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국사(佛國寺)
박목월(朴木月)
흰 달빛
자하문(紫霞門)
달 안개
물 소리
대웅전(大雄殿)
큰 보살
바람 소리
솔 소리
범영루(泛影樓)
뜬 그림자
흐는히
젖는데
흰 달빛
자하문
바람 소리
물 소리
[시어. 시구 풀이]
범영루(泛影樓) : 뜬 그림자 누각이라는 뜻
흐는히 : 흔흔히. 푸근하고 흡족한 모양
흰 달빛 / 자하문(紫霞門) // 달 안개 / 물 소리 : 시간은 밤, 흰 달빛이 내리 비치고 옅은 안개가 끼어 있다. 그 가운데 자리잡은 자하문엔 물 소리가 들려 온다. 정적감이 느껴진다. 일체의 서술은 피하고 명사로만 제시하여 하나의 장면을 그려 내고 있다. 달 안개에서 시각적 이미지, 물 소리에서 청각적 이미지가 표현되고 이것이 복합적인 이미지를 형성하고 있다.
대웅전(大雄殿) / 큰 보살 // 바람 소리 / 솔 소리 : 대웅전의 큰 보살이 잠잠히 내려다보고 있는 가운데 바람 소리와 물 소리가 적적한 풍경 속에 들린다. 불교 사찰 대웅전 주변의 적막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시상의 흐름이 소리로 통합되고 있다.
범영루(泛影樓) / 뜬 그림자 // 흐는히 / 젖는데 : 범영루의 그림자가 달빛에 흔흔히 젖어 있다. 범영루와 뜬 그림자는 의미상 중복이다. 범영루의 뜻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시 전체를 통하여 서술어가 ‘흐는히 젖는데’ 하나밖에 없다. 자연의 정적한 분위기에 폭 젖은 불국사의 정경을 표현한 시구다.
흰 달빛 / 자하문 // 바람 소리 / 물 소리 : 자하문엔 여전히 흰 달빛이 내리 비추는데 무심한 바람 소리, 물 소리만이 불국사의 정적한 모습을 더 느끼게 한다. 수미상관의 형식이다. 시 구절이 반복되면서 리듬감, 안정감을 형성하고 있고, 슬라이드 사진처럼 생략된 표현이 동양화를 연상케 한다.
[핵심 정리]
지은이 : 박목월(朴木月, 1916-1978) 본명은 박영종(朴泳鍾). 경북 경주 출생. 흔히 ‘청록파’라 불린다. 한국적인 자연과 전통 정서를 노래하여 민요조 율격이 주를 이루며, 향토성 짙은 시를 주로 쓰다가 가족적 유대로 체온을 나누는 시를 썼다. 만년에는 신앙에 깊이 침잠하는 모습을 보였다. 시집으로는 <산도화>, <난(蘭), 기타> 등이 있다.
갈래 : 자유시. 서정시. 이미지즘시. 즉물시
운율 : 2음보 율격
성격 : 즉물적. 서경적. 정적(靜的). 불교적
어조 : 차분하고 뜻을 음미하면서
심상 : 시각적. 청각적
표현 : 압축적 표현. 여백의 미학. 수미쌍관
구성 :
1-2연 자하문의 달 안개와 물소리
3-4연 대웅전의 바람 소리와 솔 소리
5-6연 범영루를 비추는 달빛
7-8연 자하문의 바람소리와 물소리
제재 : 불국사의 야경
주제 : 불국사의 고즈넉한 정취
출전 : <산도화>(1955)
▶ 작품 해설
이 시가 주는 느낌은 한 폭의 동양화 같다. 한가롭다. 고즈넉하다… 등 여러 가지의 느낌이 든다. 그런 느낌의 근원은 어디에 있을까를 생각해 보는 것이 우선 필요하다. 이 시의 특징으로 명사만의 나열, 단 한 곳의 서술어의 쓰임, 시행의 짧음 등을 들 수 있다. 작품 속 화자는 아무 것도 설명하지 않은 채 대상으로 나타난 사물만 우리에게 보여 준다. 또 그 호흡은 매우 느리다. 그래서 우선 한가롭다. 또한 이 시의 정경을 머릿속에 그리는 데는 극도로 절약된 언어가 중요한 몫을 하고 있다. 시의 언어는 이처럼 음과 의미가 한 덩이가 되어 이루어지는데, 그 절묘한 조화를 아는 것이 이해․감상의 또 다른 핵심이다.
달빛 어린 불국사의 야경을 그린 시다. 거의 서술어가 배제하고 명사를 나열하면서 시상의 전개를 간결하게 하고, 고도의 생략을 구사하여 마치 동양화에서 여백의 미를 느끼듯 행간의 여운을 느끼게 하고 있다. 이 시에 표현된 시어는 ‘달, 안개, 물, 바람, 솔’ 등 자연 친화적인 소재가 위주가 되고 있으며 인간인 시적 화자는 이 풍경에서 배제되어 있다. 이 시에서 시인은 하나의 그림을 그려 내는 데에 전념한 까닭에 분명하게 말할 만한 주제가 없다 할 수 있다. 불국사를 둘러싼 은은한 분위기를 느끼게 하는 것이 시인이 추구하는 전부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시는 현실적, 사회적 관심을 떠나 오로지 순수한 심미적 감상만을 추구한 시라 할 수 있다.
<참고> 박목월의 시 세계
위 시가 실려 있는, 1955년에 발표된 시집 <산도화>에서 펼쳐지는 그의 시 세계는 동양의 산수화 경지다. 속세와는 담을 싼 관조의 세계를 펼쳐 보인다. 그는 시에서 산문적 서술은 배제하고 이미지와 이미지의 대비에서 제 3의 정서를 환기시키려 한다. 즉, 여백의 미를 살리는 것이다. 박목월은 자기를 정신적 수채화라고 자처하는데, 그의 수채화에는 주로 하얀 색과 보랏빛으로 채색된다. 그리고 그의 화면을 채우는 소재는 도시적인 것이 아니고 자연적인 것이 많으며 시작(詩作)에 있어 자기가 골라 쓴 말 하나하나가 어떤 효과를 나타내는가 치밀하게 계산하여 쓰는 결백성과 심미감(審美感)을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