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백질조율자: 산소황[(CH3)2SO2]
단백질 변형과 p53의 발암억제 기능
제14회 경암BIO YOUTH CAMP(한국분자 세포생물학회) 2018-09-04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 생명과학부 정진하 명예교수
우리 몸을 이루는 세포들, 비록 눈에 보이지 않은 작은 크기지만, 그 내부에서 수 많은 반응이 일어난 다. 세포의 구성 성분인 단백질, 지질, 탄수화물, 핵산 등을 끊임없이 합성하고 분해하는 과정과 에너지(ATP)를 얻기 위해 일어나는 과정이 주요 예이며, 이 모든 과정을 종합하여 대사 (metabolism)라고 한다.
비록 몇몇 반응에 RNA도 참여하는 경우가 있지만, 세포 내에서 일어나는 거의 모든 반응을 진행시키는 (촉매하는) 일은 단백질 (효소, enzyme)이 한다. 따라서 세포가 살아 있다는 것은 효소의 활성 덕 분이고 세포로 구성된 우리가 살아 있다는 것도 효소의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세포는 절대로 어느 물질이든 필요 이상으로 합성하지도 않고 분해하지도 않는다. 즉, 물질이 필요한 양만큼 합성될 때까지만 반응이 일어나고, 행여 필요 이상으로 합성되었거나 더 이상 필요가 없을 경우에만 그 물질을 분해하는 반응이 일어난다.
이와 같이 세포에 있는 모든 물질들의 양을 균형 있게 유지하는 반응의 조절은 다름아닌 효소 활성의 조절에 의해 이루어진다. 효소의 활성을 조절하는 가 장 간단한 방법은 어느 물질이 필요할 경우 그 물질을 만드는 반응을 촉매하는 효소를 유전자로부터 발현시키고, 더 이상 필요가 없으면 분해해 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이 방법은 해당 유전자(DNA)로부터 mRNA를 합성하고 이로부터 단백질을 합성해야 하기 때문에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고 시간이 많이 걸릴 뿐만 아니라, 필요할 적마다 효소를 만들어 사용하고 버린다는 측면에서 낭비가 매우 심한 과정이다.
세포는 보다 빠르고 효율적으로 효소 활성을 조절하는 여러 다른 방법을 사용하는데, 이 가운데 하나는 대사과정에서 생성된 물질이 효소의 활성화 부위 (active site)가 아닌 다른 곳 (allosteric site)에 비공유-결합 (non-covalent)을 하여 그 활성을 조절하는 방법이다.
일련의 반응에서 생성된 마지막 물질이 첫 번째 반응을 촉매하는 효소 활성을 억제하는 되먹임 억제 (feedback inhibition)와 새롭게 시작하는 일련의 반응 중 첫 번째 반응을 촉매하는 효소를 활성화시키는 되먹임 촉진 (feedforward stimulation)이 좋은 예다. 이 방법은 마지막 반응에서 생성된 물질이 세포가 필요한 만큼 축적되는 그 자체가 곧바로 신호가 되기때문에 매우 빠르게 효소의 활성을 조절할 수가 있고, 그 물질이 효소와 비공유-결합으로 결합하기 때문에 에너지의 소모가 없어 효율적이다.
효소의 활성을 조절하는 또 다른 방법은 화학물질이나 비교적 작은 단백질이 효소에 공유결합을 하여 이루어진다.
이러한 방법은 단백질(효소)이 번역된 후에 변형되기 때문에 번역-후-변형(post-translational modification: PTM)이라고 한다. 단백질의 변형이 공유결합의 형성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 방법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며결합 형성을 촉매하는 효소를 필요로 한다.
PTM의 역-반응 또한 효소의 활성을 조절할 수 있으며 이 반응은 가수분해 반응이기 때문에 에너지는 필요 없으나 반응을 촉매하는 효소는 필요로 한다.
단백질에 결합하고 유리되는 화학물질로는 수 십 종이 있으며 그들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것이 인산이다. 인산을 결합시키는 효소를 인산화-효소(protein kinase), 인산을 유리시키는 효소를 탈인산화-효소 (protein phosphatase)라고 한다.
