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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리고에서(수 6장 1- 7)
성경본문: 여호수아 6장 1-7
1. 이스라엘 자손들로 말미암아 여리고는 굳게 닫혔고 출입하는 자가 없더라
2.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네 손에 넘겨 주었으니
3. 너희 모든 군사는 그 성을 둘러 성 주위를 매일 한 번씩 돌되 엿새 동안을 그리하라
4. 제사장 일곱은 일곱 양각 나팔을 잡고 언약궤 앞에서 나아갈 것이요 일곱째 날에는 그 성을 일곱 번 돌며 그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 것이며
5. 제사장들이 양각 나팔을 길게 불어 그 나팔 소리가 너희에게 들릴 때에는 백성은 다 큰 소리로 외쳐 부를 것이라 그리하면 그 성벽이 무너져 내리리니 백성은 각기 앞으로 올라갈지니라 하시매
6.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제사장들을 불러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언약궤를 메고 제사장 일곱은 양각 나팔 일곱을 잡고 여호와의 궤 앞에서 나아가라 하고
7. 또 백성에게 이르되 나아가서 그 성을 돌되 무장한 자들이 여호와의 궤 앞에서 나아갈지니라 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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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12월 9일 자에 네이버 이사회 의장 이해진 씨의 인터뷰 기사를 보았는데, 이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닌텐도, 노키아 같은 기업이 무너지는 상황에서 직원들에게 “회사를 조기축구회쯤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 것 같다.”라며, 축구 동호회는 참여가 중요하지만, 프로는 승패가 중요하다고 말입니다.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는 ‘프로 크리스천’이 되어야겠다.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하는 자 말입니다.
우리는 지난주에 느보산에서 가나안 땅을 바라보며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은 모세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의 죽음이 결코 실패가 아닌 것은 하나님의 약속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서는 하나님께서 모세의 후계자로 여호수아를 세우시는 이야기로부터 시작합니다. 계속된 하나님의 약속이죠.
첫 약속은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였습니다. “큰 민족을 이루시겠다는”
그러나 이삭과 야곱, 요셉의 때에 그 약속을 이루기 위해, 약속의 땅을 떠나게 하셨습니다.
참 신기하죠? ‘약속을 이루시기 위해 약속의 땅을 떠나게 하신다!’
그리고 430년간 고센이라는 인큐베이터 속에서 약속의 백성을 만들어 가셨습니다.
드디어 애굽을 떠나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해 갑니다.
이미 거대한 민족을 이루었고,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걸출한 지도자 모세를 앞세우고 말입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을 바라보는 곳에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한 번 더 이해할 수 없는 일을 하셨습니다.
120살이 되어서도 눈이 흐리지 않은 모세를 “거기까지”라고 말씀하시고, 아직은 연약해 보이는 새로운 지도자 여호수아를 세우셨습니다.
신앙적으로 해석할 때,하나님의 일은 절대로 사람에 의해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시려는 의도와 하나님의 약속은 우리의 기한과 계획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도하신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시려는 의도는 아니었을까요?
하지만 그 상황에서 여호수아는 두려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치 모세가 처음 불림을 받을 때 떨었던 것처럼 자신의 능력으로 할 수 없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꼈을 때, 하나님은 그에게 돕는 자를 붙여주셨고, 양을 치던 지팡이로 능력을 행하도록 도와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부르시고 쓰시는 방법도 같습니다.
여호수아를 부르시고 해야 할 일을 명하셨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사적인 약속을 하셨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수 1:5)
결국, 계속되는 하나님의 이야기는 ‘동행’입니다.
요단강을 건너고, 기념비를 세우고, 할례를 받고, 여리고 성을 앞에 두고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것 역시 ‘하나님과의 동행’과 ‘하나님께 대한 신뢰’를 빼놓고는 도저히 설명이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여호수아서는 여호수아 개인적인 관점에서 볼 때 하나님께서 이 약속을 지키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가 도무지 돌파할 수 없는 장애물을 만날 때마다 그리고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만날 때마다 하나님께서 친히 나타나셔서 하나님의 방법으로 장애물을 극복하게 하셨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서는 그 어떤 성경 각 권보다 놀라운 하나님의 이적이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호수아에게 지도자로서 가장 힘든 일 중의 하나는 여호수아 3장에 나오는 요단강을 건너는 일이었습니다.
홍해는 이스라엘 백성이 피해갈 수 없는 상황에서, 그리고 도저히 인간적인 방법이 생각나지 않는 상황에서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했다면, 요단강은 완전히 다른 상황입니다.
요단강만 건너면 바로 가나안 땅인데, 그 강이 그렇게 큰 강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명령하신 때가 유일하게 1년에 한 번 홍수로 강이 범람하지만, 며칠만 기다리면 안전하게 건널 수 있습니다.
