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본출처| http://blog.naver.com/PostList.nhn?blogId=jgonggan&skinType=&skinId=&from=menu&userSelectMenu=true
역사공간에서 '한국의 독립운동가' 시리즈를 내고 있습니다. 이 시리즈는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에서 기획한 건데, 사상에 무관하게 여러 사람들이 책을 쓰고 그걸 시리즈로 냅니다. 그래서 지은이 성향이 완전히 다른 책들도 나옵니다. 예로 정부가 아직까지 독립유공을 인정하지 않은 김원봉 선생님을 다룬 책이나, 민주화 이후에나 독립유공을 인정받은 안재홍 선생님을 다룬 책도 나오지만, 이승만에 대한 책도 나옵니다. 이건 기획이나 출판사가 딱히 한 성향이 있어서가 아니라 지은이가 전부 다르며 각자 성향이 여러가지있기에 그런겁니다. 예로 정우현 씨 처럼 《증언 반민특위》《나는 황국신민이로소이다》《친일파는 살아있다》 등을 지으며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에서 3년 가량 사무처장을 지내고 한국언론재단 연구이사로 재직하다 MB정권이 들어서자고 실직한 사람도 참여했지만, 이한우 씨처럼 조선일보 언론인인 사람도 참여하였습니다.
독립운동가 시리즈는 지금도 나오고 있으며 앞으로도 나올 예정인걸로 보입니다. (교보문고 설명에 따르면 100명 이상은 낼 예정이라 합니다.)
홍범도 1997년 독립기념관에서 발간되었던 저자의「홍범도-생애와 독립전쟁」을 바탕으로 새롭게 정리하였다. 최근 국내외에서 수집한 새로운 자료와 참고문헌, 그리고 기존의 국내외 여러 자료 및 연구서들을 종합하여 그의 일생을 살펴보고 있다. 저자 : 장세윤 성균관대학교 사학과를 나와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근현대사를 전공하고 있으며, 성균관대 등 여러 대학에서 강의했다. 독립기념관 연구원, 성균관대 연구교수, 고구려연구재단 연구위원을 거쳐 현재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황학수 군인의 길로서 독립운동에 매진한 황학수의 삶과 자취를 대한제국의 군인, 만주에서의 독립군, 임시정부의 한국광복군 등으로 나누어 정리하였다. 국가가 외적의 침략을 받아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됐을 때 군인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몸소 보여준 황학수의 자취를 살펴본다. 저자: 한시준 단국대학교 사학과를 나와 동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인하대학교 대학원에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근현대사를 전공하고 2013년 현재 단국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있으며, 중국 상해의 복단대학 방문교수와 한국근현대사학회 회장을 지냈다. (설명출처) 조만식 조만식은 평안도라는 삶의 자리에 굳게 서서 민족의 장래를 내다봤으며, 거창한 말대신 구체적인 실천을 통해 민족의 앞길을 개척해 나갔다. 이 책에서는 민중과 함께 묵묵히 새 나라 건설의 과업을 수행한 조만식의 삶과 자취를 살펴보고 있다. (설명 출처) 저자: 장규식 1963년 경기도 파주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 문과대학 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문학석사와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근현대사와 한국기독교역사학회의 총무이사를 역임하였고, 현재 중앙대학교 역사학과의 조교수로 있다. 한국 근현대 지성사와 도시사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최강옥 최광옥은 느헤미야의 담력과 지혜, 겸손과 신념, 불타는 애국심과 경건한 신앙심 그리고 희생정신을 두루 갖춘 지도자였다. 33세의 짧은 삶이었지만, 그는 현재 우리 시대에 부재한 리더쉽의 모범상을 보여주고 있다. 최광옥, 그는 19세기 말 격변의 역사적 소용돌이 속에서 국어를 통한 민족의식과 애국의식을 고취하였고, 신학문인 과학을 통해 우리 사회의 과학화ㆍ실용화를 간절히 바랬던 인물이다. 이 사회를 변혁시킬 훌륭한 교사 양성에 온 힘을 다한 교육자, 독실한 기독교 신앙인, 한국 최초의 청년운동을 시작한 청년운동가로서 이 땅에 근대화를 이룩하고자 했던 선각자였으며 일제 침략을 막고 민족의 자존을 지키려 민족의 제단 앞에 기꺼이 목숨을 바친 진정한 애국지사였다. 저자 : 이명화 홍익대학교 역사교육과를 나와 연세대학교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홍익대학교대학원에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근현대사를 전공하고, 현재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책임연구원으로 있으며, 홍익대학교 겸임교수이다. 주요 논저로는 「김규식의 생애와 독립운동」, 「차리석의 생애와 독립운동」, 「한국독립운동사강의」, 「수난의 민족을 위하여 - 도산 안창호의 생애」, 「도산안창호전집」, 「도산안창호의 독립운동과 통일노선」, 「미주국민회자료집」 등이 있다. 이상룡 이 책은 시련과 수난으로 점철된 한국근현대사 가운데 허덕이는 민중을 이끌고 민족의 미래를 밝혔던 이상룡의 삶과 이상룡이 주도하여 개척한 서간도 독립군기지가 얼마나 확고하고 주도면밀했었는지 보여주는 자료들을 담고 있다. 저자 : 채영국 국민대학교 한국학연구소 연구교수 안재홍 독립운동가 안재홍의 항일운동과 삶을 조명하는 <중도의 길을 걸은 신민족주의자>. 민세 안재홍의 생각과 삶을 살펴보는 책이다. 안재홍은 민족의 독립을 위하여 행동한 지사ㆍ실천가였을 뿐 아니라, 새로운 국가건설의 이상과 구체안을 체계화한 이론가ㆍ사상가였다. 