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눈
성경본문 : 잠언 27: 20
20. 음부와 유명은 만족함이 없고 사람의 눈도 만족함이 없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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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 말씀에 음부와 유명은 만족함이 없고, 사람의 눈도 만족함이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만족함이 없는 눈이란 만족할 줄 모르는 마음으로 사물을 보는 눈을 말합니다.
그러한 만족함이 없는 눈을 가리켜서 음부와 유명과같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지옥과 같다는 말씀입니다.
범죄한 전세계 54억의 영혼들이, 한사람도 빠짐없이 다 지옥에 떨어진다고 할지라도, 이제 됐으니 죄인들아 그만 지옥에 들어오라고, 말하지 않는다는 것 입니다.
그렇게 만족할 줄 모르는 것이 바로 지옥입니다.
잠언 30장 15절 이하에 보면 "족한 줄을 알지 못하여 족하다 하지 아니하는것 서넛이 있나니 곧 음부와, 물로 채울 수 없는 땅과, 족하다 하지 아니하는 불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전도서 1장 8절에 보니까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다"고 말씀 하였습니다.
아무리 새것을 보아도 만족하지 않는것이 바로 눈입니다.
그런 만족이 없는 곳에 마귀가 역사하는 것입니다.
디모데전서6장 6절 이하에서 보면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이 큰 이익이 되느니라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고하였습니다.
또한 눈이 있기는 있어도 보지 못하는 눈이 있습니다.
예레미야 5장 21절에 "우준하여 지각이 없으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백성이여 이를 들을지어다라"고 했습니다.
육신의 눈은 멀쩡하여 눈앞에 보이는 것은 작은 모래알이라도 구별할 수 있지만 영의 눈은 닫혀 있어서 진짜로 보아야할 것을 보지 못하는 눈이 있다는 것입니다.
마7:3에도 보면 “어찌하여 형제의 눈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는 말씀도 보지못하는 눈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리고 속을 들여다보지 못하고 겉만 보는 눈이 있습니다.
사무엘상 16장 7절에서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의 눈은 언제나 외모를 보지만, 하나님의 눈은 속사람을 꿰뚫어 보신다는 것입니다.
사무엘이 사람의 겉모양만 보고, 이새의 장자 엘리압이나, 차자 아비나답이나, 삼자 삼마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을 삼을뻔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일을 막으시고, 들에서 양을 치고 있던 이새의 막내아들 다윗을 선택하여, 그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셨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께서는 겉모양을 보는 육신의 눈보다, 속을 들여다보는 영의 눈이 중요함을 깨닫고 영안이 밝아지시기를 축원합니다.
속을 못보고 겉만 보다가는 그 사람은 불행해지고 멸망을 당하게 됩니다.
옛날 삼손은, 들릴라라는 여인의 속을 들여다보지 못하고, 겉모양만 바라보다가 영력을 상실하고, 두눈 뽑히고, 맷돌질하는 비참한 인생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육신의 두눈이 뽑힌 다음에야 비로소 영의 눈이 열려져 자기가 범한 죄를 하나님 앞에 철저하게 눈물흘리며 회개하고 용서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어 다곤신전을 무너뜨리면서 블레셋사람을 많이 죽이고 자신도 최후를 맞이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와도 겉만 바라보는 육신의 눈이 밝아있었을뿐, 속을 들여다보는 영안이 어두워 있었습니다.
선악과를 바라보았을 때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지혜롭게할만큼 탐스러워 보이는 겉만 보는 눈이 있었습니다.
그결과 선악과를 따 먹게 되어 자신도 불행해지고 후손들에게까지 불행을 안겨주게 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겉만 보는 눈이 아니라, 속을 들여다 보는 영안이 활짝 열려야 될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하겠느뇨"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육신의 눈도 어두워지면 안경을 써야 글씨를 볼 수 있습니다.
참으로 답답하고 괴로운 일입니다.
하물며 영의 눈이 어두워지면 얼마나 답답하고 불행하겠습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셨을 때 우편에 못박힌 강도는 영안이 밝아져서 “주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시거든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예수님께 부탁드렸는데, 왼편에 못박힌 강도는 육신의 눈만 뜨고 영의 눈이 감겨져 있었기 때문에 바로 우편에 못박히신 분이 메시야 구세주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여 조롱하고 비웃다가 지옥에 떨어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사도행전 7장에 보면 성령충만한 스데반이 영안이 밝아져서 하나님의 보좌를 보고, 그 곁에 예수님께서 서신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외치기를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영안이 닫혀 있는 장님들이었기에, 하나님의 영광도 바라볼 수 없었고, 예수님이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심으로 스데반에세 달려들어 돌을 던져서 스데반을 쳐죽이는 끔찍한 죄를 범하고 만 것입니다.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 3백만명 중에서 고르고 골라서 선택한 사람들이 바로 열두 정탐꾼이었습니다.
요즈음 대학교 입학시험 경쟁률은 작으면 2대 1, 많으면 몇십대 1입니다. 그런 경쟁을 뚫고 합격하면 얼마나 영광스럽습니까?
