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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 길
감사합니다. 자, 멀어 보이니까 가까이 가서 말씀하겠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려서 아시겠지만 여기 나온 사람이 지금 열렬히 증거한 문 아무개라는 사람입니다. 잘 보여요?
한민족을 배달민족이라고 하는 이유
실례지만 오늘 나를 처음 보는 사람들은 한번 손들어 보시자구요, 처음 보는 분들은. 「책에서 많이 봤어요」 뭐예요? 「책이요」 책에서 본 것이 본 것인가요? 책에서야 뭐 세계 사람들이 다 봤지요. 내 얼굴을 처음 보니까 소개해야 되겠기에 ‘나’라는 사람을 앞에서 약간 소개했어요. 이렇게 보면 한 남자에 지나지 않아요. 여기에 체구로 보나 혹은 얼굴 생김새로 보나 미남자들이 많으신데, 비교해 보고 ‘문총재도 못생겼지만 저만하면 남자 축에서 빠지지 않겠군’ 하고 평할 사람도 있을 거예요.
자, 말이 났으니, 이제는 내 차례니 말을 안 할 수 없다구요. 오늘 제목을 잡는다면…. 내가 할 말이 많습니다. 그걸 전부 펼쳐 가지고 얘기하려면 뭐…. 본래 말해 먹고 사는 사람입니다. 60평생 어디 가나 말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죄의 짐을 진 것같이 말을 안 하면 안 되는 책임 부서에서 몰리는 생활을 하며 말을 많이 한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역사가 굉장할 것 아니예요?
그래 처음 보는 분들 앞에 어떻게 얘기해야 될 것이냐? 제목을 잡는다면, 지금 한국 실정이라든가 세계 정세를 봐 가지고 실감날 수 있는 제목이 무엇이겠느냐 하면 말이예요, ‘우리가 살 길’입니다. ‘우리가 살 길’, 그 말은 내가 살고, 우리 가정이 살고, 더 나아가서는 우리 민족이 살고, 더 나아가서는 우리 나라가 살고, 우리 세계가 살 길입니다. 이것을 더 크게 보면 우리라는 말 가운데는 인간세계뿐만이 아니라, 신이 있단다면 신을 중심삼은 영계가 살 수 있는 길이 무엇이겠느냐? 제목이 얼마나 커요. ‘우리가 살 길’이라는 제목 한마디가 전체에게 긍(亘)하여 있다는 것입니다.
나는 한국 사람입니다. 고향이 평안북도 정주지만, 그곳도 한국 땅이예요. 나는 배달민족임에 틀림없어요. 배달민족 할 때, 왜 배달민족이라 했을까요? 내가 생각할 때 ‘아하! 배달민족이란 그 이름이 세계사적인 사명을 중심삼고 무엇인가 세계 앞에 배달하기 위한 사명이 있어서 배달민족이라 했구나!’ 하고 언제나 생각했습니다.
그러면 무엇을 배달해 주느냐 이거예요. 먹는 것을 배달해 주겠느냐? 배우는 것을 배달해 주겠느냐? 무엇을 배달해 주겠느냐? 그런 문제를 볼 때, 배달해 주려면 너나할것없이 제일 귀한 것을…. 참된 사람이 됐고, 위대한 사람이 됐고, 성인이 되었다면 그가 배달해 줄 수 있는 것은 역사적으로 가장 귀한 것을 배달해 줘야 됩니다. 그렇게 생각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걸 배달해 주는 데 있어서는 전세계, 현재 40억 인류가 살고 있는 전세계 앞에 무엇을 배달해 주겠느냐? 더 나아가서는 이 시대뿐만이 아니라, 사람은 살다가 가는데 후세를 남기고 가느니만큼 미래세계에 무엇을 배달해 줘야 되겠느냐? 이것이 배달민족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우리 한국 민족이 언제나 생각해야 할 중요한 문제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면 오늘날 한국이 세계 앞에 배달해 줄 것이 뭐 있어요? 현재 미국의 원조를 받지 않으면 국가 운명을 지탱할 수 없는 이런 입장에서 허덕이고 있는 신세임을 잘 알아요. 군사적인 면에서, 혹은 과학적인 면에서, 혹은 정치적인 면에서, 경제적인 면에서, 더 나아가서는 문화적인 면에서 세계 앞에 배달해 줄 것이 있겠느냐? 없다는 거예요.
사람은 변하지 않는 영원한 것을 좋아해
그러면 사람이 귀하다고 하는 것이 도대체 뭐냐? 사람이 귀하다고 하는 게 뭣 때문이냐? 여기 부인네들 많이 오셨구만. 부인네들은 무엇을 좋아하시느냐 하면 말이예요, 다이아몬드를 좋아합니다. 다이아몬드는 밤에 빛나는 야광빛을 가졌고, 이것은 또 굳기에 있어서 그 누구도 침해할 수 없다구요. 풍화작용이 아무리 강하다 하더라도 다이아몬드를 풍화시킬 수 없는 그런 강함을 가졌습니다. 그 강함에 있어서는 그 어떤 무엇이 변경시킬 수 없는 힘을 갖고 있다 이거예요. 그것은 무엇을 말하느냐 하면, 변할 수 없는 불변적인 모습을 가진 물건이라야 보물이 된다 그 말이예요. 변하는 것은 싫어해요.
자고로 우리의 선조들이 말하지 않았어요? ‘산색(山色)은 고금동(古今同)이요, 인심(人心)은 조석변(朝夕變)이다’라고. ‘산색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같은데, 사람의 마음은 아침 저녁으로 변한다’ 그렇게 말한 것이 오늘날 우리 사회에 있어서의 지침으로 귀감이 되어 가지고 역사적인 교훈의 화제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변하는 것을 싫어해 왔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이것은 변하는 인간을 자탄한 솔직한 고백이 아니냐. 자고로 모든 인간들은 변해 왔다는 거예요.
현재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변하는 사람은 싫어해요. 변하는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 있어요? 여러분의 가정에서도 부부끼리 생활하는 데 있어서 말이예요, 부인들이 언제나 남편을 주시해 보는 것이 뭐냐 하면, ‘그 남편이 변하지 않나? 두 마음을 갖고 꼬리치지 않나?’ 하는 걸 주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무엇을 말하느냐 하면 말이예요, 가냘픈 부녀자들도 변하는 것을 싫어한다는 것입니다.
보편적으로 여성들도…. 내 미안합니다, 여성분들. 보편적으로 남자와 여자를 비교해서 말하게 될 때에, 변하기 쉬운 편이 남자편이냐, 여자편이냐? 어디예요? 자, 우리 남자 여자 다 만났고, 다 드러내고 다 아는 판인데 뭐 숨길 것 있어요? 솔직이 다 털어놓고 얘기하지요. 내가 오늘 저녁에 여기서 여러분한테 얘기하는 것은, 나를 만난 것은 처음이예요. 어쩌다 저쩌다 팔자가 사나운지, 신수가 좋은지 모르게 승공연합 통지부장에 임명을 받다 보니 여기에 와서 나를 만나 말을 듣고 있는 신세예요. 어쩌다 저쩌다 부처끼리 만난 거라구요.
여러분들이 여기 올 때, ‘아, 나는 리틀엔젤스에 가서 손해를 보고 말이야, 내가 변하는 데 있어서 나쁜 면으로 변하는 것은 싫어. 그러나 좋은 면으로 변하는 것은 좋아’ 하고 왔을 겁니다. 그런데 알쏭달쏭하니 어떤 것을 골라잡겠나 이거예요. 위에서 보면 새까맣고, 아래에서 보면 하얗고, 가운데서 보면 얼룩덜룩하니 어떤 걸 취하겠어요? 이런 모든 등등의 문제들을 전부 다 가려야 된다 이거예요.
그래서 여자의 마음은 변하기 쉽다고 하는 겁니다. 그런데 그 여자들이 왜 다이아몬드를 사랑하느냐 이거예요. 변할 수 있는 여자의 본성의 마음 가운데는 변하지 않는 것을 바라는 본질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본질적 가치의 결과적인 존재를 찾아 만난 것이 다이아몬드예요. 그래서 변하지 않는 다이아몬드가 보석이 된 것이다 이거예요.
다이아몬드는 변하지 않아요. 밤이나 낮이나 변하지 않아요. 위로 가나 아래로 가나 변하지 않아요. 동서고금의 역사적 변천이 아무리 심하다 하더라도 그것을 넘나들고 본의의 불변의 모습을 당당히 지닐 수 있는 특권을 가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변하기 쉬운 우리 여성님네들도 다이아몬드를 좋아한다는 거예요. 우리 본심이 그렇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여자들? 가만히 보니까 환경이 어긋났거든요. 그래 ‘아이고, 말하지 않을 것을 또 했구나! 아이구, 안 할 것 했구만’ 한다는 겁니다. 자기가 가야 할 본성의 마음의 방향과는 달리 그릇된, 어긋난 자리를 자인하게 될 때는 머리를 쥐면서 자책하는 그런 모습들을 우리 일상생활에서 많이 보는 것입니다. 여자라고 하더라도 본심의 마음은 변치 않는 가치적 세계를 추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는 거예요.
보물을 좋아하는 건 자기도 불변하기를 바란다는 걸 시인하는 것
그러니 귀한 것, 대한민국 배달민족이 세계에다 가장 귀한 것을 주려면 무엇을 줘야 되겠느냐? 그것이 무엇이냐? 주는 데 있어서 일본 사람이 ‘일본 사람과 대한민국 사람은 역사적으로 원수야. 그래서 한국 사람을 제일 싫어하니 한국 사람에게 받을 것이 없어! 나 싫다’고 해서는 안 되는 거예요. 미국 사람이 지금 대한민국 보기를 우습게 보고 있어요. 이 약지 손가락만큼도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주는 것 우린 싫어. 우리 다 갖고 있으니 필요 없어’ 하는 입장에 서 있는 미국에 주게 될 때, 무엇이든지 고개를 흔들게 되어 있는데 무엇을 줄 거예요? 그러나 보물만은 좋아한다는 겁니다. 아무리 미국 사람이고 허우대가 좋다고 하더라도 보물만은 좋아합니다. 안 그래요? 다이아몬드를 주게 되면 미국 사람도 ‘하아!’ 하며 고맙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이아몬드 이야기가 나왔으니 이제 변하지 않는 황금 이야기를 하지요. 여러분, 금덩이 다 좋아하지요? 부인네들 전부 다 손가락에 끼고 산다구요. 그래서 내가 요즘에 우리 사람들보고 얘기하기를, 여자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 하면, 실례입니다만 ‘끼워 살고, 달랑달랑 달려 살고, 목에 걸려 사는 것이 여자야’라고 얘기했습니다. 그거 일리가 있어요. 달려 사는 데는 무엇에 달려 사느냐? 다이아몬드예요. 그것은 여자들에게 있어서 호기심을 끄는 거예요. ‘아! 그 귀걸이, 그 목걸이 좋은데…’ 하는 거예요. 변하는 게 아니예요. ‘야, 거 좋은데’ 전부 그러는 것은 보물인 것입니다.
그러면 금반지는 왜 끼어요? ‘난 변치 않는 표적을 가졌으니, 내 마음이 좋아하니 나는 변치 않는 사람이다’라고 시인하는 거예요. 어, 자꾸 웃지 마소. 내가 같이 웃다가 말을 못 하면 되겠소?
자, 이제 한 잔 먹고 합시다. 나이 많아서 이야기를 하려니까 자꾸 침이 마른다구요. 내가 원래는 얘기를 잘하는 사람인데…. 그렇다고 뭐 이렇게 많은 청중 때문에 떨려서 그러지 않아요. 용서하세요. 용서하시겠어요? 이거 부녀국장께서 준비를 잘못해 놨구만요. 좀 가까운 데 갖다 놓지 않고….
무엇을 시인한다구요? 나는 변할 수 있는 사람? 이렇게 가까이 와서 얘기해야 재미나지, 앞에 보니까 졸더라구요. 그래서 내 여기에 뛰쳐나온 거요. 앞에 있으면 잘 안 보이니까 졸거든요. 앞에가 열심히 들어야 뒤에도 듣지요. 그래 뭣을 시인하기 위해서라구요? 나도 이와 같이 변치 않는 가치가 되기 위한 증거적 표식을 가졌다는 것을 시인하기 위해서입니다. 이제 문총재의 말을 잊지 말라는 겁니다, 반지 낄 적마다, 귀걸이 할 적마다, 목걸이 할 적마다. 그건 남자에게는 필요 없어요. 여자들이 변해서는 안 되기 때문에….
자, 황금을 좋아하는데, 황금이 뭔데 좋아해요? 황금은, 24금 같은 것은, 내 손톱으로—내 손톱이 단단해요. 여자 손톱도 단단한지 모르겠지만—이렇게 딱 에이(A) 자를 쓰면 에이 자가 써져요. 그런데 그게 왜 보물이야? 무엇이 보물이냐 이거예요. 왜 귀하다 하느냐? 그것은 누런빛, 천년 역사 동안 암흑의 구덩이에 사장(死葬)을 해 버려도 그 빛은 점령할 수 없는 거예요. 안 그래요? 고분 같은 데서 나오는 금관 같은 것도 아무리 지옥 같은 땅속에서도, 시체가 썩어진 물이 흘러 녹슬 수 있는 천만부당한 환경권 내에서도 그것을 다 무찌르고 본연의 자세를 갖추어 영원히 표준으로 존속할 수 있기 때문에, 그 황금을 귀하다고 하는 거예요. 안 그래요?
