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주의 음악파는 낭만파음악의 한 지류이다. 19세기 민족주의운동이 꽃피기 시작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한 음악으로,작곡가가 명확한 의식을 가지고 민족 고유의 음악어법이나 제재를 사용함으로써 작품 속에 민족적인 감각의 양식을 창조하는 것을 말한다. 음악적인 특징의 하나는 독일·오스트리아의 기악과 이탈리아 오페라의 지배적인 영향으로부터 벗어나 자기 나라의 민족적 특색을 예술음악 속에 살리는 것이었다. 이는 음악의 시대구분이 아니라 사상적인 구획이며, 19세기의 국민주의음악은 낭만파음악의 한 지류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대두된 19세기의 민족주의 음악은 남만주의 음악에 크게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민족주의 작곡가들은 의도적으로 작품에다 민족의 고유한 느낌을 집어 넣거나 민속 노래와 춤을 사용해서 민속적 냄새가 나는 새로운 선율을 창조했다. 국민주의 음악의 대표적인 작곡가로는 러시아의 미하일 글린카(Mikhail Glinka)·니콜라이 림스키코르사코프(Nikolai Rimskii-Korsakov)·모데스트 무소륵스키(Modest Musorgskii),독일의 빌헬름 바그너(Willem Wagner),핀란드의 장 시벨리우스(Jean Sibelius),체코슬로바키아의 안토닌 드보르자크(Antonín Dvoř á k)·레오시 야나체크(Leoš Janà č ek)·베드르지흐 스메타나(Bedřich Smetana),스페인의 마누엘 데 파야(Manuel de Falla)등을 꼽을 수 있다. 대표적인 표제음악 중에서는 림스키 코르사코프의<러시아 부활절>서곡,시벨리우스의<핀란디아>,드보르자크의<슬라브 무곡>등이 예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음악에 자부심과 애정을 가지고 자의식이 아닌 민족의식을 표현하고자 노력하였으며 조국의 역사에 실재하였던 인물이나 전설적인 영웅들을 주제로 한 작품을 많이 썼다. 그러나 이후 국민주의는 점차로 쇠퇴하고,보다 절충적인 양식을 따르게 된 작곡가들은 다른 나라 민족성이나 이국적인 특색을 차용해오기에 이르렀다. <출처:김승일,‘클래식의 오해와 편견’,pp.246~247> <서양음악사100장면(2),pp.195~2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