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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짐
<깨어짐 > - 스카라 T.포뭄 지음, 김지원 옮김. 성서 말씀사 출간 -
1.자연인
자연인은 하나님으로부터나지 않은 사람이다.
단지 육 즉, 모태로부터 난 사람이다. 그는 오직 육신적인 일만 한다.
만사를 육신적인 관점에서 보고 판단하며 대처한다.
모든 사람은 육으로 태어난 자연인으로 인생을 시작한다.
구원받고 헌신된 부모로부터 태어난 사람도 역시 자연인이다.
야곱도 자연인으로 태어났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형 에서에 대해 말할수 없는 비교의식 가운데 자랐다.
반복되는 마음의 상처를 입고서 오직 경쟁심으로 충만한 잘못된 성격의 소유자로 점점 변해버렸다.
야곱은 온순한 성격이었다. 그래서 리브가의 사랑을 더 많이 받았다.
그러나 리브가가 야곱을 아낀 가장 큰 이유는,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는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듣고 늘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야곱은 속마음에 큰 응어리를 안고있었다.
날 때부터 생긴 질투심은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거세어져갔다.
장자권 때문이었다. 자기의 힘으로 어쩔 수없는 불가항력적인 제도에 대해 그는 절규하고 있었다.
그의 초미의 관심사는 어떤 댓가를 치루더라도 장자권을 거머쥐는 것이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목적하는 바를 이루고야 말겠다는 생각은,구원받지 못한 자연인에게서 볼수있는 공통적인 삶의 모습이다.
그들의 삶의 목적과 기쁨은 오로지 자신의 이기적 소원을 성취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들은 하나님께 기도드리며 진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않는다.
혹 자신의 욕심을 이루는데 방해될까봐서 말이다.
심히 곤비한 에서에게 팥죽 한 그릇으로 장자권을 빼앗은 야곱.
언제나 남을 자신의 이기적인 필요를 채우기 위한 이용대상으로 보는 자연인의 모습이다.
그들은 남을 정서적으로, 영적으로 지성적, 물질적으로 항상 자신의 유익을 위해 이용한다.
남에게서 무엇을 얻어내는 데만 인간관계를 이용하려고 한다.
남에게 사랑과 관심과 칭송과 격려와 동정을 받으려고만 할뿐 도무지 나누어줄 줄을 모르는 사람이다.
하지만 깨어진 사람은,
자신의 존재 전부와 가진 모든 것을 언제나 아낌없이 남을 위해 내어주는 사람이다.
야곱은 철저히 자기중심적이었으며 남의 약점을 이용해 평생의 목적인 장자권을 얻어내려고 했던 흥정을 시도한 사람이다.
언제 어떤 상황이든지 항상 자기의 이익을 앞세우는 건 덜 깨어진 사람의 한결같은 특징이다.
또한 야곱이 형에게 약속을 받고도 맹세를 강요한 것은,
형 에서도 자기처럼 남을 속이는 자일까봐 의심했던 때문이다.
이처럼, 덜 깨어진 사람은 남들도 자기와 같은 속물인 줄 알고 약점만 보고, 쉽게 속단하며 넘겨짚어 비난해댄다.
그러나 깨어진 사람은 스스로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을 가졌으므로 남들에게서도 그리스도의 모습만 보려고 애쓴다. 칭찬하고 인정하며 격려하고 존경하기를 잘하는 사람이다.
덜깨어진 사람은 가끔 한번씩 남을 대접해도 모욕과 무안을 준다.
동기 자체가 저급하고 이기적이기 때문이다.
깨어진 사람은 물질이나 관심을 통해서 진정한 하나님의 사랑과 생명을 전해주려 애쓴다.
< 자연인과 하나님의 주권자의 뜻 >
덜깨어진 이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을 자기 인생길에 장애물이요, 방해요인으로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분의 뜻은 거룩하고 완전하지만, 자신의 뜻은 이기적이고 육적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뜻을 피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뤄볼까 모색한다.
또는 하나님의 뜻이 자신의 뜻과 일치하더라도 덜깨어진 이는 그것을 전적으로 하나님께 맡기지 못하고 자신의 힘과 노력으로 이뤄보려고 시도하다보니 그 과정에서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게 되는 경우를 본다.
리브가가 바로 이런 오류를 범한 사람이었다.
하나님의 뜻을 미리 안 그녀가 보기에 자칫하면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지 못할 것같은 위기를 느꼈다.
그래서 남편과 에서를 속여서라도 하나님의 약속이 이뤄지게 해야겠다고 결심도 다부지게 한 사람이다.
즉 그녀는 , 하나님의 뜻은 반드시 이뤄지며 아무도 그것을 방해할 수 없다는 사실을 미처 믿지 못한 불신앙의 결과에서 나온 행동이었다.
하나님의 뜻이 실패할까봐 부정한 방법을 동원하면서까지 야곱을 도우려했던 리브가의 실수.
이게 덜깨어진 사람의 모습이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을 알면서도 성급하게 하나님보다 앞서 자기자신이 모든 일을 결정하여 처리해 버림으로써 하나님의 주권을 방해하는 일이 종종 있다.
본의아니게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는 지나친 열심을 피해야 한다.
하나님의 정하신 뜻을 따른다고 하면서 자신이 스스로 성급하게 인간적인 방법대로 처리해버리면,
인간관계가 좋은 사람은 그것때문에 낭패를 당하고,
재치있는 사람은 그것때문에 실패하며,
음악 잘하는 이는 그것때문에 무너진다.
자신이 성급하고 교만하게 나섰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시기와 방법을 앞질러 가면 큰 낭패와 시련을 겪게된다.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방법대로 이루어진다.
불의한 방법을 동원해서는 안된다.
< 죄의 공범자 >
죄의 한 가지 속성은 공범자를 만들거나 유사한 다른 죄를 연쇄적으로 유발시킨다는 것이다.