또, 그다음에 진주가 뭐 좋아요? 진주는 가만히 훑어 보면 다 닳아지는 거예요. 그런데 왜 좋으냐? 진주는 빛인데 무슨 빛이냐? 화합하는 빛에 있어서 그 어떠한 물건도 따라가지 못하는, 영원히 화합하는 빛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 빛을 아무리 깎고 깎고 깎아 다 없어질 때까지 깎아도, 가운데 핵만 남겨 놓고 보더라도 그 빛은 변함이 없는 빛이라는 거예요. 어떤 힘이나 어떤 어려운 환경에 치우침 없이 그 화합하는 빛은 변할 수 없기 때문에, 이것을 보물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세계에서 가장 귀한 것이 무엇이냐? 찾아 들어가자구요. 세계에서 가장 귀한 것은 변하지 않는 것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그러면서 특이한 성질을 지녀야 돼요. 그것만이 갖고 있는 특성, 유일적인 성격을 갖춰야 됩니다. 그러면서 영원해야 돼요. 다이아몬드는 굳은 데 있어서 유일입니다. 그 어느 것도 그 자리를 빼앗을 것이 없습니다. 절대적입니다. 그다음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면서 영원하다는 겁니다.
사람이 가장 귀한 건 존재물들이 하나의 표준으로 삼기 때문
자, 그럴 수 있는 귀한 것을 추려 볼 때에, 인생살이 가운데 있어서 가장 귀한 것이 뭐냐? 보물과 사람과 비교하면, 어떤 것이 더 귀할까요? 그것은 물어 볼 것도 없이 사람이 귀하다는 거예요. ‘만물지중(萬物之衆)에 유인(惟人)이 최귀(最貴)라’ 했습니다. 사람이 가장 귀합니다. 사람이 가장 귀하다 할 수 있는 그 귀함의 본질이 뭐냐? 이렇게 말하게 될 때, 사람의 눈, 코, 입, 팔, 다리? 이것은 동물도 다 갖고 있어요. 곤충을 보더라도 눈이 복눈이 되어 가지고 수백 개의 눈이 껌벅껌벅 안 하고 가만히 버티고 춘하추동, 사계절을 혼자 들여다볼 수 있으니 얼마나 자랑할 만해요. 그러나 사람은 깜박깜박하고 있어요. 그러니 자랑할 것이 없다구요. 코니 무엇이니 자랑할 것이 없다 이거예요. 뛰기를 말만큼 뛰어요, 힘이 세기가 사자만큼 세요, 냄새 맡기를 사냥개만큼 맡을 줄 알아요? 모든 것을 비교해 봐도 자랑할 게 없다구요.
그런데 왜 사람이 귀하다고 했느냐? 사람이 귀하다는 것은 역사적인 모든 존재물들이 하나의 표준으로 삼고 전체가 소망으로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라는 거예요. 보석이면 보석 전부 다…. 보석은 역사시대의 어떠한 사람이라도 그것을 바라보는 표준이 돼 있다는 거예요.
그러면 인간이 그런 보물보다 귀하다는 그 가치가 뭐냐? 변하지 않을 수 있는 그 뭣이 있느냐? 그게 문제예요. 있어요? 보라구요. 사람을 볼 때 ‘나’라는 사람을 가만히 보면 이중구조로 되어 있어요, 이중구조로. 몸과 마음으로 돼 있습니다. 그 몸과 마음이 화합을 해 가지고 서로서로 하나되어 있어요, 몸과 마음이 싸워요? 이 문제는 지극히 난 문제로서 역사적으로 생각하는 모든 사람들이 해결의 최대의 초점으로 삼고 해결하려고 했지만 해결을 하지 못한 역사적인 유산물인 것입니다.
헤겔 같은 사람도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심 고심하다가 보니, 우리 인간의 양심을 헤치고 들어가 보니 양심 자체에 모순성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모순성을 중심삼아 가지고, 몸과 마음을 중심한 투쟁적인 환경에서 고민한 끝에 변증법이라는 것을 주장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볼 때, 사람의 몸과 마음이 언제 하나됐느냐? 역사를 통해 묻게 될 때, 인류문화사의 발전이 20세기의 문명을 창건한 시점에 있어서 아직까지 사람의 몸과 마음이 완전히 하나된 평화의 경지를 가졌다 하는 사람은 못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이 신이 있다면 그러한 사람을 만들 수는 없다는 결론을 지을 수 있고, 재빨리 신이 없다는 결론을 지을 수 있는 미궁의 본점이 되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양심은 마음이 하자는 대로 몸이 안 하면 브레이크를 걸어
그러면 우리는 배달민족으로서 백의민족이라고 하는데, 백의는 평화를 상징하고 최후의 승리의 권한을 상징합니다. 여러분은 영계에 대해서 잘 모르지요? 아이구, 그저 이 땅에 태어나 가지고 소년시절을 거쳐 시집 장가 잘 가야 되고, 시집 장가 잘 가면 아들딸 잘 낳아 가지고 공부를 잘 시켜야 되고, 동네 방네 요사스런 치맛바람을 피우더라도 상관없이 내 아들딸 공부만 잘 시키면 그만이다는 패가 있습니다. ‘출세해야 돼, 취직을 잘해서 돈벌이를 잘해야 돼, 어머니 아버지를 봉양해야 돼’ 하는 그것이 배달민족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배달민족이라는 본의의 뜻에 합당할 수 있는, 우리 민족의 본심의 소원으로 출발하던 그때의 그 본심을 오늘날 우리가 지녀 가지고 세계에 가치 있는 나를 나누어 주겠다고, 그 무엇을 귀하게 주겠다고 할 수 있는 내가 되어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닐 수 없다는 것입니다.
보라구요. 번번이 그래요. 깊은 밤에 잠을 자다가 밤 열두 시가 넘어 한 시가 되었는데, 깜짝 놀라 눈을 떠 가지고는 정신없이 생각하기를 ‘아이구, 지금 내가 어디를 가 가지고 강도질을 할 것인데…’ 반정신이 돼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되면 반드시 마음은 ‘이놈아, 안 된다!’라고 브레이크를 건다구요. 거 왜 브레이크를 걸어야 돼요? 무슨 상관이 있어서 브레이크 걸어야 돼요? 그거 생각해 봤어요? 내가 말씀할 목적과는 멀지만 잘 들으라구요. 물이 대해로 나가기 위해서는 저 산꼭대기의 골짜기로부터 지류를 향해서 흘러가는 겁니다. 그래서 그 물은 대해로 들어가는 입문이라 할 수 있는 큰 강줄기와 합하게 됩니다. 이 산에서 흐르는 물은 동쪽에서 남쪽으로 흐르는데, 저 산꼭대기의 물은 남쪽에서부터 동쪽으로 흐르는 물이 있다구요. 그러면서 흘러가는 거예요.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면서, 부딪치면서 제멋대로 흘러가는 거예요. 그러나 흐름을 따라 가지고 가면 대해로 들어가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 인간이 하나의 참다운 가치의 세계로 찾아가는 모습은 물줄기와 같은 것입니다. 어떠한 민족은 우리는 이렇게 가야 바르게 간다고 하지만 그건 반대로 가고 있는 겁니다. 어떤 민족은 너희들이 틀렸다고 하면서 또 반대로 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수천 수만의 민족문화의 배경이 다르니만큼 동서사방에 있어서 방향을 달리해 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걸 그냥 내버려두면 큰일난다는 거예요. 그러나 마음이라는 무엇이 있어 가지고 ‘야, 네 맘대로 가서는 안 돼. 가려면 이리 가야 돼, 이리 가야 돼, 이리 가야 돼’라고 브레이크를 건다는 거예요. 그게 무슨 연고로 그러는 거예요? 이것은 철학세계에서 큰 문제가 되는 겁니다.
브레이크를 왜 걸어요? 그것은 뗄래야 뗄 수 없는 상관관계의 입장에 있다는 거예요. 수천 년 동안 역사가 발전하고, 시대가 아무리 비약하고, 문화세계가 온다 하더라도 양심은 마음을 통해서 마음이 하자는 대로 안 하게 될 때는 언제나 브레이크를 걸 것입니다. 그런데 브레이크를 거는 마음을 굴복시켜 가지고 오늘날 인간세계의 사람들은 자기 멋대로 했다는 거예요.
본심이 원하는 삶의 자리에 서려면 생각이 하나여야 돼
그러면 여기에서 자기를 중심삼고 볼 때, 내가 선한 사람이냐? 승공연합의 통지부장들은 그래도 동네에서 선하다고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지부장이라는 간판을 붙이고 나왔을 것이 아니예요? 그래, 선해요? 악하다고 하면 기분 나빠할 겁니다. ‘문총재라는 사람, 처음 만난 사람들을 보고 다짜고짜 욕만 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인사했는지 안 했는지 나는 졸아서 듣지도 못했는데, 저렇게 무시하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라고 할 겁니다. 좋다는 거예요. 그거 그럴 성싶어요, 나도 그럴 텐데.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문제가 되는 것이….
우리들의 살길, 여러분들이 지금 살고 있긴 있지만 이와 같은 것을 중심삼고 볼 때, 내가 살고 있는 생활이 우리의 본심이 원할 수 있는 삶의 자리에 섰느냐? 못 서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돼요. 이건 부정할 수 없다는 거예요. 아무리 학박사고, 아무리 세상에 뭐라 하더라도 마찬가지의 공식권 내의 공통분모의 자리에 서 있어요.
하나님이 있다면 그가 생각하는 것은 하나여야 됩니다. 절대적인 하나님이 추구하는 이상이 있다면 그건 둘일 수 없습니다. 절대적이어야 돼요. 보물인 황금도 변치 않는 절대적인 하나의 빛깔을 가지고 가치를 나타내는 것과 같이 생존하는 하나님도 인격적 신으로서 하나님 자체에 마음이 있어서 생각하는 것이 둘이면 안 된다는 거예요. 혼돈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랬다 저랬다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인간 조상이 생겨나기 전에 그러한 분이 있었다면 ‘그분이 지으신 인간이 어떻게 되어서 이랬다저랬다하는 사람이 됐소?’ 이렇게 묻는다면, 종교세계는 인간이 고장났기 때문에 그렇다는 결론을 안 내릴 수 없습니다. 고장났다 이겁니다. 그래서 수리공장이 필요하다 이겁니다. 수리공장과 같은 도장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인류역사는 이와 같은 수리공장을 세계적으로 만들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수리공장에서는 마음을 기본으로 하여 가지고 몸뚱이들이 틀린 것을 브레이크 걸어 가지고 마음이 하자는 대로 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마음과 영원히 하나되고, 마음의 이상과 언제나 박자를 맞출 수 있는 인간 완성의 표준을 가져 가지고 수리공장을 차려 놓아야 된다는 겁니다.
그러면 인류역사 가운데 수리공장의 흔적이 뭐냐 이거예요. 그것이 종교라는 거예요, 종교. 아시겠어요? 이렇게 하면 쑥 들어올 겁니다. 그럼 종교가 도대체 뭐냐? 완전함에 미치지 못한 인간 자체가 완전함에 미칠 수 있으려면 하나의 도구를 필요로 하는데, 그 도구를 전시한 도장이 종교입니다. 이렇게 보는 거예요.
오늘날 세계문화는 4대 문화권으로 돼 있습니다. 유불선을 중심삼은 극동문화권, 힌두교를 중심삼은 인도문화권, 그다음 이슬람교를 중심삼은 아랍문화권, 기독교를 중심삼은 선진국가의 서구문화권이 있습니다. 이 모든 문명권은 전부 다 종교문명권입니다. 오늘날 40억 인류 가운데 70퍼센트가 종교권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세계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철학 가지고는 안 됩니다. 철학 사상 가지고 안 되는 것입니다.
철학과 종교
그러면 철학이란 뭐냐? 정의를 내리면, 철학은 참된 인간이 무엇이냐는 것을 알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아무리 봐도 내가 내가 아닙니다. 나는 제2의 존재예요. 결과적 존재지, 원인적 존재가 아닙니다. 내가 결과적 존재라는 것을 알았으니 원인적 존재가 무엇인가 하는 것을 묻게 될 때, 이건 기필코 절대적인 신에 귀일하는 거예요. 그래서 신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 문제예요.
오늘날 인류가 자신의 가치를 추구하기 전에 제1의 원인 되는 하나님에 대한, 인격적 신에 대한 내정을 현실 생활권 내에 전개시킬 수 있는 그러한 무엇을 발견하지 못하는 한 결과적 존재가 이상적으로 완전해질 수 없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좀 어려워요.
그렇기 때문에 모든 사람은 철학의 길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내 문제의 완결을 추구하는 반면에, 내가 제1의 존재가 못 되고 제2의 존재의 입장에 있으니 제1의 존재의 규명을 위해서 생각이 있는 사람들은 철학이라는 과정을 통해 가지고 전부 연구해 나가는 거예요. 그것을 역사를 통해서 수천 년 동안 연구해 나왔지만 실패작입니다. 전부 다 몰락했습니다.
