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밤, 시를 쓰다가
깊은 밤, 시를 쓰다가
기다리는 사람도 없고, 밥도 안 되는
시를 쓰겠다고, 잘 안 되는 말을 앓고 앓다가
불을 끈다. 다시 켠다.
이불을 뒤집어쓴다. 또다시 일어나 앉는다.
자욱한 담배연기. 내 곁에서 허공에
발을 뻗다가 맥없이 오그리는 한 포기의 풍란,
담배연기보다 부질없는 저 먼지나 티끌들의
떠돎과 목마름. 또는 물거품과도 같이
비루하구나. 이미 늙어버린 내일이여.
비루하다 못해 황홀하구나. 눈감아도
잠은 안 오고, 생각은 뒤죽박죽 고삐 풀린
망아지, 풀어 봐도 또 풀어도 풀리지 않는
실타래의 이 기막힌 얽힘. 우리 스스로 만든
재앙만 넘쳐나구나. 온통 어둠뿐이로구나.
깊은 밤, 시는 안 되고
누군가 아득하게 켜 놓은 저 불빛의
흐릿한 흐느낌, 그 언저리를 맴돌고 헤매다가
영락없이 거기가 거기지만, 시를 쓰겠다고
일어나 앉는다. 또 이불을 뒤집어쓰다가
불을 켠다. 불을 꼈다가 또다시 눈을 뜬다.
나의 쳇바퀴 3
꿈에서 겨우 깨어난다. 또 바쁜 하루다.
술 때문이나 잠이 덜 깨서 그런 건 아닌데
눈뜨기 싫다. 귀를 열고 싶지 않다.
버릇처럼 뉴스를 보고 읽고, 혀를 찬다.
간밤 꿈에서 만난 푸른 적막 한 자락이
비단 이부자리 같다. 오래 잊고 있었던
어머니 품속 같다. 오늘도 세상은 가시방석,
안 들어가고 싶은 요지경 속이다. 그래도 나의
쳇바퀴는 돌아간다. 안 돌아가고도 안 된다.
눈먼 바람 속, 내 탓이 없고 네 탓만 있는,
나만 있고 너도 우리도 없는, 물도 불도
땅도 하늘도 제 길을 벗어나는 세상. 하지만
쫓기며 허둥지둥 머리 감고, 얼굴 씻고
물을 마신다. 밥상 앞에 앉는다. 째깍거리는
시계가 채근한다. 바늘들이 잘도 돌아간다.
지금 우리 물빛님들의 생활,
아니 제 생활인 것 같아
이 두 편의 시를 담았습니다.
첫댓글 가슴 한자락을 연민으로...... / 애 05-11-03 13:49
애
카라님, 참 가슴 찡하게 읽습니다.
감상합니다.
이런 시인의 모습에 같이 공감할 수 있는 것도
많은 부분, 닮아있기 때문이 아닐까 해요.
산다는 게 참 별것 아닌데도
하늘의 별을 딸것 처럼 요란을 떨기도 하고....
꿈꾸듯 현실과는 거리가 있는 고운 시,
감성적인 시도 좋지만 이렇게 가슴 한자락을
모든 이에게 열 수 있는 연민으로 채워주시는 시도
참 좋으네요.
카라님,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