한가지 죄는 단순히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리브가는 야곱을 공범자로 끌어들였다.
그들은 자기중심, 이기심, 타인에 대한 무관심을 갖고 있다.
그러면서도 겉으로는 친절하고 관대하고 남을 잘 돌보는 온유한 사람으로 비쳐질 수도 있다.
이들은 그런 일을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붓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의 희생과 봉사 한가운데에는 '자아 ' '자기중심'이 언제나 자리하고 있다.
결국 그 사역은 그 일로부터 인정받고 칭찬받고 싶어하는 자아를 만족시키기 위한 것일 뿐이다.
그들은 항상 칭찬과 관심, 사랑을 듬뿍 받기 원한다.
그러나 진실한 사랑은, 거절 당할 때로, 조소 당할때도, 멸시, 수욕을 받을 때도 어김없이 변치않고 흘러나오는 것이어야 한다.
그 목적은 오직 한 가지, 상대가 누군지를 불문하고 그를 사랑하고 축복하는 것이다.
오늘날에도 자신의 이기적인 목적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의 존재를 도용하는 사람이 많다.
하나님으로부터 자기의 원하는 것, 즉 마음의 평화, 교훈, 축복, 종교인이라는 명함 ...등을 얻으려고만 하지 진정한 사랑과 관심은 없다. 자신이 필요한 것만 받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하나님께 대해 받는 것에만 관심이 있지,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는 것을 거부한다.
< 죄의 연쇄반응 >
죄는 곧 죄 덩어리로 변한다.
작은 죄를 조심하지 않으면 곧 큰 죄로 변해져간다.
순결치 못한 생각 - 사랑 - 성적 행위 - 낙태(살인)
하나님의 일에 있어서는 절대로 결과가 수단을 정당화시키지 못한다.
야곱은 자기 죄에 상응하는 죄값을 치뤄야만 했다.
리브가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 사건으로 인해 그녀는 사랑하는 아들 야곱과 이별한 뒤 지상에서는 두번 다시 그의 얼굴을 볼 수없는 외로움과 슬픔을 당했다.
정말 순간의 실수가 두고두고 후회스런 결과를 낳았다.
< 반복적인 거짓말 >
리브가는 덜깨어졌으면서, 대단히 똑똑하고 유능한 사람이었다.
자신의 힘으로 무엇이든 해낼 수있다는 자신감에 차 있었다.
야곱을 멀리 밧단아람으로 도피시킬 때도 남편에게 정직하게 고하지 않았다.
여깃서도 진실성없이 머리굴리는 그녀의 모습을 본다.
그녀는 진짜동기를 교묘히 은폐하고 있었던 것이다.
깨어진 사람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투명한 사람이어야 한다.
거짓말을 하는 것은 거짓의 아비인 사단의 자식이기 때문이다.
구원받은 사람이 거짓말하는 건 아직 덜 깨어져 이전에 행하던 죄의 습관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영적으로 죽은 자연인은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거짓말을 얼마든지 해대는 사람이다.
<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 >
야곱에겐 갑자기 두려움이 몰아쳤다.
전에는 꿈에도 생각 못하던 일이었다.
죄를 짓고 약점이 생기면 사람은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사탄이 야수처럼 돌진해와서 패망시키려 하기 때문이다.
사탄은 그의 상투적인 공격수법인 '두려움'으로 야곱의 죄의 약점을 통해 공격하기 시작했다.
똑똑하고 늘 바른 소리를 잘 하던 야곱은 하루아침에 두려움이라는 정신적 공포에 싸였다.
도덕성이 약한 사람은 강한 사람의 지배를 받는 법이다.
그는 종들에게까지 멸시를 받는다고 눌림받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야곱은 도망을 치는 수밖에 없었다.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은, 야곱의 실수, 죄를 도리어 연단의 기회로 바꾸셨다.
교만하고 자존심에 가득찬 야곱이 깨어져 하나님의 사람으로 합당하게 개조되도록 하나님은 영적인 수술대를 그를 올리신 것이다.
자연인이나 다름없었던 야곱이 그 과정을 통하여 믿음의 조상 이스라엘로 변해져갔던 것이다.
2. 회심
구원받고 새생명을 얻은 사람도 영적으로 어린아이와 같다.
성숙하지 못했기에 잘못을 범하기도 한다.
어린아이는 영적 성숙의 과정을 꼭 필요로 한다.
도망자 야곱을 보자.
그는 처음으로 좌절을 맛보았다.
밧단아람으로 가면서, 그는 자신이 고상한 사라이 아니라는 사실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하나님의 구원없이는 살 수없는 철저한 죄인임을 깨닫게 되었다.
자신의 힘으로 누구보다 똑똑하고 유능한 인물이 되고자 했던 그가 좌절을 경험한 것이다.
루스에서 잠을 자다가 사닥다리의 환상을 본다.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꿈을 통해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는다.
무조건적인 하나님의 사랑, 약속을 받고 그는 놀란다.
잠이 깨어 비로소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계심을 깨닫고 그는 제단을 쌓는다.
그는 이 시점에서 처음으로 하나님을 체험적으로 만난 것이다.
그래서 죽었던 영혼이 살아나게 되었지만, 그이후 그의 행적을 보면 육신은 구원받기 이전의 상태와 별로 다를 바없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기주의적인 마음도 변하지 않았다.
구원은 받았지만 아직 깨어지지 않은 옛사람의 모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기적인 구원의 체험이 그에게 일어났다.
이제부터 하나님의 성령이 인간인 야곱의 영혼 속에 거하기 시작했고, 야곱의 영혼이 늘 하나님과 교통하게 되었다.그는 이제 더 이상 자연인이 아니라하나님의 자녀요 영적인 갓난아기가 되었다.
구원을 받게되면 인간은 성령이신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이 된다.