물산장려운동, 신간회운동, 그리고 8ㆍ15 해방 후 국가 건설운동에 보듯이, 그는 자신의 민족운동을 이론으로 뒷받침하였고, 이를 '신민족주의'로 깊이 있게 표현하였다. 이 책은 안재홍의 삶을 연대기로 그리는 데에 그치지 않고, 그의 행동에 깔려 있는 생각과 사상을 함께 서술하고 있다. 저자: 김인식 김인식 중앙대학교 사학과를 나와 동대학원에서 석 ·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중앙대학교 교양학부 전임강사이며, 사단법인 민세 안재홍선생 기념사업회 운영이사를 맡고 있다. 주요 논저로는 <안재홍의 신민족주의 사상과 운동>, 1998 <송진우 · 한국민주당의 ‘중경임시정부 절대지지론’>,2003 <1947년 안재홍의 ‘순정 우익 집결’운동>, 2004 <안재홍의 중도우파 노선과 민족국가건설운동>, 2004 <8 · 15해방 후 우익 계열의 ‘중경임시정부 추대론’>,2005<안재홍의 신국가건설운동(1944~1948)>,2005 <민세연구① : 민족에서 세계로 - 민세 안재홍의 신민족주의론>, 공저, 2002 <민세 안재홍 심층연구>, 공저, 2005 등이 있다. (설명출처) 김원봉 '약산'이라는 호를 지으면서 15세 사춘기의 소년은 식민지 조국을 위해 산처럼 크고 높게 살겠다고 다짐했다. 광복을 맞이할 때까지 그가 내디딘 발걸음은 무거웠고, 그 발자국은 깊었다. 사사로운 이해관계를 멀리하고, 정의를 향한 큰 길을 걷고자 했기에 그의 역정은 고독했지만 외롭지 않았다. 그가 대륙에 남긴 꿈의 조각과 걸었던 길을 되짚어 보자. 저자: 한상도 건국대학교 사학과 교수. <조선의용대의 국제연대의식과 대만의용대>, 1999 <조선의용군의 위상과 동방각민족반파시스트대동맹의 관계>, 2002 <조선의용대와 재중 일본인 반전운동집단의 연대>, 2004 등 연구를 통하여 동아시아 반파시즘 투쟁의 일환으로서 한국독립운동의 측면을 주목하고 있다. 저서로는<한국독립운동과 중국공군학교>, 1994 <한국독립운동과 국제환경>, 2000 <중국혁명 속의 한국독립운동>, 2004 등이 있다. 윤기섭 국내뿐만 아니라 서간도, 상해, 중경, 러시아 등지를 넘나들면서 민족독립에 일생을 바쳤던 윤기섭의 일대기를 다룬 책이다. 윤기섭은 구한말 신민회에서 활동하면서부터 일제 패망 후 임시정부 요인으로 환국할 때까지 서북간도와 중국 본토를 넘나들면서 줄기차게 독립전쟁을 호소하고 교육구국운동을 펼친 인물이다. 그는 항상 '독립혈전'을 주장하면서 신흥무관학교에서 군사인재양성을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이 책은 6.25전쟁 발발 직후 납북되어 북한에서 사망했기 때문에 납북 임시정부 요인으로 기억 속에 묻혀 있던 그의 삶과 사상을 다시금 재조명한다. 저자: 김광재 서강대학교 언론학 박사, (전)광주일보 기자, (전)일본 조치(上智)대학 연구원, (현)서강대학교 언론문화연구소 연구원 김약연 규암 김약연은 북간도 한인사회의 지도자였다. 일찍이 북간도로 이주한 그는 한인들에게 민족의식을 심어 주었고, 민족 교육의 씨앗을 뿌려 독립운동의 터전을 일구었다. 이 책은 17세 때 두만강 너머 명동촌으로 이주한 이후 규암이 걸어온 삶을 조명하고 있다. 간도 한인의 지도자로서, 감옥에 여러 차례 갇히고, 자신이 세운 명동학교가 일제의 의해 불태워진 만행도 겪으면서 꾸준히 민족 독립에 헌신했던 그의 삶과 사상을 느낄 수 있다. 저자 : 서대숙 미국콜롬비아대학교 정치학 박사, 연세대학교 용재석좌교수, 서울대학교 정치학 초빙교수, 일본 게이오대학교 정치학 초빙교수를 거쳐 현재 미국 하와이대학교 정치학 석좌교수로 있다. 주요 저서로는 『The Korean Communist Movement』『Korean Communism』등이 있다. 최재형 <시베리아 한인민족운동의 대부 최재형>은 광활한 시베리아 벌판을 누비며 항일운동을 펼쳤던 최재형의 삶을 조명하는 책이다. 구한말 의병조직인 동의회 총재, '대동공보' 사장, '대양보' 사장, 권업회 총재, 대한국민의회의 명예회장 등의 직함이 시베리아에서의 독립운동 이력과 러시아 연해주 사회에서 그가 지녔던 위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 설명출처 ) 저자: 박환 한국독립운동사 전공, 서강대학교 사학과 졸업, 수원대학교 사학과 교수, 한국민족운동사학회 회장 역임 저서 <만주한인민족운동사연구>, <나 철, 김교헌, 윤세복>, <러시아한인민족운동사>, <재소한인민족운동사>, <20세기 한국 근현대사 연구와 쟁점>, <만주지역 항일독립운동 답사기>, <박환의 항일유적과 함께하는 러시아기행 1, 2>, <잊혀진 혁명가 정이형>, <식민지시대 한인아나키즘 운동사>, <경기지역 3?1운동독립운동사>, <시베리아 한인민족운동의 대부 최재형>, <박 환 교수의 러시아 한인 유적 답사기>, <러시아지역 한인 언론과 민족운동>, <김좌진 평전>, <강우규 의사 평전>, <재소한인의 항일투쟁과 수난사>, <시베리아의 여명을 뚫고> 이승훈 <기독교 민족운동의 영원한 지도자 이승훈>은 개신교 민족운동가 남강 이승훈의 삶을 조명하는 책이다. 남강은 구한말부터 일제하 국내 민족운동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인물이다. 저자: 한규무 1961년생으로, 서강대학교 사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문학박사(한국근대사 전공)를 취득하였다. 현재 광주대학교 관광학부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 설명출처 ) 유인석 <유림 의병의 선도자 유인석>은 반개화 상소운동과 항일의병운동을 선도한 양반유림 유인석의 삶을 조명하는 책이다. 유인석은 평생에 걸쳐 치열한 반개화 상소운동과 항일의병운동을 선도하였다. 저자: 오영섭 연세대 현대한국학연구소 연구교수 이회영 명문가 출신의 아나키스트 이회영의 삶을 조명하면서 구한말 황실귀족의 한 사람으로 태어나 64세 나이에 고문으로 죽을 때까지 일생을 독립운동에 몸바친 이야기들을 수록하고 있다. 