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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초 배우 임현식과 여섯 살 손자 주환 군의 활약이 인기다. 한 예능 프로를 통해 좌충우돌 손자 육아에 빠진 임현식의 경기도 송추 한옥집을 찾았다. 이날도 손자를 바라보는 그의 입가에서는 미소가 떠날 줄 몰랐다.
“육아인지 뭔지 아주 죽겠어.”(웃음)
임현식이 농담 반 진담 반처럼 말을 건넨다. 요즘 SBS 예능 <오! 마이 베이비>를 통해 손주 주환 군 길들이기에 푹 빠진 그는 여느 할아버지와 다를 바 없는 ‘손주 바라기’다. 장난감 앞에서 발길을 떼지 못하는 주환이에게 영락없이 두 손 두 발 드는가 하면 손주의 통닭을 몰래 뺏어 먹는 장난도 친다. 한글을 가르쳐주겠다며 “님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만 붙이면”을 연신 불러대는 모습에서는 웃음이 절로 난다. 할아버지 임현식의 실제 모습이 궁금해졌다.
할아버지의 손주 육아 일기
경기도 외곽에 텃밭을 일구며 살고 있는 임현식의 전원생활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그런 그의 집에, 10개월 전 손님이 찾아왔다. 육아 등 여러 가지 문제로 둘째 딸 내외가 들어와 살게 된 것. 더불어 외손자 주환 군을 보는 시간도 부쩍 늘었다. 방송에서 보는 것처럼 하루하루가 ‘버라이어티하다’.
주환이가 실제로 보니 더 활발하네요. 방송으로 보면 수줍음도 많은 것 같던데요. 아이들은 자기 컨디션에 의해서 좌지우지되니까. 에휴, 그래도 힘들어. 예를 들어 ‘님과 함께’의 경우, 나하고 박원숙이하고 서로 ‘어떤 주제로 가자’고 합의하면 그만인데 애들은 그게 안 되니까.
주환이도 자기가 방송에 나오는 줄 알죠? 그런 건 있더만. 눈치는 있어.
손주 볼 기회가 많아지셨네요. 손자가 쟤뿐 아니라 네 명이야. 딸만 셋이거든. 그중 둘째가 저 집(별채)으로 이사 온 지 10개월이 되어가요. 직장이 이 근처라 온 것도 있고 애를 위해서 온 거지. 보통은 자기들 출근할 때 주환이 유치원에 맡기고 퇴근할 때 데려오고 그래. 오늘같이 사진을 찍는다거나 촬영할 때는 결석이야. 유치원 안 간다면 좋아해.
어떻게 주환이와 같이 출연하게 되신 건가요? 우리 집에 놀러 왔던 지인이 임현식 씨 집에 손자 녀석이 있던데 같이 해보면 어떻겠느냐고 얘기를 한 모양이더라고. 요즘엔 맨 그런 프로만 만드니까 말이지.
부성애 코드가 대세죠.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손자를 기피하는 요즘 상황에서 이런 식의 주제로 해보면 좋을 것 같다길래 했는데, 모르겠어. 누가 누구를 기르고 있는지.
아이를 컨트롤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주환이가 들으라는 식으로) 주환이도 할아버지 말을 잘 좀 들어주고 그랬으면 좋겠다. 사실 내가 이 프로그램을 하면서 할아버지가 해줄 수 있는 육아란 어떤 것일까, 책도 좀 봐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해. (방송에서) 유익한 모습을 보여줘야지, 애는 애대로 놀고 할아버지는 할아버지대로 노는 게 되면 안 되니까. 무엇보다 아쉬운 것은 내가 육아에 대한 상식이 없다는 거야. 하루빨리 서점에 가서 책이라도 한 권 골라서 읽어야지. 근데 요즘 책 한 권 고르는 것도 얼마나 일이야. 나는 서점에 한번 가면 서너 시간 맘먹고 시내의 큰 데로 나가니까. 그런데 아직 그런 시간도 못 갖고 있어. 누구 말마따나 맘먹었을 때 실천에 옮기라는데, 자꾸 미루게 되네.
