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종의 장릉은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 1090-1번지에 있다. 단종은 죽은 후 시신을 영월 호장 엄흥도가 거두었다고 하는데, 묘의 위치는 알 수 없었다. 이후 59년이 흐른후 중종11년에 승지 신상을 보내 치제하게 하는데, 중종실록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신상(申鏛)이 와서 복명하고, 김안국과 함께 말하다 눈물을 흘리기까지 하며 ‘묘는 영월군 서쪽 5리 길 곁에 있는데 높이가 겨우 두 자쯤 되고, 여러 무덤이 곁에 총총했으나 고을 사람들이 군왕의 묘라 부르므로 비록 어린이들이라도 식별할 수 있었고, 사람들 말이 「당초 돌아갔을 때 온 고을이 황급하였는데, 고을 아전 엄흥도(嚴興道)란 사람이 찾아가 곡하고 관을 갖추어 장사했다.」 하며, 고을 사람들이 지금도 애상(哀傷)스럽게 여긴다.’ 하였다.(중종실록27권, 중종 11년 12월 10일 병진)
이러한 기록을 바탕으로 필자는 단종의 능은 진짜일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주장을 하고자 한다. 무덤이 총총이 있는 가운데 단종의 묘가 있었다는 것이니 당시에는 그곳이 공동묘지였던 것으로 보인다. 엄흥도가 어떠한 표시도 없이 몰래 쓰고 도망간 묘를 59년후에 찾아간 것인데, 마을사람들의 말만 믿고 그곳을 단종의 묘라 단정한 것이다. 엄흥도가 알려준바도 없을텐데 어찌 알았으며, 주인없이 방치된 공동묘지에서 단종의 묘를 어찌 특정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현재와 같이 DNA 검사가 가능한 시절도 아니니 믿는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다. 그후에도 단종의 묘는 방치된 상태로 있었으며, 241년이 흐른 숙종때에 이르러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단장되기에 이른다.
풍수적인 관점에서 봐도 단종의 장릉은 '절손된다'는 과룡처에 자리하고 있다. 조선왕릉중 과룡처에 능을 조성한 사례는 또 확인이 되는데, 바로 조선의 마지막 왕이었던 순종의 능도 역시 과룡처에 자리한다. 당시 능지선정에 참여한 상지관은 '거팔내팔'의 명당이라 주장하였으나 과룡처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