저자 : 김명섭 단국대 사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在日 韓人아나키즘운동 硏究」(2001)로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으며, 현재 강남대학교에 재직 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자유를 위해 투쟁한 아나키스트 이회영』(역사공간, 2007), 『석농 유근 자료 총서』(『한국학술정보』, 2007), 『한국 아나키즘 100년』(공저, 이학사, 2004), 『재일 조선인, 그들은 누구인가』(공저, 삼인출판사, 2003)가 있고, 논문으로는 「우당 이회영의 아나키즘 인식과 항일 독립운동」(『동양정치사상사』 2008. 2), 「한·일 아나키스트들의 사상교류와 반제연대투쟁」(『한국민족운동사연구』 49집, 2006), 「朴烈·金子文子의 反天皇制 鬪爭과 아나키즘 認識」(『한일민족문제연구』 4집, 2003), 「1930년대 재일 조선인 아나키스트들의 활동과 이념―흑우연맹(1928~1936)을 중심으로」(『한국민족운동사연구』 37집, 2003), 「재일 조선인 아나키스트들의 노동운동」(『한국독립운동사연구』, 2003) 등이 있다. 조신성 서북을 호령한 여성독립운동가『조신성』. 이 책은 일제 강점기 민족운동, 여성운동사의 중심에 서 있던 조신성의 생에를 총체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조신성이 민족운동가, 여성운동가로서의 삶을 살게 된 동기와 배경, 구체적인 활동양상, 해방 이후 그의 삶에 대한 행적 등을 소상하게 밝혔다. 이는 한국 근대 여성 인물들의 민족운동ㆍ여성운동 참여 동기와 이후에 여성운동사에 끼친 영향 등을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저자 : 윤정란 저자 윤정란은 숭실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일제시대 한국기독교 여성운동연구로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현재는 숭실대학교에서 한국사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는 종교계의 민족운동(공저), 한국기독교 여성운동의 역사, 19세기말 서양선교사와 한국사회(공저), 조선왕비 오백년사, 조선왕비 독살사건, 전쟁과 기억(공저) 등 다수가 있다. ( 설명출처 ) 안희제 『독립운동 자금의 젖줄 안희제』는 오로지 조국의 독립을 위해 독립운동가로서 평생을 살다간 안희제의 발자취를 찾아 그의 생애를 새롭게 재조명해 보고자 한다. 아울러 그의 구국이념과 나라사랑 정신을 되새겨본 저자 : 이동언 저자 이동언은 건국대학교 사학과를 나와 동대학원을 졸업하였다. 한국근현대사를 전공하고 현재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책임연구위원으로 있다. 서일대·순천향대학교 강사를 지냈고 백범학술원 비상임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논저로는 『일제하 조선금융조합의 설립과 성격』(1992), 『백산 안희제 연구』(1994), 『제천 애국지사 이용태의 삶과 사상』(공저, 2005)이 있다. ( 설명출처 ) 유관순 3·1운동을 90여 년이 지난 시점에서 볼 때 유관순 열사는 단지 독립만세운동의 한 주역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유관순은 비록 체계적인 사상을 글로 남기진 않았지만, 그녀가 참여하여 이루어낸 3ㆍ1운동과 그녀의 삶과 죽음은 새로운 사유와 새로운 행동의 모형을 제시하였다. 유관순 열사는 바로 새로운 세대의 탄생을 알리는 상징이요 신호였다. 우리가 유관순 열사를 기억해야 하는 의미가 여기에 있다. 저자소개: 이정은 서울대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3·1운동의 지방시위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책임연구위원이다. 저서로는 '3·1운동의 지방시위에 관한 연구', '유관순-불꽃같은 삶 영원한 빛', '안성의 3·1운동', '20세기 한국의 야만'(공저) 등이 있다. 박용만 박용만은 이승만·안창호와 더불어 미주한인사회의 3대 지도자이자 한평생 항일무장투쟁론과 임시정부 건설론을 주창했던 인물로서 재미한인사회에서는 아직도 그를 기억하고 기리는 사람들이 있다. 박용만의 영향력은 재미한인사회뿐 아니라 국내를 비롯한 해외한인사회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1908년 그가 설립한 한인소년병학교는 군인양성운동의 시발점이자 한평생 추구하였던 독립운동방략이었다. 또한 1911년부터 설파한 무형국가론은 한인 최초의 임시정부 건설론으로 대한인국민회를 1910년대 임시정부로 기능하게 하였고, 1917년 대동단결선언을 거쳐 1919년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까지 영향을 미쳤다. 따라서 박용만의 생애와 민족운동, 정치사상에 관한 연구는 그동안 공백에 빠져 있던 1910년대 한국 민족운동의 흐름과 전략이 어떻게 수립되고 전개되었는가를 밝힐 수 있는 중요한 열쇠이다. 저자:김도훈 국민대학교 국사학과 졸업, 동대학원에서 문학석사·박사 학위를 받았다. 재미한인의 민족운동사와 근대 정치사상사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있다. 국민대·대전대 강사, 민족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 국가보훈처 연구관,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 조사과장 등을 역임하고, 현재 충남대 연구교수로 있다. 주요 저서로는 '보수주의자의 삶과 죽음'(2010), '1910년대 국외항일운동 Ⅱ-중국·미주·일본'(2008), '새로 쓴 난파 홍영후 연보' (2006), '미주한인의 민족운동'(2003), '의병항쟁과 국권회복운동'(2003) 등이 있다.
