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마당'에서 화요초대석 코너가 진행됐고 김홍신 작가가 출연했다.
KBS1TV 시사교양 프로그램 '아침마당'
2021년 3월 30일 오전 8시 25분에 방송된 KBS1TV 시사교양 프로그램 '아침마당에서는 화요초대석 코너가 진행됐다. 배우 윤다훈에 이어 작가 김홍신이 출연했다. 작가 김홍신은 '인생의 긴 터널을 건너는 지혜'라는 제목으로 인터뷰를 하게 됐다. 김홍신은 소설을 투고하고 또 투고하면서 10년을 보냈던 일화를 얘기했다.
원고를 투고해도 끝내 거절당하고야 마는 일을 10년 동안이나 반복했기에, 김홍신 작가는 마음 속의 고통이 만만치 않았다고 한다. 어찌할 줄 모르고 방황하던 청년 시절.
"그러던 중에 수제자라고 해서 취업을 시켜준다고 하는데 요즘말로 하면 한센병이라고 해요. 그 시절에 한센병 환자들하고 2년을 같이 사는데, 저를 책임진 분이 뭐라고 그러냐면 네가 환자들하고 너무 접촉해서 사니 한센병 환자들이 먹는 약을 먹어야 할 것 같다고. 그래서 그 약을 계속 저도 먹었어요. 근데 그땐 너무 고통스러웠는데 그 경험으로 제가 장편 소설을 최초로 썼어요. 그러니 견디게 되더라고요. 고통과 슬픔, 이런 건 저한테 양식이 됐고 재산이 된 것이죠"라고 김홍신 작가는 전한다.
"예전엔 다 원고지로 썼었는데 그래서 그게 적응이 되어서 전 아직도 글을 만년필로만 써요. 적응이 잘 안되어서"라고 김홍신 작가는 웃기도 했다. 이에 김학래는 "그러게요. 요즘엔 뭐 다 워드로 쓰고 하니까요"라고 말했다. 이어 어렵게 30대에 등단을 한 김홍신 작가의 그 시절 에피소드가 공개됐다.
"등단만 하면 난 그때부터 정말 더 열심히 할 거다, 등단만 하면 된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등단을 했는데 등단을 막상 하고 보니까 너무나 천재들이 많은 거예요. 그때 제가 국문과를 들어갔는데 당시 국문과 출신이 취업이 안될 때에요. 그러니까 취업도 안되는 그런 어려운 시절에 남의 작품을 읽어보면서 느끼는 그 좌절감. 그 고통이 통곡하고 싶었어요"라고 김홍신 작가는 말한다.
"그걸 읽어보면서 아니 왜 나는 이렇게 못 쓸까. 난 왜 머리가 나쁠까. 이런 걸 생각하니 정말 마음이 아픈 거죠"라고 김홍신 작가는 말하며 졸업 사진을 공개하기도 했다. 김홍신 작가는 젊은 시절엔 앞만 보고 뛸 수밖에 없고 그저 경주마처럼 오기로 꽉 찬 인생을 주변을 못 보고 살았다고 전했다.
그 시절 자신을 부정했던 것이 인생의 자양분이 되시기도 하신 것 같다고 김정연이 말하자 김홍신 작가는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글 쓸 때마다 검열 의식하면서 써야 하잖아요. 그러다가 전두환 정권 때 제가 잡혀갔는데 잡혀갔을 때의 그 가슴 아픈 걸 떠올리면 지금도 이렇게 통증이 와요"라고 김홍신 작가는 말하기도 했다.
"근데 절 잡아갔던 분이 몇 년 전에 돌아가셨어요. 근데 제가 그 분을 위해 좋은 곳으로 가시라고 향과 초를 켜 놓고 백팔배를 하고 기도를 했어요. 그러니까 안 가시던 앙금이 풀리더라고요"라고 김홍신 작가는 전해 깊은 여운을 주었다. "진짜 용서는 그게 진정한 종교고 용서가 진정한 사랑이고 용서가 있기 때문에 인류가 존재했던 거예요. 내가 미운 사람이 사라지게 했다면, 저도 사라졌을 것이고 우리 모두 사라졌을 거예요. 우리가 존재하는 기적은 결국 용서 때문에"라고 김홍신 작가는 전한다.