게다가 서두를 이유가 없는 것은 뒤에서 쫓아오는 적군도 없다는 것이죠.
그래서 요단강이 더 힘든 명령이었을지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선택이 없는 명령이 아니라 선택과 변명이 있는 명령이었기에.
여호수아는 믿음이 관념적으로 믿는 것이 아니라 ‘순종’하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는 즉시 실행에 옮겼고 법궤를 앞세우고 하나님과 동행하며 요단강에 발을 내딛는 순간 요단강이 갈라지는 기적을 경험합니다.
이제 순종이 얼마나 큰 역사를 만들어내는지 경험한 이스라엘 백성과 여호수아는 가나안의 첫 관문인 여리고 성에 다다르게 됩니다.
엿새 동안 그리고 칠일에…
이제 아주 분명하게 여호수아는 인간의 방법과 하나님의 방법 사이에서 선택합니다.
이것은 여리고 성을 함락하는 전쟁에서 아주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이제는 전쟁이 자신에게 달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달렸다는 것을 아주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여호수아 6장 2~5절을 보세요.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네 손에 넘겨 주었으니 너희 모든 군사는 그 성을 둘러 성 주위를 매일 한 번씩 돌되 엿새 동안을 그리하라. 제사장 일곱은 일곱 양각 나팔을 잡고 언약궤 앞에서 나아갈 것이요 일곱째 날에는 그 성을 일곱 번 돌며 그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 것이며 제사장들이 양각 나팔을 길게 불어 그 나팔 소리가 너희에게 들릴 때에는 백성은 다 큰소리로 외쳐 부를 것이라. 그리하면 그 성벽이 무너져 내리리니 백성은 각기 앞으로 올라갈지니라 하시매”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이게 얼마나 우스운 내용입니까?
여리고는 인류의 역사상 가장 최고(最古)의 견고한 성이었습니다. 누구도 감히 침범할 수 없는 견고한 성이었음을 고고학자들이 밝혀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성을 두고, 아직은 오합지졸에 불과한 이스라엘 백성이 매일 성을 도는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러한 불합리한 일을 이스라엘에 요구하셨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민족의 지도자 여호수아는 이 일을 만들어간 사람,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30절을 보세요.
“믿음으로 칠 일 동안 여리고를 도니 성이 무너졌으며”
우리가 조금 은유적인 해석을 해보겠습니다.
우리가 쉽게 짐작할 수 있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엿새 동안 매일 한 바퀴를 돌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일단 그 방법이 군사적인 책략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런 무모한 순종을 하는 일이 쉬운 일이었을까요?
그래서 여호수아는 여리고 성을 어떻게 돌아야 하는지를 다 설명한 후에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의하라고 합니다.
10절의 말씀입니다.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외치지 말며 너희 음성을 들리게 하지 말며 너희 입에서 아무 말도 내지 말라. 그리하다가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여 외치라 하는 날에 외칠지니라 하고”
영어 성경에는 ‘complete silence’라고 표현합니다.
아무 소리도 하지 말고 엿새 동안 침묵하며 돌라는 것입니다.
이 침묵의 명령이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하는 데 왜 중요한지 아십니까?
매일 여리고 성을 도는데 변화가 없는 것을 보면서 이스라엘 백성이 자신의 이야기를 한마디씩 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종종 자신이 생각을 가감 없이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침묵은 더 위대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역사는 내 생각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모든 성도가 ‘내 생각’을 이야기하기 시작한다면 얼마나 혼란스럽겠습니까?
조금 기다리고 참고 인내하는 것이 훨씬 현명할 때가 많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한 공동체 안에서 부정적인 말이 돌기 시작하면 엄청난 파괴력을 가집니다.
사실 우리 주변에서 자신이 책임질 수 없는 부정적인 말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상처를 입는지 생각해보십시오.
만일 이스라엘 백성이 6일 동안 여리고 성을 돌면서 부정적인 말을 하기 시작했다면 여호수아에 대한 신뢰도 깨어지고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잃었을 것입니다.
어떤 자매의 이야기입니다.
처음으로 교회를 나오게 되었는데 모든 것이 의심스럽습니다. 그래서 말꼬투리를 잡고 늘어집니다.
하도 귀찮게 하니까 말씀을 지도하던 분이 이야기합니다.
“조용히 하고 수첩을 꺼내세요. 그리고 기도제목을 7개만 적어 보세요. 그리고 기도하세요. 몇 달 후에 기도제목이 이루어졌는지를 확인해 보세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기도제목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지난번 BTD 32기에 교회를 한 번도 나온 적이 없는 불교 신자 부부가 참석했습니다. 그곳에서 은혜를 받았음에도 의심이 생깁니다.