방송하면서 몰랐던 손주의 모습을 발견했을 것 같은데요. 가끔 말하는 거 보면 쟤한테 저런 느낌이 있단 말인가, 할 정도로 깜짝 놀라요. 예를 들면 자기 엄마 아빠한테는 안 그래도 나한테는 아주 친구 대하듯 하거든. 그리고 할아버지 어디 가버린다 하면 우니까 안쓰럽단 말이지. 그리고 자기 엄마 아빠가 뭐라고 하면 곧잘 들어도 내가 그러면 섭섭한가 봐. 할아버지만은 좀 자기편이길 바라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나랑은 아주 개들하고 노는 것처럼 놀려고 한다니까. 막 올라타버려.(웃음)
들었다 놨다 하는 게 있더라고요. 응. 애들도 그런 게 있어. 그런데 내가 그런 아이의 심리를 잘 모른단 말이지. 나는 애들이 정적으로 지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노는 것에도 한도가 있지. 예를 들어 모차르트는 아버지가 그 당시 궁정 음악가로서 자기 아들을 그렇게 어르고 달래며 음악 공부를 시켰잖아. 유아 시절부터 음악적 자극을 줬다고. 그래가지고 소위 4살 때부터 피아노를 잘 쳤다는데, 우리 주환이도 피아노를 치게 해야 될 거 아니냐고.
지난 방송에서 보니 피아노를 처음 배웠다던데요? 그런데 아직은 건반에 흥미를 갖지 않더라고. 그럼 모차르트는 처음부터 피아노에 흥미를 갖고 음감을 알아차렸냐? 그건 아니야. 한 번 해봐서는 몰라. 백 번 시켜도 한 번 될까 말까 할 텐데 좀 더 시도해봐야지.
예술적인 면에 소질이 있었으면 하나 봐요. 부모는 뭐든 자기네가 하고 싶은 것을 애한테 시키려고 한다잖아. 그러진 않으려고 해. 그리고 한순간에 (더 가르칠지 말지) 결정하지는 않으려고 해. 좀 시켜보고 관심이 없는 것 같으면 바로 접고 그러지는 않을 거야. 모차르트 같은 천재도 아흔아홉 번의 훈련을 통해 하나의 성과를 만들어냈으니까 말이야.
주입식 교육 말인가요? 이를테면 그렇지. 베토벤은 아버지가 법률 공부 시키려고 음악 못하게 하는 걸 기어이 했잖아. 뺨까지 맞아서 귓병이 생겼다는데. 그렇게 두드러지게 보이면 쉽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어렵지. 그래서 꾸준한 관찰이 필요하다 이거야.
주환이는 어때요? 난 우리 애가 저렇게 장난감을 좋아할 줄 몰랐어.(웃음) 장난감이 한 2~3백 개 될 거야. 징그럽게 많아.
방송에서는 잘 안 사주는 할아버지시던데요. 아주 온갖 떼를 다 쓰더라고. 이젠 사주지 않으려고 해. 쟤네 친할아버지가 마트에 데리고 가면 아주 그냥 땅바닥에서 구르는 모양이야. 그런데 나한테는 그렇게 못하거든. 나는 그건 절대 안 되니까. 어린 시절부터 못을 딱 박았더니 내 앞에서는 그러지 않더라고.
회초리 교육도 필요해
한번은 다소 지루해 보이는 임현식의 기이한(?) 교육법이 방송에서 눈길을 끌었다. 다소 세대 차도 느껴지지만 그게 바로 할아버지식 교육이 아닌가 싶다. 임현식의 교육관에 대해 물었다.
집에 마당도 있고 개도 있어서 아이 정서에는 아주 좋은 환경인 것 같아요. 그렇죠. 개들하고 친해. 우리는 개들을 예뻐해주고 개들이 우리 인간과 되도록 가까워지고 친숙해지게 노력을 해. 잘하면 대견하다고 쓰다듬어주고. 그런데 저놈은 아주 그냥 자기 장난감처럼.(웃음)
손주가 누구 닮은 것 같아요? 자기 아버지 닮았어. 친할아버지도 닮고. (옆에서 주환이가 ‘엄마 닮았어요’라고 말한다.) 엄마 닮았어? 그래, 엄마도 닮았어.
