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심이 강했던 국명표(20)군은 풍부한 독서를 통해 지식에 대한 갈증을 해소해 왔다. 모르는 분야를 접해 의문이 생기면 어려운 책이어도 과감히
도전했다. 완전히 이해하고 싶은 마음에 내신이나 모의고사 공부도 제쳐두고 2주 동안 몰입해 책을 읽기도 했다. 국군이 고교 3년 동안 읽은 책은
130여 권. 고2 때 읽게 된 인류학의 고전 ‘슬픈 열대’는 인류학과 지원에 큰 역할을 했다. 인류학을 더 자세히 알고 싶어 여러 입문서와
개론서를 읽으면서 모르는 내용은 노트에 적어 인류학을 전공했던 선생님께 여쭈어보기까지 했다. 적극적인 독서활동은 자기소개서 곳곳에 배치되어
국군의 전공적합성을 충실히 드러냈다.
진로를 찾고 전공을 심화해준 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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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산고 출신 국명표군은 독서를 통해 진로를 찾고 전공적성을 심화했다. 독서가 합격의 절반이었다면 나머지 절반은 학교 선생님이었다. /사진=신승희
기자 pablo@veritasnews.kr |
[베리타스알파 = 김대식 기자] 국명표군의 자소서 작성 전략은 다각적인 독서활동을 통해 인류학을 알게 된 과정과
인류학에 대한 관심에 깊이를 더해간 과정을 통해 전공적합성을 드러낸 것이다. 국군의 자소서에는 자신의 장단점이나 특성을 드러내는 4번 문항을
제외하고 독서활동이 최소 한 번 이상 언급됐다. 지원 동기 문항(1번)에 ‘슬픈 열대’(클로드 레비스트로스, 한길사)라는 책을 통해 아마존
부족사회라는 막연히 어딘가에 있을 것이라고만 생각해왔던 세상이 실제로 존재하며, 아름다운 문화체계를 갖고 있다는 사실에 흥미를 느껴 인류학에
빠진 내용을 적었다. 학업능력을 적는 문항에는 ‘슬픈 열대’를 통해 알게 된 인류학을 심화시키기 위해 읽었던 여러 입문서와 개론서를 살펴보고
말라노프스키 등 관심이 가는 학자들의 민족지를 찾아 읽어보기도 한 내용을 적었다. 인류학을 알게 되면서 잘 이해하지 못했던 ‘구조주의’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도 곁들였다. 한국문화인류학회의 학술지를 찾아 읽은 경험과 ‘신화학’(클로드 레비스트로스, 한길사)의 앞장에 있는 해제인
박옥줄 교수의 ‘문명과 야만의 이분법적 사유에 대한 비판’과 임봉길 교수의 ‘구조주의 방법론과 신화학’에 대한 인상도 서술했다. 국군은
구조주의를 조사하면서 알게 된 내용을 도표로 정리했다.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라는 제목 아래 공부하게 된 동기와 참고자료, 내용요약과 정리를
도표화해 증빙서류 목록 세 번째에 기재했다. 국군은 “증빙 자료에서 내용이 어려워 텍스트를 읽고 기억하는 수준 밖에 이르지 못했다고 썼다.
구조주의는 매우 어려운 부분인지라 지금도 확실히 말하기가 어렵다. 사실 내 자소서는 매우 도발적이다. 인류학에서 ‘슬픈 열대’는 어려운 책으로
꼽힌다. 지금 대학교 3~4학년 선배들도 읽기 어려워할 정도다. 지금 인류학과 학장님께서 면접 교수님이셨는데, 슬픈 열대 내용을 보시고는 표정이
엄청 굳으신 것 같았다. 책을 정말로 읽었는지에 대해 계속적인 질문이 들어올 정도였다. 사실 고교 시절 인류학에 관심을 가질 때 인류학을
전공하셨던 선생님께서 ‘슬픈 열대’는 어려워 읽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사회문화’ 같은 과목에 충실하라고 말씀하셨다. 오기가 생겨 오히려
더 깊이 읽으려 노력했다.”
독서활동 역시 인류학 도서 세 권을 전략적으로 배치했다. 유명한 인류학자의 책인 ‘증여론’(마르셀
모스, 한길사)을 선두에 배치하고 인류학과에서 기본서나 개론서 정도에 해당하는 ‘인류학의 거장들’(제리 무어, 한길사)을 두 번째로 배치했다.
마지막 세 번째 책은 ‘세상 끝 천 개의 얼굴’(웨이드 데이비스, 다비치)이라는 다소 생소한 학자의 책을 배치했다. “전략적인 배치였다. 특히
세 번째로 적은 ‘세상 끝 천 개의 얼굴’을 쓴 웨이드 데이비스는 인류학에서 유명한 학자가 아니다. 고교 재학 시절 학자들이나 유명한 사람이
출연해 강연을 하는 방식의 TEDx 강연을 통해 웨이드 데이비스를 알게 됐다. 인류학에 대한 관심이 없었다면 그냥 지나치고 갔을 수도 있다.
관심이 있었기에 데이비스의 책을 읽게 되었다는 점을 드러냈다. 전공에 대한 관심과 적합성을 드러냈다고 생각한다.”