그리하여 인간의 영혼으 성령님의 지배를 받게 된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육체는 구원받는 즉시 성령님의 지배를 100% 온전히 받지 못한다.
그 이유는 자신의 '자아'라는 껍질이 단단히 그의 영혼을 덮어싸고 있기 때문이다.
야곱도 그의 영혼은 새생명을 얻었지만, 육신은 아직 그리 영적인 영향력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모습은 특별히 의지가 강하거나, 지적인 능력을 자부하는 사람 또는 매우 풍부한 감성을 지닌 사람들에게서 많이 볼 수 있다.
인간의 의지와 지성 그리고 감정, 그 어느 것이든지 그건 모두 육적인 것이며, 그것이 강할 때엔 그것때문에 성령으로부터 오는 영적인 영향력을 받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자신의 지성과 감정, 의지의 무능함을 깨닫고 전적으로 하나님만 의지해야 한다.
이것을 깨어진다고 하는데, 내 삶에 진정 성령님이 역사하시려면 나의 자아의 굴레가 먼저 깨어져 성령 하나님의 활동이 자유로와져야 한다.
어린아이와 하나님의 아들은 다르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한 사람은 하나님의 어린아이가 된다.
여기서 깨어짐을 경험하지 못하는 사람은 계속 어린아이 상태에 머물러 있지만,
깨어진 사람들은 '하나님의 아들'로 더욱 성숙한 신앙에 이르게된다.
즉,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하을 받는 사람들이 곧 하나님의 아들이다.(롬 8:14)
야곱은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나서 구원받은 후에도 근 20년 동안이나 육신적인 그리스도인의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영적인 어린아이였다.
이 기간동안 그는, 주님과 세상 사이에 양다리를 걸치고 살았다, 얍복나루에서 진정 깨어지기 까지..
야곱의 덜깨어졌을 때의 기도는 의심이었다..
하나님이 만약 축복하시면 섬기겠다는 조건부였던 것이다.
벧엘에서 하나님과 흥정하고 있는 야곱의 모습을 우린 창 28:20-21에서 본다.
우리는 혹시 이기적인 목적을 이루려고 헌금을 하지는 않는가.
하나님은 진정한 헌금은 기뻐하시지만, 뇌물은 기뻐하지 않으신다. 봉사도 마찬가지다..
더이상 이기적인 목적을 일려고 하나님을 괴롭히지말라.
그는 흥정만 했지, 사명에대해선 관심도 없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깨어진 이는 스스로 혼자서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며 할 수도 없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언제나 엎드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날마다 구한다.
야곱이 얍복나루가 아니라 벧엘에서 깨어졌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시간이 얼마나 단축되었을까.
그러나 아직 혈기왕성했던 야곱이 깨어지기까지는 많은 세월이 허비되어야만 했다.
3. 덜 깨어진 성도의 생활 1막 : 육신의 정욕
고린도교인들은 구원을 받긴 했지만,아직 덜 깨어진 상태에 있었다.
그들은 영적인 사람이 되지 못했고 아직 육적인 상태에 놓여있었던 것이다.
야곱을 보자.
그는 결혼문제에 조차 조용히 기도하면서 주님의 응답을 기다리지 못했다.
라헬의 외모에 반해서 즉흥적으로 결정해버렸다.
그저 눈에 보이는 외모에 끌린 것이다.
이것은 그가 아직 영적인 사람이 되지 못했으니 너무나 당연한 결과였다.
그는 여자로서 지녀야 할 신실함과 가정에 충실한 마음 등의 자질들을 깨닫지 못했고, 여성의 참 가치를 잘 몰랐다.
잠시 있다가 사라지는 고운 것, 아름다운 것..세상적인 외모를 기준으로 아내를 택했다.
삼손도 마찬가지였고,오늘날 많은 젊은이들도 같은 방법으로 아내를 택한다.
그는 혼인을 위해 기도하지 않았다.
야곱, 그는 거듭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육적인 자아의 굴레를 완전히 떨쳐버리지 못했으므로 불신자와 똑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덜 깨어진 사람은 항상 인간적 정열에 따라 산다.
그러나 께어진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이 주시는 사명을 완수하는 일에 열정을 갖고 산다.
그의 인간적 열정결과 그는 라헬대신 레아를 얻는 속임에 빠진다.
덜깨어진 야곱은 자기가 남들을 속인 것은 아직 깨닫지도 못하고, 자기를 속인 외삼촌에게 화를 낸다.
다시 라헬을 주겠다는 약속에도 그는 기도하지 않았다.
그자리에서 7년을 더 일하겠다고 쉽게 승락해버렸다.
그는 14년을 하나님이 아닌 한 여인을 위해서 살았다.
덜깨어진 사람은 구원은 받았어도 이렇게 '자기자신'만을 위한 인생의 목표를 세우고 맹진하는 사람이다.
빛나는 모든 것이 다 황금이 아니다.
라헬은 보기엔 아름다왔지만 그것은 표면적인 아름다움이었고, 그녀의 내면은 결코 그렇지 않았다.
자녀를 생산치 못했고, 남편에게 대단히 무례한 말투를 보였다.
남편을 유인해서 첩을 얻게 하고, 질투심이 많았고, 경쟁심도 격렬했다.
도적이요 우상숭배자였고, 레아가 그의 시녀를 야곱에게 첩으로 주게하는 일에 원인제공자이기도 했다.
또한 간사하고 잘 속이는 자였다. 친정아버지를 교묘히 속여먹었던 사람이다.
결국 그녀는 애석하게도 야곱이나 30년이나 일찍 죽는다.
그녀의 많은 잘못과 죄 때문이었을까.
요셉은 라헬의 아들로서 총리가 되어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구한다.
그러나 영원한 제사장 직분은 레위가 받았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는 유다를 통해 계승되었다.
유다와 레위 , 모두는 레아의 아들이었다.