지은이: 이한우 (언론인) 신규식 이 책은 한국독립운동가로서는 최초로 중국혁명가와 유대를 맺고 중국혁명에도 직접 가담함으로써 한국혁명, 즉 한국독립의 실현을 위한 첫 발을 내딛은 신규식의 삶을 조명한다. 그의 행적과 말을 찾아 모아 민족운동가의 면모 뿐 아니라 그의 인간적인 모습도 생애 속에서 새롭게 조명하고 있다. ( 설명출처 )
지은이: 강영심 이화여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신규식의 생애와 독립운동』,『한국 근현대 삼림소유권 변천사』(공저),『1910년대 해외 독립운동』(공저) 등이 있으며, 논문으로는「일제하 임야조사사업 연구」,「신한혁명당의 결성과 독립운동」,「종전 후 중국지역 ‘일본군 위안부’의 행적과 미귀환」외 다수가 있다. 현재 이화여대 이화학술원에 재직 중이다. ( 설명출처 )
김철 김철은 조국광복을 위하여 치열하게 살았던 항일투사임에도 우리에게 별로 알려져 있지 않다. 그는 1917년 상하이로 망명하면서 본격적인 항일투쟁전선에 투신해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을 위한 준비에 노력을 기울였다. 이와 더불어 김구, 손정도, 김순애 등과 함께 의용단을 발기하는 등 독립운동에 박차를 가하였다. 김철은 분열된 임시정부를 통합하고자 자신을 스스로 내던졌다. 그에게 조국은 자신의 육신보다 소중한 '성스러운' 보배였다. 소통을 통한 사회적인 통합을 이루려고 노력했다. 책은 이러한 김철의 일대기를 담아냈다.
지은이: 윤선자 ( 설명출처 )
김창숙
유학자이자 독립투사인 김창숙의 삶을 생생하게 그려낸 책. 그가 남긴 시와 각종 글을 통하여 좀 더 생생하게 소개하고 있다. ( 설명출처 )
지은이: 권기훈 1957년 밀양 출생. 건국대학교 사학과 졸업. 건국대학교 대학원 석사, 박사과정 졸업(문학박사). 서울 장훈중학교 교사. 건국대, 조선대, 숭실대, 대구대, 부천대 등 강사. 대구대학교 겸임교수. 현재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연구위원. 논문으로는 <김창숙의 민족독립운동 연구>,<해방 후 김창숙의 정치활동> 등이 있다. ( 설명 출처 )
정정화 일제하 많은 여성들은 가부장적 질서 속에서 가장의 결정에 따라 망명사회의 일원이 됐고 새로운 사회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정정화는 모든 것을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에 옮겼다. 나아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활동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연통제를 활용해 독립운동 자금을 조달했으며, 연통제가 폐쇄되자 야음을 이용하여 압록강을 건너 밀사역할을 수행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세 차례나 국내 잠입을 감행하다가 일제 경찰에 체포당하기도 하였다. 목숨을 걸고 칠흑 같은 밤에 압록강을 쪽배로 건넌 것도 20대 초반의 정정화가 스스로 선택한 길이었다. 정정화는 이러한 역할을 수행하여 임시정부의 김구로 부터 한국의 잔다르크라는 칭송을 받기도 했다. 정정화는 그녀의 삶을 통해 조국과 인간에 대한 진정한 헌신과 배려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조국이 무엇인지 모를 때는 그것을 위해 죽은 사람들을 생각해 보라. 그러면 조국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고 한 정정화의 말은 현재의 우리에게 많은 귀감이 된다. 저자: 신명식 경희대학교 사학과와 경희대학교 언론정보대학원 신문학 전공을 졸업했다. 내일신문사 편집국장(2006~2007)을 지냈으며 '친일인명사전' 편찬 사업에 참여했다. 현재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이사이다. 강우규 강우규는 65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3.1만세운동 여파로 하세가와 총독이 물러나고 후임으로 해군대장 출신의 사이토가 부임한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폭살키로 결심했다. 그리고 1919년 9월 2일 사이토가 부산을 거쳐 남대문역(현 서울역)에 도착하자 그를 향해 폭탄을 던져 30여 명에게 중경상을 입혔다. 3.1만세운동 과정에서 일본 군경에 저항한 무수한 항일투사들이 있었지만 식민통치의 최고책임자인 조선총독 제거를 목표로 거사를 준비한 사람은 드물었다. 강 의사는 의거 처음부터 목표를 조선총독으로 잡고 주도면밀한 준비를 통해 거사를 결행했다. 비록 총독을 척살하지는 못했지만 강 의사의 의거가 항일투쟁사와 동양사에 끼친 영향을 감안하면 소기의 성과는 충분히 달성했다고 할 수 있다.
지은이: 1980년대 말 친일파 연구가 임종국 선생에 매료된 이후 친일 관련 자료 수집과 글쓰기에 전념하였으며, 그간 《친일파》《창씨개명》《서울시내 일제유산답사기》《증언 반민특위》《나는 황국신민이로소이다》《실록 군인 박정희》《반민특위 재판기록》《강우규 의사 일대기》《임종국 평전》《친일파는 살아있다》 등을 짓거나 풀어서 펴냈다. 친일 문제를 연구한 것이 인연이 돼 2005년 6월 출범한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에서 3년 가량 사무처장을 지냈으며, 한국언론재단 연구이사로 재직하던 중 MB정권이 들어서자마자 실직했다.
