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아 2:8-13 잊고사는 주인
<본문>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은 내가 저에게 준 것이요 저희가 바알을 위하여 쓴 은과 금도 내가 저에게 더하여 준 것이어늘 저가 알지 못하도다 그러므로 그 시절에 내가 내 곡식을 도로 찾으며 그 시기에 내가 내 새 포도주를 도로 찾으며 또 저희 벌거벗은 몸을 가리울 내 양털과 내 삼을 빼앗으리라 이제 내가 그 수치를 그 연애하는 자의 눈 앞에 드러내리니 저를 내 손에서 건져낼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그 모든 희락과 절기와 월삭과 안식일과 모든 명절을 폐하겠고 저가 전에 이르기를 이것은 나를 연애하는 자들이 내게 준 값이라 하던 그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를 거칠게 하여 수풀이 되게 하며 들짐승들로 먹게 하리라 저가 귀고리와 패물로 장식하고 그 연애하는 자를 따라가서 나를 잊어버리고 향을 살라 바알들을 섬긴 시일을 따라 내가 저에게 벌을 주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호세아 2:8-13)
<설교>
호세아서의 주제는 ‘하나님의 긍휼’입니다. 하나님의 긍휼을 호세아의 가정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호세아는 결혼한 음란한 여인이 자신을 떠났으나 값을 주고 사서 다시 아내로 데려옵니다. 이런 호세아를 통해 아무런 가치가 없는 우리를 값을 주고 사서 백성의 자리로 데려오시는 하나님의 긍휼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따라서 참된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긍휼을 아는 자입니다. 그리고 교회는 하나님의 긍휼을 아는 자들의 모임입니다.
사실 누구든 하나님의 긍휼을 안다고는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긍휼을 아는 자에게서 나타나는 분명한 증거가 있기에 그것으로 자신의 앎을 점검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긍휼을 입을 자격이 없는 자신의 본질을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본질을 알기에 타인과의 관계에서 자기 잘난 것이 없는 자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버림받아 마땅한 것이 우리의 본래 형편이었음을 안다면 값을 주고 나를 사신 하나님께 ‘나를 사랑해 달라’는 말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호세아가 자신을 떠나 다른 남자에게로 간 아내를 값을 주고 다시 샀을 때 호세아에게 ‘나를 사랑해 달라’는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정신을 차렸다면 ‘나 같은 자를 다시 아내로 삼으셨습니까?’라며 감사하는 것 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백성은 바로 이런 사람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자신의 본질을 보지 않기 때문에 항상 하나님께 ‘나를 사랑해 달라’는 요구만 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린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많은 것을 받았으며 누리며 살고 있음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8절을 보면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은 내가 저에게 준 것이요 저희가 바알을 위하여 쓴 은과 금도 내가 저에게 더하여 준 것이어늘 저가 알지 못하도다”는 말을 하는데 이스라엘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으로 살아가면서도 자신에게 있는 것이 누구로부터 주어졌는가를 알지 못합니다.
사실 이스라엘이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은 본래 이스라엘의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 있던 처지를 생각해 본다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종이었습니다. 종의 신분으로 무슨 재산을 가지고 있었겠습니까? 그런 그들이 애굽에서 나올 때는 많은 재물을 가지고 나왔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이 애굽을 치신 것으로 인해 주어진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그들의 기업을 차지한 것 역시, 하나님에 대한 원망과 불평 등으로 가나안 땅에 들어갈 자격도 없었으나 하나님의 은혜가 가나안 땅에 있게 했고 기업을 얻게 한 것입니다. 이처럼 그들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결과였던 것입니다. 이런 그들이 자신에게 있는 것이 누구로부터 주어진 것인가를 잊고 산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주신 것을 우상에게 바칩니다. 의도는 더 많은 것을 받고자 하는 것입니다. 결국 그들은 자신의 소유 증가를 위해 우상을 찾는 것이고 우상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 하나님이 주신 것을 바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어리석음과 무지함을 깨닫게 하기 위해 “그러므로 그 시절에 내가 내 곡식을 도로 찾으며 그 시기에 내가 내 새 포도주를 도로 찾으며 또 저희 벌거벗은 몸을 가리울 내 양털과 내 삼을 빼앗으리라”(9절)고 말씀합니다. 이스라엘의 수중에 있는 것을 빼앗으심으로써 주인이 누구인가를 알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한 사람들의 특징은 자신이 주인 되어 살아가는 것입니다. 자신의 손에 있는 모든 것들이 자신이 열심히 노력하고 일한 결과로 주어진 것인 줄 여깁니다. 나의 수고와 땀으로 얻었기에 내 것이라는 소유의식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일할 수 있는 건강과 모든 조건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것임을 잊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내가 주인이다’ 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주인이라면 주인의 의지와 뜻대로 다스릴 수 있는 대상이 있어야 합니다. 과연 여러분께 그러한 것이 하나라도 존재합니까?