인류학 전공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책도 섭렵했다. 고1 과학시간에 배운 우주의 규모에 경이로움을 느꼈던 국군은 친구의 방에 들어가서 보게 된 ‘코스모스’(칼
세이건, 사이언스북스)를 2주에 걸쳐 읽었다. 내용이 어려워 다른 공부도 못하고 읽었지만 모르는 분야를 알아간다는 재미에 빠졌다. 문화의 단선적
진화를 가정하는 이론을 접하면서 진화의 정확한 의미가 궁금해 하던 때 ‘이기적 유전자’(리처드 도킨스, 을유문화사)를 읽어보기도 했다. 국군은
왕성한 독서활동을 증빙서류 목록 1번에 ‘독서 기록’으로 기재해 제출했다. 국군의 3년 간 독서량은 130권에 달한다. 상산고가 정한 ‘양서’
시간과 개인적으로 시간을 내 읽은 책들을 모두 합한 수였다. “독서 기록에는 책을 읽은 시기를 학기별로 정리한 후 제목과 저자/출판사를 적고
동기와 느낀 점을 중심으로 적었다. 사실 전부 읽지 못한 책도 있었다. 그런 경우 동기와 느낀점에서 솔직하게 적었다. 내용이 어려워 이해가 안
된 부분까지도 솔직하게 적었다.”
수업에서 면접까지 결정적인 도움은 바로 선생님
국군은
인류학을 전공한 김지혜 사회문화 교사로부터 가장 많은 도움을 받았다. 국군이 “그 분이 아니었으면 인류학을 선택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할
정도. 인류학/사회과학에 관심이 많던 국군에게 교과서 수준의 내용뿐만 아니라 대학에서 나오는 정의와 여러 학자들의 견해까지 설명해주는 사회문화
수업은 큰 도움이 되었다. “교과서는 고등학생들의 수준에 맞춰 개념을 쉽게 풀어 설명한다. 그러나 선생님의 수업은 대학교 과정에서 쓰는 정확한
개념을 추가해서 설명하는 식이었다. 여러 학자들의 견해까지 제시해줘 사회과학에 관심이 많던 내게 도움이 많이 된
수업이었다.”
자소서 작성에서도 도움을 받았다. 평소 독서량이 많던 국군은 어려운 인류학 책을 읽으면서 모르는 것이 나오면 노트에
적어뒀다가 쉬는 시간에 사회문화 선생님께 찾아가 질문했다. 선생님은 국군에게 “노트에 적어왔던 질문지를 모아서 보여주는 것도 교수님들께 좋은
인상을 줄 수 있을 것 같다”고 조언했고, 국군은 조언대로 질문지를 모아 증빙서류 2번에 ‘인류학 관련 질문지’라는 내용으로
제출했다.
면접준비 과정에서도 도움을 받았다. 절박한 마음에 대치동 논술학원에 문을 두드렸지만 단 하루 만에 대치동 학원가에서 나와
사회문화 선생님께 달려갔다. “수시 1차 합격자가 발표 나고 1주일 동안 강의 수강료가 70만원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루에 10만원
선이었는데 비싼 돈이 들었지만 수업 방식이 강사 주도적이고, 실제로 말할 기회가 많지 않아 도움이 별로 안됐다. 학원 하루 다녀보고 맞지 않아
바로 학교로 간 것은 굉장히 잘한 선택이었다. 선생님께 지도를 부탁 드려 약 4일 정도 도움을 받았는데, 구조화해서 답변하는 법이나 말할 때
주의해야 할 태도 등을 배워서 굉장히 큰 도움이 됐다. 선생님께서 준비하신 자료를 풀어보며 사고력 훈련을 할 수 있었던 점이 좋았다. 학원에서는
피드백을 받을 기회도 별로 없고 구체적이지도 않았던 데 반해 선생님께 직접 지도를 받으니 명확한 피드백을 바로 받을 수 있어 좋았다.
학교도서관에서 구술면접과 관련한 여러 도서를 선생님께 들고 가서 가장 괜찮은 책이 무엇인지 여쭈어 본 다음 선생님께서 지정해주신 책을 가지고
친구들과 모의면접 형식으로 연습을 많이 해 실전에서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2013 서울대 사회과학대 인류학과
구술문제 복기
국명표군은 세 개의 문제 중 자신이 선택한 문제를 전했다.
[지문] 19세기 유럽에는
콜레라와 같은 병이 공기를 통해 호흡으로 전염된다는 주장이 주로 통용됐고, 병원체가 묻은 음식물을 섭취하여 병이 전염된다는 주장은 소수에
의해서만 제기됐다. 당시 의사였던 존 스노우는 콜레라 환자들의 사례를 연구하면서 다음과 같은 콜레라의 특성 4가지를 발견하였다. 첫째, 콜레라에
걸린 사람은 먼저 구토 증상을 보인 다음, 그 뒤에 설사를 한다. 둘째, 증상이 나타나기 전까지 특별한 증세나 고통이 없다. 셋째, 정상인과의
혈액은 거의 차이가 없다. 넷째, 몸에서 소금이나 고형 성분이 정상인에 비해 비정상적으로 많이 발견된 반면, 수분은 정상인에 비해 비정상적으로
적다.
[사례] 두 개의 화물 선박이 당시 콜레라가 창궐하던 스코틀랜드의 모르츠키에 머물렀다. 배의 선원 일부가 모르츠키의 시가지를
돌아다니다 다시 승선했고, 두 배는 각각 케언벌즈와 인베럴로치로 향하였다. 두 배가 이들 지역에 화물을 하역한 뒤 스코틀랜드에 콜레라가
퍼졌다.
[그림] 1854년 런던의 콜레라 사망자
1. 사례를 검토한 뒤 존 스노우는 호흡을 통한 감염설에 의문이 생겼다. 이유는?(지문의 콜레라의 특성과 관련해
설명)
2. [그림]은 호흡을 통한 감염설에 부합할까, 음식물 섭취에 의한 감염설에 부합할까?(최초 발병지의 공기가 더 오염되어있을
것인데, 그렇다면 호흡을 통해 감염설이 옳다하더라도 그림과 같이 사망자 수가 나타날 수 있지 않을까)
3. 1854년 런던 시내에서
콜레라가 퍼진 경로 제시와 근거(당국은 어떤 조치를 취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