진정한 사과가 없었더라도 자신 스스로를 위해 용서한 마음을 가진 김홍신 작가. 이어 김홍신 작가는 유명인이 되면서 겪어야 했던 엄청난 시기와 질투에 대해 얘기했다. 김재원 아나운서는 자신 또한 김홍신 작가의 소설과 글을 읽으며 통쾌해하고 좋아했던 세대라고 말하며 "좋아했던 팬의 한 사람으로서 무슨 이야길지 궁금하다"고 전했다.
김홍신 작가는 "시기와 질투 미움 이런 건 좀 견디겠는데 가족을 협박하고 공갈 협박, 이런 건 정말 못 견디겠더라고요. 애 엄마가 애를 데리고 도망가기도 하고. 왜냐면 애를 납치해서 죽이겠다고 하니까"라고 당시 상황을 말했다. 그런 일들을 계속해서 겪던 중, 김홍신 작가는 인도로 가려 했다 한다.
인도에서 글을 써 달라는 요청을 받고 그렇게 하려고 했던 김홍신 작가. 그러나 선배들은 "지금 네가 가면 도피다. 네가 유명해서 오게 된 고통은 견뎌야 한다"고 조언했다고 한다. 결국 김홍신 작가는 영영 인도로 떠나지 않고 한국에 남을 수 있었다. 김홍신 작가는 그 시절 많은 것들을 깨달았다 한다.
당시 심야 라디오 진행도 했었다고 김홍신 작가는 말하며 "옛날에는 하루에 사과박스 하나같은 데다 편지가 하나씩 우편으로 왔어요. 그러니까 그런 것들 때문에 제가 이 땅에서 이런 사랑을 받았는데 갚을 길이 없잖아요. 그러니까 어떻게든 이 땅에서 글을 많이 써서 갚자, 이런 생각을 했기 때문에 제가 지금까지 견뎠습니다. 앞으로 이걸 어떻게 다 갚을지 모르겠습니다"라며 그는 웃었다.
김재원, 이정민 아나운서는 "유명세, 이게 진짜 헛된 값이 아니에요. 그냥 베스트셀러 작가이기 때문에 부러워하고 이랬던 거랑은 다른 결이잖아요"라고 말했다. 이에 김홍신 작가는 "사실 제가 겪었던 고통은요. 이전 세대 분들도 겪었던 고통중 하나입니다. 그분들의 어떤 수고가 있었기에 지금 이렇게 잘 살 수 있는 건데, 그런 생각을 하면 한국인으로 태어난 것이 황홀한 행복이다, 이런 느낌을 받은 때가 있어요"라고 말했다.
인간시장을 발표하고 나서, 다음 작품이 안되거나 잘 나오지 않을 때마다 김홍신 작가는 "하늘은 참 공평하다. 많이 줬으니, 많이 뺏어가는 것도. 준 만큼 뺏고 뺏은만큼 주는 것이 하늘의 진리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됐다"고 전했다. 이정민 아나운서는 반대로 김홍신 작가에게도 부러운 사람이 있었냐고 물었다.
이에 김홍신 작가는 소설가 최인호를 꼽았다. "제가 너무 괴로워서 고백을 했어요. 나란히 심사위원에 앉았는데, '제가 선배님을 욕하고 시기하고 질투했습니다' 그랬더니 저를 끌어안더니 내 앞에서 나를 욕했다 용서해달란 사람이 처음이다, 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날부터 둘이 의형제가 됐어요"라고 김홍신 작가는 가슴 뭉클한 이야기를 전했다.
이어 김홍신 작가는 인생의 지혜를 또 한번 나눠달라는 아나운서들에 "벼농사를 지으려면 물이 1000밀리미터 이상 필요한데요. 동네 사람들이 품앗이를 하지 않고선 농사를 절대 못 짓는 게 우리 대한민국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예전부터 품앗이를 하면서 농사를 짓고 살아왔어요. 세계 교역 10대 강국 중 7개 국가 중에 다른 나라는 전부 식민지가 있었지만 우리만 유일하게 아니거든요. 우리나라는 인구 적었죠, 학력 없었죠, 지하자원 적죠, 근데 세계 교역 10대 강국이 되었잖아요. 이런 나라를 만든 우리가 있잖아요. 품앗이의 정신이 중요한 거예요"라고 얘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