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덕수원지와 구덕운동장은 어린시절 추억이 있는 곳이다. 우리 할머니 어머님 이모님들이 구덕고개를 너머 대신동 보수동 부민동쪽으로 재첩국 파시고 1,2부두에 단술 팔러 다니시던 고생길이다. 초등시절 우리들의 소풍코스중 하나도 구덕령 꽃마을이었다.
초등 5,6학년 시절 구덕령을 너머 구덕운동장에 운동경기 구경하러도 갔었다. 구덕고개를 너머 구덕운동장으로 내려오면서 구덕수원지도 구경하고 나서 좀 더 걸어 내려오면 경남상고 정문앞을 지나 구덕운동장 정문쪽으로 좌회전 하는 길 모퉁이의 구덕운동장 쪽에 공중화장실이 있었다. 화장실 창문(애들만 겨우 통과할 수 있는 작은 창문)을 통해 구덕운동장에 몰래 들어가 운동시합 구경한 기억이 난다. 어떤 때는 경비아저씨에게 잡혀 혼나고 쫒겨난 기억도 난다.
중학교 시절에는 우리학교에 야구부가 있어서 구덕야구장에서 다른 학교와 야구시합을 하면 서면에서 전차타고 구덕야구장앞 전차종점에 내려 구덕운동장에서 야구경기 보며 우리 학교 야구선수들 응원도 목 빠지게 했었다. 야구시합 끝나면 학장초교 출신 선후배 들과 함깨 구덕고개를 너머 학장동 홍깨마을 집으로 왔다.
1950년 구덕수원지와 구덕운동장. 녹색표시는 이 시기 후 새로 생긴 시설물 표시이고 바뀐 명칭도 녹색으로 표시했다.
1950년 구덕운동장과 구덕수원지 4곳이 선명하게 보이는 사진
1961년 서대신동 지도. 구덕수원지 4곳과 구덕운동장이 표시되어 있다.
1972년 구덕수원지와 구덕운동장 주변 모습. 광성공고 오른편 구덕수원지 붕괴직전 모습이다. 고원견수원지(구덕수원지)는 1969년 매립되었다. 1972년 9월14일 구덕수원지는 붕괴되었다.
1995년 구덕수원지와 구덕운동장 주변 모습
2024년 구덕구원지와 구덕운동장
1876년 일본의 강압에 의한 병자수호조약이 체결되었고 그에 따라 개항을 하게 된 부산은 구덕산 계곡에도 새로운 변화를 맞게 된다. 개항으로 인해 날로 늘어나는 중구와 서구지역의 일본거류민은 식수의 확보에 곤란을 겪게 되자 1880년 보수천 상류에 죽관(竹管)을 이용한 도수(導水)시설을 설치하게 되고 1886년에는 나무 관으로 대체되면서 급수 양을 늘리게 된다. 1894년에는 급기야 보수천상류에서 끌여들인 물을 모아 대청동에 배수시설을 갖춤으로써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상수도시설을 갖추게되었다.
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는 일본거류민과 일본선박의 잦은 부산항 입출항으로 인해 앞선 상수도 시설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한 급수 양이었다. 이에 마침내 1900년대 초반부터 구덕산과 엄광산 계곡의 보수천과 구덕천 상류지역의 수원지 축조사업이 시작되었고 1930년대까지 축조와 확장공사가 계속되었다. 고원견수원지(구덕수원지 1902년 축조)는 현재 동아대학교 주변지역으로 지금은 동아의료원과 주변의 주택가에 해당하는 곳에 높이 약12m, 수심10m, 길이는 약260m이고 저수량은 약75입방미터 (인구 1만 명이 90일간 급수할 수 있는 양)의 규모로 흙 제방 형식으로 축조되었고, 붕괴된 구덕수원지는 현재 구덕초등학교 뒤편의 구덕터널 입구쯤에 높이 20m, 둑길이 20m 그리고 수면의 폭은 약 70m의 규모로 축조되었다.
붕괴된 구덕수원지의 물은 관로를 통해 고원견수원지(구덕수원지)에 합류하여 자연정화를 거친 후 대청동의 배수지에 모여 저장되었다가 서구와 중구의 1만 여명의 주민에게 식수로 공급되었다. 이 수원지와 더불어 각각의 수원지 계곡의 중상류 지역에는 중ㆍ소규모의 저수 시설을 추가로 갖추었는데 이것은 자연여과장치 시설로 계곡물을 거르고 걸러서 취수장인 수원지에는 최대한 깨끗한 물을 저수하겠다는 목적인데, 이 중소규모의 자연 여과장치 시설이 오늘날 우리가 눈으로 확인할 수 있고 수원지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바로 꽃마을 수원지(현 구덕2수원지)와 대신공원 내 고원견상수원지(현 구덕1수원지)가 그것이다.