( 설명출처 ) 서재필 서재필은 개화의 선구자이자 혁명가·언론인·의사·외교관·독립운동가이다. 스물이라는 어린 나이에 개화운동에 뛰어들어 갑신정변에 참여했던 서재필은 개화의 물결을 대중 속으로 확산시키는 데 일조했다. 이후 갑신정변이 실패하여 망명길에 오른 후 귀국과 망명을 거듭하는 풍운을 겪으면서도 그는 민족계몽을 위해 힘썼다. 특히 민주주의를 이 땅에 심으려 노력하였다. 갑오개혁 이후 귀국한 서재필은 독립협회를 결성하고 독립문을 세웠으며, 만민공동회를 개최해 자주독립의 기틀을 마련하려 애썼다. 뿐만 아니라 최초의 민간신문인 독립신문을 창간해 서양의 민주사상을 체계적으로 전달하여 국민 의식의 근대화에 크게 일조했다. 필자는 서재필의 다음과 같은 점에 주목했다. 첫째는 그가 끊임없는 변혁을 추구한 실천적 개혁사상가였다는 점이다. 갑신정변, 독립협회, 3·1운동 직후의 독립 외교활동에 참여했으며, 해방 후 말년에 미군정 고문으로 활동한 것은 서재필이 일생을 실천적 개혁사상가로 살았다는 사실을 잘 나타내준다. 둘째는 조국과 민족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다. 비록 미국인으로 귀화하기는 했지만, 서재필은 한시도 조국과 민족을 버리거나 잊은 적이 없었다. 물론 협소한 민족주의적 시각에서 꼬투리를 잡는다면 미국인으로 귀화한 것이라든가, 조국에서 미국인 행세를 한 것, 말년에 모국어를 많이 잊어버려 유창하게 우리말을 하지 못했던 점 등을 비판하는 것도 어떤 면에서는 타당하다. 그러나 그가 그렇게 처신하게 된 정황을 조금만 더 살펴본다면, 모두 쉽게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조국에 대한 그의 열정과 사랑이 없었거나 변질되었느냐 하는 것이다. 그의 조국에 대한 열정과 사랑은 한평생 변함이 없었다. 조국이, 즉 올바른 개혁을 꺼리고 자신들의 권익만을 추구한 세력이 그를 배신했던 것이지, 서재필이 조국을 등지거나 배반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저자: 김승태(金承台)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일제의 식민지 종교정책과 한국 기독교계의 대응, 1931~1945」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독립기념관 자료과장과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연구실장을 역임했고, 한국기독교장로회에서 목사안수를 받고 세움교회를 담임하고 있다. 『한국기독교의 역사적 반성』, 『수안교회 100년의 역사, 1905~2005』, 『한말·일제강점기 선교사 연구』, 『중일전쟁 이후 전시체제와 수탈』, 『한국기독교와 신사참배문제』(편저), 『신사참배 거부항쟁자들의 증언』(편역), 『일제강점기 종교정책사 자료집』(편역), 『한국기독교의 역사 Ⅰ, Ⅱ, Ⅲ』(공저) 김좌진 백야 김좌진. 우리나라 사람이면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널리 알려진 독립운동가이다. 그는 평생을 조국의 독립을 위해 투쟁했던 민족운동가요, 교육가요, 항일혁명가였다. 김좌진하면 청산리대첩, 청산리대첩하면 만주 독립운동이 자연스럽게 연상될 정도로 ‘청산리대첩의 영웅’으로 자리 잡고 있다. 청산리대첩은 일제 식민지배로 신음하고 있던 우리 민족에게 전쟁을 통해 독립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준 대표적인 전투였고, 김좌진이라는 영웅을 탄생시켰다. 그러나 그는 대책 없이 군사 활동에만 주력한 것은 아니었다. 김좌진은 무장투쟁을 중시했지만 한인사회 안정화에도 노력을 아끼지 않았으며, 교육 사업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항일무장투쟁의 기반은 재만 한인사회였고, 한인사회의 안정 없이는 무장투쟁도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결과였다. 김좌진은 재만 동포들의 생활기반 마련을 위해 생활 개선·영농방법 개선·실업 장려 등 동포들의 경제적 부흥을 위한 활동을 지속적으로 추진했다. 한족총연합회 시절 동포들로 하여금 자치조직을 결성케 하고 경제적 이익을 증진시키고자 했던 것도 재만 동포들의 생활 안정을 가장 시급한 문제로 여겼기 때문이다. 김좌진은 교육사업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그의 민족운동이 호명학교 설립에서 출발했듯이 교육사업에 대한 열정은 남달랐다. 김좌진은 신민부와 한족총연합회 시절, 50여 개의 학교를 세워 한인자제들을 교육했다. 교육사업은 한인자제들에게 항일의식과 민족의식을 심어줄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었고, 동포들의 바람이기도 했다. 저자: 이성우(李成雨) 충남대학교 인문대학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문학석사와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근현대사를 전공하고 독립운동사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있다. 현재 충남대학교 충청문화연구소 전임연구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이봉창 이봉창은 매우 독특한 이력을 가진 독립운동가이다. 그는 처음에는 독립운동과는 거리가 멀었고, 민족의 독립보다는 오히려 일제의 식민통치에 적극 협조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이봉창은 스스로 자신이 민족을 언급하기보다는 자신의 안위와 영달을 위하는 것이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을 지도 모르겠다. 그렇기 때문에 이봉창의 행적을 되새겨 보면 왠지 말할 수 없는 애절함과 한없는 동정을 느끼게 된다. 이렇던 이봉창이 변하게 된 이유는 바로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겪어야만 했던 민족차별이었다. 이봉창은 국내에서의 민족차별에 크게 실망하고 일본에서는 차별대우가 없을 것으로 알고 그곳에 갔다. 그리하여 큰 뜻을 품고 간 일본에서 1925년 11월부터 1930년 12월까지 6년 1개월 동안의 긴 세월을 보냈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차별대우가 더욱 심했을 뿐만 아니라 ‘신일본인’으로 살기로 결심하여도 고뇌와 번민만 주었을 뿐 자유를 가져다주지는 못하였다. 그는 이러한 차별을 없애기 위해서는 조국의 독립만이 그 해답이라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그는 중국으로 떠났다. 그곳에서 이봉창은 김구를 만나게 되었고, 조국을 위해 ‘동경의거’를 일으키게 되었다. 