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정도(八正道)는 원시불교의 중요 교리로서 출가 수행자나 세속인이 바른 삶을 영위하기 위하여 지켜야 할 지침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팔정도의 의미는 이 정도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닙니다. 팔정도는 글자 그대로 ‘여덟 가지의 바른 길’이란 뜻이므로 여기서는 어느 한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바른 길을 뜻하는 중도사상이 드러나 있습니다. 부처님은 확실하게 팔정도는 곧 중도라고 단언하신 것입니다. 여기서는 남전(南傳)의 율장(律藏)에 있는 초전법륜의 기록을 인용해 봅니다.
비구들이여, 무엇을 여래(如來)가 현등각(現等覺)한 바로서, 눈[眼]을 생하고 지혜[智]를 생하고 적정(寂靜), 증지(證智), 등각(等覺), 열반(涅槃)에 도움이 되는 중도(中道)라 하는가? 그것은 곧 팔성도(八聖道)이다. 말하자면 정견(正見), 정사(正思), 정어(正語), 정업(正業), 정명(正命), 정정진(正精進), 정념(正念), 정정(正定)이니라. 비구들이여, 이것을 여래가 현등각한 바, 눈을 생하고 지혜를 생하고 적정, 증지, 등각, 열반에 도움이 되는 중도라 하느니라. [南傳大藏經, 律部 3, pp. 18~19]
팔정도의 원어는 팔지성도(八支聖道)로 그 의미는 ‘여덟 개의 부분으로 이루어진 성스러운 도’라는 뜻입니다. 먼저 정견(正見)은 바른 견해, 즉 올바른 세계관과 인생관을 말하는 것이니, 요컨대 불교의 진리인 연기(緣起)와 사제(四諦)나 중도에 대한 지혜를 갖추는 것입니다. 바른 견해를 가지면 모든 법을 바로 보게 되어 바른 마음가짐인 올바른 사유[正思惟]를 하게 되고, 마음가짐이 올바르면 그에 따라 올바른 언어[正語]를 구사하게 되며, 올바른 신체적 행위[正業]를 하게 됩니다. 정명(正命:sammā-jiva)의 명(命:jiva)은 활명(活命)이라는 것, 곧 일상의 생활을 의미하므로 정명이라는 것은 올바른 생활을 가리킵니다. 분수를 넘어서는 행동이나 불규칙적인 생활 등을 시정하여 도리에 맞는 생활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정정진(正精進)은 악을 소멸하고 선을 증대시키는 올바른 노력을 말하며, 정념(正念)은 올바른 생각을 말하는데 보통 바른 진리와 지혜를 잃지 않고 항상 염두에 두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정정(正定)은 올바른 선정으로 정신집중의 상태를 지속하는 것을 뜻합니다. 이 선정에는 사선(四禪) 등의 선정만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정신을 집중하여 노력하는 것도 포함됩니다.
이렇게 팔정도는 정견에서 시작하여 정정으로 맺어지는데, 무엇보다도 맨 먼저 정견이 거론되는 점에 유의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바른 견해를 얻어 모든 법을 바로 보기 전에는 정사유(正思惟), 정법(正法), 정각(正覺) 등 팔정도의 나머지가 하나도 성립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정견은 바로 부처님이 깨치신 진리, 즉 중도를 지적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부처님이 성도하여 깨달으신 것이 중도이고, 그 중도의 내용이 다름 아닌 팔성도(八聖道), 곧 팔정도(八正道)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일부에서는 이 팔정도가 방법론(方法論)이냐 또는 목적론(目的論), 구경론(究竟論)이냐라는 논란이 있습니다. 팔정도는 구경 목표를 향하는 방법론이지 목적론은 아니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중도의 근본 뜻을 망각하는 말입니다. 부처님은 확실히 중도를 바르게 깨달았다고 하셨지 중도를 닦아서 바르게 깨달았다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궁극적으로 중도를 바로 깨친 그 사람이 부처이므로 중도의 내용인 팔정도는 목적론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팔정도는 이와 같이 목적론적, 구경론적 의미를 내포하지만, 한편으로는 가치관이나 인생관이 전도되고 근본과 지말이 뒤섞인 여기에서는 올바른 삶의 방향의 지침이기도 하므로 방법론적으로 적용하는 것도 일리가 있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