그래서 기도하기를 기도제목 3가지를 적어 놓고, “이것이 이루어지면 예수를 믿고 교회를 다니겠습니다.”라고 했는데 집에 가 보니까 거짓말처럼 기도 제목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분들이 의정부에서 와서 지난주에 등록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때때로 우리는 기도의 제목이 이루어지는지 하나님이 역사하시는지 의심 갈 때가 있습니다. 그때에는 의심의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가만히 기도하며 기다리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과 생각을 이루시고야 마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가만히 보세요.
하나님은 침묵 가운데 역사하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앞에 두고 두려워 떨며 불평하고 있을 때, 출애굽기 14장 13절에 보면 모세가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엘리야가 왕후 이세벨에게 쫓겨 광야로 피해 로뎀나무 아래 휴식을 취하고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순간을 보세요. 지진과 광풍과 불꽃 가운데도 들리지 않던 하나님의 음성이 세미한 음성으로 들려옵니다.
그렇습니다.
침묵은 순종의 씨앗을 낳습니다.
불안하십니까?
그렇다면, 드러내지 말고 조용히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묵상하십시오. 여리고 성이 무너지게 될 것입니다.
사실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명령에 순종했는데도 눈에 보이는 것이 없을 때입니다. 여호수아는 그것을 염려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7일째에 이루어질 것인데, 그 과정을 참지 못하고 불평과 불만을 이야기하며 불신앙이 확산할까 봐 염려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광야에서 조금의 불편도 참지 못하고 항의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너무나 많이 보아왔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진정한 순종은 어떤 사인도 보이지 않을 때 명확하게 증명됩니다.
제가 조금 은유적인 해석을 해보자고 했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하는데 힘든 것은 바로 세상에서 살아야 하는 엿새입니다.
세상 가운데서 수많은 사람과 부대끼며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도 잊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을 때가 있을 것입니다.
세상의 환경이 크게 보일 때, 더욱 여러분을 힘들게 할 것입니다.
매일매일 기적이 일어나면 좋은데 하나님의 침묵은 참으로 여러분을 힘들게 합니다.
하지만 기적의 순간은 지나온 6일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에서 역사하는 하나님의 능력은 오늘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삶을 통해 오늘 나타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지금까지 잘 참아 오셨습니까?
아직 불신앙의 말을 하지 않고 불평하지 않았습니까?
그렇다면, 칠일을 기다리며 기도하십시오. 행동하십시오. 계속해서 거룩함을 유지하십시오.
약속의 성취는 우리가 정한 날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정하신 날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계획에 우리가 순종할 때 경험하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이루어지고야 마는 것입니다.
다음의 이야기가 여러분에게 좋은 예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순종이 어려운 것은 우리의 지식과 노력을 아무 가치 없이 만드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저에게서 가장 어려웠던 순종 중의 하나가 어떤 대학교에서 설교할 때였습니다.
잘 준비된 설교원고를 가지고 강단에 섰는데 계속해서 마음속에 그 메시지를 사용하지 않으시겠다는 음성을 주신 것이죠.
‘내가 이렇게 준비했는데, 어떡하라고?’
그런데 순종하는 순간 제가 강력하게 느낀 것은 하나님께서 나의 준비로 일하시는 분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대로 일하시는 분임을 깨닫게 하신 것입니다.
내 계획과 준비보다 하나님은 훨씬 더 탁월하게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여러분에게 오늘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에게 여리고 성은 무엇입니까?”
여리고 성이 무너지는 것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방법을 통해서입니다.
여러분에게 여리고 성이 그렇게 무섭고 어려운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오늘 본문 처음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1절의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자손들로 말미암아 여리고는 굳게 닫혔고 출입하는 자가 없더라”
그렇습니다. 나는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기도하는데 상대가 반응이 없습니다.
내가 남편을 위해 그렇게 희생하고 양보하고 기도하는데 반응이 없습니다.
문을 꼭 닫다 걸고는 미동도 하지 않습니다.
여리고 성 안에는 충분히 필요한 물과 양식과 재물이 있습니다.
마음을 열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제 필요한 것은 나의 능력이 아닙니다.
단지 우리는 침묵하며 여리고 성을 돌 뿐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나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 하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이 시대에 새로운 여호수아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므로 기적을 만들어낼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완성해 나갈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오늘 우리가 또 한 사람의 여호수아가 되기를 원하지 않습니까?
화의 근원을 남기지 마라!구약 성서를 대하면서 늘 우리에게 의문을 던지는 것이 너무나 잔인하게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본문 21절입니다.