지은이: 김도형(金度亨) 국민대학교 국사학과와 동대학원에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하와이대학 한국학연구소에서 연구하였으며, 국민대·단국대·경원대·서경대 등에서 강의하였다. 현재,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선임연구위원으로 재직하면서, 충남대에 출강하고 있다. 방정환 방정환은 3·1운동에 참여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였고, 이후에는 소년운동·출판운동·아동문학운동 등을 통해 문화운동에 전력한 인물이다. 또한 우리나라에서 방정환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대중적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그것은 바로 ‘어린이날’ 제정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방정환은 널리 알려진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대중들이 그에 대해 아는 사실은 그리 많지 않다. 정보가 협소한 이유는 학술 연구가 소년운동과 그의 아동문학운동에만 집중되어 있고, 방정환 개인에 대한 종합적인 연구는 상대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이 책은 방정환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담고자 노력하였다. 그의 일생을 출생과 성장기, 결혼 이후 일본 유학기, 일본 유학에서 귀국한 이후 소년운동과 아동문학운동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시기 등 그의 활동을 계기적으로 구분하여 서술함과 동시에 소년입지회 활동, 천도교 활동, 『어린이』의 발간 등 대표적인 활동을 중심으로 서술하였다. 32년이 채 안 되는 그의 생애를 이와 같이 구분하여 서술하는 것이 무리한 일이기도 하나 그에 대한 인식을 보다 풍부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지은이: 조성운(趙成雲) 동국대학교 역사교육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일제하 영동지방 농민운동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2008년에는 일본 교토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의 초빙외국인학자로 연구하였다. 현재 동국대학교와 경기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다. 『일제하 농촌사회와 농민운동』, 2002,『일제하 수원지역의 민족운동』, 2003,『일제의 식민지 지배정책과 매일신보 1910년대』(공저), 2005,『식민지 동화정책과 협력 그리고 인식』(공저), 2007, 『광고, 시대를 읽다』(공저), 2007, 『여행과 관광으로 본 근대』(공저), 2008, 『조선총독부의 교통정책과 도로건설』(공저), 2011, 『식민지 근대관광과 일본시찰』, 2011, 『시선의 탄생』(공저), 2011 전명운 한국 독립운동은 무장투쟁과 의열투쟁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무장투쟁은 독립군을 양성하여 독립전쟁을 수행하는 데 중점을 둔 것이고, 의열투쟁은 앞장서 침략정책을 추진했던 일본인이나 친일파를 처단했던 독립운동의 방법이다. 순국과 의열투쟁이라는 새로운 투쟁방략이 등장한 것은 1905년 일제가 강제로 맺은 을사늑약 때문이었다. 민영환·조병세·홍만식 등의 순국열사들은 을사늑약을 규탄하면서 자결이라는 극단적 행동으로 항일의지를 드러냈다. 이는 한국민에게 애국심과 국가정신을 고취시키는 주요한 계기가 되었다. 순국열사들의 영향을 받아 나타난 독립운동방략은 일제와 친일파를 처단하는 의열투쟁이었다. 의열투쟁은 한국의 무력적 식민지화를 추진한 일본정치인·군인·친일주구 등과 주요 식민기관을 대상으로 삼았다. 이는 평화적인 수단이 더 이상 효용을 가질 수 없게 된 조건에서 출현한 적극적인 대응책 중 하나였다. 의열투쟁의 시초가 된 것은 전명운과 장인환 두 의사의 스티븐스 처단을 들 수 있다. 일제의 앞잡이 스티븐스는 친일정책 수행과 함께 계속적인 망언을 하였다. 이에 평화적 정정요구를 했으나 거부되었다. 그리하여 전명운과 장인환 두 의사는 스티븐스 처단을 결심했다. ‘최소한의 희생’으로 민족적인 울분을 나타내는 동시에 만천하에 한국인의 독립의지를 알리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자기희생’을 통해 독립을 이룰 수 있기를 강하게 희망한 것이다. 이 의거는 이후 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처단, 이재명의 이완용 척살, 강우규의 사이토 마코토 척살의거, 의열단의 일련의 의거, 윤봉길의 홍구공원 폭탄투척 의거, 이봉창의 도쿄 일왕 폭살 의거 등의 의열투쟁으로 이어졌다. 따라서 전명운·장인환 두 의사는 의열투쟁의 선구자인 셈이다. 이러한 의열투쟁 정신은 3·1운동 이후 1920년대에도 계승·발현되어 친일파와 매국노들을 대상으로 끊임없이 이어졌다. 자주 독립을 이루고자 하는 우리 민족의 저항정신은 미주는 물론 국외 한인사회 독립운동을 견인하는 중요한 ‘지렛대’ 역할을 하였다. 지은이: 조철행(趙澈行) 수원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국가보훈처 공훈심사과 전문관에 재직하고 있다. 김동삼 의리론을 중시하는 명문가 집안에서 태어나 협동학교를 설립하고, 만주로 망명하여 서간도 무장투쟁에 참여하였으며, 통합운동의 주역으로 활동하다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한 김동삼의 삶과 자취를 살펴본다. 지은이: 김병기(金炳基) 김병기(金炳基)는 고려대학교 농업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단국대학교 대학원에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근현대사를 전공하고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소에서 전임연구원으로 재직하였다. 현재 (사)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에서 전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 설명출처 ) 김중건 김중건은 극원철학과 원종사상을 창립하고 조국 독립과 사회개혁을 위해 헌신했던 철학사상가이다. 