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로겐 램프의 강렬한 빛을 받으며 날개를 핀 크리스털 조각은 분명 호투 잠자리였다. 좌우로 대칭을 이루며 펴진 투명한 네 개의 날개 속으로 마치 잎맥처럼 상감처리 된 금세공이 조명을 받으며 반짝이고 있었다. 잠자리 몸통은 연두색으로 시작하여 꼬리부분으로 내려가면서 점점 연해지는 파스텔 블루의 색조를 띠고 있었고, 지금이라도 장식장 유리문을 열어주면 투명한 날개를 푸드득 거리며 쇼핑 센터 밖의 호주의 푸른 가을 하늘을 가르며 날아갈 듯 한 형상이었다.
아내와 쇼핑하던 중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탈 전문점 쇼윈도우 앞에 선 나는 한참 동안 발이 떨어지질 않았다.
“당신 뭘 그렇게 뚫어지라고 보고 있어?”
“내 생일선물이라도 고르고 있는 중이야?”
아내의 생일 선물로 사기에는 가격표에 펜으로 작게 적어 놓은 숫자가 나에겐 너무도 컸다. 그것보다 크리스탈 잠자리는 잠시 나로 하여금 40 여 년 전 유년시절의 한 순간을 헤매게 만들었다.
아마도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이었을 것이다. 여름 철이 오면 요즘 아이들 같으면 동네 풀장으로 가거나 아니면 부모와 함께 멀리 떨어진 비치로 가서 물놀이를 즐겼을 것이다. 그러나 그 시절엔 풀장도 없거니와 자가용도 없었기에 동해나 서해안의 바닷가를 찾아간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시절이었다.
내가 살던 동네에서 한 30- 40 분 정도 걸어가면 커다란 연못이 있었다. 연못은 무슨 연유에선지 ‘이성길’이라는 사람 이름이 붙어 ‘이성길 연못’이라고 불렸다. 아마도 그 일대의 땅을 소유하고 있던 지주의 이름이고 그 연못도 이 씨의 소유지였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여지지 않았나 싶다.
아무튼 이성길 연못은 춘천에 사는 어린이들에게 일종의 자연 공원이었고 풀장이었다. 연못의 주위에는 논과 배추나 무를 심은 밭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사실 그것은 연못이 아니고 논에 물을 대기 위해 만들어놓은 작은 저수지였을 것이다. 개인 소유의 땅이었으면서도 이성길 연못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누구나 가서 즐길 수 있는 일종의 공공 유락지였다. 못의 바닥은 모래나 자갈이 아니고 검은 진흙이었고, 아이들이 수영을 하고 물장구를 치며 놀면 잠시 후 못의 물은 흙탕물로 변하곤 했다. 지금처럼 농약을 사용하던 시절이 아니라 그런지는 몰라도 그 주변에는 각종 곤충과 벌레, 미꾸라지나 피라미 같은 물고기들이 많았다.
잠자리만 해도 보통 잠자리부터 시작해서, 고추 잠자리, 실 잠자리, 호투 잠자리 등 그 종류가 다양했다. 그런데 그 중에서 아이들에게 가장 인기가 있었던 곤충은 바로 이 연못에만 가면 얼마든지 만날 수 있는 호투 잠자리였다. 물론 집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보통 잠자리보다 몸통이 크고 흑갈색, 연두색, 하늘색 등으로 채색된 화려한 모습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여름방학 과제 중 하나가 곤충 채집이었고, 우리들은 잠자리 채를 하나씩 사서 들고 수영도 하고 방학 숙제도 해결할 겸 자주 그 곳을 방문했다.
호투 잠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먼저 수놈 보다는 크기가 작은 암놈 한 마리를 잡는 것이 순서였다. 그렇게 포획된 암놈의 날개와 발에 호박꽃(그 일대에는 호박이 심어져 있었고 사방은 호박꽃 천지였다.) 수술에 묻어있는 노란색의 꽃가루를 잔뜩 묻혀 놓고, 준비한 실을 다리에 묶은 다음 천천히 날리는 것이었다. 그러면 호투잠자리 암놈은 실의 길이만큼 자유로워진 공간에서 수놈들을 부르기 시작한다. 보통 잠자리 보다 몸이 크고 모습이 화려하며 서서히 그러나 힘있게 나는 호투 잠자리의 모습은 정말 어린 마음을 설레게 하는 장관이었다. 잠시 후, 어디서 날아왔는지 알 수 없는 수놈 호투 잠자리들이 암놈의 주위를 선회하다가 그 중 한 마리가 갑자기 급강하 하면서 암놈의 몸에 달라붙는다. 잠자리 커플의 공중 곡예 같은 데이트가 시작된 것이다. 그러면 아이들은 모처럼 어렵게 주선한 랑데부가 깨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끈을 잡아 당겨 암놈에게 붙은 수놈을 (좀 잔인하기는 하지만) 떼어내는 것이었다. 이 잠자리 잡기에 능한 아이들은 손가락 사이 사이마다 훈장처럼 호투잠자리를 끼어 놓고 친구들에게 자랑을 했고, 나처럼 호투잠자리 사냥에 영 서툰 아이들은 열등감으로 내내 시달려야 했다.
이성길 연못에는 호투잠자리 외에도 우리들의 흥미를 끌던 동물들이 많았다. 개구리, 올챙이는 물론이고 날씨가 흐리고 비라도 쏟아질라치면 지천에 맹꽁이들이 나타나 마치 풍선 검을 불듯이 배를 부풀린 채 맹꽁대면서 그야말로 코믹하고 즐거운 구경거리를 우리들에게 제공해 주곤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신기한 놈은 물의 표면을 미끄러지듯이 스케이팅하는 소금쟁이들이었다.
연못 속에서 수영을 하며 노는 아이들은 아랑곳도 하지 않으면서 마치 물 위를 얼음 지치듯 짧은 직선을 그으며 이동하는 모습은 어린 나의 눈에도 너무나 신기하게 비쳤다. 소금쟁이는 1 초에 자신의 몸통 길이의 100 배 정도 거리를 이동할 수 있다고 한다. 도대체 소금쟁이는 물에 빠지지 않은 채로 어떻게 물 위를 저렇게 빠른 속도로 이동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어린 마음에 들었다. 최근에 과학자들은 소금쟁이가 가운데 다리로 물의 표면에 소용돌이를 일으켜서 그것을 추진력으로 삼아 앞으로 나간다는 것을 실험으로 입증했다. 그러나 우리들의 어린 마음엔 그것은 그냥 자연의 모습이었으며, 그 신비함 앞에서 함께 어울려 노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오스트리아 최고의 장인들이 크리스털을 정교하게 깎아 만든 호투 잠자리는 나의 시선을 받으며 유리장 속에서 무지개 빛을 발하고 있었다.
‘뭐해 빨리 오지 않고선’ 발길을 재촉하는 아내의 목소리가 멀리서 들렸다.
거의 동시에 내 앞에 하얀 장갑이 나타났다.
호주 점원의 손에는 키가 주어져 있었다. 그리고 조용히 내게 말했다.
“I can open it for you.”
“Please open it.”
내가 꿈결에서 말하듯이 말했다.
키가 부드럽게 돌아가고 유리장의 문이 열렸다.
그러자 크리스탈 호투잠자리의 날개가 푸드덕 소리를 내며 공기를 힘차게 찼다. 쇼핑 센터의 대형 윈도우를 통해 창공으로 날아가는 잠자리의 모습이 점점 작아졌다.
최무길 (문학동인 캥거루 회원)
[출처] 호투 잠자리|작성자 시드니 코리아타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