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세평(朝明世平)-아침이 밝으면 세상이 평화롭다. 이상호(소소감리더십연구소 소장) 1. 문명이 앗아간 밤과 아침 “늦게 일어남으로써 아침을 줄이지 말라. 어느 정도까지는 아침을 생명의 본질로 신성한 것으로 여겨라 <A. 쇼펜하우어>” 작가 소로는 “탄력 있고 활력이 넘치는 사상이/ 태양과 보조를 맞추는 사람에게는/날은 영원한 아침이다”<H.D. 소로/윌든>라고 하였다. 예로부터 동서양을 막론하고 아침은 매우 중요한 시간이었다. 그러기에 선각자들은 저마다 아침에 일어나 감사의 기도를 올리고 자기를 가다듬고 하루를 설계하며 경건하게 맞이할 것을 주문하였다. 그러나 그토록 중요하게 여겼던 아침은 현대 문명 사회에서 졸음에 겨운 시간이 된 사람들이 무수히 많다. 밤늦게까지 일을 하거나 즐길 수 있는 조건이 발달하면서 밤의 활동 시간이 늘어나고 늦잠을 자기 때문에 아침이 사라지거나 아침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많아진 것이다. 그것은 순전히 문명의 탓이기도 하고, 문명의 혜택이기도 하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인간이 문명에 밤과 아침을 빼앗긴 것은 문명 탓만이 아니다. 문명을 활용하고 즐기는 인간의 시간 관리 탓이기도 하다. 어떤 이는 생존을 위해 밤을 활용해야 하지만 상당히 많은 이들은 유희와 취향으로 밤을 활용한다. 이제 밤은 낯이나 다름 없이 밝기 때문이다. 그러한 문명은 자연 현상에 대한 인간의 인식과 생체리듬을 확 바꾸어 버리는데 엄청난 역할을 하였다. 전통적으로 밤은 끝과 죽음과 휴식의 상징이었고, 아침은 시작과 생명의 상징이었다. 밤은 어둡다. 어둠은 활동을 불가능하게 한다. 따라서 어둠은 활동의 중단이며, 죽음이며 절망의 시간이다. 동시에 휴식과 충전의 시간이다. 분명한 것은 어둠은 휴식과 충전을 선물한다. 사실 휴식은 매우 중요한 시간이다. 모든 생명체는 휴식 없이는 삶의 에너지를 획득할 수 없으며, 존재할 수도 없다. 어둠은 새로운 존재를 향한 에너지의 충전 시간이다. 그리고 죽음이 있기에 모든 생명체는 새로운 생명으로 이어지는 생명순환의 발전을 이룬다. 만약 어둠과 죽음이 없다면 세상은 얼마나 삭막할 것인가? 세상은 온통 오래된 고목과 오래된 늙은이와 오래된 나뭇잎과 오래된 풀들로 가득할 것이다. 다행스럽게 자연의 이치는 어둠과 밝음의 조화를 통해 죽음과 탄생이란 연속성을 세상에 선물하였다. 그러기에 우린 나무에 잎이 나고 열매가 맺고 또 앙상하게 온몸을 드러내는 나목으로 변화하는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변화를 통해 새로운 삶을 향해 성찰하고 다짐하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한다. 그런 어둠의 밤은 생명잉태의 시간이기도 하다. 밤이 있기에 모든 생명체는 사랑을 나누며 종족을 이어가는 지혜를 터득하고 그 시간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었다. 반면에 아침은 밝음의 상징이다. 아침 떠오르는 태양은 세상에 밝음을 가져온다. 그 밝음은 활동의 상징이다. 대부분의 생명체는 밝음 속에서 활동한다(물론 어둠 속에서만 활동하는 일부의 생명체가 있기는 하지만) 따라서 밝아오는 아침은 하루의 시작임과 동시에 활동의 시작이며 희망의 상징이다. 아침에 이슬을 머금고 피어나는 꽃들의 오묘한 모습을 보면 참으로 경이롭다. 아침은 그토록 인간에게 무수한 경이로움과 시작의 희망을 불태운다. 이 오묘한 자연의 이치에서 인간은 삶의 지혜와 방법을 터득해 왔다. 그런 오묘한 이치가 인간이 만든 문명에 의해 뒤틀리고 변질되고 파괴되어 가고 있다. 많은 현대인이 경험하는 밤과 아침의 모습은 예전과는 확연하게 다르다. 많은 사람이 밤을 죽음과 휴식이 아닌 활동의 시간으로 활용하고 아침을 희망과 시작이 아닌 휴식의 시간을 활용하기도 한다. 밤에 일하고 아침에 돌아와 휴식을 취하는 사람이 있는가면, 밤늦도록 환한 불빛 아래서 즐기고 마시고, 보고, 활동하다가 늦잠을 자는 바람에 아침이 피곤한 사람들도 무수히 많다. 현대인들의 그런 밤의 수많은 활동은 생산성을 향상하기도 하지만, 타락과 퇴폐와 범죄를 양산하기도 한다. 그리고 인간을 정신병적인 상태로 몰고 가기도 한다. 그것은 현대인들이 겪는 밤의 복합적인 이미지다. 