교육운동, 사회결사운동, 계몽운동, 종교운동 등을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항일독립운동에 매진했던 그의 삶을 돌아본다. ( 설명출처 ) 지은이: 최봉룡 1962년 1월 5일 중국 길림성 도문시 석현진 출생, 1982-1986년 연변대학 역사학부 졸업, 1986-2001년 연변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 부교수, ( 설명출처 ) 조완구 그는 조선왕조 말에 풍양 조씨 명문가의 후손으로 태어나 대한제국기에 관료를 지냈다. 그러나 관료라기보다는 학자에 가까웠다. 그는 대한제국기에 김택영·김교헌·장지연 등과 함께 한민족 5천 년 역사·문화·제도의 골격이 담겨 있는 『증보문헌비고』 편찬에 참여했다. ‘을사늑약’ 이후로는 관직을 떠나 각종 사회교육단체에서 활동했다. 대한협회·기호흥학회·대동교 등이 그것이다. 국권상실 이후에는 만주로 망명하여 대종교를 중심으로 나철·이상설 등과 활동했고, 1919년에는 상해로 이동하여 이동녕·이시영·조소앙 등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했다. 이후 27년간 임시정부의 내정을 운영했다. 그의 평생 신앙은 대종교, 업무는 독립운동, 소속은 임정, 목표는 광복 그리고 통일이었다. 그러나 그는 6·25전쟁 당시 납북되어 1954년 말에 안타까운 삶을 마감했다. 유해는 한동안 북한의 용성에 안장되었다가 현재는 납북 요인들과 함께 평양의 애국열사릉에 이장되었다. 조소앙이 말한 것처럼 조완구 등은 ‘제 설자리’를 찾지 못한 비극의 애국인사였다. 그러나 광복과 통일을 열망했던 그의 정신과 사상은 현재 우리들에게 계속 기억될 것이다. 지은이: 이민원(李玟源) 청주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근현대사와 한국정치외교사를 전공했다. 청주대, 충북대, 충남대, 한남대, 배재대, 교원대, 단국대, 경희대 등의 강사를 거쳐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연구위원, 보훈교육연구원 연구부장, 한라대 겸임교수, 원광대 초빙교수를 역임했고, 현재 동아역사연구소 소장으로 있다. 김호 흔히 사람들은 미주의 한인들은 미국이라는 자유로운 정치·경제의 조건 속에 풍족한 삶을 살았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결코 그렇지 않았다. 미주이민이 시작된 이래 한인들은 뜨거운 태양 아래 사탕수수농장이나 과일농장에서, 혹은 오지의 탄광이나 철도 및 도로건설 현장에서 생존과 싸우며 자신의 삶을 땀과 눈물로 일구어 갔다. 인종차별 속에서 온갖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배움으로 실력을 쌓아 보았지만, 아무도 한인들의 능력을 쉽게 인정해 주지 않았다. 따라서 생존에 힘겨워 배우지 못한 한인노동자들의 삶이란 말할 나위 없이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미주한인들의 심정을 더 힘들게 만든 것은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 아니었다. 자신을 보호해 줄 영사관이나 나라조차 없는 난민과 같은 신세가 더 서러웠다. 억울함을 당하거나 힘든 일을 당해도 마땅히 호소하거나 의지할 곳이 없었다. 미주한인들에게 국권의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슬픔이었다. 이런 힘든 생활 속에도 해방 이전까지 미주한인사회에는 한인들의 생존권을 대변하고 자주독립을 위해 앞장선 수많은 지도자들이 있었다. 이들 지도자 가운데 몇몇은 한인들로부터 재정지원을 받아 정치지도자로 크게 활동한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경우 생계를 해결하기 위해 노동하거나 사업을 하면서 없는 시간을 쪼개거나 자신의 재산을 써가며 헌신한 ‘자립형’ 민족지도자들이었다. 이들은 원대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특별한 조직을 만들어서 지도할 능력을 갖추지 못하였고, 전문적인 정치적 식견도 갖추어 있지 않아 지도자로서의 역량도 변변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이들 ‘자립형’ 민족지도자들에게는 그런 부족함을 충분히 메울 수 있는 민족 독립을 향한 뜨거운 가슴과 열정이 있었다. 미주한인사회의 수많은 지도자들 가운데 김호는 전형적인 ‘자립형’ 민족지도자였다. 그는 몸소 노동을 통해 가족의 생계를 뒷바라지 하였고, 스스로 경제적 자립을 일구어 가면서 미주한인의 권익을 보호하여 위상을 높였다. 또한 한국의 독립과 통일정부의 수립을 위해 평생을 헌신하였다. 김호의 지도자적 자질은 여타의 다른 민족지도자들이 가진 조직 장악력이나 대중적 인기 면에서 볼 때는 뒤떨어질지 모른다. 그러나 그의 올곧은 민주·민족의 정신과 이를 몸소 행동으로 옮긴 삶은 결코 그 어떤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다. 지은이: 홍선표(洪善杓) 한양대학교 사학과와 동대학원에서 한국근대사를 연구하고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3년부터 2004년까지 펜실베이니아대학교 동아시아연구소에서 연구교수로 활동했다. 1987년부터 현재까지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에서 책임연구위원으로 근무하면서 순천향대학교와 호서대학교를 비롯해 현재 한국기술교육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다. 손병희 이 책은 불합리한 세상사를 올바로 세우는 데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진 손병희를 만난다. 일제강점기 등 암울한 시기에 동학과 천도교를 바탕으로 새로운 사회를 위한 변혁운동에 참여했을 뿐 이날, 10여 년의 준비를 거쳐 전개된 민족 최대의 독립운동인 3ㆍ1운동을 추진한 손병희의 민족지도자로서의 사회적 소임을 배울 수 있다. 지은이: 성주현 문학박사. 천도교 기관지 신인간 편집장, 경기대학교 강사, 부천대학 겸임교수,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연구원 양기탁 양기탁은 우리 민족의 운명을 좌우했던 격동의 한말 당대에 최고의 계몽운동가였다.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에서 시작된 그의 활동은 이후 10여 년간 종횡무진으로 이어졌다. 『대한매일신보』의 언론활동ㆍ전국민적인 국채보상운동과 국내에서 최초로 공화주의를 표방한 비밀결사 신민회 등 계몽운동의 큰 줄기를 이루는 활동은 대부분 양기탁에 의해 주도되었다. 그 외에도 대한자강회ㆍ국문연구회ㆍ학회활동 등 그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었다. 그는 계몽운동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 전방위적인 활동을 전개했다. 1920년대 망명 이후에는 민족운동계의 신망 있는 원로로서 만주지역 독립운동 단체를 지도하며 통합운동을 이끌었다. 