중세에는 유신론을 중심삼고 하나님을 제일주의로 삼던 그것이 희미했기 때문에 인본주의로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인본주의를 중심삼은 계몽사조를 거쳐 가지고 이분화되어 하나는 공산주의의 유물사관으로 떨어져 나갔고, 하나는 민주주의의 유심사관으로 떨어져 나갔습니다.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 양대 사조로 분립되어 가지고 세계 인류를 품고 흘러 나오고 있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철학이 하나님이 어떻다는 것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철학은 하나님을 규명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사상이라는 명제를 걸어 놓고 신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철학을 통해 허덕이던 역사적인 지도자들은 전부 다 실패작으로 끝났습니다. 거기에 반해서 종교라는 것은 무엇이냐? 종교와 철학이 갈림길에 있습니다. 철학은 종교를 통해서 신을 찾아 나가는 길이요, 종교는 신을 만나 가지고 신과 더불어 살자는 것입니다. 다르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철학의 인식론을 통해서 인간을 해명했다 하더라도 정적인 인격의 신과 어떻게 관계를 맺느냐 하는 데는 논법이 없습니다. 생활의 기반이 될 수 있는 정적인 결착점을 어떻게 얻느냐 하는 문제는 철학을 통해서는 불가능하다는 거예요.
종교는 무엇이냐? 직관을 통해 가지고, 영적인 체험을 통해 가지고 대면해서 하나님과 더불어 같이 살자는 거예요. 하나님과 같이 사는 데는, 하나님과 같은 개인이 되고, 하나님과 같은 가정을 이루고, 하나님과 같은 민족을 이루고, 하나님과 같은 국가, 하나님과 같은 세계를 이루어 가지고 세인완성(世人完成)하여 우주로 전진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종교라는 거예요.
그러면 오늘날 레버런 문 같은 종교 지도자가 왜 세계적인 문제를 일으키고 이런 요란한 일을 하느냐 이거예요. 다른 종교 지도자들은 신과 더불어 살 수 있는 세계적 방향을 해결 못 했습니다. 보라구요. 기독교가 지금 세속화됐고, 불교가 세속화됐고, 모슬렘과 힌두교가 세속화됐고, 세계의 모든 종교들이 전부 다 세속화됐습니다. 이제 그런 종교와 그런 종교를 신앙하는 사람을 통해서는, 세계에 있어서 단 하나의 이상적인 종교의 형태를 갖추어 절대적 신의 이상권을 가지고 생활완성과 국가완성, 세계완성을 할 수 있는 길을 찾을 도리가 없습니다. 그것은 이미 실험이 다 끝났습니다. 실패작으로 끝났다는 거예요.
종교의 힘과 인간의 욕망
이렇게 볼 때에, 여러분, 오늘날 우리 양심을 두고 볼 때, 양심 자체가…. 몸과 마음이 왜 하나 못 되었느냐 이거예요. 몸과 마음이 언제나 하나되어 가지고 서로 의논하여 모든 것을 잘 알고 상충되지 않게끔 됐으면 좋았을 텐데, 이것이 왜 하나되지 못했느냐? 이게 큰 문제입니다. 하나되지 못한 인간을 뿌렸어요. 몸과 마음이 싸우고 하나되지 못한 인간을 뿌려 놨다 이거예요. 대한민국 사람이 아무리 잘났다 하더라도 이 싸움을 평정시켜 가지고 통일된 자리에 선 사람이 있었느냐? 내 인격의 완전한 터전 위에서 신을 대해 가지고 부끄럼이 없는, 그와 나와의 상관관계에서 무엇이든 대할 수 있다 하는 사람이 있었느냐?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인류의 갈 길을 배후에서 전부 다 수습해 놓은 것이 무엇이냐? 마음세계와 같은 이면에 있어 가지고 종교가 언제든지, 어느 시대에 있어서든지 부패하는 사회의 병폐를 고쳐 나왔습니다. 그걸 알아야 돼요. 종교는 육적인 세계와 연결되어 가지고 양심이 몸뚱이를 브레이크 걸듯이 몸뚱이와 같은 이 세계를 브레이크 걸었다는 것입니다. 종교는 역사시대에 있어서 피폐한 인간상 혹은 문화의 행로가 다를 때는 브레이크를 걸어 가지고 성인의 마음과 같은 판도로 연결시키는 크나큰 놀음을 했다는 거예요. 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돼요. 이게 위대하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인류역사를 바라보면서 소원할 수 있는 하나의 소원이 있다면, 오늘날 세계의 모든 종교를 통합할 수 있는 하나의 종교가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 종교가 나와 가지고 하나의 세계, 불변의 가치의 세계로, 보물과 같은 가치의 세계로 인도할 수 있다면, 그 종교는 인간만이 바라는 종교가 아닙니다. 그 길은 신이 있다면 신도 바라는 길입니다. 그곳은 신이 있다면 신이 가서 정착하고 싶은 곳입니다. 우리 인간은 신과 인간이 합해 가지고 신의 절대적인 완전과 나의 상대적인 완전을 중심삼고 대등한 자리에 서서 하나님과 속삭일 수 있는 권위를 갖기를 바라는 욕망이 있어요. 이것은 놀라운 사실입니다.
아무리 생기기를 제멋대로 생긴 남성이라 하더라도, ‘저런 사람한테 무슨 욕심이 있을까’ 하고 생각해도 물어 보면 그 사람의 욕심은 더 두껍고, 더 크더라 이거예요. 아무리 병신같이 생긴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 사람의 욕망이라는 것은 우주를 다 주더라도 만족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러면 인간이 완성할 수 있는 최고의 기준이 어떤 자리냐? 어떤 배포를 가졌기에 그런 욕망을 갖고 있느냐? 인간은 최고를 원합니다. 여러분도 다 최고를 원하지요? 사람의 욕망은 최고, 최고, 최고, 최고…. 이러면서 나오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역사는 어떻게 될 것이냐? 인간은 보다 가치 있는 것을 환영할 수 있고, 모실 수 있는 본질을 갖고 있으므로 좋을 수 있는 곳에는 흡수되려고 하는 거예요. 안 그래요, 여러분들?
오늘 여기에 와 가지고 처음 만난 레버런 문의 말씀을 듣게 될 때, 그 말씀을 듣고 좋을 수 있는 내용 같으면 흡수하지 말래도 흡수합니다. 마음 보따리를 대번에 바꿔친다는 겁니다. 신속하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올바른 마음만 내놓으면, 수천 년 동안 작동을 안 하던, 미완성에서 허덕이던 인간을 순식간에 마음을 통해 가지고 교육만 하면 벌컥 뒤집어진다는 겁니다. 종교는 이러한 위대한 힘이 있다는 거예요. 종교의 힘은 무서운 겁니다.
통일교회가 세상과 다른 것은 잼대가 다르기 때문
자, 통일교회를 지도하는 레버런 문이 뭐냐? 몸뚱이가 하나 아니예요? 별것 없다구요. 얼굴을 보면 네 가지이고, 구멍수로 보면 일곱 구멍이예요. 여러분과 마찬가지예요. 뭐 밥을 먹는 데도 하루에 다섯 끼 먹는 것이 아니라구요. 여러분과 다 마찬가지예요. 사는 것도 마찬가지고, 웃는 것도 마찬가지고, 다 마찬가지인데 뭐가 다르냐? 잼대가 달라요, 잼대가. 잼대가 다르다는 거예요.
여러분들은 1밀리를 중심삼고 ‘아, 이게 제일이다. 여기에 맞추자’ 하고 노력하고 있다면, 우리 같은 사람은 1밀리 조금 더 큰, 몇 밀리 할까요? 2밀리 할까요? 한 1센티쯤 될 거예요. 1센티와 같이 되려면 제멋대로는 될 수 없어요. 1밀리를 열 번 분등해야만 완전히 하나되는 거예요. 그래야 시작 때부터 과정까지 완전히 하나될 수 있지, 이것을 여섯 토막으로 해 가지고는 안 된다는 거예요. 그러한 모든 단위와 공식을 통해 가지고 모든 우주의 질서는 형성되는 거예요.
오늘날 과학문명이, 과학이 이렇게 발달된 현대문명이 어디에 서 있느냐? 공식(公式) 위에 서 있어요. 그 공식이 뭐냐? 원형에 맞추면 무엇이든지 맞아떨어지는 거예요. 갑이나 을이나 병이나 할것없이 누구나 다 좋아합니다. 과거 사람이나 현재 사람이나 미래 사람이나 다 부정할 수 없는 거예요.
그러면 ‘문총재 당신은 오늘날 세계적으로 무슨 문제를 일으키고, 뭐 어떻고 어떻고 하는 방대한 놀음을 하고 다닌다는데, 그것이 어떻게 가능하냐?’ 할 거예요. 그거 궁금하지요? 「예」 잘난 사람도 밤에 갖다 주면 눈을 뜨고 ‘어, 내가 원하던 거야’ 하고, 그다음에는 아침에 출근 시간이 바빠 가지고 세수하는 교수님 앞에 갖다 주면 세수도 집어치우고 ‘어, 내가 원하던 거야!’ 할 수 있는 게 없겠느냐? 그다음엔 아침 먹을 때 심각하지요? 아침 먹을 때 갖다 주면 ‘어, 내가 원하던 거야’ 하고, 점심 먹을 때 갖다 줘도 '아, 내가 원하던 거야. 아이고 내가 원하던 거야' 하고, 공부할 때도 ‘내가 원하는 거야’ 하고, 부처끼리 싸우는 자리에서도 ‘아이고, 우리 둘이 원하던 거야’ 할 수 있는 공통분모를 지닌, 변치 않는 최고의 것이 없겠느냐 이거예요.
그런 문제를 두고 인간생활에 있어서, 인류역사 생활관에 있어서 피땀을 흘리고, 욕을 먹고, 반대받고, 몰리고, 쫓기면서 부딪치는 겁니다. 별의별 사람들이 다 와서 나와 부딪쳤지만 내가 깨지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들이 나한테 흡수되지 않으면 깨져 나가더라 이거예요. 태풍이 불어오고, 폭풍우가 불어오고, 아무리 변화무쌍한 환경, 극난(極難)한 경지에까지 나를 몰아치더라도 ‘가자!’ 하며 전진하게 되면 그것이 밀려 가고 깨져 나가지, 내가 깨질 수 없다, 그럴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부딪쳐 가지고 지고도 ‘좋아!’ 지고도 ‘나 원합니다’ 할 수 있는 그런 것만 발견된다면 세계가 좋아하고, 무엇이든 좋아하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겠어요?
자, 그렇게 생각하면 세상에 둘도 없는 망상가입니다. 여러분, 문총재라는 사람이 이렇게 생겼다구요. 세상에 둘도 없는 망상가입니다. 망상가 좋아해요? 또, 공상가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뭐라고 할까요? 몽유병자입니다. 지금까지 그런 취급을 받아왔다구요. 대한민국 사람들이나, 여기에 온 사람들이 전부 다 문총재라는 사람 좋아했어요? 오늘 여기 오다 보니 리틀엔젤스회관이라는 거예요. ‘그래 이 리틀엔젤스 어떤 곳이야? 아이고, 문총재가 전부 다 지은 곳인데, 이런 것도 지을 수 있고…. 난 나쁜 줄로만 알았더니 뭐 괜찮은데’ 그랬을 거라구요.
기성교회로 말하게 된다면 말이예요, 귀로 듣게 되면 아이고, 이 귀로 나갈까 무서워서 ‘돌아 나가’ 이럴 거라구요. 오른쪽으로 들어왔으면 ‘여기 못 가’ 하면서 귀를 꽉 막고, 눈을 막고 ‘나가!’ 그렇게 반대했다구요. 눈을 막고 반대하고, 코를 막고 반대하고, 입을 막고 반대했다는 거예요.
그래도 여기 누나, 형님, 동생 같은 양반들! 나에게 형님 되는 사람은 많지 않구만. 내 아들이 40이 넘었는데, 여기 보게 되면 지부장 하겠다는 양반들 중에 그 유(類)의 사람이 많구만. 내가 반말로 하더라도 어른 대접 해야 할, 무시 못 할 입장에 서 있는데….
진짜는 둘이 될 수 없어
보라구요. 진짜는 둘이 없어요. 진짜가 둘이 있어요? 여러분 진짜예요, 가짜예요? 「진짜입니다」 진짜요, 가짜요? 「진짜요」 진짜냐, 가짜냐를 말하게 되면 가짜예요. 왜? 몸과 마음이 달라요. 안팎이 달라요. 그런데 진짜예요? 지금까지 얘기를 했는데, 그것도 모르고 앉아 가지고 ‘진짜요’ 이러니 앞으로 할 얘기를 어떻게 알아듣겠소? 답답합니다.
자, 이렇게 딱 금을 그어 놓고, 가짜라고 낙인을 딱 찍어 놓고서 진짜 놀음을 해야 배우지요. 진짜라고 하면 반발하는 거예요. 플러스 플러스끼리는 반발하는 거예요. 미안합니다. 나는 그런 사람이요. 일본 사람도 붙잡아다가 진짜인 날 닮으라고 해서 다른 일본 사람 만들었어요. 일본산 한국 사람 만들었어요. 여러분, 일본 가 가지고 일본산 한국 사람을 한 사람이라도 만들어 봤어요? 만들어 봤어요, 못 만들어 봤어요? 못 만들어 봤지요? 못 만들어 봤다구요. 교수님이 아니라 교수님 할아버지가 여기 왔더라도 못 만들어 봤다구요. 그러나 레버런 문은 일본에 가 가지고 가짜 일본 사람을 잡아다가 국산화시켰지요? 가짜 국산이 아니라 진짜 국산을 만들었으니 그게 문제라구요. 일본 정부가 교육비를 많이 들이고 아무리 학박사를 전부 다 동원하여 몇 껍질로 싸고 있더라도 사람 만들어 놓은 것은 전부 다 가짜 사람 만들어 놓았다 이거예요. 그러나 레버런 문은 도적놈같이 일본 정부도 모르게 살랑살랑 들어갔다 나왔다 하면서 가짜 판국에 요술판을 한 번 만들어 놓으면 진짜가 되어 버린다 이거예요. 그거 얼마나 좋아요. 거 한번 하고 싶지 않아요?
