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깐깐하고 청렴한 호조판서의 일화 2題
제 1 題. 조선조 영조 때의 일이다. 정홍순은 아직 입신양명하기 전의 선비로서 여느 때와 다름없이 외출할 때는 갈모(비 올 때 갓 위에 덮어쓰는 우구雨具)를 2개 차고 다녔다. 갑자기 비가 오면 하나는 자기가 쓰고 또 하나는 필요한 사람에게 빌려주려는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임금이 동구릉東九陵까지 행차하는 것을 구경 갔을 때이다.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져 갈모하나는 자기가 쓰고 남은 하나는 누군가 빌려줄 참이었다. 마침 구경하러 나왔 던 어떤 선비가 달려와서 사정을 하므로 정홍순은 내일 꼭 돌려줄 것을 약속받고 자기 집 주소를 아르켜 준 다음 갈모를 빌려주었다.
그리고 20년의 세월이 흘러 정홍순이 호조판서로 있던 어느 날이었다. 하루는 호조좌랑으로 신임된 사람이 직속상관인 정홍순에게 인사차 들린 것이다. 서로 인사를 나눈 다음 정판서는 신임 호조좌랑을 한참 살피면서 「자네 나를 본 기억이 있는가?」라고 다짐해 묻고는 20년 전 동구릉 임금 행차 때 빌려준 갈모를 돌려주지 않은 것을 말하고 「오늘 보니 새로 오게 된 좌랑이 바로 자네구만. 자네같이 신용이 없는 사람은 호조좌랑 자격이 없으니 돌아가게.」하면서 돌려보냈다.
제 2 題. 어느 날 정홍순 호조판서에게 파전破錢 한 푼이 있었는데 사람을 시켜 땜질하느라 두 푼이 들었다. 이를 지켜보던 어떤 사람이 물어 말하기를 「 두 푼으로써 한 푼을 얻으면 오히려 한 푼이 손해되는데 공께서는 어찌 그러하오.」하였다. 그러자 정판서는 말하기를 「나 개인은 한 푼을 잃어도 국가에는 한 푼이 이익이 되니 어찌 이익이 되지 않느냐」고 하자. 사람들은 그의 도량과 청렴에 깊이 감동하였다 한다.
파약실복(破約失福)이란 명언이 생각난다. 예나 지금이나 약속을 지키지 못한 사람은 ‘손잡이 없는 문과 같아서’ 어찌할 도리가 없는 것이다. 더구나 국가 중책을 맡은 사람됨이 신의를 지키지 못하면 공직의 자격이 없지 않은가. 비리부정이 횡행하는 요즘 500년 전의 일화가 지금도 교훈이 된다. 빌린 갈모 약속 안 지켜서 감투 끈 떨어진 격. 한 일을 보면 열일을 안다고 역시 현명한 판서답다고나 할까.
‘파전의 땜질 일화’는 당시 국가의 살림을 책임진 정승으로서 하찮은 것 같지만 청렴과 모범을 보여준 공직자의 귀감이었다는 점이 돋보이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