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주는 위로 때문인지 강릉에 가면 이리저리 돌아다니지 않게 된다. 하루에 한두 곳 들러 좀처럼 맛보지 못할 여유로움을 만끽하다 보니 강릉을 여러 번 갔어도 이름이 알려진 관광지는 거의 가보지 못했다. 어느 해에는 강릉항에서 울릉도로 가려다가 갑자기 거칠어진 동해의 어깃장에 강릉에서 발이 묶여 며칠을 보냈다. 그냥 멍하니 있었던 것은 아니고 Yolanda Be Cool&DCup의 ‘We no speak americano’를 들으며 강릉 커피 투어에 정신이 빠져 있었다. 이유 없이 마음이 울적해지는 연말이면 강릉으로 갈 일이다. 팔딱팔딱 꿈틀거리는 동해의 거친 바다와 장인들이 내려주는 커피에는 위로란 묘약이 녹아 있다.
겨울 바다와 쓰디 쓴 커피가 건네는 위로. 대관령 너머 강릉으로 가는 길은 언제나 설렌다. |
커피 명장이 내리는 핸드드립 커피, 보헤미안
언제부터인가 강릉이 커피 도시로 대접을 받기 시작했다. 많은 이들은 그 공을 박이추 선생에게 돌린다. 1988년 서울 대학로에서 커피숍을 연 박 선생은 도쿄에서 함께 커피를 배웠다는 박원준 선생, 오사카에서 커피를 시작한 박상홍 선생, 융드립으로 유명한 서정달 선생과 함께 우리나라 커피 1세대로 불린다.
지금은 바다가 보이는 강릉의 언덕 위 3층집에서 하우스 블렌드, 스트롱 믹스 등 믹스 커피와 사이공 아라비카, 가요마운틴 등 다양한 스페셜 커피를 내놓는다. 오픈 시간에 맞춰 오매불망 찾아 토스트와 카페오레, 메뉴판에 ‘쓴맛, 스모크 향, 커피 마니아’라고 적힌 도쿄 블렌드를 주문했다. 재일교포였던 박 선생은 일본에서 드립 커피를 정통으로 배웠다. 바다의 포용력에 이끌려 강릉에 정착해서는 제자 양성에도 열정을 쏟았던 그다. 낡았지만 애장품 목록 1위에 올라 있음이 분명한 로스팅 기계와 원두, 커피와 관련한 여러 책이 놓여 있는 비밀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주문이 들어오면 혼자서 커피를 내린다. 하루 12시간의 중노동이 아닐 수 없다. 한국일보의 유상호 기자는 ‘드립 포트를 든 그의 모습은 구도자 같았다’라고 평했다. 손목에 아대를 차고 커피를 내리는 박 선생을 보면 어쩐지 송구한 마음이 든다. 커피가 식기 전에 한 방울까지 맛있게 비우기. 보헤미안 커피에 대한 예의다.
커피 명장이 직접 내려주는 핸드드립 커피를 마실 수 있는 보헤미안. |
로스팅 기계와 원두, 커피와 관련된 책이 놓여 있는 공간. |
커피 리퍼블릭 강릉을 일구다, 테라로사 커피공장
인구 22만 명에 300여 개의 커피숍. 테라로사도 커피 도시 강릉을 일군 공신이다. 테라로사에서 일하는 친구를 둔 덕에 테라로사의 승승장구를 목도했다. 테라로사 커피공장은 평일에도 관광버스를 타고 온 외지 커피 순례자들로 북적이더니 어느새 웨이팅석이 마련되고 웨이팅 시간은 더 길어졌다.
테라로사는 은행원 출신인 김용덕 대표가 커피에 매료되어 문을 열었다. 에티오피아나 과테말라 등 커피 농장을 돌며 좋은 원두를 구해오고 제주도에 문을 연 테라로사에는 커피나무가 자라는 농장도 마련했다. 세계 바리스타들의 에스프레소 바이블로 통하는 데이비드 쇼머의 번역서를 출간하기도 했고 ‘테라로사 도서관닷컴’이란 웹사이트를 통해 커피 정보도 제공한다.
2002년 문을 연 테라로사 커피공장은 커피를 로스팅하여 카페나 레스토랑 등에 판매하는 커피공장으로 시작하여 이제는 커피와 브런치, 천연 발효빵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 테라로사 커피 코엑스점과 광화문점, 서종점, 임당점, 사천점, 제주 서귀포점, 해운대 마린시티점에서 테라로사의 커피 역사를 써나가고 있다.
2002년 문을 연 테라로사 커피공장은 이제 강릉의 명소가 됐다. |
핸드 드립 커피와 함께 빵과 브런치도 즐길 수 있다. |
소곤소곤 Tip
우리땅 어디를 가더라도 바닷가 전망이 좋은 곳은 횟집이나 펜션들이 차지하기 마련인데 커피공화국이라 불리는 강릉에서는 이야기가 다르다. 안목해변의 커피거리는 해안 도로를 따라 로스터리 카페가 들어서 있는데 집집마다 김장김치 맛이 다르듯 주인의 입맛과 손맛에 따라 개성 넘치는 커피를 낸다. 강릉의 커피지구는 시내 커피지구와 해안 커피지구로 나뉘는데 약 300여 곳이 문을 열고 있다고 한다.
바다의 도시에서 커피의 도시로 다시 태어난 강릉. 매년 10월에 열리는 강릉커피축제에는 약 50만 명이 찾을 정도로 인기다. |
첫댓글 이밤 커피 한잔 마시고 싶다 ㅎㅎ
2월에 마지막 주말 입니다.또 코로나 감염이 16만명이 넘었읍니다.
항상 건강 유념 하시고 오늘도 즐겁고 기뿜이 넘치는 행복한 시간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