“그 성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온전히 바치되 남녀노소와 소와 양과 나귀를 칼날로 멸하니라”
이 명령은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가나안 땅에서 얻은 첫 열매를 하나님께 바치라는 것과 또 하나는 우상에 찌든 가나안의 모든 것을 멸하므로 화의 근원을 제거하라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의 명령을 이루기 위해서는 자신의 욕망을 죽이고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여리고 성을 앞에 두고 엿새를 침묵하며 도는 것도 많은 인내를 요구했지만, 이제 자신들이 차지한 전리품을 놓고 하나님의 것을 인정하고, 화의 근원을 제거하는 데는 더 큰 인내가 필요했습니다.
이제 싸워야 하는 것은 눈에 보이는 적이 아니라 실체를 드러내지 않는 자신의 욕망이기 때문입니다.
보이지 않는 적과 싸우는 것이 얼마나 두려운 일이겠습니까?
그런데 자신의 욕망, 자아와 싸워서 이기는 데 꼭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중심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르쳐주신 전략을 보면 하나님께서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지를 보게 됩니다.
맨 앞에는 무장한 선발대가 앞장서고, 그 뒤에는 양각 나팔을 든 7명의 제사장들이 뒤따릅니다.
그 뒤에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서고 맨 뒤에는 이스라엘 군대가 섭니다.
즉, 행진하는 중심에 언약궤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임재가 있음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앞에 있는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여러분의 싸움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의 삶에서 우선순위로 계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의 싸움에서 최고 사령관이 되어야 합니다. 그분의 지시를 받아야 합니다.
혈기가 왕성한 젊은이들, 이스라엘 군대가 6일을 인내할 수 있었던 것도 하나님이 중심에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 성에 들어가 물건을 탐하지 않고 모든 것을 진멸하며 소유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인정할 수 있었던 것도 하나님이 중심에 계셨기 때문입니다.
여리고 성이 무너진 것은 칠 일째 일곱 바퀴를 돌며 양의 뿔로 만든 나팔을 불었을 때입니다.
이것은 전쟁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예배였으며 승리의 선포였습니다.
예배를 위해 쓰던 양각나팔은 하나님의 임재를 선포하는 축제의 소리였습니다.
이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여리고 성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합니다. 즉 성의 모든 것을 진멸하기 시작합니다.
여리고는 달의 여신을 숭배하는 성이었습니다. 여리고 뿐 아니라 가나안의 사람들은 여러 가지 미신을 믿었는데 그 때문에 이들은 성적으로 음란하고 잔인하며 폭력적인 민족이 되었습니다.
달의 여신도 매우 음탕한 신이었으므로 동성연애나 짐승과 교접하는 것, 문란한 성생활이 그들의 문화 속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여리고는 인간의 물질주의와 섹스 문화 그리고 권력과 교만으로 가득 찬 곳이었습니다.
하나님과 대립하는 죄의 집약체와도 같았습니다. 이것의 사람들과 물건들을 그대로 놓아둔다면 이스라엘 백성이 오염되는 것은 시간문제였습니다.
그래서 철저한 파괴를 명령하신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택하신 이스라엘 백성을 복 주시고 보호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배려지요.
우리는 이 말씀과 사건을 통해 우상숭배와 죄로 물든 사람들을 심판하시는 진노의 하나님과 당신의 택하신 백성을 보호하시는 자비하심을 동시에 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가만히 계시는 것 같지만, 죄만큼은 철저하게 다스리시는 거룩한 분이십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믿고 회개하는 사람들은 용서하십니다.
오늘 우리는 진멸함 가운데 구원함을 받은 라합의 가정을 만나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 음란과 폭력이 가득 찬 세상에 대해서도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언제나 기다리시는 분은 아니십니다.
허락된 시간 안에 라합처럼 하나님의 사랑을 인정하고 그 품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여리고 성의 완전한 파괴는 하나님이 죄를 얼마나 싫어하시는지를 바로 보여줍니다.
그러나 라합의 구원은 하나님이 회개하는 죄인을 용서하시고, 하나님 나라에 얼마나 아름답게 사용하시는지를 보여 줍니다.
본문 25절입니다.
“여호수아가 기생 라합과 그의 아버지의 가족과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살렸으므로 그가 오늘까지 이스라엘 중에 거주하였으니 이는 여호수아가 여리고를 정탐하려고 보낸 사자들을 숨겼음이었더라.”
우리가 여호수아 2장을 통해 아는 사실이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를 라합만 들었던 것이 아니라 여리고와 가나안의 모든 거민이 들어서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하지만 라합만이 자신과 가족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을 선택했다는 사실, 그리고 그의 목숨을 걸고 약속을 지켰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돌아온 여인, 약속을 지킨 여인을 통해 다윗 왕조를 세우시고 예수님의 족보에 들게 하셨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심판과 구원은 모든 이에게 같이 찾아옵니다.
문제는 어떤 삶을 살았느냐에 따라 심판의 대상이 될 수도 있고 구원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습니다.하나님은 우리의 삶에 대하여 책임을 물으시는 분이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