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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간 일이 중단되어 집에 있다 보니 1년 전에 갔었던 네팔이 자주 떠올랐다. 다시 가보고 싶다. 언제 가볼 수 있을까? 당시 트레킹을 하며 메모했던 일지를 읽어 본다. 트레커에게 필요한 유익한 정보는 거의 없고, 단순한 여행객의 감상만 있다. 그래도 트레킹을 회상하며 다시 그곳에 간 듯한 마음으로 일지를 옮겨 적어 본다.
2014년 2월 13일 목요일
포카라 - 나야폴 - 란다왈리 - 티케퉁가(1,540MT)
오늘부터 안나푸르나 생추어리 트레킹을 시작했다. 포카라에서 나야폴까지는 자가용을 이용했다. 1시간 30분 정도 걸렸고 요금은 3,000루피였다. 한 차에 6명이 이용했으니 그다지 비싼 편은 아니었다. 포카라에서 나야폴까지 차를 타고 가는 중에 본 시골 마을 풍경은 내 어린 시절 기억 속의 한국의 시골 마을과 비슷해 보였다. 과거 속으로 들어 온 듯 했다. 본격적인 트레킹은 나야폴에서 시작된다. 체크포스트인 비레탄티를 지나 첫 1박지인 티케퉁가를 향해 걸어 올라갔다. 계절은 겨울과 봄 사이 어디 쯤에서 이른 봄을 향해 가고 있었다. 냉기를 잃은 바람이 선선하게 살갗에 닿았다. 그 바람이 살아오며 무감해졌던 어떤 감정을 일깨우 듯 나의 몸을 저릿하게 감쌌다. 점심을 먹기 위해 들어간 란다왈리의 한 롯지에는 작은 강아지와 수줍어하는 어린 아이가 있었다. 예전에 본 듯한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다 내 소년시절의 어느 한 순간이 떠올랐다. 어느 예쁜 여자 아이 옆에 섰는데 갑자기 가슴이 쿵쾅거리던 그때 말이다. 앞으로 살며 그 소년시절 때처럼 가슴이 쿵쾅거릴 일은 없겠지만, 오늘처럼 새로운 곳을 향할 때 느끼는 풋풋한 설레임만큼은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15시 30분 쯤 티케퉁가에 도착했다. 롯지에서의 첫 1박이다.
나야폴로 가는 길에서 본 마차푸차레
2014년 2월 14일 금요일
티케퉁가 - 울레리 - 반탄티 - 난게탄티 - 고레파니(2,860MT)
티케퉁가에서 울레리로 올라가는 길은 경사가 심한 오르막 길이다. 산을 오르내리는 당나귀들이 많아 때론 길을 비켜주어야 했다. 반탄티를 지나 난게탄티로 가는 중에 비가 내렸다. 제법 비가 많이 내려 비를 피하기 위해 한 롯지에 들어가 밀크티를 마시며 난로불을 쬐었다. 밀크티가 좋아졌다. 난로불이 따뜻했다.
고레파니 입구
2014년 2월 15일 토요일
고레파니 - 푼힐(3,193MT) - 고레파니 - 데우랄리 - 반탄티 - 타다파니(2,630MT)
어제와 마찬가지로 오늘도 많이 걸었다. 이른 새벽 일출을 보기 위해 푼힐 전망대로 올라갔다. 흐린 날이었지만 해가 떠오를 무렵 동쪽 하늘이 개어 일출을 볼 수 있었다. 어제 고레파니에 도착할 무렵 고소에 왔다는 느낌이 들었다. 잠시 순간 숨이 찼지만 천천히 걸으며 숨을 고르니 쉽게 걸을 수 있었다. 푼힐은 내가 처름 올라가 본 3,000미터가 되었다.
숲에 눈이 쌓인 광경은 이색적이었다. 오늘 많은 눈이 내렸고 반탄티의 한 롯지에서 쉬며 눈이 잠잠해지기를 기다리다 출발하기도 했다. 햇살이 비치니 숲에 쌓인 눈이 빠른 속도로 녹았다. 푸른 숲에 쌓인 눈. 나뭇잎에 쌓인 눈이 녹아 떨어져 내렸다. 높은 나무에서 떨어져 나리는 눈들. 푼힐 전망대에서 본 설산의 검은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눈 사이사이로 드러난 검은 바위들. 타다파니에 도착하니 다시 눈이 내렸다.