내가 똑똑한 사람이예요. 우선 그것을 인정해야 돼요. 세계 석학이라는 머리 큰 사람들을 잡아다가 전부 다 내 앞에 무릎을 꿇렸어요. 82개 국에 세계평화교수 아카데미를 창설한 사람이예요. 거기에는 별의별 사람이 다 있어요. 노벨 수상자로부터 얼룩덜룩한 사람, 시꺼먼 사람, 하얀 사람, 노란 사람이 다 있다구요.
말 안 듣고 제멋대로 하겠다는 사람들을 어떻게 했든, 무슨 요술을 부렸든 한 곳으로 나가라면 ‘예, 그래요’ 하면서 기분이 나빠 가지고 얼굴을 찡그리고 그러는 게 아니라 나가서 척 보고는 ‘하아! 고맙습니다’ 이러고 있더라구요. 그만하면 문총재를 한번 만나 볼 만하지요? 안 그래요? 구경삼아 동물원에 원숭이 새끼도 찾아가 보는데, 지금 세계적으로 놀음판이 벌어지고, 요사스럽든 어떻든간에 주목의 대상이 되고, 학자들과 낫다는 사람들을 많이 거느리고 다니는 사람이고, 못났다고 보지마는 잘났다고 볼 수 있는 면이 더 많은데 한번 구경삼아 와서 볼 만하지요? 안 해요? 안 해요, 해요? 「해요.」 그래서 내가 이렇게 원맨쇼 하는 거예요.
그래서 미국을 가 보니까 전부 다 요사스런 가짜 판국이예요. 전부가 가짜예요. 그러니 부딪치는 겁니다. ‘쳐라 이 자식들! 내가 깨지나 네가 깨지나’ 그러다 보니 언론계가 레버런 문을 총공격하는 거예요. 이 미국의 언론계가…. 미국이 참 큰 나라는 큰 나라지요. 사실은 사실대로 인정해야 되지요. 큰 나라는 큰 나라예요. 일간신문이 몇 개가 되느냐 하면 말이예요, 1,770개가 됩니다. 일간신문이 그렇게 많다구요. 그 모든 신문이 전부 다 열을 지어 가지고 ‘총사격, 레버런 문!’ 하면서 14년간 미국의 언론계가 연속 공격을 했습니다. 그래 레버런 문은 구멍이 다 뚫어져 가지고 누더기 보따리가 되어 태풍이 불 때 날아가 버렸을 텐데 여전히 버티고 서서 ‘이 미국놈의 자식들’ 하고 있습니다.
내가 카터 때는 말이예요, 남의 나라에 가 있으면서 남의 나라 대통령을 공식석상에서 ‘이놈의 자식 카터를 추방해야 된다’고 매일같이 설교하면서 들이 죄긴 겁니다. 그랬기 때문에 카터 정부는 ‘레버런 문이 카터 정부의 정적이다’라고 하면서 대사관을 통해 가지고 한국 정부의 박대통령에게 뿌리를 뽑으라고 별의별 지령을 내린 CIA의 비밀문서가 내게 다 들어와 있어요. 그거 잘했어요, 못했어요? 「잘했습니다.」 잘하긴 뭘 잘했어요? 욕을 먹고 감옥에 가는 것이 잘했어요? 그래 가지고 이익난 것이 뭐 있어요? 미국의 통일교회 간부들도 ‘선생님 왜 그러십니까?’, ‘뭐 어때, 이 자식아?’, ‘아이고, 지금 닉슨 대통령이 망하게 됐는데 지지해서 무슨 소용이 있어요? 또, 카터 정부하고 싸워서 국물도 안 생길 텐데 무슨 소용이 있어요? 감옥에 갈 게 뻔한데요’ 하길래 ‘나는 감옥 가려고 이러는 거야’ 했다구요.
용광로에 집어 넣어도 변하지 않는 게 통일교회의 특성
진짜는 어디서 나타나느냐 하면, 진짜는 용광로에 가야 나타나는 거예요. 거 알아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진짜인가, 가짜인가는 용광로에 집어 넣었다 꺼내 봐야 압니다. 그러면 인간의 용광로는 뭐냐? 용광로는 본질적인 요소로부터 반대의 기질로 자기를 역소화시키는 그런 작용을 하는 곳입니다. 그것이 용광로입니다. 용광로에 한번 집어 넣더라도 변하지 않는 모습으로 천하에 광채를 갖고 호령하며 나타나야 된다구요.
그래서 내가 용광로에 많이 출입을 했지요. 왜정 때에 인간 용광로인 감옥에 들락날락 많이 했고, 북괴 김일성이의 인간 지옥의 용광로에도 들락날락했고…. 연단을 잘 받았지요. 여러분들도 알지만 대한민국에서 1955년도에 이화여자대학 사건, 연세대학 사건으로 5명의 교수가 학교를 박차고 나오고, 학생들도 퇴학당하는 사건이 났었지요? 그래서 서대문 형무소라는 용광로에도 들락날락했다구요. 그래도 변하지 않는 모습으로 있는데, 또 미국 사람들이 못 믿겠다는 거예요. ‘동양산 그 사람이 진짠지, 가짠지 모르겠소?’라고 하나님 앞에 참소하니까 하나님도 ‘그래라. 어디 한번 동양산 그 용광로에 넣어 가지고 안 변했으니 서양산 용광로에 한번 집어 넣어 봐라! 녹나, 안 녹나?’ 했습니다. 그래서 그 용광로에 들어가 가지고 녹아 떨어졌어요, 안 녹아 떨어졌어요? 「안 녹았습니다.」 안 녹았다구요. 그게 멋진 거예요.
그러므로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법무성으로부터 전부 다 폴딱 폴딱 뛰었습니다. ‘너희들은 가짜야’ 하는 금을 그어 버리고 ‘나만이 진짜야’ 하는 깃발을 들게 될 때는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2억 4천만 미국 국민은 역사적으로 나한테 무릎을 꿇어야 할 항소를 내게 된다는 사실을 대한민국이 알아야 됩니다. 미국은 나한테 빚을 졌어요. 그거 사실입니다.
여기 문선생이 감옥에 들어갔다 하니까, 그 통일교회 문 아무개가 나쁜 놀음을 하는 대표 챔피언으로 알았기 때문에 ‘미국에 가서도 버릇을 못 버리고 저러다 감옥에 들어가 썩어지겠구만’ 하고 생각했을 겁니다. 나 감옥에 들어간다고 하니 공산당들이, 세큘러 휴머니즘(세속적인 인본주의)를 주장하는 자들이, 프래그머티즘(pragmatism)을 주장하는 실용주의자들이 전부 다 축배를 들고 ‘우리의 승리! 오늘부터 만세토록 우리의 승리가 계속될지어다! 아멘’ 하고 야단했다구요. 그놈의 자식들은 종교를 몰랐어요. 로마의 극악한 핍박도당들이 4백 년 동안 기독교를 핍박했지만, 카타콤(지하무덤)에서 자기 조상들의 시체가 썩어 가는 냄새를 맡으면서도 싸워 가지고 4백 년 이내에 로마를 정복한 종교의 힘을 몰랐다 이거예요.
나는 종교 지도자입니다. 하나님이 변할 수 없으니, 나도 감옥에 가나 대양에 가나 산에 가나, 어디를 가나 변할 수 없어야 된다는 거예요. 그것이 통일교회가 지닌 특징이예요.
그러면 배달민족이라는 그 이름, 역사적인 간판을 단단히 쥐고 있는 이 민족이 세계 앞에 무엇을 줄 것이냐? 동방예의지국이라 말했고, 삼천리 금수강산이라고 한 말들이 우리 조상이 자기들을 자랑하기 위해서 그런 거예요? 세계 어디를 돌아다녀 봐도 한국 같은 나라는 없습니다. 우리 조국이 이렇게 멋진 줄을 이제야 알았다는 거예요. 세계에 이름난 곳을 다 가 봐도 기후가 맞지 않고, 얼룩덜룩하지만 한국 이상 좋고 아름다운 나라가 없어요. 외국에 안 나가 본 사람은 한국에서 태어난 것을 지금까지 얼마나 한탄했어요? 기후 좋고, 산수 좋고, 물 맑은 이 강토에 살고 있는 이 자연적인 축복을 얼마나 잊어버리고 있느냐 말이예요.
그래서 나는 어디를 가든지 한국의 배달민족으로 태어난 것을 긍지로 삼고 자랑하고 다니는 겁니다. 미국에 가 가지고 미국 젊은이들을 모아놓고 누가 진짜인가 가짜인가 두고 봐라 하면서 부딪쳐 보는 거예요. 통일교회 가정하고 미국 가정하고 부딪쳐 봐라, 통일교회 신자하고 미국 기독교 신자하고 부딪쳐 봐라, 통일교회 학자하고 세계 학자하고 부딪쳐 봐라, 레버런 문하고 세계에서 잘났다는 사람하고 한번 부딪쳐 봐라 이거예요. 그래서 꼭대기를 다 뽑아 버리는 거예요. 교활한 백인 세계, 4백 년 역사를 통하여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문화권을 창조한 위대한 민족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누구의 말을 들어요? 그래 한국 사람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보았다가 한번 벼락을 겪었다는 거지요.
그러면 왜 그래요, 왜? 그래 가지고 뭐하려고 그래요? 레버런 문이 그래 가지고 뭐하려고 하는 거예요? 내가 돈을 벌려고 그래요? 나 돈 필요 없어요. 지금 당장에 몇천만 원이라도 사인할 수 있는 현찰을 갖고 있는 사람이예요.
그것을 나누어 주면 좋겠지요? 그렇지만 함부로 못 써요. 내가 돈은 갖고 있지만 한번도 돈을 만져 보지 못했어요. 어떤 때는 몇백만 불, 몇천만 불을 사인하지만 그 돈이 어디서부터 돌아와 가지고, 어디로 나가는지 나는 만지지도 보지도 못하고 쓰고 있다구요. 그런데 한국 사람은 어때요? 돈만 있으면 금고에다 집어 넣고 야단이지요? 내가 사인하는데 말이예요, ‘5백만 불’라고 쓰고 ‘선명 문’만 쓰게 되면 재까닥 5백만 불이 나가요. 그런 지불 방법을 쓰고 있다구요. 그거 믿어져요? 무엇에 쓴다는 내역도 없고…. 우리 통일교회는 그렇게 다르다구요. 그렇게 믿는 거예요. 가짜들이 아니예요. 그렇기 때문에 내 지갑에 돈 한 푼 없더라도 은행에 갖다 두는 것만 해도 안심이지요.
인간은 하나님도 주관하고 싶어해
그다음에 세상 사람의 욕망이 뭐예요? 돈이지요, 돈. 돈이 우리 인간의 가치를 완성시킬 수 있어요? 돈 가지고 몸과 마음이 하나돼요? 여기에 지금 황금덩이를 갖다 놓고 ‘이것을 줄 테니까 몸과 마음이 하나되라’ 한다고 해서 하나돼요? 어림도 없다는 거예요. 지식 가지고 하나돼요? 안 돼요? 지식도 무용(無用)이예요. 권력 가지고 하나돼요, 총칼 가지고? 안 돼요, 안 돼. 그럼 뭐냐? 그게 문제라구요.
보라구요. 인간의 욕망은 사탄은 물론이고 하나님까지도 굴복시키고, 이 우주의 꼭대기에 대왕 되시는 분이 있다면 그분도 잡아서 내것으로 만들고 싶고 주관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것이 사람의 욕망입니다. 여러분 그래요, 안 그래요? 안 그렇다면 전부 다 가짜들이예요. 안 그렇다는 게 가짜고, 그렇다는 것이 진짜입니다.
인간의 욕망은 큽니다. 그러면 인간의 욕망이 언제 스톱할 수 있느냐 이거예요. 인류역사노정에서 지금까지 이 욕망이 큰 것을 찾기에 허덕였지만 ‘찾았다. 이젠 욕망의 보따리 정착이다’ 할 수 있는 신호를 언제 할 수 있느냐? 정착하면 좋겠지요? 그런 정착지가 어디냐? 욕망 보따리의 모든 것을 이루어 가지고 ‘나 이제 그만이다’ 할 수 있는 자리가 있다면 욕망을 가진 사람은 그 자리를 찾아가지 않을 수 없는데, 그 자리가 어디냐? 유토피아가 도대체 어떤 곳이냐? 우리 인간은 그런 욕망을 가졌어요.
자, 여기에서 내 한 가지 얘기를 해주지요. 욕망을 채울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 돈 가지고 안 돼요. 지식 가지고 안 돼요. 그다음엔 권력 가지고 안 돼요. 이것들을 중요시하고 야단법석하는 것은 진짜가 아니고 가짜예요. 나는 그렇게 결론을 짓습니다. 그것은 가짜 인간입니다. 그러면 그것이 뭐냐? 하나님의 욕망이 우리만 못하겠어요? 도대체 인간은 누구를 닮았느냐? 원인 되는 주인을 닮았어요. 원인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원인을 통하여 가지고 결과로 빚어진 열매와 같은 입장입니다. 그러니 그 결과 가운데 원인이 다 있습니다. 여러분도 그렇잖아요?
