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9. 신도를 만들려고 / 고린도전서 4:ㅣ6-13
다른 사람을 위해 사는 것이 가장 행복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신앙인으로서 배우고 실천해야 할 일입니다. 타인을 위해 산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공부입니다. "나를 따르려거든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라"는 말씀도 바로 이런 의미입니다.
세계의 진정한 평화는 여기에 있습니다. 옆 사람이 즐거워야 나도 즐거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반대로 남의 것을 빼앗아서라도 자신만 풍족하면 된다고 생각하니, 이는 참된 행복과는 거리가 멉니다. 더욱이 이것은 주님의 본뜻과도 다릅니다. 주님께서는 "내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고 하셨고, 사람들의 질병과 고통을 짊어지셨다고 선언하셨으니, 우리 신자들은 이 뜻을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키우시려고 이러한 가르침에 중점을 두시고, 죽음의 경계까지 이르게 하시며 세상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는 그를 제자로 삼아 하나님 나라 건설의 사명을 맡기시고자 그러한 시련을 견딜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요즘 일부 성직자들은 높은 자리에 오르려고 다른 이들을 밟고, 세속적 권력에 의지하여 동료를 배척하며, 파당을 만들어 자신과 맞지 않는 사람들을 억압하고 배척합니다. 심지어 교파의 힘을 빌려 교회를 장악하는 등의 모순된 행동을 하고 있는데, 이는 오히려 주님의 나라를 무너뜨리는 것이며 주님의 뜻을 거역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섬김', '봉사', '남을 나보다 낫게 여김' 등의 말씀은 모두 신자를 만드는 가르침인데, 이는 쉬운 일이 아니라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는 먼저 남을 섬기는 정신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내 삶을 남의 삶과 비교해 볼 때, 내 삶의 수준이 그들보다 높아야 그들을 도울 수 있습니다. 내가 그들보다 부족한 자라면 도움을 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높은 삶'이란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것은 물질도, 지식도, 도덕도 아닙니다. 그것은 내가 가진 것이 그들보다 더 귀중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이야말로 가장 귀중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찾은 사람은 가장 부유하고 귀한 사람입니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높음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나보다 더 낫게 여기고, 다른 사람을 섬기며, 돕는 것은 모두 이 예수님을 전하기 위함입니다.
나 자신은 낮아져도 다른 이들이 예수님으로 인해 높아지게 하고, 내가 배고파도 다른 이들이 예수님으로 인해 배부르게 하며, 내가 헐벗어도 다른 이들이 예수님으로 인해 옷을 입게 합니다. 이것이 바로 서로를 신도로 만들고자 하는 의미입니다. 법률에 얽매이고 싶지 않아도 사람들을 얻기 위해 법률 아래에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선교사들은 중국인들을 전도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하다가, 결국에는 중국인처럼 머리 모양을 하고 중국 옷을 입고 전도했습니다. 죄가 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는 그들과 함께 지내며 전도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웰취 감독이 선교사 모임에서 어떤 선교사가 "한국인은 목사라도 교양이 없어서 우리 집 열 살배기 아이만도 못하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그런 태도로는 전도할 수 없으니 차라리 그만두는 것이 낫겠다"고 대답했습니다.
중국에서 미국인의 전도가 영국인의 전도보다 더 성공적인 이유는 영국인들의 교만한 태도 때문이며, 또한 아편전쟁으로 인해 중국이 많은 영토를 잃은 것이 영국 때문이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 중국인들은 영국인의 전도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서양인들이 중국을 착취의 대상으로 여기고 영토를 나눠 가졌기 때문에, 이제 중국인들은 이 사실을 알고 영토 회복 운동을 벌이며 서양인들을 배척할 것입니다. 따라서 예로부터 중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온 한국인들이 중국 전도에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기도를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