방송에서 주환이 한글 교육 장면이 나왔어요. 연출도 있겠지만 사위의 교육법과 좀 다르던데, 교육적인 부분에서 딸 내외와 상충할 때는 없으신가요? 있지. 요즘 보면 우리 때는 없었던 것들이 많아. 사실 그 옛날에는 서당에 다녔지. 그때 아이들은 회초리 교육으로 배웠다고. 그런데 요즘은 그렇게 해서는 안 되잖아. 애들한테 회초리를 든다?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지. 그런데 민주적인 교육을 시킨답시고 하다 보니까 애들이 버릇이 없는 거야.
딸 내외는 회초리는 절대 들지 않는다는 입장인가 봐요? 그렇지. 일단 때리는 건 있을 수 없다는 거지. 그런데 ‘지도 편달 바랍니다’ 할 때의 ‘편달’은 회초리 지도도 바란다는 뜻이거든. 예를 들어 낭창낭창하면서 휙휙 소리도 나는 싸리나무 가지로 휙 하고 때리면 겁이 나잖아. 소위 위엄을 보이기 위해서도 필요하고. 또 한두 번 맞아봐야 아픈 줄 알고 회초리가 무서운 줄 아는데. 그래서 이다음에는 우리 주환이를 교육시키면서 회초리를 들려고 해요. 너 종아리 걷어! 하면서 내 종아리를 걷어 내 종아리를 때리려고 그래. 으악~ 하면서 말이지.(웃음)
그렇게 하면 주환이가 변한다는 거군요? 응. 나를 보고 주환이가 감복을 한다든가 말이야. (좌중 웃음) 얼마나 할아버지가 아플까, 얼마나 내가 하는 일이 잘못이면 자기 자신을 때릴까, 하는 느낌도 주고 말이야. 회초리 교육의 타당성! 타당한 일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회초리를 들 수 있는 이유를 보여주려고 해. ‘할아버지가 이제 안 해도 되겠지?’ 하고 탁 나뭇가지를 꺾는 날이 오는 걸로 방송을 마무리하는 거지.
딸이 반대하지 않을까요? 크게 반대하지는 않을 거야. 선인들의 회초리 위엄을 보여주겠다 이거야.
어릴 때 자주 맞으셨어요? 엄청 맞았지! 뺨을 맞기도 하고 대나무로 손바닥 맞는 건 흔한 일이었으니까. 지금은 그러면 선생들 다 폭행죄로 잡혀간다지.
방송에서는 푸근하고 재밌는 할아버지 이미지인데 손주에겐 어떤 할아버지세요? 지금 말한 그런 할아버지가 내 캐릭터지. 나는 야단을 못 치겠어. 그런데 지난번에 처음으로 야단을 쳤어. ‘너 여기 이모들 삼촌들 다 추운 데서 떨면서 찍고 있는데 이렇게 말 안 들으면 어떡해? 촬영을 뭘로 보는 거야! 유치원도 안 가고 촬영하면서!’ 이렇게 야단친 적이 있었어. 그랬더니 살짝 나를 다시 보는 느낌이더라고. (좌중 웃음)
육아보다 연기가 좋아
올해로 예순아홉, 임현식의 활력소는 단연 연기다. 앞으로 펼쳐질 70대에는 보다 건강한 신체와 정신으로 연기에 임하고 싶다는 그는 ‘이순재 선배’를 언급했다. 그가 선배라 부르는 연기자들이 여전히 현역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어 멋지다.
육아와 연기를 비교하면 어떠세요? 요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2시간 이상 애들을 못 봐. 피곤해.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말하는 것도 보이는 것도 똑같고. 그러는 사이에 1년이 가고 2년이 가. 내 아까운 노년 생활이 애 때문에 손해를 본다고 생각하는 노인들이 많다는 거지. 내 자신도 그렇고. 퇴임해서 집에서 손자를 본다는 것은 정말로 갑갑한 일이야. 일주일에 하루 정도 어쩔 수 없이 봐주는 건 가능해도 매일이면 이건 못 견딜 일이거든. 나도 내 인생을 즐겨야 한다는 주의야.