그런데 12명의 정탐꾼은 몇십대 1정도가 아니라, 30만대 1의 경쟁을 뚫고 선택되었으니 그 얼마나 영광스럽고 값있는 일입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대부분 육신의 눈만 열려 있었지, 영의 눈은 닫혀 있었습니다.
가나안 땅을 40일동안 정찰하고 다니는 동안, 육신의 눈과 불신앙의 눈으로 본 것들만 보고하다가 자신들도 멸망을 당하고 이스라엘백성들에게 불행을 안겨다 주고 만 것입니다.
그러나 그 열두 정탐꾼 중에서 여호수아와 갈렙만은 영의 눈이 활짝 열려 있었습니다.
이들은 다른 열명의 정탐꾼들과는 가나안 땅을 바라보는 시각이 전혀 달랐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신은 그들을 떠났고 우리의 보호자는 우리와 함께 하시니 올라가기만 하면 그들을 정복할 수가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의 밥입니다"이렇게 믿음의 눈으로 바라본 사실을 믿음으로 보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차지하는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시대적으로 중요한 시기를 맞고 있습니다.
지자제의 시대, 세계화의 시대, 기독교 제3세계 선교의 보루가 된 시기입니다.
평소에도 영안이 밝아야 하지만 특히 이런 역사의 전환기에는 영안이 더욱 밝아져야 합니다.
도단성이 아람군대에게 포위되어 있을 때, 게하시가 아침 일찍 일어나 그 사실을 알고, 엘리사에게 달려가 두려움에 떨며 그 사실을 전해주었습니다. 그때 엘리사는 게하시에게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저와 함께 한 자보다 많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에는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지금 우리말로 표현한다면 아마 이렇게 이야기 했을 것입니다.
"이 사람아 무엇이 그렇게 두려운가 두려워하지 말게. 우리와 함께 하는 천군천사가 더 많네.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돕고 계시니 두려워할 것 없네. 사람이나 환경이나 현실을 바라보지 말고 사람을 주관하고계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게. 위를 바라보게."
여러분 지금 위를 쳐다보십시요.
무엇이 보이십니까?
천장과 불빛만 보입니까?
영의 눈이 닫혀진 사람과 열려진 사람의 차이점이 여기에 있습니다.
천장밖에 안보이는 사람은 육신의 눈만 열려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천장을 뚫고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이 보여지는 사람은 영안이 밝아진 사람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게하시처럼 아람군대만 바라보고 두려워 떠는 사람이 될 것이아니라, 아람군대보다 훨씬 더 많은 천군천사가 우리를 보호하고 있는 것이 보여지는 영안을 가진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화)
아프리카 선교여행 죽을 고비 3번(자동차 오일 캡, 경찰서, 여관 총격)
이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어려운 일이 다가올 수 있습니다.
그런 어렵고 위험한 일이 다가올 때, 우리의 영안이 열려 살아계신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위기의 순간에 환경이나 사람 바라보지 말고, 위를 바라보고 하나님 바라보고 부르짖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우리 육신의 눈은 먼지나 세균같이 너무 작은 것도 볼 수 없고, 또한 너무 큰 것도 일부분 밖에는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영의 눈은 우리가 지은 아주 작은 죄를 보고 회개하게 되고, 엄청나게 크신 하나님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육신의 눈은 너무 어둡거나 너무 밝으면 잘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영의 눈은 아주 어두운 죄악도 깨달아 회개하게 하고 아주 밝으신 하나님도 볼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육신의 눈은 너무 가까운 것도, 너무 먼것도 안보입니다.
그러나 영의 눈은 여러분 곁에 가까이 계신 성령님도 볼 수 있고,하늘 보좌위에 계신 살아계신 하나님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하나님의 사람들에게는 영의 눈이 얼마나 소중한지 말로 할 수가 없습니다.
사도 바울의 눈에서 비늘같은 것이 벗겨져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볼 수 있었던 것처럼, 이날 아침 사도바울처럼 여러분의 눈에서도 비늘같은것이 떨어져 영의 눈이 열려서 신령한 세계를 볼 수 있게 되어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눈의 변화를 체험해야 되겠습니다.
만족함을 모르는 눈이 만족할줄 아는 눈이 되어야 겠습니다.
범사에 감사하고 자족하며 살아갈 수 있는 이런 눈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이런 눈이 없는 사람은 아무리 많은 것을 가져도 만족함이 없습니다.
따라서 이 육신의 눈이 영의 눈으로 바꾸어져야 되겠습니다.
지금까지는 눈이 있어도, 볼 것을 보지 못하고 현실적인 것만 바라보았다할지라도, 이제부터는 진짜 보아야 할 것을 볼 수 있는 영안이 밝아지기를 바랍니다.
속을 보지 못하고 겉만 보았던 눈이 변화되어져서 겉만 보지 말고 속을보게 되어지기를 바랍니다.
땅만 바라보고 환경을 바라만 보았던 눈이, 위를 바라보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나라를 바라볼 수 있는 신령한 눈으로 바꾸어지기를 축원합니다.
"너희 마음과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는 사도 바울의 기도처럼 이 시간 여러분의 눈이 밝아져서 이러한 신령한 세계를 볼 수 있게 되어지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옮겨 쓴 설교
출처: 성경 벌레들 글쓴이: 성경 벌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