결국 하나님이 원하시고 계획하셨던 제사장권과 왕권은 모두 첫째 부인 레아의 후손을 통해서 다 성취되었다. 또한 열두 아들을 통해 열두 지파를 만드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다면 그것도 하나님의 선하신 방법으로 다 성취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야곱의 실수도, 육신의 정욕을 모두 내어버리게 하려는 하나님의 영적 대수술의 과정이었다.
그는 육신의 정욕 때문에 안겪어도 될 고통을 겪게되었던 것이다.
결국 인생의 참만족은 육신의 정욕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고 사는 것임을 고난의 시행착오를 통해 착실히 배워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4. 덜 깨어진 성도의 생활 2막 : 물질욕
야곱은 명예욕 (장자권)을 가장 먼저 수술받았다.
그것때문에 이루 말로할 수없는 고통을 겪게 되었다.
물질욕때문에도 수술을 받은 사람이다.
라반에게 열번이나 속으면서 훈련받는다.
라반에게 속으면서 그는 자아의 굴레를 깨뜨리는 과정이 필요했던 것이다.
하나님은 구원은 받았지만 덜깨어진 사람을 전혀 돌보시지 않는 분이 아니시다.
덜 깨어진 야곱에게도 놀라운 은혜와 사랑으로 다가가 주셨다.
밧단아람에서의 20년 세월은 하나님이 고집센 야곱을 깨뜨리시기 위한 철저한 훈련의 과정이었다.
그러나 야곱은 깨닫지 못했다.
재물이 점점 늘어가면서 그는 하란의 생활에 만족하고 살면서 자신의 소명을 까마득히 잊어버렸다.
이제는 장자권이니 형을 앞지르겠다느니 하는 과거의 야망과 집착은 깡그리 흔적도 없어졌다.
자신의 개인적 야망과 자신감도 다 사라졌다.
그는 점점 지극히 평범한 촌부의 하나로 낮추어져가고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낮추시는 역사였다.
이 깨어지는 과정을 통해 야곱은 점점 성화되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야곱이 철저히 깨어진 사람이었다면 자신 뿐아니라 라반도 잘되기를 원했어야 할 것이다.
그는 자신을 몇번이나 속인 라반을 철저히 앙갚음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서 자신의 재산이 많아지기를 시도했다.
하나님은 야곱의 이런 태도를 좋아하지 않으셨다.
야곱이 재산만 모으고 지내는 것을 원치 않으셨던 것이다.
그래서 주님은 먼저 라반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셨다.
여기가 좋사오니 하며 머물려던 마음을 돌이키게 하기 위해 라반을 이용하셨다.
자꾸 속임을 당하게 하시면서 덧정이 없게 하셨고, 결국은 떠나가게 하셨다.
그는 진절머리가 났던 것이다.
하란을 떠나면서도 도망치듯 떠나버리는 야곱의 모습을 본다.
덜 깨어진 사람의 문제점이다.
그는 아내들에게 자신의 정당성만 얘기했지만, 실은 실수와 잘못도 있었다.
그는 자기의 재산불리기에만 바빴지 삼촌의 재산을 늘리는 데에는 조금도 신경을 안썼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자신의 이기적인 마음, 싨와 잘못에 대해서는 아내들에게 한 마디도 하지 않는다.
그리고 아내들의 지지를 원했다.
정직하지 못한 행위를 했으면서도 자기를 옹호하고 지지해달라는 건 덜깨어진 사람의 모습이다.
사람은 끼리끼리 모이는 법이다.
부정직한 사람의 주변에는 부정직한 사람만 모이는 법이다.
야곱의 아내들은 그런 면에서 그와 같았다.
그가 황급히 도망치듯 떠난 것은 뭔가 깨끗치 못한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다.
라반의 얼굴을 보기가 두려웠던 것이다.
덜 깨어진 사람들은 이렇게 언제나 두려움을 갖는다.
양심이 자기 스스로를 고소하고 괴롭히기 때문이다.
길르앗산에서 7일 길을 달리다가 라반에 붙잡힌 야곱.
그는 그동안의 모든 것을 한 순간에 잃어버릴 뻔했다.
하나님의 강권하심이 없었다면..
보물을 하늘에 쌓지 않고 땅에 쌓는 자.
구제하는 마음이 없는 자.
욕심이 많아 지족하지 못하는 자....는 한 순간에 이렇게 모든 것을 잃게되는 근심에 빠질 수 있음을 덜 깨어진 야곱을 통해본다.
우리는 육적인 재물보다는 영적인 부요함을 더욱 먼저 사모해야 한다.
깨어진 그리스도인은 그렇게 한다.
하지만 덜 깨어진 야곱은 세상 재물만 모으려고 했었다.
그것 때문에 그는 한 순간에 끝장을 볼 뻔했다.
물질에 욕심을 내면 생명까지 잃게된다는 교훈을 야곱에게서 배운다.
5. 귀향
< 마하나임 >
고향으로 돌아가는 야곱을 보호하기 위해 하나님은 하나님의 군대 마하나임을 보내셨다.
비록 그가 20년 전에는 자기 뜻에 의해 고향을 떠났지만, 20년이 지난 지금은 하나님의 뜻에 의해 귀향을 하게 되었다. 그동안 20년의 타향살이 동안 그는 엄청나게 영적인 성장을 하게 되었다.
이제 하나님은 두 무리의 군대 '마하나임'을 보내어 그를 호위하신다.
하지만 야곱은 이때 이미 20년전, 형 에서의 얼굴을 피해 하란으로 도망갈 때 벧엘에서 나타나셔서 말씀하신 약속의 하나님을 기억하지 못하고 형 때문에 불안해했다.
그는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지 못했고, 자기 머리로 갖은 묘책을 짜내려고 발버둥칠 뿐이었다.