요즘에는 식물세계도 세포를 중심삼고 번식시키지요? 백합화면 백합화의 잎사귀 세포를 따 가지고 유리관 같은 데다 배양해서 심으면 말이예요, 거기에서 몇천 몇만 포기가 나오는 거예요. 그 따 온 세포에는 꽃도 들어가 있고, 뿌리도 다 들어가 있고, 빛깔도 다 들어 있어 가지고 그냥 그대로 다 나오는 거예요.
그래 결과적 존재는 무엇을 닮았느냐? 원인적 존재를 닮았습니다. 오늘날 인간은 결과적 존재이므로 원인적 존재를 닮았다 이거예요. 거 누구를 닮았느냐? 원인이 누구예요? 절대자 신과 관계를 맺기 원하는 인간에게 있어서 신이 원인적 존재라면 우리 인간은 결과적 존재이니, 결과 자체에 원인이 다 들어와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 인간은 하나님을 닮았다는 거예요.
그러면 하나님도 욕심이 많겠어요, 욕심이 없겠어요? 「많습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욕심이 얼마나 클까요? 보라구요. 이 대우주, 천문학적으로 보게 될 때 이게 얼마나 크냐 하면 말이예요, 1초 동안에 지구를 일곱 바퀴 반이나 돌 수 있는, 1억 미터나 달릴 수 있는, 똑딱 하는 순간에 지구를 일곱 바퀴 반이나 돌 수 있는 속도로 가는 것을 1년 동안 달려 간 거리를 천문학계에서는 1광년이라고 그럽니다. 여러분 상상이나 돼요? 그러한 단위로 재는데 우주가 얼마나 크냐 하면 210억 광년, 210광년이 아니고 210억 광년 걸려서 갈 수 있는, 출발점에서 210억 광년 걸려서 도달할 수 있는 거리만큼 되어 있다는 거예요. 그러니 얼마나 커요? 그러한 대우주를 하나님은 소유하고도 남아요.
우리 인간의 욕망이 그렇게 크다는 거예요. 태양계 하나 집어 넣고 보게 되면 모래주머니 하나 집어 넣은 것 같아요. 눈을 크게 뜨고 보니까 아이구, 대우주가 있거든요. 이것도 보따리에 집어 넣고 싶다는 겁니다. 어느 보따리? 무슨 보따리? 직조공장에서 짜 가지고 만든 보따리? 무한히 클 수 있는 보따리인데, 그것이 무슨 보따리냐? 마음 보따리입니다. 여러분 마음이 커요, 작아요? 마음이 얼마나 커요? 보라구요. 내가 오늘…. 「꽃 좀 바로 하셔야 되겠습니다」 꽃이야 뭐 떼어 놓지. 말하는 사람이 꽃이 넘어가는 거 생각하다가 열중해서 하지 못하게 되면 가짜 말이 되는 거지. 꽃이야 떨어지겠으면 떨어지고, 단추가 떨어지겠으면 떨어지고, 작크야 내려가겠으면 내려가고….
보따리가 얼마나 커요? 현재 여기 몇 명인가요? 아마 1,157명, 488명이니까 얼마인가요? 한 1,500명이 모였겠구만요. 1,157명이야, 얼마야? 「1,057명입니다」 아, 1,057명. 내가 보고를 들었다구요. 내가 머리가 좋거든요. 내가 1,500명한테 다 일어서지 못하게 돈을 가득히 줘 가지고, 저 문을 나가려면 벌렁벌렁 기어 나가게끔 주었다 하더라도 마음은 ‘야, 야, 야 1,500명밖에 안 돼. 서울에는 1,200만이 살고 있으니 그들도 주고 또 줘라’ 그런다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얼마나 빠른지 순식간에 1,200만에게 제각기 다 줬다 하면 마음은 ‘야, 야, 야. 1,200만이 아니라 4,200만 되는 한국인에게 다 그렇게 줘라’ 한다구요. 그래 다 줬다 하더라도 또 마음은 ‘야, 야, 야 북한도 있고, 일본도 있고, 아시아도 있고, 세계도 있고, 영계도 있어…’ 하면서 그렇게 다 주어도 마음은 ‘쉬어라’ 안 한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과업은 종교를 어떻게 하나 만드느냐 하는 것
이런 말 처음 들어 보지요? 한국같이 조그마한 나라에서 이런 것을 생각하는 사람이 나 아니고 누가 생겨났겠나요? 내가 처음 생겨났지요. 여러분 마음이 그래요, 안 그래요? 내 마음은 그렇더라구요. 여러분은 나를 닮지 않아서 안 그런지 모르지만 나는 닮았다고 생각하는데 그거 맞소, 안 맞소? 「맞습니다.」 맞지요. 틀림없이 맞는 거예요. 우리 할아버지에게 물어 봐도 ‘옳소’, 어머니 아버지에게 물어 봐도 ‘옳소’, 자식들에게 물어 봐도 ‘옳소’, 수천만 대 후손들에게 물어 보고, 수천만 대 선조를 통해서 물어 보더라도 ‘옳소’예요.
언제 그 마음 보따리를 채울 거예요? 언제 사람이 ‘아이고, 나 행복해. 천지를 주어도 행복해’ 할 수 있는 행복경에 앉아서 살 수 있고, 콧노래를 부르며 ‘흐흐흐’ 하고 살 수 있는 날이 언제예요? 이렇게 생각해도 알 수 없는 요지경 판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인생은 뭐라구요? 무슨 몽이라구요? 일장 뭐라구요? 「춘몽」 춘몽이예요. 꿈 가운데의 놀음놀이예요. 아무리 해도 요사스러워 알 수 없어요. 도저히 알 수 없어요.
나는 그런 세계를 헤맨 사람입니다. 그런 과정을 거쳐 가지고 이래야 된다는 결론을 지었기 때문에 세계적인 문제의 사람입니다. 문제가 크다구요. 인간이 병이 나서 지금까지 종교를 통해서, 역사시대를 통해서 성인들이 도리를 중심삼아 가지고 인류를 수습해 나왔습니다. 그런데 세상을 보게 된다면 공산주의와 민주주의로 갈라졌습니다. 이제 문제는 종교계를 어떻게 하나로 만드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있다면 당신이 해야 할 제일 위대한 과업이 이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요? 없어요. 종교를 세워 수천 년 역사를 닦아 왔지만 지금까지 그런 것을 성사시킨 사람도 없고, 그런 목표를 세워 본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 같은 사람은 남이 하지 않은 것을 잘하는 소질이 있기 때문에…. ‘내가 한번 해보겠소’ 해서 통일교회를 만든 거예요. 통일교회가 무슨 통일교회예요? 기독교를 통일하고, 그다음에는 모든 종교들을 통일하고, 그다음에는 인류를 전부 다 통일하고, 나아가서는 하나님까지도 통일해 버리자는 거예요. 그것이 쉬워요?
자, 하나님의 소원이 있다면, 역사시대에 하나님의 소원이 있다면, 하나님의 소원성취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역사시대에 헤매고 돌아다니면서 찾고 찾아도 다 실패했는데, 역사의 종말시대에 와 가지고 레버런 문을 만나서 성공할 수 있다면 하나님은 어떻게 하겠어요? 스톱해 가지고 ‘야, 야, 야 , 나하고 의논하자’ 하겠어요, 안 하겠어요? 어느 한 때는 해야 당신이 인간과 더불어 행복을 노래할 수 있고, 행복을 중심삼고 얘기도 할 수 있지 못 했을 때는 실패하는 거예요. 인간에 대한 실패작입니다.
그러니 지금까지 나에게 고생이 막심했지요. 엊그제 66세 생일을 지냈어요. 60세 되면 세상 사람들 보기에는 말이예요, 이젠 죽어도 ‘그 양반 살 만큼 살았지’ 이렇게 도매금으로 보따리를 넘길 수 있는 나이가 아니예요? 안 그래요? 그러니까 승공연합 통지부장들, 오늘 저녁에 와 가지고 나한테 희망을 갖지 말라구요. 앞날도 멀지 않은 사람을 한번 만났으면 됐지, 언제 또 만나겠어요? 그러니 할말 다 해야지요. 욕도 할 것입니다. 집에 돌아가서 욕을 하겠으면 하고…. 지지고 볶고 싸움을 하다가 말고 황금덩이를 잡았으면 복이 되지요.
레버런 문을 놓고 싸우면 복을 받는다는 거예요. 그 무니라고 세계가 반대했는데 무니를 반대하는 사람, 어머니 아버지를 밀어제껴 가지고 코너에 넣어서 가 보지도 않는 그런 부모들에게 내가 항복을 많이 받았어요. 이래 가지고는 원치도 않는데 예물을 보낸다구요. 그리고는 ‘반대했던 거 용서하소’ 한다구요. 나는 그런 실전담을 많이 갖고 있는 사람이예요. 여러분들은 그런 실전담이 없지요? 할 수 없다구요. 내가 그만하기 때문에 세계를 주름잡고 다니지요.
그래서 하나님도 문총재한테 반했다구요. 듣기 좋아요? 하나님도 문총재한테 반했다 이거예요. 듣기 좋아요? 이것 승공연합 통지부장이 아니구만요. 반응이 없으니 이래 가지고 무슨 승공을 해먹어요? 하나님이 문총재한테 반했다, 듣기 좋아요, 듣기 싫어요? 「좋아요.」 반하긴 반했는데, 말은 그런데 사실인지 아닌지 점검을 못 해서 답변을 못 한다는 똑똑한 패들이 모였군요.
자, ‘나’라는 사람이 점검도 안 하고 오늘날까지 생명을 걸고 나왔겠어요? 남자로 생겨나 이만하면 어디를 가든지 색시는 다스로 언제나 얻을 수 있는 자격자예요. 어디를 가든지 말하는 데는 지지 않고 다니는 챔피언이예요. 그런 남자가 장가가겠다면 장가를 못 가겠어요? 씨름판에 가면 역사적인 챔피언이 될 자신이 있다구요. 운동도 못 하는 것이 없습니다. 도적질도 안 해서 그렇지 하게 되면 세계 제일의 갱스터(gangster)의 우두머리가 됐을 거예요. 다방면에 소질이 있다구요. 부자 될 수 있는 소질도 갖고 있습니다. 젊은 청춘 때 내가 안 해본 것이 없어요.
세상만사, 만인이 반대해도, 우리 부모로부터 전 나라가 반대해도 나는 뜻을 이룰 수 있는 자신을 가진 사람입니다. 보라구요. 기독교 하면 그래도 잘났다는 기독교 아니예요? 여기 기독교를 믿는 사람 손들어 보소. 오늘 다 화해하고 전부 다 청산해야지요. 한마디 해야 되겠어요. 손들어 봐요, 부끄럽지 않게. 손 안 들었다가는 이다음에 영계에 가서 걸려 버려요. 손들어 봐요. 감출 것이 뭐 있나요? 그래, 그래요.
하나님이 참 짓궂은 하나님이예요. ‘야, 야, 문 아무개야’, ‘예’, ‘너 저 마이크 소리 한번 들어 볼래’, ‘뭐예요?’, ‘너 죽으라고 기도하는 소리가 얼마나 굉장한지 들어 봐’ 하는데…. 아무개 목사라고 이름은 안 불러요. ‘통일교회 문 아무개 이름을 가지고 이단 괴수요, 하나님의 역적 도당의 괴수요, 세계 교회를 망치고, 민주세계를 망칠 수 있는, 이래저래 오나가나 문제의 인물이니 급살맞아 죽어라’ 하고 기도하고 있는 것을 들려주는 거예요.
내가 몇 년 동안 외국에 갔다가 딱 와 보니까, 나보고 죽으라고 했던 그 목사는 온데간데없고, 일족도 다 없어져 버렸어요. 죽으라고 기도하던 목사는 없어지고, 죽으라고 하던 레버런 문은 살아서 싫다고 하는 여러분까지 불러내 가지고 세뇌공작을 하고 있다 이거예요. 여러분 지금 세뇌당하고 있지 않소? 이것을 미국에서 말하기를 ‘브레인워시’라고 합니다. 세뇌라고 하는 거예요. 그것이 요사스럽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세뇌하면 기분 나쁘지요?
역사시대에 세계를 지탱해 나온 건 사랑의 전통
보라구요. 부처끼리는 세뇌를 당해야 돼요. 무엇에? 무엇에 세뇌를 당해야 돼요?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부처끼리는 사랑을 중심삼고 세뇌당해야 이상적인 가정이 형성된다, 틀려요? 여러분 아들딸 다 낳은 남편 아내가 되어 가지고, 사랑을 중심삼고 어쩔 수 없이 세뇌되어 가지고 내가 오늘에 있어서 이만하면 아내를 대한 남편으로, 남편을 대한 아내로서 두번째가는 사람이 되면 섭섭하다 할 수 있는 그런 사랑에 취해서 사는 부부가 이상적이예요, 뭐예요? 이상적입니다. 사랑에 취해서 하나가 되는 거예요.
위대한 스승은 어떤 사람이냐? 제자를 사랑하기를 자기 몸보다도, 자기 아들딸보다도 더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그 사랑을 중심삼고 스승과 제자가 하나되게 되면 그 스승은 위대한 스승이요, 그 제자는 위대한 제자입니다. 맞아요, 안 맞아요?
