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중심이라 믿었던 신탁의 도시 델피에서
2019년 5월 29일
마침내
고대하던 델피에서의 하루
아라호바에서의 휴식을
즐기고 이어서 찾아간 델피. 고대 그리스어로는 델포이라 부르는 이곳은 아테네에서 북서쪽으로 178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파르나소스 산(고도 2,457m)의 남서쪽에 우뚝 솟은 바위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산자락에 자리잡은 고대 그리스의 지명이자 도시를
뜻하는 말이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이
산이 아폴로 신과 코리시아 님프의 신화 전설에 따라 신성하게 여겼고 학문과 예술의 여신 뮤즈 Muse의
고향이기도 하다. 뮤즈는 춤과 노래, 음악, 연극, 문학에 능하고 예술가들에게 영감과 재능을 부여하는 예술의
여신이기도 하다.
이곳 델피는 신탁의 본고장이라
불릴 만큼 고대 그리스는 물론 세계 각지에서 신탁의 조언을 구하고자 많은 순례자들과 사절단이 몰려들었던 그 유명한 델포이의 신탁이 이루어진 곳이다. 참고로 델포이 신탁은 델포이에 있던 아폴론 성소에서 아폴론이 내리던 예언을 지칭한다.
마을로 들어서자마자 거대한
바위산의 두 봉우리가 위엄을 부리듯 눈앞에 위용을 자랑한다. 신성한 산이라는 사전 지식을 주입 받지
않았더라도 산 허리에 있는 암벽이 때마침 내리쬐는 햇살에 반사되어 빛을 발하고 육중하고 험준한 바위산이 바로 눈앞에서 시야를 가로막을 때 이곳에
당도한다면, 설령 고대인이 아니더라도 사람들은 위압감과 외경심으로 옷깃을 여미고 정결한 마음자세를 취했을
듯싶다.

저 바위산 아래쪽에
아폴론 신전을 비롯, 각 도시국가에서 보낸 봉헌물을 보관하는 여러 채의 보물창고가 있었고 신전 위쪽으로는
5천여명이 앉을 수 있는 야외의 고대 원형극장과 기원전 586년부터
4대 범 그리스 경기 중 하나였던 피티아 제전이 열렸던 경기장이 설치되어 있다.
아폴론의 신탁을 받기
위해서는 우선 성역에 들어가기 전에 카스탈리아의 샘에서 몸을 씻고 심신을 정화해야 하며, 특히 사람을
죽인 자는 온몸을 씻었다고 한다(현재 이 샘은 낙석 등의 위험이 있어 입장 불가).
그런 다음 신에게 봉헌물을
바치고 신전에 올라가 신관에게 신탁을 받으러 온 연유를 설명한다. 사연을 들은 신관은 신전의 지하방(일명 아디톤)에 있는 여사제 피티아(Pythia,
또는 퓌티아로 칭함)에게 신탁 내용을 전한다. 피티아는
카스틸리아 샘물을 마시고 월계수 잎을 씹은 후에 신성한 세 발 받침 위의 좌대에 앉아 지하의 갈라진 바위 틈으로 나오는 증기를 들이마신다. (가이드의 설명으로는 이 지역이 고대에 지진지대였던 관계로 아마도 유황성분이거나 기타 퇴적물이 산화하며 갈라진
바위 틈으로 새어 나오는 가스였을 거라는 추정).
실제로 이곳에서 신관으로
봉직했던 플루타코스(어린 시절 읽었던 영웅전으로 플라톤의 제자였다는 것과 이름만 가물가물 기억에 남는
인물)는 대지의 갈라진 틈에서 안개 같은 가스가 분출하고 있다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이 유독가스로 환각상태에
빠진 피티아가 신의 계시를 받아 알 수 없는 소리를 웅얼거리면, 세상사에 노회한 고참 신관이 이것을
나름으로 해석해 난해하면서도 그럴싸한 낱말로 기록해 의뢰인에게 전달했다는 이야기. 게다가 신이 내려주었다는
그 계시 내용이 알쏭달쏭해 전달받은 의뢰인은 무슨 소리인지 의미도 모른 채 돌아가는 경우가 많았고, 아울러
이 유독가스는 생명에 지장을 줄 수도 있었으므로 피티아는 두 달에 한 번씩 결점이 없는 또 다른 피티아 여사제로 교체되었다는 추가적인 보충설명까지
가이드는 아끼지 않았다.
신화에서는 아폴론이 이곳을
지키며 신탁을 하던 괴물 뱀신 피톤을 죽이고 자신의 성소를 만든 이후부터 이곳이 아폴론을 숭배하는 성지가 되었다고 한다.
일단 아폴론 성지에 오르기
전에 신전과 그 주위에서 출토한 수많은 유물이 보관되어 있다는 델피 고고학박물관부터 관람하기로 했다.
한때는 감히 어느 나라도
침범할 수 없는 영광스런 성지였으나 도시국가 그리스 연합의 힘이 쇠약해지자 주변 열강들의 침략과 약탈로 인해 주요 유적과 수많은 보물들이 사라졌지만
그나마 지진 등 천재지변으로 인해 지하에 묻혀있던 유물들을 발굴하여 이곳 박물관에 보존하고 있다는 이야기.