그는 자기를 지켜주려고 온 하나님의 군대, 천사들을 보고도 안심하지 못했고, 자기가 조직한 군대를 보고서야 마음이 놓였다. 그래서 이들 두 무리의 군대를 마하나임이라 불렀다.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세상을 의지하고, 주님이 지켜주실 것을 믿으면서도 또 한편으론 확신이 없이 스스로 자신을 지켜보려고 발버둥치는 야곱의 모습이 바로 우리의 모습 아닌가.
신앙의 목적이나 대상은 오직 하나님 한분 뿐이어야 한다.
하나님과 세상을 동시에 섬기려는 것은 덜 깨어진 야곱의 특징이다.
그는 여전히 자기의 소유의 떼를 이런저런 꾀를 짜내어 형님에게 보내면서 사람의 꾀를 의지하려 했던 것이다.
< 불안한 야곱 >
형과의 만남을 앞두고 그는 양심의 거리낌으로 인해 죄책감이 들었고 심히도 답답해했다.
두려워하고 항상 불안하며 긴장상태에 있다는 건 아직 덜 깨어진 상태에 있다는 증거이다.
자기가 몸담고있는 모든 일이 항상 문제투성이요 불합리하며 결국에는 잘못된 결과를 가져오며 성공하지 못할 걸로 여겨진다. 그래서 늘 불안해한다.
마음 속에 목자이신 주님이 함께 하시므로 평안하다는 확신이 조금도 없다.
그래서 세상적인 눈으로 자신과 세상을 보고, 두려움을 느끼고 매사에 부정적이 된다.
깨어진 사람은 두려움과 염려의 순간에 주님을 의지하며 맡겨버리므로 더 이상 근심하지 않고 평안히 거하는데 비해서 말이다.
< 인간적 방편의 자기방어 >
문제가 있을 때 주님과 깊은 기도시간을 가져야 한다.
그러지 않고 나름대로 자기식의 또 다른 계획을 마련해서는 안된다.
인간적 방편의 자기보호 수단은 헛수고이며 아직 덜 깨어진 사람의 증거이다.
< 덜 깨어진 사람의 기도 >
덜 깨어진 야곱은
먼저는 두려워하고,
다음은 두려움을 피할 길을 생각하고
다음은 실제로 자기가 그 모든 조치를 다 취하여 놓고
마지막으로 기도한다.
그는 처음에 두려움을 느꼈을 때 즉시로 기도해야 했었고, 그 다음에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옳았을 것이다.
그는 하나님께 기도할 때 자신이 스스로 온 가족의 안전을 위해 두 떼로 나눈 사실을 밝히지 않고 어물쩍 넘어갔다. 자기의 불쌍한 처지만 고한 채 말이다.
그의 기도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이렇다.
" 주님께서 지금 저를 지키실 어떤 행동을 취하지 않으시면 주님이 전에 제게 약속하신 모든 것이 실패로 끝날 것입니다."
덜 깨어진 사람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고 있다.
그는 하나님의 뜻은 구하지 않고, 자신의 일방적인 요구를 통고하는 형식으로 결말을 맺고만다.
그러나 깨어진 사람은 그렇게 기도하지 않는다.
그들은 단지 현재의 상황을 주님 앞에 펼쳐 놓는다.
그리고 주님이 그 모든 상황을 다스려주시고 주님의 뜻대로 간섭해주실 것을 믿고 안심한다.
그리하여 지금 이 상황에서 주님이 원하시는 모든 일이 , 비록 내가 원치 않는 길이라 할지라도 이루어지도록 기도한다.
만약 기도 중에 하나님의 응답이 전혀 없더라도 당황해하지 않는다.
그때는 아무일도 하지 않고 그저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면 된다.
주님이 그들에게 이것저것을 하라고 감동을 주실 때 그때 순종하면 되는 것이다.
욧점은,
깨어진 사람의 기도는 자신이 모든 일을 먼저 계획하지 않고, 자기가 원하는대로 추진하겠다는 결심을 단단히 굳힌 후에 하나님의 뜻을 그 시나리오에 맞춰 끼어놓는식으로 기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신의 행동에 앞서, 철저히 자신을 비우고 오직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추진하신 그 일이 이루어지도록 겸허히 순종하고 따라가겠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또 주님의 뜻과 계획에 절대로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보태지 않는다.
아버지의 뜻대로 이루어지길 기도한다.
6. 깨어짐 1막 : 고독한 시간
야곱은 한평생 모았던 가족과 모든 소유물들을 멀리 벗어나, 오직 혼자만 남게 된 고독한 순간에 새로운 힘이 솟아나기 시작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너무도 바쁘고 세상 일에 취한 나머지 사람들로부터, 사역으로 부터 그리고 자기자신으로 부터도 전혀 떠나지 못하고 있다.
결국 그들은 하나님과 교제하며 그분의 임재를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주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과 격리된 시간과 장소를 찾아서 주님과 단 둘만의 특별한 교제를 추구한다.
그 시간을 즐기는 사람은 진정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는 그 시간을 점점 길어지게 한다.
하루에 10분 정도의 기도는 초인종을 눌러놓고 도망가버리는 기도이고,
15분 만이라도 기도한다면 주님을 만나고 성령을 공급받게 될 것이다.
최소 15분 이상 간절히 기도하자.
하지만 특별한 신유의 능력이나 은사를 받을 목적으로 장시간 기도하지 말라.
성령의 은사는 24시간 우리를 붙어다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하심이 나타나는 그 순간에 성령님의 은사가 같이 나타난다.
능력의 은사를 받은 종들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이지만, 단지 그들은 깊은 하나님의 임재 속으로 빠져들어가는 체험이 있다.
30분, 1시간, 2시간을 주님과 만나는 사람은 15분간 교제하는 사람보다 더 깊은 하나님의 임재속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주님이 나에게 가르쳐주신 말씀은 이렇다.
1)나의 기도수준은 통탄할 정도로낮다.