만주지역의 독립군 통합조직인 통군부ㆍ통의부ㆍ정의부의 결성은 그의 지도에 힘입은 바가 컸다. 1930년대에는 중국 관내로 이동하여 임시정부의 주석과 한국독립당의 이사장 등을 역임하며 정부를 중심으로 한 활동에 주력하였다. 그는 한말 계몽운동에서 시작하여 의열투쟁과 독립군 활동 그리고 독립운동 정당과 임시정부 활동 등 우리 독립운동사의 큰 줄기를 이룬 운동을 앞장서 이끈 선도자였다. 지은이: 김성민(金性玟) 국민대학교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ㆍ박사학위를 받았다. 국민대학교에 출강하였고 현재 국가보훈처에 근무하고 있다. 남궁억 남궁억은 대한제국기와 일제강점기에 공직자·언론인·교육자·종교인으로서 다양한 활동을 벌였으며, 지속적이고 열정적으로 민족정신을 일깨우기 위해 평생을 노력하였다. 그는 ‘개혁가’라기보다 ‘계몽가’였으며 명분과 실리, 현실과 이상, 보수와 진보 사이에서 고민하며 민족을 계몽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였던 ‘계몽실천가’였다. 또한 남궁억은 ‘삼천리’와 ‘무궁화’를 화두로 창가 보급과 무궁화 보급운동에 심혈을 기울여 무궁화 사랑이 곧 나라 사랑임을 몸소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는 철저하게 기독교 정신에 입각하여 몸소 실천한 독실한 신앙인이자 청렴하고 강직한 정치가, 자주독립과 국권회복을 위해 노력한 민족운동가, 민중을 계몽하고 바른 의식을 심어주기 위해 애쓴 언론인, 역사책을 비롯하여 많은 서체본을 남긴 저술가이자 작사가로서 조금의 게으름도 없이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사명을 다한 인물이다. 당시 수많은 민족운동가가 처음과는 달리 변절하고 부끄러운 삶 속에서 소리 없이 사라져갔다. 그렇지만 남궁억은 끝까지 자신의 지조를 굽히지 않고 민족과 교회를 위해 헌신하는 삶을 살았다. 남궁억은 우리가 기억해 두어야 할 이 시대의 참다운 지식인이자 스승이다. 이 책은 그러한 남궁억의 삶과 사상에 대해 알기 쉽게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지은이: 이순자(李順子) 숙명여자대학교 한국사학과를 나와 동대학원에서 석ㆍ박사 학위를 받았다. 문화재관리국에서 자료조사연구원으로 근무하였고, 현재는 사단법인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책임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으며, 숙명여대 역사문화학과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최익현 '내 목은 벨 수 있을지언정 머리털은 자를 수 없다'며 단발령을 질타한 매서운 어록, 대마도에 끌려가 순국한 고고한 충혼 등이 최익현을 상징하는 역사의 한 장면들이다. 또한 최익현은 개화와 외압으로 점철된 내우외환의 암울한 시대상황에서도 드높은 기상으로 강직하게 처신했던 선비형 위인이었다. 불의와 외압에 조금도 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맞선 최익현의 형상은 고난과 역경에 처했던 우리 민족에게 희망과 용기를 북돋아 주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신분과 이념, 계통을 떠나 전 민족에게 최익현의 이미지가 깊이 각인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설명 출처) 지은이: 박민영(朴敏泳) 인하대학교 역사교육과를 졸업하고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근현대사학회 편집이사와 광복60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 상임연구위원을 지냈으며, 그동안 인하대·단국대·국민대·상지대에 출강했다. 현재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선임연구위원으로 있으면서 충남대 외래강사, 국가보훈처 독립유공자 공적심사위원회 심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김도현 경북 영양 출신의 의병장이었던 벽산 김도현은 조선왕조 말기인 19세기 중엽에 태어나 일제 침략의 격변기를 살았다. 그는 이러한 격변 속에서 불굴의 정신으로 격렬한 의병투쟁을 전개하였지만, 끝내 국권회복의 염원을 가슴에 품은 채 스스로 목숨을 끊어 일제의 통치에 항거했던 비운의 선비이다. ( 설명 출처 ) 지은이:권대웅(權大雄) 영남대학교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문학석사·박사를 받았다. 1994년부터 현재까지 대경대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연구위원과 한국근현대사학회 대구·경북 지역 간사, 경상북도 문화재전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대위 대한인국민회 북미지방총회 총회장으로 활약한 이대위의 삶을 돌아본다. 드러나지 않는 지도자로서 미주 한인사회를 이끈 커다란 대들보인 그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다. 지은이: 최기영(崔起榮) 서강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한말 계몽운동과 독립운동사에 관심을 두고 있다. 한국근현대사학회와 한국사상사학회 회장을 역임하였고, 한국교회사연구소 연구실장을 거쳐 현재 서강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재임 중이다. 그 밖에 역사공간에서 출판한 역사책들 덕혜옹주 지은이: 혼마 야스코 울릉도와 독도, 그 역사적 검증 지은이: 송병기 근대북경의 한인사회와 민족운동 지은이: 손염홍 5월 18일, 광주 지은이: 김영택 상소문을 읽으면 조선이 보인다 지은이: 구자청 추신_ 출판사 블로그 자체에선 설명이 없거나 빼먹은 책이 있어서 많은것들을 따로 옮겨야써야했네요. 역사공간 블로그 자체에서 빼먹은 책들도 있으니 이 글에서도 빠진 책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
|
첫댓글 참다운 대한국인들 그 숭고한 뜻을 높이 기립니다.
오손도손 자연의 손을잡고 오색의 마음 푸른삶을 향해 자연의 벗이되어 즐겁고 유익한 시간이듯 항상 처음처럼 고운인연 이길 기원합니다.^*^
인생에서 가장 의미없이 보낸 날은 웃지 않고 보낸 날이다. - 커밍스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성현의 길따라...
행복이 함께하길 기원합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