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리밑씻개'. 들판에 흔한 덩굴성 풀에 묘한 이름이 붙었다. 예리한 갈고리형 가시가 촘촘히 박혀 있어 맨손으로 만지다간 긁히기 십상이다. 그런데 휴지가 없던 시절, 용변의 뒷처리용으로 이런 가시 많은 풀을 썼다고? 게다가 며느리가?
이름의 기원을 두고 고약한 시어머니와 미운털이 박힌 며느리가 등장하는 고부 갈등설도 전해지지만, 실은 일본에서 유래했다. '마마코노시리누구이(繼子の 尻拭い)'. 직역하면 '의붓자식 밑씻개'다. 미움을 받는 대상이 의붓자식에서 며느리로 바뀌었을 뿐이다.
'창씨개명된 우리 풀꽃'의 저자 이윤옥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은 우리 풀꽃의 이름이 일제강점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일갈한다. 저자는 일본인들이 쓴 식물도감을 토대로 한글 이름을 붙이는 바람에 우리 풀꽃에 일본식 찌꺼기가 눌러 앉은 사례를 조목조목 밝힌다.
예컨대 '큰개불알꽃'이라는 민망한 이름은 일본어 '이누노후구리(犬の陰囊·개의 음낭)'를 그대로 갖다 쓴 경우다. '좀개갓냉이'도 고이누카라시(小犬芥子)에서 왔다. 일본어 '고이누(강아지)'가 '좀개'가 된 것이다. '도둑놈의갈고리'도 누스비토노하기(盜人の萩·'도눅놈 싸리')에 뿌리를 두고 있다.
왜곡된 경우도 숱하다. 등대풀은 도다이구사(燈臺草)에서 왔을 텐데, 문제는 일본에서 등잔처럼 생긴 꽃 모양을 보고 등잔을 일컫는 옛말 등대(燈臺)를 썼는데, 이를 바닷가 등대로 오인해서 그대로 갖다 써버렸다.
저자는 1937년 한글로 쓰인 최초의 식물도감 '조선식물향명집'을 분석하면서 부끄러운 사실도 발견한다. 일본인 식물학자들은 한반도 자생의 경우 '고려'나 '조선'을 붙여 구분했으나 한글로 옮기는 과정에서 모두 사라졌다. 책에 수록된 2천79종 중 99종이 번역 과정 중에 '조선'이 사라졌고 그 대신 작거나 보잘 것 없다는 뜻의'개'가 붙었다. 개나리, 개암나무, 개벚나무, 개비자나무….
이밖에 금강초롱의 옛 이름인'화방초(花房草)'에 초대 일본 공사 하나부사 요시모토(花房義質)의 이름이 들어 있었는가 하면, 울릉도 고유종인 섬초롱꽃의 학명 'Campanula takeshimana Nakai'에 일본이 영유권을 고집하는 다케시마 지명과 채집한 일본인 식물학자 나카이 다케노신의 인명이 들어 있다.
얼굴이 화끈거리는 사례가 책장을 넘길 때마다 쏟아져 광복 70주년의 환호가 무색할 따름이다. 이윤옥 지음/인물과사상사/252쪽/1만 4천 원. 김승일 기자 doju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