아무리 오래 기도해도 조르듯이 하는 기도를 해왔다.
주님은 당신이 가지신 놀라운 자원들을 이용해서 위대한 역사를 이루시기 원하셨지만, 난 그 자원들을
구하지 않았다고 하셨다.
나의 기도는 여전히 구하는 단계에 머물러 있었고, 주님을 찾는 단계의 기도에 대해서는 전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두드리는 수준도 낮았다.
2) 주님의 임재를 느꼈을 때 나는 주님께 말씀만 드렸을 뿐, 주님을 기뻐하지 않았다.
또한 주님이 나를 기쁘시게 하는 것도 내가 가로막았다고 하셨다.
3)내가 무슨 일을 하더라도 주님을 찾지 않고서, 또한 그 계획에 대한 주님의 구체적인 인도함을 받지않고
하는 일은 아무것도 이룰 수 없을것이라고 하셨다.
4)내가 비록 적은 것이라 할지라도 모든 죄에 대해서는 단호히 그리고 민감히 대처하라셨다.
내가 무한한 잠재력을 가졌고 또 엄청난 축복을 받을 것이라 하셨다.
그러나 죄와 타협하고 특별히 스스로 과시하며 잘난 체 하거나 교만해지면 그 모든 축복들이 다 허물어져버릴 것이라 하셨다.
사울도 바울 되기전에 삼년 동안 아라비아에서 주님과 은밀히 교제하면서 훈련을 받았다.
모세도 두 번이나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무려 40일 동안 주님과 단 둘이서 교제하는 시간을 가졌다.
다윗은 아침과 저녁과 정오에 탄식하며 기도했다.
다니엘은 21일 동안 계속해서 기도하는 가운데 마침내 천사 미가엘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다니엘 기도 - 하루에 두 시간 정도 시간을 자유로이 정하여 21일 동안 연속적으로 기도하는 것)
엘리야 선지자는 남달른 기도시간을 가짐으로 큰 능력을 얻게 되었다.
주님께 쓰임받기를 원하신다면, 지금부터라도 서서히 사람들과 만나 교제하는 시간은 줄여나가고, 하나님과 만나 은밀히 교제하는 시간을 점점 늘여가라.
사람들과 만나 교제하는 시간을 줄이기 전에ㅐ는 하나님과 교제하는 시간을 늘일 수 없다는 사실을 꼭 명심하라.
7. 깨어짐 2막 : 씨름
야곱은 밧단아람에서 20년 연단의 과정을 통해 영적수술을 많이 받았지만, 아직 "교만"이라는 자신의 자아와 의지를 완전히 깨뜨리진 못했다.
그의 인간적 의지는 너무나 완고하고 거세어서 전적인 성령님의 인도를 받지 못했다.
그는 겉으론 온순했지만, 속으론 강한 의지와 고집을 갖고 있었다.
천사에 의해 환도뼈가 위골되어 버렸을 때 야곱은 육신의 힘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이젠 혼자 서 있을 수조차 없게 되었다.
여차하면 도망가야 하는데 그것조차 불가능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야곱의 환도뼈.
그것은 그가 가장 믿고 신뢰했던 부분이었다.
자기 스스로 가장 자신감을 가지고 있으며 자랑하고 싶어하는 그분야를 하나님은 치신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못하고 스스로의 힘을 의지하여 살아갈 때 하나님은 그걸 치신다.
그래서 우리가 주님께 두손들고 나오지 않으면 안되도록 항복을 시키신다.
야곱은 얍복나루에서 비로소 자신의 교만을 모두 내버리게 되었다.
그가 깨어지는 데는 적어도 20년의 세월이 걸린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환난을 당하는 것은 마귀에게 저주를 받아서이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깨뜨리시는 것은 저주가 아니다.
우리 자신을 의지하지 않고 철저히 하나님만 의지하는 사람으로 변화시키기 위한 선한 목적에서 주시는 축복인 것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이 깨뜨리시는 고난을 불평하지 말고 긍정적으로 순순히 받아들이면, 그 이후에는 약속된 놀라운 축복을 받게되는 것이다.
만약, 깨뜨려질 때 더욱 마음이 완악해지고 강퍅해지며 원망이나 불평의 마음을 갖는다면, 이런 이들에겐 하나님의 깨뜨리심이 축복이 되지 못한다.
결국 하나님은 그를 다시 깨뜨리시기 위해서 또 다른 시간과 장소를 택하실 것이고, 그때는 더욱 어렵고 힘든 환경 속에서 결국 주님께 항복하게 될 것이다.
결국 시간만 자꾸 늦어지게 되는 것이다.
얍복나루에서 비로소 깨어진 야곱은 이제 하나님의 천사를 꽉 붙잡았다.
이제는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없는 무능력자임을 알았기에, 하나님이 도와주시지 않으면 아무것도할 수없음을 알았기에 꽉 붙잡았던 것이다.
'저를 축복하지 않으시고 버리고 떠나시면 안됩니다...' 이것이 야곱의 씨름이었다.
모든 일에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 자기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진실로 깨어진 사람이다.
덜 깨어진 사람은 한두가지 일에만 하나님을 의지하곤 하는 사람이다.
한번 깨어졌다고 무사태평하게 지내선 안되며,
일평생 하루도 빠짐없이 철저하게 하나님께 매달리는 사람이 깨어진 사람이다.
하나님이 자신을 깨뜨리신 목적은 단순히 그가 깨어지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서임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나를 통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축복이 필요함을 아는 사람이다.
절뚝거리는 야곱의 머리 위로 브니엘의 해가 찬란히 빛나는 것을 우린 안다.
이제 야곱은 하나님의 축복을 양껏 받는 이스라엘로 변화되어졌던 것이다.