아무래도 연기가 더 좋으시죠? 그거는 당연하지. 내 연기 생활이라는 게 있으니까. 그리고 나는 근본적으로 캐스팅이 잘 되는 사람인데.(웃음) 그래서 아직까지 내 일을 하는 거고. 내가 1969년에 MBC 개국하고 공채 1기생으로 올해로 45년째 접어들어가. 오래 했기 때문에 팬도 많고. 허허허. 돈을 번다는 것보다도 내가 내 생활을 계속한다는 것이 뿌듯하고 보람되지. 이렇게 나이 든 배우가 끊임없이 캐스팅되고 일하는 경우가 얼마나 되나.
인생의 활력소는 무엇보다 연기네요. 그렇지. 촬영장에서도 내 차례가 되면 하고, 다른 애들 촬영할 때는 커피 한 잔에 담배 한 대 피우고 대본 딱 보면서. 얼마나 좋아? 그런데 이거(육아 예능) 하느라고 완전히 전쟁같이 촬영하니 말이야. 카메라가 우리 둘만 대여섯 대씩 붙어 다니잖아. 잠시도 쉴 틈이 없어. 얘하고 나하고 상의할 수도 없고. 허허허.
전원생활은 할 만하세요? 땅을 가졌으면 가꿔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어. 땅을 묵히는 건 죄스럽지. 크게 집 지어서 거기서 수입을 얻으려는 건 아니고 그저 차분하게 하는 거지. 어머니가 하신 방식 그대로야. 허허. 그리고 농사 지어온 분들은 잘하겠지만 나는 그야말로 뼈가 쑤셔.
농사는 자주 지으시고요. 가을에 수확하고 이듬해 3월까지는 쉬는 기간인데, 올해는 3월부터 이렇게 날씨가 풀려버렸네. 집 안 청소도 싹 하고 농기구도 손질해서 일 시작해야지. 나 혼자 못 해. 사람들도 좀 불러 같이 해야지.
두 달 가까이 손주 육아 콘셉트로 방송해보니 어떠세요? 나는 사실 육아에 대한 생각이 별로 없었어, 그런데 여기선 할아버지가 놀아줘야 하기 때문에 내가 재밌게 놀아줘야지. 어려운 얘기를 할 수는 없잖아. 다음 주에는 어떤 것에 대해 찍어볼까 항상 연구하고 고민해. 안 그럴 수 없지. 육아랍시고 비슷비슷하게만 하면 무슨 재미로 보겠어. 내가 드라마를 하는 사람이라 그런지 돌발적인 것보다는 뭔가 내용 있게 해보자는 스타일이야.
이제 60대 후반이신데도 새로운 아이디어를 즐기시는 것 같아요. 연기를 쭉 해와서 그런지 이런 상황은 어떨까, 저런 상황은 어떨까 생각을 많이 해. 작가들도 예를 들면 50회분씩 써낸다는 게 보통일이 아니잖아. 그래서 내 아이디어도 가끔 내. 내 의견이 선택되면 나도 좋고 그 사람들도 좋잖아. 연기에 자신감도 붙고. 나는 대체로 그런 경우가 많았어. 그래서 지금까지 이럭저럭 견디는 셈인지 몰라. 아직까지 욕심은 많은 거지. 허허.
70대에는 어떤 삶이 펼쳐질까요? 예전에는 70이라고 하면 거의 죽을 나이 가깝게 봤잖아. 요즘은 다들 건강하고 치료도 잘 받으면 장수할 수 있는 시대라고 하니까. 어렸을 때 내 관상 봐주신 분이 이 말을 했어. 관리를 잘하면 말년에 장수도 하겠다. 허허허. 70대에는 건강하게 연기자로서 내 일을 수행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노인네 중의 하나가 되고 싶어. 그러려면 건강해야지. 그런데 이렇게 담배 피우고 기침해서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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