데우랄리로 가는 길
**'파니'는 네팔리로 물(water)이란 말이다. '타다'는 멀다(far)라는 말이고, '고레'는 말(horse)이라는 말이고, '따또'는 따뜻하다는(hot) 말이며, '디노스'는 달라는(give me) 말이다. 'hot water, please'는 네팔리로 '따또파니 디노스'가 된다. 즉, '따뜻한 물 좀 주세요'라는 말이다. 안나푸르나의 밤은 길고 춥다. 따뜻한 물은 마시기 위해, 밤에 잘 때 품에 품기 위해 많이 필요하다.
2014년 2월 16일 일요일
타다파니 - 슐레 - 구르중 (2,060MT)
아침 6시 쯤 일어나 롯지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전히 흐린 날씨지만 저 멀리 구름이 걷힌 곳에서 마차푸차레 산이 일부 드러나 보였다. 이른 아침 눈에 덮힌 마을은 고요했다. 시간적 여유가 많은 우리들은 오늘 천천히 걸었다. 슐레를 지나가며 전형적인 한 농가에 들러 밀크티를 마시기도 했다. 화덕의 불로 '찌아"를 직접 끓여 우려내어 만들어 준 맛있는 '두찌아'였다. 롯지에서 파는 밀크티 가격에 맞춰 주인에게 돈을 드렸더니, 돈이 많다며 내게 돈의 일부를 돌려주었다.
슐레에서 계곡을 건너 구르중으로 가는 길에 간간히 비가 내렸다. 구르중 쯤에 도착할 무렵 비가 많이 내려 롯지를 잡고 숙박하기로 했다. 거실의 난롯가에 모여 앉아 비 내리는 창밖 풍경을 바라보았다. 비는 눈으로 바뀌었다. 눈이 많이 내렸다.
포터인 웃절이 몸살 기운이 있어 보여 감기약을 찾았으나 카투만두에 두고 왔는지 보이지 않았다. 대신 타이레놀 몇 알을 주었다. 웃절은 재미있고 착한 포터이나 몸이 좀 약해 보인다. 포터로서 경력을 많이 쌓아 능력있는 가이드가 되었으면 좋겠다. 포터와 가이드 사이의 인건비는 많은 차이가 난다. 30대 초반의 웃절은 부인과 아이 둘을 부양하고 있다. 부양하는 자의 책임과 자긍심이 웃절에게 있을 것이다. 나는 어머니를 부양한다고 할 수 있겠지만, 처와 자식을 부양하는 가장의 노고와 보람과는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롯지의 주인 아저씨는 부지런하고 눈치도 빠르다. 장작을 아낌없이 때워 줘 따뜻하게 쉴 수 있었다. 인심 좋고 수다스러운 주인장.
타다파니 롯지의 거실
2014년 2월 17일 월요일
지금 새벽 5시다. 트레킹 중에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게 된다. 보통 밤 9시 전에 잠에 들고 새벽에 한두 번 잠에서 깨어나 화장실에 다녀온다. 잠을 자고나면 푹 잔 느낌이다. 잠다운 잠. 난방을 하지 않는 롯지의 방은 밤이나 깨어난 새벽녘이나 냉랭하지만 침낭 속은 포근하다. 그 따뜻함이 좋다.
안나푸르나 생추어리 트레킹 루트는 마을과 마을을 잇는 길이며, 마을 사람들의 생활 터전이다. 오랜 시간에 걸쳐 다듬어진 돌계단에 축적된 세월은 사람과 자연이 어우러진 자연스러움을 보여준다. 일시적으로 뚫고 만들어진 길이 아니라, 그 터전에 사는 사람들의 삶이 녹아 이루어진 길이다. 그러한 길을 걷고 있다. 하지만 나는 그 길을 그저 지나쳐가는 트레커에 불과하다. 풍광의 웅장함에 놀라고, 소박한 농가의 풍경에 친밀감을 느끼고, 때론 이곳 사람들의 삶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지만, 나는 이국적 정취를 쫓는 여행객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 이곳의 자연과 삶과 사람들에 대해 섣부른 예단을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언젠가 혼자 이곳을 다시 천천히 걸어 본다면 좋겠다. 언제가 될지 약속할 수는 없지만.
구르중 - 촘롱 - 시누와(2,360MT)
촘롱으로 들어가는 초입의 고갯마루에서 차를 마셨다. 경관이 좋고 햇살도 따뜻했다. 그곳에서 촘롱으로 가는 길은 두 개가 있는데 웃절은 농가들이 있는 둘러가는 길로 우리를 데리고 갔다. 길을 잘 아는 가이드라면 트레커들이 주로 다니는 비교적 가까운 길로 데리고 갔을 것이다. 아침에도 웃절은 구르중에서 촘롱 방향이 아니라 강두룽 가는 방향으로 길을 잘못 들어 한참 엉뚱한 곳으로 걸어내려 가기도 했었다. 웃절은 자신의 실수 때문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던지 좀 시무룩해 보였다. 트레킹 중에 길을 잘못 들 수도 있지만, 길을 잃을 경우는 거의 없다. 다만 좀 길을 에둘러 갈 뿐이다. 웃절, 괜찮아.