8.깨어진 성도 1막: 대면
야곱은 밤새 깨어진 사람으로 변화되었다. 주님께 맡기고 그 분의 뜻을 따르기로 했으므로 두려워 할 필요가 없었다. 야곱은 모든 일에 자기 자신이 책임지기로 하고 가장 위험한 선두에 서서 형 에서를 맞으러 나갔다.
이와같이 깨어지고 나면 자기 자신의 유익을 구하기 보다 다른 사람의 유익을 먼저 구하는 인격으로 변화된다. 자신이 소중한 인격체이면 다른 사람도 소중한 인격체임을 인정하며 다른 사람을 이용하는 사람이었으나 이제는 그렇게 행하지 않는다.
놀라운 기적이 일어나다.
20년을 피해왔던 순간 야곱은 하나님의 또 한번의 놀라운 역사를 체험한다.
아무도 말릴 수 없었던 에서의 적개심을 하나님께서 변화시켜주셨다.
에서의 혈육의 정은 깨어진 사람을 위하여 놀랍게 환경을 변화시켜주시는 하나님의 역사하 심을 이룬다. 하나님은 회개한 야곱에게 어젯밤의 약속을 다 이루어 주셨다.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며 나아갈 때 놀라운 결과가 생기는 것을 철저히 체험하게 되었다.
또 자신의 일생의 죄책감을 떨쳐 버리는 놀라운 해방감을 누렸고 환경이 기쁨과 사랑으로 변화하는 놀라운 축복을 받았다
우리가 범죄하면 마귀는 피해의식을 심어준다. 사방에 우리 대적들을 만들어 그들을 통해 끊임없이 우리에게 두려움을 불어 넣는다. 사람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에 사로잡힌 자가 아니요 마귀의 훼방에 사로 잡힌 자이다.
하나님께 죄를 범한 사람은 하나님께 회개하고 사람에게 죄를 범한 사람은 피하지 말고 그 사람을 만나 회개해야 한다. 마귀는 가급적 죄를 부인하고 과거의 기억을 잊어버리라고 속삭이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역사는 어그러진 관계의 회복이요 근심과 분노의 얼굴이 변하여 기쁨과 생기로 충만케 한다.
깨어진 사람은 상대가 자기의 선물을 받도록 간곡히 부탁까지 한다.
언제나 주는 것을 좋아하며 그것을 축복으로 여긴다. 선물을 주며 축복까지 한다.
이것은 자신이 하나님의 넘치도록 부어주시는 은혜에 감격했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불순종하고 반역했던 죄인까지 사랑하셔서 모든 것을 내어 주시고 베풀어주신 한나님의 은혜에 감격한 사람은 인격의 변화가 일어나 자신도 하나님처럼 남들에게 거저 베풀어 주는 사람이 된다.
이스라엘은 더 이상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사람이 아니라 타인을 생각하는 사람이 되었다. 다른 사람을 수고스럽고 귀찮게 하지 않으며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는다.
언제나 다른 사람의 유익과 필요를 먼저 구한다.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것을 철저히 거부하는 것이 덜 깨어진 사람의 특징이라면 다른 사람으로부터 여하간 도움을 거절하는 것이 깨어진 사람의 특징이다.
우리도 깨어지고 나면 이스라엘처럼 담대하며 다른 사람의 유익을 생각할 줄 아는 사람으로 놀랍게 변화될 것이다.
9.깨어진 성도 2막: 예배의 삶
야곱이 깨어지지 전에 벧엘에서 주님을 처음 만나고 예배를 드렸다.
그러나 그 후 어느 곳에서도 벧엘 이외의 다른 장소에서 하나님께 제단을 쌓았다는 기록이 없다. 깨어진 이 후 그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하고 하나님을 사모하며 예배드리는 일을 즐겨하는 사람으로 변화되었다.
이와같이 깨어진 사람은 하나님께 예배드리기를 즐기며 사슴이 시냇믈 찾기에 갈급한 것처럼 주님을 만나기를 간절히 사모한다.
이제 깨어진 사람은 하나님을 즐겨 섬기고 예배하는 일에 자기 주변 사람들을 초대하고 동참시킨다. 그리고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이 철저히 거룩해야 할 것을 상기 시킨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극심한 환란을 겪게 하셔서 거룩하게 만드시기 전에 우리가 자원해서 모든 이방 우상을 버리고 정결케 되어야 할 것을 강조한다.
깨어진 사람은 세상과는 구별되어 살아야 한다는 것을 천성적으로 알고 있다.
그는 자기 자신 뿐 만 아니라 가족, 친구들도 하나님 앞에서 거룩히 예배할 것을 촉구한다.
그들은 항상 자기 자신을 세속과 분리시키며, 자기 주변의 사람들까지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를 촉구한다
그러나 덜 깨어진 사람들은 이런 거룩한 영향력을 주지 못한다.
그들은 주변 사람들이 죄를 짓고 타락해 가는 것을 보면서도 무괸심하다.
더 심한 사람은 형제가 죄를 범하는 것을 보고도 그가 스스로 멸망하기 까지 방치하는 경우도 있다.
이스라엘은 자기 자신만 잘 믿고 올바로 서기를 원하지 않았다.
깨어진 지도자는 자신이 관장하는 모든 일에 스스로 책임질 줄 아는 사람이 된다.
비록 자기가 잘못한 일이 없다. 하더라도 자기의 동역자. 아랫사람이 잘못한 일까지 책임을 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간다.
이 때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은총의 역사가 따른다.
깨어진 사람은 하나님께 철저히 순종적이다.
그 순종도 강제적인 순종이 아니라 오직 주님을 향해 우러나오는 사랑에서 하는 즐거운 순종이다. 이제 하나님은 철저히 깨어지고 헌신된 사람이 되었을 때 비로소 생육하고 번성하는 축복을 받았다. 그것은 하나님의 창조적이고 구속적인 역사를 이루는 동역자가 되었다는 뜻이다. 깨어지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동역쟈가 될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로 놀랍게 변화시키신 후에 이제 그를 통하여 놀라운 사명을 맡기신다.