물질대사 과정을 크게 둘로 나누는데 하나는 저분자에서 고분자를 생성하는 합성반응 (anabolism)이라 하고 그 반대 과정을 분해 반응(catabolism)이라고 하는데, 합성반응에 관여하는 거의 모든 효소들은 인산화되면 불활성화되고( 즉, 탈인산화되어야 활성화되고), 분해반응에 관여하는 거의 모든 반응은 인산화되면 활성화된다. 번역-후-변형에 의한 단백질(효소)의 활성(기능) 조절은 화학물질 대신에 비교적 작은 단백질의 공유결합에 의해서도 일어난다. 즉, 단백질(타겟)에 단백질이 결합을 하여 타겟 단백질의 기능을 조절하는 것이다.
가장 처음 알려진 예는, 76개의 아미노산으로 구성된 유비퀴틴 (ubiquitin)이라는 작은 단백질이 타겟 단백질에 결합하여 분해를 유도함으로써 그 기능을 조절하는 것이다. 그 후, 타겟 단백질에 결합하는 작은 단백질이 약 10여종이 밝혀졌는데 이들은 70-150 개의 아미노산으로 구성되었고 구조는 유비퀴틴의 것과 매우 흡사하여 유비퀴틴-유사단백질 (ubiquitin-like protein: ULP)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유비퀴틴-유사단백질들 또한 화학물질과 같이 타겟 단백질에 결합하고 유리되면서 기능을 조절하는데, 이 가역 반응에도 서로 다른 효소가 작용한다.
세포 내의 단백질들 가운데 번역-후-변형이 가장 다양하게 여러 곳에서 되는 것이 발암억제단백질인 p53이다. p53은 393개의 아미노산으로 구성되어 실제 분자량은 43.2 킬로달톤 (kDa)인데 SDS-전기영동 상에서 53kDa으로 나타나서 protein-53, 줄여서 p53으로 불리게 되었다. p53은 60곳 이상의 아미노산에서 인산, 메칠그룹, 아세틸그룹, 당 등과 같은 화학물질과 유비퀴틴, 수모(SUMO), 네드8(Nedd8) 등과 같은 작은 단백질 들이 결합하고 유리된다.
왜 p53에는 이렇게 다양한 번역-후-변형이 일어날까?
발암억제라는 p53의 기능이 매우 중요하니 당연히 정교하게 조절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세포가 정상상태일 경우 p53은 MDM2라는 효소(ligase)에 의해 유비퀴틴이 결합되고, 이와 같이 변형된 p53은 프로테아좀(proteasome)이라는 거대한 단백질 분해효소에 의해 분해된다. 따라서 정상 상태에서 p53의 세포 내 레벨은 낮게 유지된다.
세포는 흔히 다양한 스트레스 환경에 노출될 수 있는데, 외적으로는 자외선(UV), 방사선, 바이러스 감염, 발암물질 등에 노출될 수 있으며, 내적으로는 대사과정(특히 에너지 대사과정의 전자전달계)에서 생성되는 활성산소들 (reactive oxygen species: ROS), DNA 복제 중 염기 짝짓기 실수(biosynthetic error) 등에 노출된다. 이러한 스트레스들은 거의 모두가 DNA에 손상을 입혀 유전자에 돌연변이를 생성케 되고 결과적으로 발암을 유도하게 되기 때문에, 세포는 이를 방지하기 위해 p53을 번역-후-변형을 통하여 분해를 방지하고 활성화시킨다. 즉, DNA에 손상이 오면 세포는 이를 감지하여 p53을 인산화, 아세틸화에 이어, 유비퀴틴-유사단백질들 중의 하나인 ISG15로 변형시킨다. 이와 같이 변형들은 p53의 전사활성을 촉진할 뿐만 아니라 MDM2의 결합을 방지하여 p53이 분해되지 않고 세포내에 축적되게 한다. 안정화되고 활성화된 p53은 전사인자로써 세 그룹의 유전자 발현을 유도한다. 그 중 맨 먼저 p21 등 의 발현을 유도하는데, 이 단백질은 세포주기를 중단시킴으로써 세포의 증식을 억제한다. 그리고 DNA 의 손상이 비교적 적을 경우에는 손상된 DNA를 수선하는 효소들의 발현을 유도하여 세포가 살아갈 수 있게 한다. 그러나 DNA의 손상이 커서 수선을 완전히 할 수 없을 경우에는 세포사멸을 유도하는 BAX, PUMA 등을 발현시키어 손상된 세포가 스스로 죽게 한다. 이 모든 과정에서 p53은 DNA에 돌연변이의 생성을 막아 게놈을 안정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p53은 “게놈의 수호자(the guardian of genome)” 또는 “세포의 문지기(the cellular gate-keeper)”라고 불려지고 있다. p53의 전사활성은 발암을 억제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나, 돌연변이에 의해 그 활성을 잃게 되면 곧 발암의 원인이 된다. 돌연변이가 있는 p53 유전자를 물려받은 자손은 정상 p53 유전자를 가진 사람보다 암에 걸릴 확률이 훨씬 높은데 이러한 현상을 리-프라우메니 증상(Li-Fraumeni syndrome)이라고 한다.