아폴론 신전과 부속된 시설물을 재현해 놓은 모형도.
맨 상단에 5천여명을
수용할 수 있었다는 야외 극장, 그 아래의 큰 건물이 아폴론 신전, 아래쪽으로
신전에 오르는 길 양 옆으로 세워진 여러 채의 건물은 그리스 각 폴리스들이 신전에 바칠 봉헌물을 보관했던 보물창고. 야외극장 위쪽으로 피티아 제전이 열렸던 경기장. 약 6500명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고 트랙이 177m라고 한다. 신전 울타리 밖의 중앙에 서있는 기둥은 12m의 높이이고 그 위에
낙소스에서 봉헌한 스핑크스를 올려놓았다고 한다.

예언자인 피티아 여사제가 앉아 신탁 내용을 신관에게 전했다는 다리가
세 개 달린 받침대 위의 청동솥.
솥과 받침대는 전시 목적으로 각기 다른 파편들을 모아 놓은 것. 헌데 피티아가 오래
앉아 있기에는 좀 불편하겠다는 생각도 드네.

고대 전투에서 사용되었다는 방패. 하도 커서 살짝 몸을 숙이면
전신이 가려질 정도

페를로스를 입은 여인—기원전 460년경

높이 12m의 기둥 위에
장식되어 있던 낙소스의 스핑크스.
사람의 머리에 사자의
몸을 가졌고 몸통에 날개가 달린 괴물. 낙소스는 그리스 신화에서 미노스 왕국의 공주 아리아드네가 테세우스를
도와 반인반수의 괴물을 처치하게 했으나 테세우스는 공주를 에게해의 섬에 버려둔 채 혼자 떠났다고 하는 바로 그 섬이다. 이곳의 대리석은 질이 좋기로 그리스 전역에 널리 알려져 있었고 스핑크스 역시 가장 좋은 대리석으로 조각되어
아폴론 신전에 봉헌했으며 신전 정면의 높은 원주(12m) 위에서 위용을 자랑했다고 한다.

스핑크스를 정면에서 본 모습. 에게해의 낙소스인들이 봉헌한 것으로 질 좋은 대리석으로
제작되었고 몸통은 사자, 얼굴은 사람의 형상이며 원래는 12m의
높은 원주 위에 올려진 상태였다고 한다.
신비한 미소를 띤 여성의
모습. 스핑크스 앞부분의 균일하게 조각된 털 무늬, 유려한
곡선의 날개부분과 섬세한 깃털무늬는 낙소스의 뛰어난 조각기술을 나타내는 귀중한 작품이다. 안타깝게도
머리와 코, 입 등 정면의 일부가 훼손된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여담으로 낙소스인들은
질 좋은 대리석을 여러 폴리스에 팔아 자금이 넉넉했고 델포이 신전이 건설될 때 금전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
보답으로 낙소스인들은 다른 어떤 폴리스보다 먼저 피티아의 예언을 들을 수 있는 특권이 주어졌다고 한다.
우리가 흔히 아는 스핑크스는
이집트 가자에 있는 것으로 기원전 2500년경에 만들어졌다. 그리스의
스핑크스는 기원전 1600년경에 등장했고 미케네 시대의 무덤에서 나온 유물들은 몸통에 날개가 달린 것이
특징이다.