야곱이 얍복강에서 철저히 깨어지고 난 후, 불과 짧은 기간이었지만 놀라운 영적 진보를 이루었다. 이것은 우리에게도 큰 격려가 되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저하지 말고,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모든 불순종을 내어 버리고 철저히 회개하므로 진정 깨어진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기도해야 할 것이다,.
10.깨어진 성도 3막: 오직 하나님 한 분만
하나님을 사람을 깨뜨리실 때는 사람들을 먼저 아픔과 위기를 느끼게 하신다.
그러나 그런 과정을 통해 점차적으로 자기중심적인 과거의 모든 죄악된 습관들로부터 탈피하여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성숙한 사람으로 변화되어간다.
야곱도 얍복강 나루터에서 일생 일대의 위기를 맞이 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로 깨어지며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성숙한 신앙 인격을 소유하게 되었다.
그는 자신의 사랑하는 어머니 리브가로부터, 사랑했던 아내로부터, 지극히 사랑했던 자식으로부터, 최후로 자기 자신으로부터 분리되어져서 오직 "하나님 한 분만"사랑하고 섬기는 사람으로 성화되어져 나갔다.
부모로부터의 독립
하나님은 야곱으로부터 철저한 헌신과 봉사를 받으시기 위해 그의 마음 한 구석에 남아있는 인간적인 의지의 대상 마저 끊도록 하셨다.
이성에 대한 사랑을 끊으심
야곱은 하나님 이외에도 그가 소망하고 만족을 찾을 수 있는 인간적인 대상인 라헬을 야곱보다 무려 30년이나 앞서 데려가셨다.
야곱이 이 세상에서 가질만한 흥미를 가지고 관심을 가질만한 것은 다 사라지고 그의 희망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밖에 없게 되었다.
철저히 하나님만 바라보며 라헬에게 두었던 마음이 주님으로 채워졌다.
자신으로부터의 이별
장남 르우벤의 행동은 이스라엘의 남은 자아를 깡그리 부숴버렸다.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이 떠나는 것도 슬픈 일이나 더 고통스러운 것은 자기 자신의 상실감을 느낄 때 이다. 하나님은 야곱을 전적으로 사용하시기 위해서 자신의 분신과도 다름없었던 르우벤을 통해 자신의 존재 가치마저도 상실하게 하셨다.
교만한 우리의 존재 가치는 철저히 무가치한 것이다.
자녀로부터의 분리
하나님은 야곱에게 가장 사랑하는 아들 요셉마저 죽어 버리는 일을 허락하신다.
우리는 깨어진 후 하나님과 나 사이에 어떠한 다른 우상이나 사랑의 대상이 존재해서는 하나님의 완전한 종이 되지 못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면서도 다른 인간적이며 육신적인 의지와 기쁨의 대상을 동시에 가진다. 그러나 하나님이 쓰시는 종들은 그의 사랑하고 의지하는 모든 대상을 다 끊게 하시고 자기 자신 마저도 상실하게 만드신다.
그래서 야곱은 더욱 더 깊고 풍성한 주님의 사역을 감당하는 영적인 종이 되었다.
11.깨어진 성도 4막; 넘치는 영적인 삶
이제 하나님과 야곱 사이에 어떠한 방해물도 다 사라졌다.
오직 하나님 한 분 만을 사랑하고 섬기는 종이 되었다.
그의 깊은 영적인 상태를 살펴보자
바로를 축복함
노년에 바로앞에 선 야곱은 육신적인 눈으로 자신을 , 또한 바로를 바라보지 않았다.
도리어 영적인 눈으로 바로와 자기 자신을 바라 보았다.
진정한 위대함이란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것임을 안 야곱은 바로왕 앞에서도 당당했다.
깊은 영적인 수준에 도달한 사람에겐 놀라운 권세가 있다.
모든 사람들이 인정하는 영적인 지위도 갖게 된다.
므낫세보다 에브라임을 더 축복함
육체적인 시력은 희미해져갔으나 온전히 하나님만 섬기고 나아가는 그에게 이전에 갖지 못했던 영적인 통찰력이 열렸다.
요셉의 장남인 므낫세 보다 .에브라임을 더 축복하므로 그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져서 영적인 시력을 가지게 된다.
창세기 49장의 열 두 아들에 대한 예언도 장차 되어질 하나님의 계획과 인도하심을 볼 줄 아는 영안이 열린 야곱의 깨어진 모습을 볼 수 있다.
얍복강가에서 완전히 깨어진 야곱은 남은 인생을 통해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 영적인 사역자가 되었다.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자가 되었다.
험난한 야곱의 인생여정을 통해 하나님은 철저히 깨어진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일을 하신다. 그러나 자신의 의지가 강하여 깨어지기를 계속 거부하면 야곱처럼 젊은 시절을 송두리째 연단의 세월을 고통중에 보내게 된다.
깨어짐의 연단의 고통은 다른 고통받는 사람들을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진정 깨어짐의 체험이 있는 사람은 무슨 일을 하더라도 열매를 맺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 우리가 몸소 겪은 고통과 실패의 경험을 통해 다른 사람을 대한 더 깊은 동정심과 사랑을 갖게 된다.
우리가 깨어지기를 거부할 때에 하나님은 우리를 깨어지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환경으로 몰아가신다. 오랜 세월을 허송할 필요 없이 나의 환도 뼈를 치시기 전에 주님께 항복하고 나아가자. 내 힘과 내 뜻대로 사는 사역과 삶이 아니라, 오직 나는 죽어 없어지고 하나님의 뜻과 능력으로 살고 사역하는 남은 생애가 되도록 기도하자.
이제 우리도 야곱처럼 철저히 깨어져 깊은 영적인 수준에 도달하여 이스라엘처럼 수많은 영적인 후손을 낳고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는 종들이 되기를 기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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