학교에서 학생들도 옛날에는 1, 2교시 수업에 눈이 반짝인다. 그러나 요즈음의 학생들은 아침에 피곤하고 졸리고 눈은 게슴츠레하다. 20년 전까지만 해도 국어 영어 수학 등 도구 교과목은 1, 2, 3 교시에 집중 배치해 달라는 것은 학생, 교사, 학부모의 공통 주문이었지만 지금은 달라졌다고 한다. 아이들은 적어도 3교시는 되어야 활기를 찾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상당수의 학교들은 1교시부터 체육 음악 등의 활동을 하고 3교시 이후부터 도구 과목을 한다는 것이다. 이는 밤에 무엇인가 늦도록 하고 늦잠을 자기 때문에 아침을 몽롱한 상태에서 맞이하는 학생들이 많다는 것이다. 어른들도 밤에 즐길 거리가 많다. 밤새워 불야성을 이루는 주점이 있고, 심야 영화관도 있다. 밤을 새워 생산하는 산업 현장도 있고, 집안에서도 밤새워 텔레비전을 시청할 수 있고 영화를 볼 수도 있다. 그리고 상당수의 현대인이 불면증을 호소한다. 이제 불면증은 많은 사람이 겪는 일상적인 질병이 된 것 같기도 하다. 불면증이 많은 만큼 정신질환도 많아졌다. 무엇이 현대인에게 밤을 앗아갔을까? 그것은 빛이란 문명의 총화다. 빛은 분명한 문명의 총화다. 빛이 있기에 밤에도 낯처럼 활동할 수 있고 빛이 있기에 잠을 자지 않고 연속하여 생산할 수 있다. 휴식 없는 생산은 일시적으로는 좋은 일이지만 지속적인 생산을 이룰 수 없다. 빛을 활용한 쉼 없는 활동은 에너지의 재충전을 막기에 모든 에너지를 소진하게 만든다. 모든 것이 소진된 생명체의 최후는 죽음이다. 이처럼 빛은 분명하게 밤의 속성인 어둠과 죽음과 휴식을 앗아갔다. 불면증도 상당 부분 지나치게 빛에 노출된 인간 활동 탓이기도 하다. 현대인들의 상당수는 빛이 환한 상태에서 잠을 청하고 잠을 잔다. 그러기에 죽음에 가까운 숙면할 수 없다. 빛 속의 현대인들 상당수의 잠은 반은 자고 반은 떠 있는 어정쩡한 잠이 되어 버렸다. 그러기에 계속 수면 부족으로 졸리는 상태에 처해 있게 된다. 이렇게 문명의 총화인 빛은 현대인들에게 밤의 근본적인 가치를 앗아가 버렸다. 문명의 총화인 빛에 의해 밤을 빼앗긴, 아니 스스로 밤을 반납한 인간은 밤에 잠이란 활동의 중단 속에 충분한 휴식과 에너지를 충전하여야 하는데 그것을 못한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는 일정한 생체리듬을 가지고 있는데 빛은 그것마저 앗아갔다. 그리고 그 리듬의 상실과 깨어짐으로 몸과 마음의 리듬이 뒤틀려버렸다. 내가 생각하기에 많은 현대인이 겪는 문명명이라는 불면증과 정신질환의 상당 부분도 밤을 앗아간 빛이란 문명의 총화 탓이며, 스스로 밤을 반납한 인간의 잘못이라고 여긴다. 이렇게 상당수의 현대인은 여러 가지 이유로 문명에 의해 밤을 빼앗기고 스스로 반납한 결과 상쾌하고 경건하게 맞이하여야 할 아침까지 잃어버렸다. 그러기에 아침을 밝게 맞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아침을 밝고 경건하게 맞이하는 사람이 건강하며 건강한 하루를 보내며 인생을 더욱 건강하고 의미있게 살아간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조명세평(朝明世平)은 매우 의미가 있다. 2. 조명세평(朝明世平)의 의미와 지혜 세상을 멋지게 살아간 선각자들 대부분은 아침을 경건하게 맞이하였다. 그리고 하루를 평화롭게 지내기 위해 노력하였다. 아침이 경쾌하고 밝으니 하루가 밝게 시작된다. 물론 우연이 작용하여 하루의 중간에 다른 일들이 발생하지만 대체로 아침을 밝게 시작하는 사람은 하루가 즐겁다. 그래서 선조들은 아침을 밝게 맞이할 것을 주문하였던 것 같다. 조명세평(朝明世平)에서 조(朝)는 아침을 의미한다. 아침은 해가 뜨는 시간이며 어둠을 밀어내고 밝음이 시작되는 시간이다. 따라서 조(朝)는 밝음의 시작이며, 하루의 시작이자 모든 일의 시작을 의미한다. 명(明)은 밝다. 밝히다, 번뇌의 어둠을 없앤다는 뜻을 지닌다. 그리고 사물의 이치를 판별하는 지력, 이치가 분명하여 의심할 여지가 없음, 등을 뜻하기도 한다. 따라서 명(明)은 물리적인 밝음의 차원을 넘어선 인간의 지식과 지혜가 뛰어나다는 의미도 지닌다. 또 밝음은 마음에 그늘이 없고 무엇인가 희망에 차 있음을 말하기도 한다. 삶에 희망이 있고 에너지가 충만하니 마음과 표정이 밝을 수밖에 없다. 세(世)는 우리가 사는 세상을 의미한다. 