나니 반가운 쌍볼트가 보인다. “완료!” 왜 이렇게 목소리가 커졌는지 모르겠다. 기분이 좋아 미친놈처럼 위를 쳐다보고 웃었다.
제14피치, 첩첩산중이다. 데드르의 미세한 오픈크랙으로 50여m가 이어지는 고난도 크랙이다. 장비설치도 만만치 않다. 작은 사이즈의 캠만 사용이 가능하다. 제19, 제20피치는 좌측으로 횡단하는 구간이다. 선등자는 쉽게 갈 수 있지만 후등자들이 시간이 걸리는 구간이다. 제21피치는 우측으로 트래버스하면서 계속 오르는 구간이다. 비교적 양호한 크랙과 페이스로 이어진다.
제22피치(5.13)는 엘캡 앞 잔디밭에서도 훤히 보이는 대천장 구간이다. 미세한 크랙으로 오르지만 우측으로 계속해서 구부러져 있고, 크랙상태가 미세하여 장비설치가 힘들다. 제23피치는 수직으로 올라가는 크랙이다. 비교적 양호하지만 작은 사이즈의 캠들이 필요하다. 제24피치는 수직으로 이어지는 미세한 크랙이다. 대천장 구간부터 난이도가 올라가지만 제24피치는 더욱더 까다롭다. 대천장부터 수직벽과 오버행으로 연결되며 고도감을 느낄 수 있다.
제24피치(예전의 제27피치)에서 어두워져 랜턴을 밝혔다. 원래 목표가 제24피치 캠프5였으니 계획대로 잘 되고 있었다. 서둘지 않고 신중히 진행했다. 여유를 갖자고 다짐하고 오르고 있는데 밑에서 집사람과 홍례가 걱정된 목소리로 침착하게 하라고 주문이 온다. 아마도 날씨가 어두워지니 걱정스러운 모양이다.
크랙이 끝나고 완경사가 좌측으로 이어진다. 완경사지만 바위가 미끄럽고 특별한 홀드가 없어 한 동작 한 동작 밸런스를 요구하는 구간이다. 드디어 반듯한 테라스에 도착했다. 오늘은 이곳이 우리가 묵을 수직벽에 매달린 지상 최고의 호텔방이다.
큰 소리로 “완료!”를 외쳤다. 이어서 길수가 올라오고 집사람, 가장 마지막에 홍례가 올라온다. 모두들 힘이 넘쳐 보인다. 여유가 있고 즐거워 보인다. 덩달아 나도 힘이 생기고 기분이 찡하다.
비박장소는 가로 2.5m, 세로 1.2m쯤 되며 약간 경사가 졌다. 세 명은 잘 수 있는데대각선으로 누워야 하는 좁은 공간이다. 그래도 대암벽에서 이런 테라스가 있다는 것은 대단한 것이다. 우리는 매트리스를 깔고 저녁만찬을 즐겼다. 장소는 엘캡의 노즈 제24피치의 수직벽 깎아지른 절벽의 둥지 같은 레스토랑이다. 하늘에는 금방이라도 떨어져버릴 것 같은 무수한 별들이 우리의 만찬을 조명하고 있다.
오늘 목표한 곳까지 무사히 왔기 때문에 일정대로 잘 되고 있다. 특히 지친 사람이 한 사람도 없으니 마음이 홀가분하다. 내일은 일곱 피치만 올라가면 된다. 컨디션도 좋고 여유가 있는 엘캡의 저녁식사다. 즐거운 저녁식사를 마치고 잠자리에 든다. 길수는 10여m 아래에 있는 독방을 향해 배낭을 챙기고 하강한다. 나머지 셋은 가장 아래쪽에 홍례, 가운데에 집사람, 그리고 내가 가장 위에 대각선으로 누웠다.
홍례가 일어나라고 주문한다. 눈을 떠보니 벌써 해가 훤히 떠 있다. 부스스 눈을 비비고 일어나 저 밑을 바라보았다. 청명한 하늘, 푸르른 숲, 맑은 계곡물, 어저께 본 그대로다. 하지만 오늘 아침 풍광은 더욱더 새롭고 신선하게 보인다. 길수는 부지런하기도 하다. 벌써 일어나 우리 방까지 올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