촘롱으로 가는 길
2014년 2월 18일 화요일
시누와 - 밤부 - 도반(2,600MT)
새벽에 잠이 깨어 롯지의 방에서 나와 구름이 걷힌 마차푸차레 산을 바라보며 잠시 걸었다. 새벽인데 사람들이 대나무 광주리에 생필품(대부분 트레커들을 위한)을 잔뜩 담아 지어 나르고 있었다. 더 높은 곳에 있는 롯지로 가는 물건들이다. 이곳에서는 모든 것을 사람이 짊어지고 가야 한다. 무언가 마음에 걸렸다. 일하는 사람들 옆에서 혼자 편히 놀고 있는 그런 기분이 들어서였을까?
아침 10시에 시누와에서 도반을 향해 출발했다. 미풍이 부는 한국의 청명한 가을 날씨 같았다. 시누와를 벗어 날 무렵 한 롯지에서 잠시만 쉬었다 가려 했지만, 날씨와 전망이 좋아 산을 감상하며 내처 점심까지 먹기로 했다. 마차푸차레, 히운츌리, 안나푸르나3봉이 보였다. 산을 바라보며 어느 능선으로 등반할 수 있을까하고 생각해 보았지만, 능선마다 멋진 루트가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7,000미터나 되는 고도의 산을 등반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멀리서 보아도 마차푸차레는 오르기 쉬어 보이지 않는다. 아무튼 마차푸차레는 입산 허가가 나지 않으니 아무도 오를 수 없다. 네팔 사람들이 신성시 하는 산이다. 멋진 산들이 마음을 채운다. 이상하게도 가만히 산을 바라보면 감히 오르기 어려운 줄 알면서도 한 번 올라보고 싶은 마음이 생겨난다. 마음 속에 들어 온 산은 마음 속에만 갇혀 있지 않고 산으로 사람을 이끄는 것 같다. 매혹된다는 건 때로 위험하다.
걷다 보면 지난 삶이 떠오르곤 한다. 회한과 함께...... 지나 온 삶은 단지 허망할 뿐이다. 또 걷다 보면 회한도 허망함도 감당할 만한 무엇이 되어 마음 속으로 가라앉는다. 가을 햇살처럼, 가을 바람처럼, 안나푸르나의 햇살과 바람이 내 등에 따스하게 내리고 스쳐간다.
청명한 날
2014년 2월 19일 수요일
도반 - 히말라야 - 데우랄리(3,230MT)
히말라야에서 점심을 먹고 데우랄리로 올라가자 길은 눈길이 되었다. 많은 눈이 내렸다고 한다. 눈이 많이 내려 한동안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로 가는 길이 눈에 막혀 있었다고도 했다. 더 높은 그리고 큰 산에 들어 온 것 같았다.
정 선생님은 틈만 나면 웃절에게서 네팔리를 배운다. '페리 맷돌라'니, '돈내봣'이니, '수버비 하니'니....... 나도 옆에서 외어보곤 했다. 하지만 네팔리와 영어가 묘하게 오락가락하는 정 선생님과 웃절을 보고 있자니 차츰 골치가 아파졌다(내가 안나푸르나에 공부하러 온 건 아니잖아? 학교에서도 공부 안했는데...).
데우랄리는 3,200미터 정도 된다. 며칠 전 푼힐에 올라갔다 와서 그런지 별다른 고소 증상은 없었다. 물론 걸음을 빨리 한다거나 서두르면 숨이 찰 것이다.
도반에서 출발하자 검고 야윈 개 한 마리가 우리를 쫓아왔다. 안나푸르나의 동물들은 전혀 사람을 경계하지 않는다. 소도, 말도, 개도 모두 사람에게 무심하다고나할까. 사람들이 지나가도 눈치를 본다거나 경계하는 기색이 없다. 이곳에서 동물과 사람은 자연스럽게 어울려 사는 것 같다. 이곳 사람 역시 동물들에게 겁을 주거나 장난을 치지 않고 무심하게 대하는 듯 하다. 우리를 쫓아 온 검고 야윈 개가 낑낑대었다. 웃절은 개가 배가 고픈거라고 말했다. 먹을 게 있으면 개에게 좀 주었으면 했다. 하지만 나는 간식을 가지고 있지 않아 개에게 줄 게 없었다. 다시 걸었다. 웃절과 개는 한참 앞서 나아갔다. 얼마쯤 지났을까. 멀리서 웃절이 생필품을 나르는 짐꾼에게 과자 한 봉지를 사는 게 보였다. 웃절은 개에게 과자를 먹였다. 포터인 웃절이 자기 돈으로 먹을 것을 사서 처음 보는 배고픈 개에게 먹여준 것이다. 이것은 웃절 개인의 선함에서 나온 행동이겠지만, 이곳 사람들의 심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만 같다.