위 내용처럼 1900년대 초중반부터 수도물공급을 위해 조성된 구덕수원지는 4곳이 있었다.구덕산쪽 꽃마을아래 구덕수원지(현 구덕2수원지)와 현 구덕터널입구에 있던 붕괴된 구덕수원지가 있었고 엄광산(고원견산)쪽에도 매립된 고원견수원지(구덕수원지)와 그 위에 고원견상수원지(현 구덕1수원지)가 있었다. 지금도 이름이 많이 헷갈린다. 원래 네곳이 있었고 한곳은 1969년 매립되어 없어졌고 한곳은 1972년 붕괴되었고 1973년 복구하였으나 1981년 구덕터널 공사(1984년 완공)를 시작하면서 사라졌다. 현재는 구덕1수원지와 구덕2수원지 두곳만 남아있다. 수도공급용은 아니고 공원으로 존재하고있다. 1968년 낙동강물을 취수하여 수도물을 공급하기 시작하면서 위 수원지들은 상수도용 수원지역할을 종료하였다.
1952년 매립된 구덕수원지와 붕괴된 구덕수원지, 구덕운동장, 동아대학교 초기 모습, 경남고 임시교사도 보인다.
1960년대 초중반, 구덕수원지(고원견수원지. 매립된 구덕수원지)와 구덕운동장
1950년대, 현 구덕터널 입구 부근에 있던 붕괴된 구덕수원지 모습. 아래에 구덕운동장, 멀리 자갈치 해변도 보인다.
1972.9.14 붕괴된 구덕수원지 모습이다. 붕괴된 둑 사이로 구덕실내체육관이 보인다.
보수천 상류변의 많은 사람들이 사망하거나 다쳤고 이재민도 많이 발생하였다. 50여년이 지났는데..추모하는 사람들이 있다.
대신공원(경남고 왼편)에 있는 현 구덕1수원지 모습
구덕 꽃마을 아래에 있는 현 구덕2수원지 모습
구덕운동장은 1928.9.26 서대신동에 부산 공설 운동장으로 건립되었다. 개장 당시 2만 1천여 평 부지 위에 수용인원 1만명의 육상 및 축구경기장(6,600평), 수용인원 6천명의 야구장(5,400평), 2,000평의 정구장, 480평의 마장, 600평의 씨름장 등과 6천평 규모의 부지에 각종 부대시설을 갖추었다. 조성시기는 나와 있지 않지만 한참후에 야외수영장도 건립하였다.
부산 공설 운동장으로 사용되어 오다가 1971년 구덕 실내체육관이 건립 되었고, 1963년 부산직할시 승격 이후 최초로1973년 전국체육대회를 부산에 유치하였으며 그 계기로 1973년 8월에 주 경기장이 새롭게 건립되었고 야구장 등 기타 시설도 개,보수하여 종합운동장의 면모를 갖추고 1973년10월에 개최된 54회 전국체육대회를 성공리에 마무리 지었다.
그 후에도 2000년대 초반까지 여러차례 개축이 있었다. '80년대 초중반 롯데자이언츠 홈구장, '80~'90년대 대우 아이파크(당시 부산대우로얄즈) 홈구장으로 이름을 날리기도 하였다. 1982년에 사직 운동장이 건립되어 그해 6월에 구덕운동장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2017년 6월 구덕 운동장 재개발 사업이 진행되어 구덕 야구장과 실내 체육관이 철거되고 생활체육공원과 주차장이 조성(2019년3월 완공)되어 있다.
개장 초기 시절의 구덕운동장 모습, 뒤편에 경남상고(부경고)가 보인다.
2010년대 구덕야구장과 구덕실내체육관이 있던 구덕운동장 모습
2019년 구덕실내체육관이 철거되어 주차장으로 바뀌고 구덕야구장이 철거되어 생활체육관으로 바뀐 구덕운동장 모습
https://youtu.be/J0KuSLTauyM
1973년 10월 부산 구덕운동장에서 개최된 제54회 전국체육대회, 마스게임하는 부산여고생들 이제 칠순이 되었겠다.
첫댓글 옛날 물동이표 제첩을 먹고 자란 사람입니다
80 년 대 까지 물동이를 이고 제첩국 사~아소 하고 다니셨는데 옛날 먹던 뽀얀
제첩국 생각이 나면 구포 뚝방길 제재소 근처 허름한 식당에 친구 따라 몇번 가봤는데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붕괴된 둑 사진들 바로 위 1950년대 모습은
저로서는 처음 본 장면이 아닌가 합니다.
카페에 있는 1952년 사진이 떠올랐습니다.
수원지들과는 조금 다른 위치 같습니다만
(망양로에서 대청동 공원 올라가는 입구?)
남항 방향이 내려다보여서 연상이 되었습니다.
개장 초기의 구덕운동장 사진이 낯익습니다.
https://m.cafe.daum.net/sajin7777/CZju/3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