효자란 무엇이냐? 80 늙은이가 자식을 대하는 데 있어서, 요전에 92살 할머니 얘기를 했지만, 92세의 할머니가 70세의 아들이—할머니가 아들을 스물 한 살에 낳았으니까 나이가 그렇게 됐겠지요—어디 나간다고 하면 ‘얘! 밖에 나갈 때 차 조심해라’ 한다구요. 70년 동안 그렇게 하고도 지치지 않았어요. 지쳤어요? 지쳤어요, 안 지쳤어요? 「안 지쳤습니다」 70년 동안 ‘얘! 조심 조심! 착한 아들 되라. 효자가 되라’고 그렇게 외쳤어도 지치지 않고 여전히 계속하고 있는 부모 앞에 ‘예, 어머님 잘 알아요’ 하는 그 한마디가 오늘로부터 시작해 가지고 오늘 아침 시간에 한 대답이 아닙니다. 칠십 평생을 그 놀음 한 것인데 지치지 않았다는 거예요. 그럴 때에 그런 아들을 효자라고 하는 거예요. 그런 아들을 효자라고 하고 그런 부모를 참다운 부모라고 하는 겁니다.
애국자가 뭐냐? 여기 기관에 있는 양반들 다 애국자 간판을 붙이고 왔을는지 모릅니다. 실례합니다. 애국자가 뭐냐? 이것은 내 말이 아니예요. 천리, 도리의 기준을 중심삼고 하는 말입니다. 애국자가 뭐냐 하면, 나랏님을 모시는 데 있어서 말라 죽을 때까지 충성을 하고도 또 하고 싶은 마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다시 말해서 나라를 사랑하고, 국민을 사랑하고, 군왕을 사랑하고 죽어가면서도 부족함을 느끼는 그런 사람이라야 애국자입니다. 죽음길도 두려워하지 않는 불변의 자세를 가진, 사랑의 충절을 가진 신하를 충신이라고 합니다. 그거 틀렸어요? 그러면 간신은 뭐냐? 충신과 반대로 자기 이익을 중심삼은 사랑의 표준을 가지고 전부 다 자기 권한대로 판도를 잡아 군왕까지 목을 베 버리려고 하는 사람이 간신이 아니예요?
그러면 역사시대에 무엇이 이 세계를 지탱해 나왔느냐? 학문도 아닙니다. 권력도 아니예요. 권력은 언제나 바람같이 왔다가 구름같이 비가 오면 꺼져 가는 거예요. 돌게 하는 흐름의 굴곡이 있나니, 그 굴곡이 뭐냐 하면 애국이라는 굴곡입니다. 충신과 군왕을 중심한 애국이라는 굴곡은 변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애국자는 많아요. 위인급에 들어가는 애국자는 많지만 판도를 더 넓혀 세계를 자기 몸 이상, 자기 가정 이상, 자기 종족 이상, 자기 나라 이상 사랑하기에 갖은 풍상을 겪으면서 변하지 않고, 누가 알아주나 몰라주나 그 길을 찾아가서 역사시대에 전통적인 흔적으로 남아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는 겁니다. 그런 사람이 누구냐?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당시에 민족 반역자로 몰려서 십자가에 처형당했던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석가모니 같은 양반도 역시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마호메트도 마찬가지예요. 그 시대에 있어서 전부 다 핍박받은 사람들이예요. 공자만 하더라도 이웃집 개를 생각하는 것보다 더 낮추지 않았어요? 그렇지만 그 마음은 하늘을 사랑하고 인류를 사랑하는 데에 있어서 자기 일가, 자기 일족, 자기 나라 이상 사랑했습니다. 그러한 모든 것을 투입하여 사랑의 전통을 남긴 교훈이 오늘날 인류역사를 수습해 온 4대 문화권이 됐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예요.
오늘날 세계를 수습할 수 있는 단 하나는 참사랑
그러면 무엇에 수습되었느냐? 오늘날 우리가 보게 될 때, 선과 악이 있어요. 여러분에게 ‘좋은 사람이냐?’ 할 때, 전부 다 ‘좋은 사람이다’ 라고 하지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안팎이 같아야 됩니다. 그런데 안팎이 같지 않아요. 몸과 마음이 같아야 돼요. 몸과 마음이 영원히 변치 않고 같아야 돼요. 수양의 절개를 지켜 나가는 사람들이 마음을 중심삼고 도리의 길을 가려고 허덕이지만 이 몸뚱이가 사악되어 가지고 언제나 브레이크를 거는 겁니다. 개인적으로 브레이크를 걸고, 가정적으로 브레이크를 걸고, 민족적으로 브레이크를 거는 겁니다. 오늘날 세계의 악한 주권자들은 선한 사람의 생명을 전부 다 노리면서 브레이크를 걸어왔다는 겁니다. 그렇지만 국민을 사랑하고, 나라를 사랑하고, 세계를 사랑하는 전통적인 마음을 지니고 흘러간 것이 역사의 주류를 이루어 가지고 뻗어 있다는 거예요.
이렇게 볼 때, 세계를 수습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길이 뭐냐? 참된 길이 뭐냐 이거예요. 내가 몸과 마음을 중심삼고 무엇에 하나되어야 되겠느냐 하는 것이 문제라구요.
그러면 우리가 인간세계에서 보화 중의 보화를 찾아내게 된다면 그것이 무엇이냐? 다이아몬드도 아니요, 황금도 아닙니다. 그 어떠한 보석도 아니예요. 그럼 무엇이냐? 참다운 사랑이라는 표제가 나옵니다. 참다운 사랑입니다. 참다운 사랑은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밤이나 낮이나 좋아해요. 그것은 임종에 머무른 그 자리에 있어서도 사랑하는 남편은 아내를 찾을 것이고, 사랑하는 아내는 남편을 찾는다는 거예요. 사랑하는 부모는 자식을 찾는다는 겁니다. 이렇게 죽음길에서도 사랑의 손길을 이어가고 싶은 인생 행로의 길을 부정할 수 없는 엄연한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돼요.
그러면 악을 소화시키는 데 무엇이 소화시킬 수 있느냐? 힘도 아닙니다. 교육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참된 사랑인 것입니다. 이걸 알아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사랑이라는 것은 혼자 이룰 수 없습니다. ‘하나님, 당신이 필요한 것이 뭐요? 금이요? 보화요?’ 할 때, 아니라고 하는 겁니다. 어떤 능력도 아닙니다. 전지전능이 아니예요. 하나님이 절대 필요로 하는 것은 한 가지 있다는 겁니다. 그것이 참사랑입니다. 이걸 알아야 돼요. 하나님도 참사랑을 요구하고 있다구요.
사람이 귀한 건 하나님의 사랑의 상대자이기 때문
그럼 이 우주만물 가운데 왜 사람이 제일 귀하다고 하느냐? 창조주까지도 사랑을 필요로 하는데, 그 사랑을 어디서 찾아올 것이냐? 누구로부터 사랑의 인연을 맺겠느냐? 하나님이 아무리 독자적인 입장에 있다 하더라도, 전지전능해서 모든 것을 다 갖추었다 하더라도 사랑을…. 내 자신은 사랑의 마음이 있어요. 사랑이 작용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는 거예요. 하나님도 마찬가지라구요. 하나님 혼자 있어 가지고 ‘아! 좋다’고 노래하면 무슨 하나님이 돼요? 미친 하나님이 돼요. 하나님도 정신이 돌았다고 하는 거예요. 그러나 상대적인 조건을 중심삼고 시를 읊을 때는…. 상대가 있는 조건을 가지고는 무슨 놀음을 하더라도 그 하나님을 미쳤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정상적인 일이라고 결론을 짓는 거예요.
이렇게 볼 때에, 여러분 그렇잖아요? 우주의 생성원리를 과학적으로 쭉— 탐구해 보면, 오늘날 우주는 무엇에 의해서 됐느냐 이거예요. 무엇에 의해 되긴, 힘에 의해 됐지…. 힘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걸 따지는 거예요. 힘이 먼저냐, 작용이 먼저냐? 전기가 먼저냐, 전기작용이 먼저냐? 어떤 거예요? 그것은 여러분의 생활에 있어서 생활을 수습할 수 있는 제일 필요한 요건입니다. 오늘날 막연하게, 세계 학자들이 ‘힘에 의해서 됐다’고 하는데, 막연한 힘이냐? 힘이 절대적으로 처음이고 거기서부터 무엇이 벌어졌느냐? 아니면 ‘힘이 있기 전에 무엇이 있었느냐’고 물어 보아야 됩니다. 힘과 작용을 두고 볼 때 작용이 먼저냐, 힘이 먼저냐? 뭐 계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 이것은 같은 말인 것 같지만, 선후가 거꾸로 되면 천지가 뒤집어져요.
오늘날 사유와 존재란 것이 철학사상에서 중요한 문제로 되어 있습니다. 유물론자는 존재가 먼저라고 말하고, 유신론자는 생각이 먼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전도될 때는 우주는 올라가던 것이 거꾸로 꽂힌다는 겁니다. 이처럼 위험 천만한 사실들이 역사의 종말시대에 나타났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무엇이 먼저냐? 문제가 크다는 겁니다.
하나님 자신도 상대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하나님도 사랑을 혼자 못 이뤄요. 내가 사람도 없는데 혼자 서 가지고 ‘아이고, 오늘 참 좋구만’ 이렇게 열렬히 말하게 된다면 미쳤다고 할 것 아니예요? 그러나 상대가 있어서 열렬히 말해도 그것이 사리에 맞고 환경 여건에 부합되게 되어 있지요. 아무리 전지전능한 하나님이라도 혼자 ‘좋아, 좋아! 아이고, 내 사랑 좋아!’ 하고 춤추면 그게 뭐예요? 이걸 알아야 돼요. 하나님도 사랑을 이루기 위해서는 혼자 안 돼요. 상대를 세워 놓아야만 자극적인 사랑을 느낄 수 있어요. 이것이 문제예요, 이게.
하나님이 왜 천지창조를 했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하나님이 장난을 하고 싶어서 만든 것이 아니예요. 모든 천지만물은 쌍쌍으로 되어 있어요. 전부가 페어 시스템으로 되어 있다구요. 광물도 쌍쌍이 아니고는 작용을 안 해요. 아무리 전지전능한 하나님이라 해도 상대 여건이 부합되지 않고는 작용을 안 하게 되어 있다구요. 천지이치가 그래요. 식물도 상대 여건, 광물도 상대 여건, 동물도 상대 여건을 통해 가지고 수수작용을 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 이치로 하나님도 혼자는 사랑을 이룰 수 없다는 걸 알아야 돼요. 이런 말 처음 듣지요?
하나님과 인간이 제일 필요로 하는 것은 사랑
지금까지의 기독교 신학에서는 ‘창조주는 거룩한 분이요, 피조물은 속되다’고 결론을 내렸는데, 누가 그랬느냐 이거예요. 그것은 타락한 결과로 보니 그렇게 보이는 거예요. 타락하지 않은 본연의 기준에서 보게 된다면 하나님이 거룩하신 분이므로 사랑이상을 중심삼고 상대기준을 갖춘 존재로 세운 모든 존재는 거룩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의 특권이 무엇이냐 하면 말이예요, 아무리 저 농촌 출신으로 무식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무자격한 여인이라도 미국 대통령과 사랑의 인연을 맺으면 즉각적으로 백악관 안방을 차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놀라운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랑의 인연만 맺는 날에는 아무리 낮은 사람이라도 그 높은 상대와 동등한 자리에 참석할 수 있는 특권을 갖게 된다는 거예요. 그것이 사랑에만 있다는 거예요, 사랑에만.
아무리 하나님이 높다 하더라도 그 하나님과 사랑관계를 맺게 될 때는 하나님과 더불어 동등한 자리에 올라갈 수 있는 가치가 인간에게 있다는 것을 몰랐다는 거예요. 그것을 무엇이 할 수 있느냐? 오로지 사랑만이 가능합니다. 안 그래요? 잘났다고 하는 서울대학의 석사학위, 박사학위를 받은 총각이 아무것도 모르는 시골 처녀한테 사랑에 빠지게 되면, 그 처녀가 도망가면 체면 불구하고 따라가요, 안 따라가요? 아무리 잘났다는 녀석들도 사랑 앞에는 발바닥에 들어가더라도 무사통과예요. 아무리 높은 데 올라가고, 아무리 낮은 데 가더라도 통해요. 이런 놀라운 것을 몰랐다는 겁니다.
그럼 인간이 제일 필요로 하는 것이 뭐냐? 하나님이 제일 필요로 하는 것을 인간도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세계가 그 일을 이루지 못하는 한 완전한 행복의 기준은 찾을 수 없습니다. 사랑 빼놓고 어떻게 행복이 있어요? 여러분, 행복이 사랑 빼놓고 있을 수 있어요? 평화라는 것이 사랑을 빼놓고 있을 수 있어요? 착취하고, 마음 다르고 몸 달라 가지고 행복을 찾을 수 있어요? 동등한 자리, 평등한 자리에 끌어올릴 수 있는 힘이 없는데 서로 행복할 수 있어요? 무엇만이 가능하냐? 어느 곳이나, 어느 위치를 막론하고 완전한 사랑과 상대권을 이루게 될 때는 대등한 가치권을 부여받을 수 있는 특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과 완전히 대등한 인연을 딱 맺게 된다면 주체가 가진 모든 소유권은 내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놀라운 사실이예요.