웃절과 함께
2014년 2월 20일 목요일
데우랄리 -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MBC) -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BC 4,130MT)
강렬한 햇살, 짙푸른 하늘. 바람에 따라 빠르게 흘러가는 양떼구름들. 정오에 도착한 MBC에서 안나푸르나가 보였다.
MBC에서 ABC로 올라가는 길은 온통 흰 눈으로만 쌓여 있었다. 안나푸르나 남봉을 바라보며 천천히 계속 끝없이 걸어가고 싶었다. 지금처럼 힘들지 않고, 아프지 않고, 편안한 마음으로 이대로 그냥 하염없이 걸을 수 있다면...... 언젠가 깊은 밤 버스를 타고 앉으면 밤 속으로 끝없이 가고 싶었던 심정과 비슷한 것일까? 하지만 세상만사 끝이 있게 마련이다. 오후 5시에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 도착했다.
MBC에서
ABC
2014년 2월 21일 금요일
ABC - MBC - 데우랄리 - 히말라야(2,920MT)
이청해 선배님과 김미동 선배님은 약간 고소증세가 있다고 하여 아침 식사 후 웃절과 함께 아래로 먼저 내려갔다. 정선생님과 경오 형 그리고 나는 박영석 대장의 추모비를 지나 설사면에 올라가 안나푸르나 남봉과 안나푸르나 남벽을 바라보았다. 빙하와 모레인 지대에서는 쉼 없이 무언가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햇빛은 눈부셨다.
점심을 먹고 ABC를 떠났다. 눈밭을 미끄러지듯 빨리 내려갔다. 데우랄리를 지날 무렵 우박이 내렸다. 히말라야에 도착할 무렵 비가 내렸다. 히말라야에서 모두 만났다. 이곳에서 숙박하기로 했다. 순식간에 눈 세상에서 푸른 숲으로 내려온 것이다.
2014년 2월 22일 토요일
히말라야 - 도반 - 밤부 - 촘롱(2,170MT)
새벽에 일어나 화장실에 가려고 신발을 싣는데 신발 안에서 무언가가 밟혔다. 문득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신발을 벗어보니 무언가 딱딱한 알맹이 같은 게 대여섯 개 나왔다. 누군가 방에 들어왔던 걸까? 문이 잠겨 있어 그럴 수는 없었다.
아침 식사를 할 때 의문이 풀렸다. 이청해 선배님의 배낭 안에 있던 아몬드를 쥐가 갉아 먹었다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쥐는 아몬드를 훔쳐와 이 방 저 방 다니며 신발 안에 숨겨 놓은 것이다. 쥐에게 신발은 먹을 것을 저장하기에 좋은 은닉처처럼 보였던 모양이다. 히말라야 마을 롯지에만 쥐가 있는 것 같다. 다른 마을에서는 쥐를 보지 못했다.
흐린 날씨였다. 내려가는 길은 한적했다. 여전히 ABC로 향해 올라가는 트레커들은 많지만 숲길은 호젓했다. 안나푸르나에는 한국인 트레커가 많다. 대부분 중년 이상이고 10여 명 이상의 단체로 모여 움직이는 경우가 많다. 단체로 온 만큼 짐도 많고 포터들도 많다. 어떤 팀은 COOK이 있어 직접 한국 음식을 해 먹기도 한다. 이런 경우 요리할 음식 재료를 짊어질 포터가 더 필요하게 된다. 간혹 이삼십 대의 젊은 한국인 트레커를 보게 된다. 그들은 2명 또는 혼자서 걸어 간다. 한 명의 가이드와 함께 또는 가이드나 포터 없이 그들 나름대로 트레킹을 한다. 이삼십 대의 트레커들은 중년의 트레커들에 비해 한결 세련돼 보인다. 그들이 여행을 통해 얻은 견문이 그들이 사는 사회 속에서 잘 용해되기를, 그리고 앞선 세대보다 여유로운 마음으로 살아가기를 바래본다.