여러분의 몸이 여러분의 것입니까? 그래서 여러분의 의지와 뜻대로 지키고 보존할 수 있습니까? 우리의 몸은 우리의 의지와 뜻과는 상관없이 날마다 노후되어 갑니다. 건강 역시 우리의 의지대로 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관리를 잘한다고 해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이 건강이라는 것을 잘 아실 것입니다. 결국 우리는 우리에게 있는 그 어떤 것이라 할지라도 ‘내 것이다’는 생각은 도무지 가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인이심을 안다면, 주어져 있는 것으로 감사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또한 지금 주어져 있는 것조차 받을 자격이 없음을 잘 안다면 ‘달라’고 하기 이전에 ‘주어진 것으로 감사하게 해 달라’는 것이 먼저일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으로 산다면 나를 위해 우상을 찾아야 할 이유가 사라지게 됩니다. 지금의 나로서도 넘치는 은혜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인을 잊어버릴 때, 내가 주인 되어 살아감으로써 더 많은 소유를 위해 신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우리에게 주인이 누구인가를 가르치시기 위해 주신 것을 빼앗아 가심으로써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내 수중에서 사라지는 소유를 보며 결국 주인이 내가 아님을 알게 하시고 참된 주인이신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살아오시면서 여러분의 의지와 상관없는 어려움을 겪으면서 손해를 입게 되는 일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또 여러 가지 일들로 말미암아 여러분의 수중에 있는 것들이 빠져 나가는 것도 경험하였을 것입니다. 신자에게는 그 모든 것이 운이 없거나 팔자가 나빠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인 되심을 가르쳐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일이었던 것입니다.
거듭 말하지만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모든 것은 받을 자격이 있기에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타인보다 많이 받았다고 해서 그만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할 수도 없고, 적게 받았다고 해서 남보다 못해서라고 생각할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땅의 것은 많이 주어지든 적게 주어지든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이 우리의 결국을 좌우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관심을 내 수중에 주어진 것에 두다 보니 결국 많이 받고 적게 받는 것에 신경을 쓰게 되고 많이 받기 위해 신을 찾는 것입니다. 그리고 많이 받을 때 그것을 ‘사랑’ 또는 ‘은혜’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본래의 자리로 되돌려 놓는 것이 인간은 하나님께 받을 자격이 없다는 것입니다. 애당초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인데 하나님을 잘 섬긴다고 해서 많이 받고 잘못 섬긴다고 해서 적게 받는 것이 있을 리가 만무하지 않습니까?
신명기 8장에 보면 “네가 먹어서 배불리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하게 되며 또 네 우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두렵건대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하노라” (12-14절)는 말씀을 합니다. 그리고 “또 두렵건대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할까 하노라” (17절)는 말씀도 하십니다.
내 소유를 보면서 자기 열심과 힘의 결과라고 생각하는 것이 주인을 잊고 있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주인을 잊고 있을 때 우리는 소유를 위해 살아가게 될 것이고, 더욱 많은 소유 증가를 위해 신을 찾게 될 수밖에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여호와를 잊어버릴 때 그들 수중에 있는 것을 빼앗으심으로 주인이 누구인가를 알게 하시는 분임을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12-13절을 보면 “저가 전에 이르기를 이것은 나를 연애하는 자들이 내게 준 값이라 하던 그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를 거칠게 하여 수풀이 되게 하며 들짐승들로 먹게 하리라 저가 귀고리와 패물로 장식하고 그 연애하는 자를 따라가서 나를 잊어버리고 향을 살라 바알들을 섬긴 시일을 따라 내가 저에게 벌을 주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말합니다. 내가 신을 잘 섬김으로 신이 나를 사랑하여 준 것들로 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신은 우상일 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나님이 주신 것들을 내가 사용할 수 없게 하심으로써 그동안 누려온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알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값주고 사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값을 주고 살 만큼 가치 있는 존재가 되지 못함에도 긍휼을 베푸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긍휼을 잊어버리고 내 주인이 누구신가를 잊고 있기에 소유만을 바라보며 오직 소유 증가를 위해 신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의지와 힘으로 무엇 하나 마음대로 할 수 없음을 생각하시고 참된 주인에게 나아갈 수 있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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