보물창고 모형도.

그 옛날 용사들이 전투 시 머리에 썼던 투구.

아르고스의 형제 클레오비스와 비톤 석상. 기원전 590.
이 석상에 전해지는 신화. 형제의 어머니 키디페는 헤라 신전의 여사제였다. 헤라 축제가 개최되는
날이라 급히 신전에 가려고 수레에 올랐으나 들에 나간 소가 제시간에 돌아오지 않았다. 생각다 못한 두
형제는 손수 멍에를 메고 수레를 끌고 달려간 덕에 시간에 맞춰 신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들은 제사에
참석한 후 피로한 나머지 신전에 누워 있다가 잠이 들었다. 자랑스런 아들의 마음 씀씀이에 감복한 어머니는
헤라 여신에게 ‘나의 두 아들을 가장 행복한 곳으로 보내 달라’고 기도했다. 그 덕분인가, 두 아들은 영원히 눈을 뜨지 못했다는 이야기.
헤라 여신이 내려준 최고의
선물이란 바로, 인간에게 가장 행복한 곳은 고달픈 이승이 아니라 영원한 평안을 주는 저승이었던 셈이다. 아르고스인들은 효성이 지극한 이 젊은이의 입상을 제작하여 델포이 신전에 봉헌했다고 한다. 기원전 590년경 제작.

앞모습 못지않게 뒷모습 역시 섬세하면서도 탄력 있는 젊은이의 모습을 잘 표현한 조각상. 넓은 어깨와 잘록한 허리에 근육질인 청년의 모습이 잘 드러나 있다,

일명 황금머리 황소.
아르카이크 시대 작품.
황금머리 황소는 기원전 6세기 초에 제작된 이오니아의 작품으로 동판에 부착하도록 제작되었다. 화재로
소실되어 땅에 묻혀 있던 것을 발굴하고 고고학 박물관팀이 복원하여 델피박물관에 보관중이다.

금은으로 장식한 아폴론 신. 정교하고 화려한 장식을 엿볼 수 있다.

아폴론의 쌍둥이 누이인 아르테미스 신.

월계관을 쓰고 리라를 든 아폴론. 이 아폴론이 그려진 킬릭스는 기원전 470년경에 제작된 것으로 델피의 무덤에서 출토함.
킬릭스란 그리스의 자기로 양쪽에 손잡이가 달려있고 포도주를 마시는 잔으로 쓰임. 안과
밖에 그림을 장식하는 것이 특징이다. 아폴론의 리라는 현악기의 일종으로 질서정연한 리듬과 짜임새 있는 멜로디, 균형감 있는
하모니를 창조한다. 아폴론은 전령의 신 헤르메스가 선물한 이 리라를 연주하여 인간의 영혼을 정화시킨다고
한다.

아름다운 장식의 기둥 위에 올라선 3인의 무희. 기원전 330년 아테네가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에 바친 봉헌물.

그리스인들이 세계의 중심이라고 여겼던 이곳 델피 신전에 놓았다는 유명한 옴파로스(배꼽)
이 옴파로스는 바로 뒤에
보이는 원기둥 위의 무희들 머리 위에 올려져 있었다고 한다. 저 연약한 무희들이 육중한 옴파로스를 이고
있었다니, 그것도 10미터가 넘는 기둥 위에 올려져 있던
무희들에겐 꽤나 무거웠겠다.
현재 전시되어 있는 박물관의
이 조각품도 복제품으로 기원전 3세기의 작품으로 추정. 초기에는
옴파로스가 세상의 중심을 뜻하는 것으로 신탁소인 아디톤에만 있었으나 이후 옴파로스는 신성한 장소를 뜻하는 넓은 의미로 쓰이면서 여러 복제품이 만들어져
지중해 여러 곳의 신전에 놓였고 아폴론 신전에도 여래 개의 복제 옴파로스가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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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수고 많으셨는데 나는 앉아 여행하니 그저 고맙기만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