이렇게 볼 때, 종교 중에서 위대한 종교, 철인 중에서 위대한 철인, 성인 중에서 위대한 성인이 무엇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이론적인 것은 다 넘어가 가지고 최후의 결론은 간단해요. 사랑의 도리를 중심삼고 내용을 갖추어서 가르쳐 준 종교는 틀림없이 하나님이 원하는 종교이기 때문에 세계적 종교가 되는 것이다 이거예요. 또, 그러한 사상체계가 있다면 그 사상은 틀림없이 세계적인 사상으로 남을 것이다, 이렇게 보는 겁니다.
그러면 그런 종교가 어디 있느냐? 성경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는다’고 했습니다. 세상을 뭣처럼 사랑한다고 했어요? 자기 아들딸보다도 더 사랑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섭리의 목적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예수를 보내주었는데도 불구하고 십자가에 못박았지, 하나님이 무슨 장로교를 이처럼 사랑해서 예수를 보내주었는데 십자가에 못박은 게 아니예요. 감리교를 사랑하사? 아닙니다. 세상이예요,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세상을 구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한 내용이 기독교에 있다는 거예요. 또, 예수가 가르친 내용의 골자는 간단해요. ‘나는 독생자다’라고 했어요. 독생자가 뭐예요? 독생자는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첫사랑을 받을 수 있는 대표적 존재입니다. 기독교사상권 내에 그런 것이 다 박혀 있다는 거예요. 그다음에 예수는 말하기를 ‘나는 신랑이고 너희 신자는 신부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지적했고, 아들의 사랑을 지적했고, 신랑 신부의 사랑을 지적했고, 형제의 사랑을 지적했습니다. 이렇게 사랑을 중심삼은 교리를 가진 것이 기독교이기 때문에 기독교는 틀림없이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종교가 된다는 겁니다. 아시겠어요? 그럼 불교는? 불교는 거기에 미치지 못합니다. 불교는 법을 중심삼았습니다. 유교도 마찬가지예요. ‘원형이정(元亨利貞)은 천도지상(天道之常)이요, 인의예지(仁義禮智)는 인성지강(人性之綱)이니라’ 할때, 천도지상이 뭐예요? 인격적 신을 몰랐어요, 인격적 신. 막연한 천(天)이예요. 죄를 지었으면 탕감해야 되는데 속죄적인 내용을 몰랐어요. 기독교가 세계적 종교가 될 수 있는 본질의 내용을, 사랑을 중심삼고 가르쳐 준 도리를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기독교는 세계문화권의 배후를 중심해서 나가는 겁니다.
참사랑과 거짓사랑
그러면 나 레버런 문이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무엇을 가르쳐 주느냐 이거예요. 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개인적 입장에 있는 세계인들을, 세계를 대표한 그 개인을 사랑하자고 가르쳐 주는 겁니다. 세계 사람을 전부 다 사랑할 수 없으니까, 40억 인류를 대표한 개인 개인으로 나누어 가지고 그 개인을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사랑하자 이거예요.
그럼 참사랑과 거짓사랑이 뭐냐?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참과 거짓이 뭐냐? 이것을 모르기 때문에 사회 혼란이 벌어집니다. 도덕 관념이 침체되고, 퇴화되는 것도 이것을 몰라서입니다. 악이 뭐냐? 악은 자기를 중심삼고 모든 것을 끌어들이려고 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걸 알아야 돼요. 세계 역사과정에 있어서 악신과 선신이 싸우고 있어요. 왜 싸우느냐 하는 문제를 다 알아야 된다구요. 그것은 여기서 말할 수 없다구요. 싸우는데 악한 편이 되는 사람, 사탄편에 끌려가는 사람, 혹은 선한 편, 하나님편에 끌려가는 사람의 종류가 어떻게 다르냐 이거예요. 자기를 중심삼고 전부 끌어들이려고 하는 사람은 사탄 마귀의 소성을 닮아 있기 때문에 악한 편이라고 합니다. 반면에 전체를 위해서 자기로부터 보내 주려고 하는, 주려고 하는 사람은 선한 편이라고 합니다.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공적이요, 사적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사적은 뭐냐? 회사에 가더라도 자기 이익을 위해서는 회사의 공적 이익을 부정하는 사람은 악한 사람입니다. 공적은 뭐냐? 일개인으로 회사에 갔지만 자기 개인은 희생되더라도 회사의 공리를 찾아 나가는 사람은 선한 사람입니다. 대한민국을 두고 볼 때, 악한 백성 선한 백성을 어떻게 규정하느냐? 대한민국 기관에 있는 사람들로서 기관이야 나라야 어떻게 되든 자기 이익을 위해서 뇌물을 먹고 이런 것은 전부 다 악마편이예요. 악한 사람입니다. 심판받아야 돼요. 반면에 자기를 희생하더라도 나라의 이익을 위하고, 전체의 이익을 위해 가는 사람은 대한민국에 있어서 공무원을 대표한 애국자요, 선한 사람입니다. 이렇게 갈라져요. 세계의 선악이 어떻게 되느냐? 이렇게 해서 갈라 나가기 때문에 오늘날 개인을 뿌린 것이 거두어진다는 겁니다. 심은 대로 거두는 거예요.
그러면 인간을 심었는데 어떤 인간을 심었느냐 하면, 몸과 마음이 싸우는 인간을 심었어요. 알겠어요? 이렇게 심어진 그 개인을 중심삼아 가지고 그런 가정으로 발전해서, 그런 종족, 그런 민족, 그런 국가가 되어 가지고 세계는 하나의 세계로 삐잉….
공산주의는 뭐냐? 사적인 길을 중심삼아 가지고 자기의 이익을 추구해서 자기 위한 하나의 마음을 대표한 결실체인 것입니다. 그다음에 민주세계는 무엇이냐 하면, 양심을 중심삼고, 공적인 길을 중심삼아 가지고 인류의 이익을 추구해 가기 위한 하나의 마음을 대표한 결실체인 것입니다. 이와 같이 공과 사를 중심삼고 세계에 열매를 맺은 것이 민주와 공산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심었으니 심은 대로 세계에 열매를 거둬야 된다 이거예요. 아시겠어요?
지옥과 천국은 나로부터 시작된다
이것이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예요. 이것을 어떻게 통일하느냐 이거예요. 우리가 어떻게 살아 남느냐? 이게 문제예요. 어떻게 세계인으로 등장하느냐? 이것이 문제예요. 이 원인이 세계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나에게 있습니다. 지옥이 다른 데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나로부터, 천국이 다른 데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나로부터 시작됩니다. 선악의 경계선이 정연하게 정비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몰랐다는 거예요.
우리는 개인적 선악의 분기선을 몰랐고, 가정적, 종족적, 민족적, 국가적, 세계적 선악의 분기선을 몰랐습니다. 그것이 마음대로 왔다갔다하지 않습니다. 전부 다 공식에 정연하게 되어 있다는 거예요. 1밀리는 10센티를 대표할 수 있고, 10센티는 1미터를, 1미터는 백 미터를 대표할 수 있습니다. 십진법과 같은 공식법도에 전부 다 연결되어 있다는 거예요.
개인적으로 가는 선악의 방향이 가정적으로 가는 선악의 방향과 틀릴 수 없고, 가정의 선악의 방향이 종족의 선악의 방향과 틀릴 수 없고, 종족의 선악의 방향이 국가가 가야 할 선악의 방향과 틀릴 수 없고, 국가가 가야 할 선악의 방향이 세계가 가야 할 선악의 방향과 틀릴 수 없고, 세계가 가야 할 선악의 방향이 온 천주가, 우주가 가야 할 선악의 방향과 틀릴 수 없는 일직선이라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양심은 뭐냐? 이 분기선에서 몸뚱이가 자기 이익을 취하려고 할 때 브레이크를 거는 거예요. ‘너는 공적이 되어라!’ 하며 이 공통분모에 서 있습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이 무엇이냐? 이 세계를 어떻게 하나 만드느냐? 세계를 하나 만들어 가지고 소화할 수 있어야 우리들이 살아 남을 것인데, 어떻게 하나되느냐? 이게 문제예요. 이것은 철학이 요구하고, 역사가 요구하고, 종교가 요구하는 모든 요구의 기점이 되어 있고, 모든 소원의 터미널(종착지)이 되어 있습니다.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어떻게 하나 만드느냐? 여러분의 몸과 마음은 하나될 길이 없다는 거예요. 다른 것을 가지고 하나될 수 없어요. 그렇지만 몸과 마음이 따로 놀게 되어 있지 않다는 거예요. 공명하게 되어 있다는 거예요. 여러분, 음차가 있지 않아요, 공명체? 이것을 딱 치면 주파가, 진동수가 똑같은 수로 만들어져 울리듯이 마음을 딱 치면 몸뚱이가 울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 몸뚱이가 울릴 때가 어느 때냐? 성숙했을 때입니다. 성숙해야만 된다는 거예요, 성숙해야만.
종교는 몸을 쳐서 마음이 지배할 수 있는 기지를 찾아 나왔다
인간이 어느때에 고장났느냐? 성숙한 자리에서 고장난 것이 아니라 미성숙 과정에서 고장났다는 겁니다. 그래서 인류가 이 기준을 맞추기 위해 노력을 해 오는데 그 길을 찾을 길이 없어요. 역사를 다 풀어야 되고, 종교를 다 해석해야 되고, 영계를 완전히 이해해야 되고, 하나님의 사랑을 이론적으로 체득해야 되고, 또 실천적인 경험을 통해서 다 알아야 됩니다. 그것이 쉬워요?
여러분의 몸과 마음이 언제 공명을 하느냐?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성숙된 자리에서 마음은 자연히 하나님의 사랑과 주파가 맞는다는 겁니다. 그 사랑의 주파로 말미암아 몸뚱이가 완전히, 백 퍼센트 하나되어서 하나님의 사랑 앞에, 전기로 말하면 플러스 마이너스가 불이 확 붙어 가지고 땜질한 것과 같이 된다는 거예요. 그랬으면 우리의 몸과 마음과 이상이 하나님과 완전히 접붙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자리를 잃어버렸다는 겁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우리가 접붙일 수 있는 몸과 마음의 기준을 발견하지 않고는 이걸 떼 가지고 가정에서 발견할 수 없어요. 이것을 국가적으로 가지고 가서 국가에서 발견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어디에서 찾아야 되느냐? 개인에서 찾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는 개인완성을 추구해 나온 겁니다. 그것을 몰랐다는 겁니다. 그러한 공명권을 이루어야만 완성됩니다.
여러분, 그런 몸과 마음이 됐어요? 그 자리에 들어가게 되면, 그 자리는 석가모니가 경험한 자리입니다. ‘천상천하(天上天下)에 유아독존(唯我獨尊)’이라는 그 경지에 들어갑니다. 그 가운데 들어가게 되면, 사랑의 구형과 같은 그 핵심 자리에 떡 들어가면 안 통하는 것이 없어요. 구형 내의 모든 힘은 이 중심을 통하지 않고는 작용할 수 없습니다. 이것을 통하지 않은 작용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우주의 모든 작용은 이것을 기본으로 삼고 확대했습니다. 그런데 사랑을 중심삼은 축이 생겨나지 않았다 이겁니다. 핵심이 생겨나지 않았다는 거예요. 인간만이 아니예요. 오늘날 인간끼리 엮어진 사랑, 가정을 중심삼은 사랑, 가정을 중심삼고 확대된 종족, 민족, 국가의 사랑, 혹은 성인이 가르쳐 준 사랑을 가지고는 그 근본을 깨치지 못했다는 겁니다.
그러면 레버런 문이 도대체 뭘하고 있는 사람이냐? 이 몸과 마음에 전기만 통하게 해 놓으면 스파크가 일어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언제나 몸뚱이가 마음을 지배해 나왔다는 거예요. 마음이 악마의 회초리에 맞아 떨어져 나갔다는 거예요. 양심이 주체인데, 플러스인데 그 플러스가 악마의 플러스를 대항해 가지고 전부 다 반발해 나왔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종교는 몸뚱이를 치는 겁니다. 무력하게 만들라 이겁니다. 무력하게 만들어 본심의 작용을 통해서 본연의 경지에 들어가 가지고 마음을 지배할 수 있는 기지를 찾아라 이거예요. 그래서 수도(修道)를 하는 겁니다. 모든 수도가 여기서 나옵니다. 그래서 고차적인 종교는 현실을 부정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 같은 양반들도 역설적인 논리로 가르쳐 줬습니다. ‘누구보다도 나를 더 사랑하지 않고는 아버지 앞에 갈 자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게 있을 수 있는 말이예요? ‘어미나 아비나 아들이나 딸이나 누구보다도 나를 더 사랑하라’ 그리고 그것뿐만 아니라 ‘네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했습니다. 그건 자기가 지은 죄를 탕감해야 된다는 겁니다. 그다음에 가서는 ‘네 집안 식구가 원수니라’고 했습니다. 이것을 다 알아야 돼요. 지금까지 하나님을 통해 가지고 본연의 사랑이 흘러 내려올 수 없는 역사적 비참상이 인간에게 엉클어져 있다는 거예요. 이 엉클어진 것을 풀어야 됩니다. 막힌 구멍을 다 뚫어야 되고, 엉클어진 것을 다 풀어 가지고 순리적인 과정을 통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풀기가 쉬워요?