모처럼 쉬지 않고 부지런히 걸었다. 도반을 지나면서 길에서 똥냄새가 났다. 이제 마을이 있고 사람들이 살고 동물들이 사는 지역으로 내려왔다는 걸 똥냄새는 친근하게 알려준다. 이곳의 똥냄새는 어린 시절 한국의 시골 마을에서 맡았던 쇠똥 냄새와 같다. 한국에서 아주 먼 곳이지만 이곳은 낯설지 않는 익숙한 고향 마을 같다. 내게 '고향'이라고 말할 수 있는 곳은 없지만 말이다.
롯지의 거실은 밥을 먹는 곳이지만, 여러 나라의 사람들이 대화를 나누고 쉬는 곳이기도 하다. 서양인, 동양인, 현지인들이 한 공간에 앉아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시고 추운 날에는 난로가에 둘러 앉아 서로들 온 곳과 갈 곳에 대해 저마다의 언어로 또는 영어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비와 눈이 오는 날 구르중 롯지의 따뜻한 난로불이 기억난다. 고레파니 롯지의 난로가에서 조용히 저녁 시간을 보내던 날도 따뜻한 기억으로 남는다.
2014년 2월 23일 일요일
촘롱 - 지누단다(1,780MT)
아침 6시 30분 경에 일어나 밖에 나오니 맑은 하늘에 안나푸르나 남봉, 히운츌리, 안나푸르나3봉, 마차푸차레 들이 한 눈에 보였다. 멋진 광경이었다. 이 풍경 하나만으로도 어제 힘들게 촘롱까지 온 보답이 되었다.
11시 30분 경 지누단다에 도착했다. 지누단다에서 점심을 먹고 HOT SPRING에서 온천욕을 하고 쉬기로 했다. 이곳은 마치 휴양 도시 같았다. 꽃이 피어 있고 날벌레가 날아 다니고, 한결 온화한 날씨였다. HOT SPRING은 롯지에서 20분 정도 내려간 계곡물 바로 옆에 있는 작은 노천 온천장이다. 마침 아무도 없어 우리들만이 편안히 온천욕을 즐길 수 있었다. 따뜻한 물 속에서 나오면 가을 같은 바람이 살갗을 스치고 지나갔다. 트레킹을 하면서부터 어린 시절에 느꼈던, 이제는 잊은 감정들을 새삼 다시 느끼곤 했다. 왜 그러한 감정들, 어쩌면 나를 이루었던 나의 원형이 이곳에서 되살아나는 걸까? 안나푸르나의 햇살과 바람 때문이었을까?
지누단다의 롯지
2014년 2월 24일 월요일
지누단다 - 톨카 - 데우랄리 - 오스트리안 캠프
오스트리안 캠프에서 보이는 전망은 훌륭했다. 안나푸르나 남봉, 히운츌리, 강가푸르나, 마차푸차레, 안나푸르나2봉과 4봉 들이 파노라마를 이룬다. 해가 질 무렵 옅은 연무에 드리운 산들이 비현실적으로 보일 정도였다.
저녁을 먹으며 '꾸꾸리'라는 네팔식 럼주를 한 잔했다. 술이 센지 금방 취했다. 트레킹 중에는 술을 마신 적이 없었다. 규칙적으로 밥을 먹고, 걷고, 쉬고, 자고... 그래서 그런지 속이 편했다. 다행히 나는 음식이 맞았고, 고소 증세도 없었다. 네팔 음식이 소화가 잘 돼 내게는 한국 음식보다 잘 맞은 셈이었다.
오스트리안 캠프에서
2014년 2월 25일 화요일
오스트리안 캠프 - 담푸스 - 페디 - 포카라
오스트리안 캠프에서 페디까지 내려가는 길 역시 산골 마을을 거쳐야 했다. 산골 마을의 농가는 누추하지만 정답게 느껴졌다. 한국 사람들이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많이 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곳의 삶은 예전에 한국인이 살았던 삶과 유사해 보였다. 그러한 친근감이 한국인들을 더욱 이곳으로 이끄는지도 모르겠다.
페디에서 기다리고 있던 차를 타고 오후에 포카라에 도착했다.
밭일 하는 여인들.
포카라
첫댓글 잊고 있었던 지명들을 듣고 사진을 보니 새삼 옛기억들이 떠오르며 반갑기도 합니다.
강산이 한 번 변했을 시간임에도 그곳은 그대로 멈춘 것 같아 더욱 정겨워 보이네요.
난 포카라 밖에 기억 안나는데
쩝 T.T
나두 함 가보고 싶다...
좋군요. 잘 봤어요. 네팔은 언제 갈 수 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