30-35세 사이의 정상인이 암에 걸릴 확률은 약 0.2%인 반면, 돌연변이가 있는 p53 유전자를 물려받은 자손은 그 확률이 50%나 된다. 그러나 정상 p53 유전자에도 시간이 지날수록 돌연변이가 축적되며 현재까지 알려진 돌연변이만 해도 무려 25,000 가지를 상회한다. 따라서 나이가 들수록 암에 걸릴 확률이 높아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정상인이 60세에 암에 걸릴 확률이 약 4% 정도이니 30-35세 사 이에 비하면 그 확률이 무려 20배가 증가한 셈이다.
실제로 인간의 모든 암 중에서 50%이상이 p53 유전자의 돌연변이에 의해 생성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암에서 p53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존재 하는 것으로 밝혀져 거의 모든 인간의 암은 p53의 불활성화에 의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p53 유전자에 생성된 돌연변이는 주로 점돌연변이(point mutation)로 p53 단백질을 구성하는 393개의 아마노산 중 단 한 개를 치환시킨다. 그런데 이들은 주로 p53의 DNA 결합부위에 일어나 타겟 유전자의 발현을 유도하지 못하게 한다. 즉, p53이 돌연변이에 의해 전사활성인자 기능을 잃게 되는데, 이는 방광, 뇌, 유방, 장, 폐, 췌장, 위 등 거의 모든 장기에서 발암의 원인이 된다.
이와 같이 발생한 암들을 치료하기 위해 개발된 항암제 중의 하나는 아드벡신 (Advexin)이라는 유전자-치료제이다. 돌연변이에 의해 불활성화된 p53을 대신하기 위해 정상 p53 유전자를 아데노바이러스(adenovirus)라는 매 개를 사용하여 세포에 주입하여, 정상 p53 단백질이 번역되게 하고 세포사멸을 유도하여 암세포를 죽게 하는 치료방법이다.
아드벡신의 사용은 미국 FDA 승인을 얻어 임상실험 중에 있다. 세포의 암화는 p53 유전자 자체의 돌연변이뿐만 아니라, p53의 활성을 조절하는 단백질의 유전자의 돌연변이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 한 예로 MDM2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겨 정상보다도 많은 양의 MDM2 단백질이 발현 (번역)되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 MDM2는 훨씬 효율적으로 p53에 유비퀴틴을 결합시켜 p53의 분해를 유도하고, 이는 지방조직, 혈관, 뼈, 연골, 근육 등에서 암 발생의 원인이 된다.
누트린(Nutlin)이라는 작은 화학물질은 이러한 암들을 치료하기 위해 개발된 항암제 중의 하나다. 누트린은 MDM2에 강하게 결합하여 p53의 결합을 억제함으로써 p53을 안정화시키어 세포사멸을 유도하여 암세포를 죽게 한다. 이 물질 역시 임상실험 중에 있다.
결론으로, 단백질의 번역-후-변형은 물질대사에 관여하는 효소들의 활성 조절뿐만 아니라, p53과 같은 세포 내의 중요한 단백질의 기능을 조절하여, 세포가 효율적이고 안정적으로 살아가게 하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