통일교회는 맞고 빼앗아 나오는 작전으로 발전해 나왔다
오늘날 통일교회라는 명사가 여기서 나왔습니다. 오늘날 미국은 세계적인 시대로 넘어가야 할 그 방향을 모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떻게 해서 니카라과 문제 같은 것을 2억 4천만 미국 사람 중에서 어디 믿을 사람이 없어서, 10억 가까운 기독교인들 가운데 어디 믿을 사람이 없어서, 댄버리에 들어가 자고 있는 레버런 문을 찾아와 가지고 세계사적인 섭리의 뜻 앞에 지향될 수 있는 남미가 문제 되겠으니 깨워 가지고 그것을 지령하셔야만 했겠어요? 그런 하나님이 얼마나 비참하신가를 알았어요? 비참하다는 겁니다.
문총재는 어떤 사람이냐? 인류역사상에 누구보다도 비참한 운명길을 걸어온 사람입니다. 지옥의 밑창으로부터 이 세상의 험산준령을 파헤쳐 거기에 고속도로를 닦기 위해 굴을 뚫고, 땅을 메우고, 다리를 놓아 나온 겁니다. 그래 가지고 세계를 통해서 하늘나라에 갈 수 있는 하이웨이를 닦아 나온 겁니다. 그거 믿어져요? 믿어지지 않으니까 배워야 됩니다. 배워 놓는 날에는 틀림없이 그 경지에 들어갑니다. 누가 가라 말라 하지 않아도 가는 거예요. 눈감고도 끌려가는 겁니다.
예를 하나 들어 말하지요. 통일교회 교인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느냐 하면 말이예요, 아주머니들이 시장에 가려고 바구니를 들고 나와 가지고 어디로 가느냐 하면 자기도 모르게 통일교회로 찾아와요. 그거 믿어져요? 그것은 무엇을 말하느냐 하면, 마음이 몸을 주관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되었다 그 말이라구요. 우주력이 이 지상의 인간세계에서 움직이고 있다는 겁니다.
오늘날 우리는 1기압의 압력을 통해서 균형을 취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구요. 마찬가지예요, 마찬가지. 우주와의 맥박을 동화시킬 수 있는 힘이 보다 양심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되는 날에는…. 이게 운행하고 있는데 이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이것만 열어 주는 날에는 가라 말라 할 필요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오늘날 통일교회 교인들이 세계적으로 문제가 된 거라구요. 위대한 학자들이 통일교회 교인을 만나고 나서는 자기 손주 며느리를 저와 같은 아가씨, 손주 사위를 저와 같은 총각으로 만들고 싶다는 겁니다. 왜? 어째서? 밤에도 생각나고, 낮에도 생각난다 이거예요. 그를 만나게 되면 떨어질 수 없다구요. 그 얼굴을 중심삼고 돌고 싶다는 거예요. 그것은 사랑의 화덕과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오늘날 통일교회가 다른 것이 그거예요. 모든 종교가 반대하고 나라와 세계가 반대했지만 하나님의 작전은 맞고 빼앗아 나온다는 겁니다. 아시겠어요? 악마의 작전은 치고 빼앗겨 나가는 것입니다. 공적인 것은 자기가 희생하는 길이요, 사적인 것은 자기가 이익 되는 길입니다. 그 말이 그 말입니다. 하나님의 작전은 맞고 빼앗아 나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레버런 문이라는 한 사람을 세계로 내세워 가지고 전세계가 공격해서 전세계가 전부 다 빚을 갚아야 돼요, 이자를 보태 가지고. 그래서 미국은 미국 자체가 레버런 문 때문에 악한 미국의 입장에서 선한 미국으로 돌아와야 됩니다, 갚으려니. 주권자는 뒤에 있지만 국민이 쭉 따라온다는 거예요. 대한민국도 그렇잖아요?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모든 주권세대들이 통일교회를 반대하고 반목질시했지만 국민은 전부 다 통일교회 레버런 문한테 돌아오고 있습니다. 그거 알아요? 전부 다 ‘문총재한테 가자’ 이러고 있다는 겁니다. 거 누가 그렇게 만드느냐? 운세입니다, 운세.
통·반장이 통일교회 문총재를 이렇게 만나서 얘기 들을 수 있는 것은 꿈이예요, 꿈. 이것이 여러분에 의해 된 것 같아요? 그거 문총재가 만든 것 같아요? 봄이 찾아오는 데는 문총재가 찾아오게끔 한 것이 아닙니다. 봄은 순환법도에 의해 찾아오는데, 순환법도에 대응할 수 있는 온대지방에 인간이 가야 된다는 거예요. 한대지방에 있어서는 안 됩니다. 마찬가지예요. 사랑의 봄동산이 있는데, 사랑의 봄동산이 우주 인간세계에 있는데 한대지방에, 타락하고 고장난 그대로 있어 가지고는 안 되겠다구요. 그것이 온대지방으로 찾아가야 됩니다. 그게 종교의 길입니다. 한대지방을 부정해야 돼요. 참된 종교는 부정에서부터 시작한다구요. 참된 사랑은 악한 사랑의 자리에서 긍정해서는 안 나옵니다. 완전 부정에서부터 나오는 겁니다.
사랑으로 하나돼야만 우리가 살 수 있어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 수녀나 신부들을 보게 되면, 전부 다 사랑에 실패한 사람들이 세상을 박차고 그 길을 가는 거예요. 그거 전부 다 이론에 들어맞아요. 이론에도 환해야 돼요.
자, 이제 시간이 많이 됐기 때문에 결론을 짓자구요. 살 수 있는 단 하나의 길은 뭐냐? 그것은 여러분 가정에 있어서 어머니 아버지를 중심삼고, 부부를 중심삼고, 자녀를 중심삼고 가정들이 불변적인 사랑으로 하나된 가정이 돼 있느냐, 가정적 보화가 돼 있느냐 이거예요. 우주가 바라볼 때 놓칠 수 없고, 전부 다 원할 수 있는 가정을 가졌느냐? 그 가정을 단위로 해서 그걸 횡적으로 확대하게 될 때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고, 놓을 수 없는 종족을 가져야 됩니다. 종족권을 가져야 됩니다, 여러분들. 그다음에는 그 기반을 확대해서 민족권을 가져야 됩니다. 민족권을 확대해 가지고 국가권을 가져야 돼요. 그다음에 국가권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세계권을 가져야 돼요. 또, 세계권만이 아니라 영계권까지 지상세계에 연결될 수 있는 사랑의 통치무대를, 통일된 권한을 갖지 않고는 인간이 완성 안 됩니다. 인간이 해방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압축해 가지고, 개개인이 세계적 고개를 갈 수 없으니 압축해 가지고…. 하나님은 어떤 섭리를 하느냐 하면, 세계적 종말시대에, 세계 가운데는 국가가 들어가 있고, 민족이 들어가 있고, 종족이 들어가 있고, 가정이 들어가 있고, 부부가 들어가 있고, 개인이 들어가 있습니다. 세계적 시대에 환난을 맞게 해 가지고 전부 다 용광로에 쓸어 넣는 겁니다. 지금 때가 그때라구요. 대한민국 사람이나 미국 사람이나 선진국가나 후진국가나 할것없이 전세계를 지금 용광로에 넣어 가지고 전부 다 휘젓고 있는 겁니다.
이러한 시련 과정에서 어떻게 참을 알아서 맞이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것을 벗어나기 위한 것이 통일교회의 길이예요, 통일교회의 길. 그건 문총재를 중심삼은 길이 아니예요. 하나님을 중심삼은 길입니다. 문총재도 하나님의 사랑에 속해 있는 사람입니다. 문총재가 가르치는 진리가 통일교회만의 진리가 아닙니다. 만인의 진리입니다. 영원한 세계의 진리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된다구요.
이럴 수 있는 전통적 기반을 중심삼고 개인으로부터 가정적 세계편성, 그래서 합동결혼식 하지요? 그런 소문 들었지요? 그다음에 종족편성, 민족편성, 국가편성, 세계의 수많은 국가들을 대표한 요원들을 편성하면 통일교회의 수는 한국 백성보다 많을 것입니다. 4천만 이상이 될 것입니다. 이건 불원한 장래에 될 거예요. 틀림없이 될 거예요. 4천만이 넘게 될 때는 말이예요, 통일교회 식구들은 누구한테 세금을 바쳐야 되느냐 하면 문총재한테 세금을 바쳐야 됩니다. 왜 그래요? 문총재는 세금을 받아 가지고 자기 혼자 먹고 사는 것이 아니예요. 하나님 앞에 돌려주는 겁니다. 하나님 앞에 돌려줘 가지고 하나님이 세계 인류 앞에 다시 나누어 주는 겁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의 소유권을 결정 못 했습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내 것이라는 것을 결정 못 했어요. 사람을 내 것으로 못 맞았는데 어떻게 사람을 위해 지은 만물이 내 것이 될 수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이 역사는 개인 소유시대, 가정 소유시대, 종족 소유시대, 민족 소유시대…. 지금 개인 소유를 인정하지 않고 사회주의적 국가 소유시대로 넘어가요. 이것이 앞으로 아시아 소유권 시대로 해서 세계 소유권으로 해 가지고 다시 하나님의 사랑과 인연을 맺은 소유권 결정의 기반 밑에서 다시 분배되는 세계가 지상천국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세계를 위해서 준비했고, 그 세계로 전진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계에 아무리 문제가 있더라도, 레버런 문이 반대를 받으면서도 이만한 기반을 닦아 놓았어요. 만일에 40년 동안 환영했다면 어떻게 됐겠어요? 대한민국이 어떻게 됐겠어요? 대한민국은 이제라도 늦지 않으니 하나돼 가지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참사랑으로 남북통일을 하는 것
조국광복이라는 것은 오늘날 남한만이 아닙니다. 남북한을 중심삼고 4대 강국권 내에 있는 각 국토를 사랑의 힘으로 소화해야 합니다. 그건 참다운 사랑의 힘만이 소화할 수 있는 겁니다. 이것은 영원불변이예요. 억천만 년 전부터 우리 조상들이 원하던 사랑입니다. 이 시대에 40억 인류가 찾고 있는 사랑입니다. 앞으로 영원히 후대들이 이 사랑을 중심삼고 전부가 하나될 수 있는 공통분모가 국가의 차원을 넘어 세계적으로 이루어질 때,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통치하는 그런 세계를 소위 지상의 천국이라고 하는 겁니다. 그런 세계가 됐어요? 그 세계를 만들자는 거예요.
그것이 거짓말이 아니라 사실입니다. 통일교회를 믿게 되면 그렇게 됩니다. 틀림없이 그렇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있다 없다 하는 것을 인정하는 것보다도 인정하는 권내를 넘어갔습니다. 하나님이 있다 없다 하는 것이 내가 밥을 먹는 것 이상 실감이 나게 돼요. 그래서 통일교회에는 역사적으로 여러분들이 이해할 수 없는 신비로운 사실이 많다는 거예요.
내가 이번에 돌아올 때 세계적 운세를 몰아 가지고 돌아왔으니만큼, 이제 승공연합을 중심삼아 가지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남북통일입니다. 통일교회에서는 레버런 문에 대해서 ‘참아버지’라고 말합니다. 김일성이는 가짜 아버지예요. 그것은 전부 다 협박 공갈을 해 가지고… 그런 사랑관계는 있을 수 없다는 거예요. 악마의 소질을 가지고 자기 제일주의로 천하를 전부 다 먹어 치우려고 한다구요. 그러나 레버런 문은 그와 달라요. 사랑을 가지고 위하는 길을 통해서, 보다 위하는 길, 희생의 길을 통해서 만민을 수습하고, 국민을 수습해 가지고 남북한통일을 표방해서 여러분을 모아 들인 거예요.
그래 여러분을 처음 만났으니 이런 것을 알고, 이제부터 이것을 진정 알아 가지고 이 일을 완전히 체득할 수 있게 될 때에, 우리들이 살 수 있는 길이 이 사회에서부터 세계적 무대까지 연결될 수 있는 시대가 온다 하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부디 하나님이 원하는 그 목적지까지, 또 문총재가 가고자 하는 그 목적지까지…. 남북을 통일하고, 공산세계를 전부 다 제거해 버리고 모스크바까지 가 가지고 소련까지 해방하기 위한 그 길을 가는 도중입니다.
여기 기관에서 온 사람이 있으면 ‘문총재가 뭐하려고 그러나? 통장들을 만들어 가지고 정권을 탈취하려고 그래’ 할지 모르지만, 생각도 말라는 거예요. 내 갈 길은 북한입니다. 북한 땅, 고향 땅을 탈환해야 됩니다. 그것은 천명이예요. 그다음엔 모스크바를 해방해야 됩니다. 그 일을 하려니 미국을 수습하고, 일본을 수습하고, 중공을 손아귀에 넣어 수습하는 놀음을 하고 있어요. 그런 방대한 모든 놀음이 내 개인의 힘으로 돼요? 하나님이 보호하사! 하나님이 보호하는 데는 맹목적으로 보호하지 않아요. 변치 않는 사랑의 길을 따라오기 때문에 보호하는 거예요. 이 길을 통해서만이 오직 통일적 세계가 벌어지고, 이 길을 통해서만이 하나님과 인간의 모든 소원성취가 이 땅에 완성될 것입니다. 만세! 여러분이 복을 받고 그런 자리에 가기를 부탁하면서 말씀드렸습니다. 감사합니다.(1986.02.09.~03.08, 서울 리틀엔젤스예술회관, 국제승공연합 서울 통지부장 안보교육 및 결의대회)
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