그리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시간과 공간이다. 그런 점에서 세(世)는 삶의 일상인 하루하루가 모여서 이루어진 삶의 총체이다. 그 작은 단위는 찰나의 공간과 시간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축적된 하루하루의 시간과 공간, 그리고 그것을 넘어영구한 시간과 공간을 의미하기도 한다. 평(平)은 평화롭다, 바르다, 곧다는 의미를 지닌다. 이를테면 잘되어 가고 있다. 일이 순조롭게 풀려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이 평화롭고 순조롭게 풀려가니 성과가 나고 행복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조명세평(朝明世平) 즉 아침을 밝고 희망차게 출발하니 찰나 찰나의 시간이 평화롭고, 하루가 보람되다. 그렇게 아침을 밝고 희망차게 출발하는 날이 겹치니 인생이 평화롭고 세상이 평화로울 수밖에 없다. 따라서 우리는 아침을 밝고 견겅하게 맞이하려고 모력하여야 한다. 아침을 밝고 희망차게 맞이하기 위해서는 새벽의 중요성을 깨달아야 한다. 공자도 삼계도(三計圖)에서 “일생의 계획은 어릴 때 있고, 1년의 계획은 봄철에 있고, 하루의 계획은 새벽에 있다. 어릴 때 배우지 않으면, 늙어서 아는 것이 없고, 봄철에 만일 밭을 갈지 않으면 가을철에 바랄 것이 없고, 새벽에 만일 일어나 계획을 세우지 않으면 그날에 할 일이 없다( 孔子 三計圖云 一生之計在於幼 一年之計在於春 一日之計在於寅 幼而不學老無所知 春若不耕秋無所望 寅若不起日無所辦 <명심보감 입교편>”고 하였다. 새벽에 일어나 하루를 계획하고 준비하여야만 하루 중에 할 일이 있고 할 일이 있어야 얻는 것이 있다는 것이다. 이는 목표와 계획을 세워 실천하는 계획성 있는 생활을 강조한 것이 된다. 모든 것은 때가 있는 법이다. 어린 시절은 일생을 준비하는 가장 중요한 때이고, 봄은 일 년을 준비하는 가장 중요한 때이며, 아침은 하루를 준비하는 가장 중요한 때이다. 이런 비유에 의하면 일 년의 시작인 새해 아침은 일 년의 새벽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새해 아침에 많은 다짐을 한다. 새해 일출을 보러 가는 사람들도 많다. 그 사람들은 새해 아침에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면서 지난 일을 털고 새로운 삶을 설계하고 다짐한다. 그리고 일년의 평화를 기원한다. 이 또한 조명세평(朝明世平)의 기원이다. 아침은 이처럼 매우 소중하다. 그래서일까? 수많은 시인과 작가들은 아침을 희망차게 노래하였다. 셰익스피어는 “아침 해가 붉은빛 도포를 걸치고/이슬을 밟으며/동녘 산마루를 건너오고 있다. <햄릿>” “동쪽의 하늘 문이 온통 불과 같이/새빨갛게 열리더니 아름답고도 고마운/ 햇볕이/대양의 위를 비추어 그 녹색 물결을/황금으로 물들이다. <한여름 밤의 꿈>”고 하였다. 여류 소설가 박화성(朴花城, 1903~1988)도 “참으로 푸른 아침이다. 머리 속에 푸름이 스며 청청히 맑아지고 눈 속에 푸름이 스미어 서늘한 광채마저 푸르다. <고개를 넘으면>”고 하였다. 이처럼 모든 이들에게 아침은 늘 소중하고 찬란하였다. 요즈음도 성공한 사람들은 대부분 아침형 인간이었다. 많은 성공한 기업인들은 조찬 모임을 통해 하루를 설계하고 시간을 아낀다. 그리고 밤에는 일찍 집에 들어가 하루를 정리하고 숙면을 취한다. 밤이 질긴 사람은 아침이 무거울 수밖에 없다. 그것은 나의 삶에서도 충분히 경험하였다. 밤에 숙면을 취하지 못하였거나 저녁에 하루를 제대로 정리하지 못하였을 때 다음날 은 아침만 아니라 종일 상쾌하지 못하였다. 아마 모든 사람이 그럴 것이다. 유명한 토크쇼의 여왕 오프라 윈프리는 하루의 시작을 경건한 아침 기도로 출발한다고 했다. 그런데 많은 현대인들이 그 소중한 아침을 반납하였거나 잃어버렸다. 문명의 굴레에서 문명의 노예가 되었는지 므른다. 아침을 밝고 맑게 시작하여야 하루가 즐겁다. 이를 위해 어떻게 하여야 할까?
