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멍과 개혁
요즘 멍 때리기가 꽤 유행인 듯하다. 불 명, 물 멍뿐 아니라 숲 멍, 닭 멍도 있지만 그래도 꽃 멍이 제일 좋아 보인다. 올 겨울은 추었지만 봄이 오면서 온도가 빠르게 올라 3월부터 꽃 멍을 즐길 수 있었다. 빠른 꽃 소식은 양지쪽의 꽃잔디와 생강나무부터 왔다. 3월 5-6일 경부터 피기 시작했다. 이어 일주일 쯤 지나 청매화가 피고, 햇볕이 잘 드는 곳부터 홍매화도 피기 시작했다. 집 앞과 옆으로 매실나무가 많아 매화를 보며 멍 때리는 시간을 많이 가졌다. 3월 20일경에는 개나리 진달래 목련이 피었다. 목련은 올해도 환하게 피었다가 다음날 온도가 갑자기 내려가면서 서리를 맞고 무참한 모습으로 변했다. 작은 시련에도 무너지는 인생 같아 안쓰러웠다. 내년부터는 꽃봉오리 때 따서 약이나 꽃차로 쓰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우리 주변에 흔한 꽃인 개나리와 진달래는 보기도 좋지만 오래가서 더 좋다. 변덕이 심한 봄 날씨에도 끄떡없다. 올 가을에는 조금 더 심어도 좋을 듯하다. 3월 25일 경 홍매화가 지면서 벚꽃이 피기 시작했다. 벚꽃은 봄꽃의 여왕답게 화려하지만 오래가지 않는다. 어제 오늘 봄비로 거의 사라졌다. 한잎 한잎 흩날리는 꽃잎을 보며 잠시 멍 때리는 시간을 가졌다. 이제는 앞마당의 몇그루 앵두와 응달에서 늦게 핀 진달래 정도만 남아 있다. 아쉽지만 곧 배꽃 복사꽃 사과꽃이 빈자리를 메월 줄 것이다.
잠깐 잠깐 멍 때리는 시간을 갖는 것은 열심히 사는 사람들에게는 마음의 안정이나 활력 회복을 위해 필요해 보인다. 그러나 한국경제는 멍 때리고 그냥 세월 만 보내는 시간이 너무 길어진 것 같다. 멍은 열심히 일하다 잠깐 때리는 것이지, 계속 멍만 때리면 한국경제가 망할 수 있다. 1997년 IMF 금융위기 때 타의에 의한 개혁이 있은 다음, 제대로 된 개혁은 없었다. 노무현정부 때에는 개혁에 대한 고민은 많이 했지만 실제 실행한 것은 별로 없다. 그 이후에는 고민도 거의 안 하는 것 같다. 그런데 기대도 하지 않았던 윤석렬정부가 여러 개혁을 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노동개혁 연금개혁 교육개혁 등 말을 많이 하고 있다. 여기에다 얼마 전에는 생각지도 않았던 금융개혁까지 이야기 했다.
한국 금융이 경쟁력이 없는 것은 경쟁이 없기 때문에 소형 금융기관이나 전문 금융기관 등 다양한 금융기관을 만들어 금융산업의 경쟁력을 키우겠다는 말이다. 금융감독원과 대통령실에서 이러한 보도가 나왔다. 대체로 맞는 말이다. 이 논리는 내가 2011년 “한국경제의 미필적고의” 라는 책에서 썼고, 이후 수없이 떠들었던 주제이다. 반가워 관심을 갖고 진행 과정을 추적해보니 얼마 지나지 않아 금융관료들의 물 타기가 이루어지더니 이제는 논의조차 안 되는 듯하다. 머지않아 잊혀질 것이다. 방향을 잘 잡은 금융개혁도 이 정도이니, 방향을 잘 못 잡은 것처럼 보이는 연금개혁과 노동개혁은 어찌될까? 국민경제에 도움이 되는 결과가 나올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어쩌면 멍 때리는 대신, 삽질로 자원만 낭비하다 끝날 가능성이 크다.
하도 답답해 3월 중순에 연금개혁에 대한 유투브를 찍었다. 나보다 많이 젊은 두 명과 같이 대담형식으로 찍어 유투브 채널 “알고살자”와 “다준다연구소”에 올렸다. 반응이 괜찮다고 한다. 몇백명 몇천명이 유투브를 본다고 개혁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그 것 뿐인 듯하여 했다. 언론의 자유가 없었던 왕조시대나 독재 정부를 생각하면 이마져도 행운이라는 생각이 든다. 조선시대 자기의 생각을 과감히 이야기 했던 지식인들이 사문난적으로 몰려 죽는 경우가 있었다.
한국 연금제도의 핵심 문제는 이미 연금을 받고 있는 사람이나 곧 받을 사람은 혜택이 너무 커 지속가능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특히 공무원연금이나 사학연금과 같은 특수직 연금의 혜택은 국민경제의 지급능력에 비해 어마어마하게 크다. 부실하다는 국민연금조차도 고소득자에게는 혜택이 엄청나다. 이렇게 과도한 혜택은 미래 세대가 짊어져야 한다. 아마 감당이 되지 않을 것이다. 어떤 친구가 하는 말이 있다. 미래 세대는 돈 벌어 자기 부모님 용돈은 드리지 못하고 특수직연금 받는 이웃 집 노인 골프비용을 대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같아서는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지만 이런 현실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지금 기성세대는 연금개혁을 못하면 미래에 고려장의 대상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있어야 하는데, 받는 혜택이 너무 좋아 멍만 때리고 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