3. 조명(朝明) 즉 아침을 밝게 맞이하기 위하여 현대인들이 아침을 밝고 희망차게 맞이하지 못하는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가 밤에 숙면하지 않거나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침을 밝게 맞이하려면 우선 밤에 숙명을 취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를 위해선 우선 규칙적인 생활이 필요하다. 하루가 끝나는 저녁이면 하루를 정리하고 몸과 마음의 짐을 벗어야 한다. 간단한 운동과 샤워로 몸에 끼어 있는 먼지와 찌꺼기를 털어내야 한다. 하루 동안 가졌던 집착도 내려놓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루를 간단하게 정리하는 습관은 내일의 짐을 더는 일이 된다. 잠자는 시간을 정해 놓고 반드시 지켜야 한다. 이를 위해선 저녁에 삼가야 할 것이 있다. 과식하지 말며, 적어도 11시에는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 그러나 현대의 많은 문명의 산물들은 그것을 방해한다. 그래서 그 문명의 산물에 대한 집착을 내려 놓을 줄 알아야 한다. 숙면하기 위한 두 번째 방법은 빛으로부터의 해방이다. 현대의 많은 사람은 잠자리에서도 핸드폰과 텔레비전을 가까이한다. 취침 공간은 빛을 차단해야 하는데 늘 빛과 함께 있으니 숙면할 수 없다. 침실에는 텔레비전을 포함한 모든 빛을 차단하면 숙면에 성공할 수 있다. 숙면하지 못하는 사람은 정신적으로 번뇌가 많거나 쇠약해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숙면을 방해하는 물리적 공간의 문제이기도 하고 생활 습관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것을 총체적으로 점검해 보면 어떨까? 예로부터 인간이 가장 깊이 잠드는 시간은 자시(子時 약 11시〜새벽1시)라고 한다. 그런데 상당수의 현대인은 그 시간에 활동을 한다. 그 시간은 가장 어두워야 하는데 빛으로 장식한다. 그러니 숙면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일 것이다. 둘째, 아침을 경건하고 희망차게 맞이하려면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한다. 적어도 6시에는 일어나야 활동할 수 있다. 그리고 아침 운동을 가볍게 하고 반드시 아침 식사를 하여야 한다. 아침 식사를 하지 않고 움직이는 것은 기름 없이 자동차를 움직이려는 것과 같다고 한다. 젊은 시절은 아침 식사를 하지 않아도 표가 나지 않지만, 나이가 들어 에너지가 소진되면 반드시 표가 나게 된다. 규칙적인 기상과 식사는 건강과 규모 있는 생활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 셋째, 아침에 간단한 명상(기도)과 함께 일과를 설계하고 점검한다. 그 방법으로 선각자들은 아름다운 시나 명언을 읽거나 모닝 페이지를 쓸 것을 강조한다. 다이어리에 아침에 느끼는 감정과 하루의 계획과 다짐을 기록하는 일은 저녁에 쓰는 일기 이상으로 중요하다고 한다. 항상 펜과 노트를 가까이 할 수 있음은 자기를 성찰하고 설계하는데 매우 유용한 일이 된다. 실제로 그것은 나에게 일기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그런데 현대인들은 아침부터 우울한 뉴스부터 접한다. 그 우울한 뉴스는 나중에 접하면 좋지 않을까? 우울한 뉴스는 인간을 본능적으로 분노로 몰고 가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방법이야 어떻든 나는 현대인들이 의도적이든 비의도적이든 빼앗긴 아침을 되찾기를 바란다. 그리고 아침을 항상 밝고 경건하게 맞이하기를 바란다. 그러면 세상이 더 평화로워질 것이다. 이를 위하여 우린 문명에 지배당하여 문명의 노예가 되지 말고 문명을 부리는 주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 빛의 노예가 되지 말고 빛의 주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 조명세평(朝明世平) 그것은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늘 유효하리라고 나는 확신한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이 조명세평(朝明世平)을 이룰 때 세상도 더 평화로워질 것이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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