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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취재원이 바뀌었네?
사실 이번에 내가 인터뷰를 하려고 했던 사람은 풀무학교의 학생인 윤영희(여·33)씨였다. 명문대학의 석사과정을 마친 그가 서울 봉천동에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진땀을 흘린 세월을 내가 일찍이 알고 있거니와 최근에 귀농(歸農)에 대해 구체적으로 고민하다가 풀무학교에 내려가 ‘선생’이 아니라 ‘학생’으로 다니고 있는 사연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윤영희가 나의 몇달에 걸친 긴 요구를 극구 사양하면서 정말로 내가 꼭 만나봐야 할 사람이 있으니 그가 바로 풀무학교 전공과정 환경농업과의 정민철(36) 선생이라는 것이었다. 우선 윤영희에게 정민철 선생님을 굳이 소개한 이유부터 들어보는 것이 당연한 순서이다.
“학교 일에 헌신적이고요, 교사와 학생이라는 수직적 관계가 아니라 학생들의 입장에서 보려고 노력하고요, 학생들의 고민을 섬세하게 잘 이해하고요, 학생들에게 애정이 있고요, 자기 혼자 잘살려는 모습이 절대로 아니고요….”
윤영희가 구구절절 주워섬기는데 나는 봉천동에서 활동하던 윤영희 모습이 자꾸 생각나는 것이었다. 그것이 바로 내가 알고 있는 윤영희 자신의 모습 아니었던가. 사람들은 역시 유유상종(類類相從)일 수밖에 없다.
처음 만난 정민철 선생은 “풀무학교를 취재하는 것인 줄 알고 응했다”고 당황스러워했다. 아마 자신이 취재 대상인 것을 알았다면 절대로 응하지 않았을 것을 예상한 윤영희의 농간(?)이었으리라.
정민철씨는 경주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자랐다. 아무 특별할 것이 없는 평범한 학생이었다는 것을 계속 강조했으나 중·고등학교 시절 교복의 호크(일제시대부터 우리나라 학생들이 입었던 교복의 목을 조이는 장치)를 풀어헤치거나 모자를 찢어 재봉으로 박고 다닌 적이 한번도 없었다니까 결코 평범하지 않은 ‘범생이’였음이 분명하다. 경북대에서 미생물학을 전공했고 석사와 박사 과정까지 마쳤다. 우리 사회에서 한때 잘 나갔던 이른바 ‘TK 출신’이다.
미생물학을 공부하는 과정에서 자연히 유기농업을 접하게 되고, 농업문제를 다루는 시민단체를 만나게 되고, 축산폐수 처리과정인 ‘박테리아미네랄워터’(BMW) 개발에 참여하면서, 풀무학교에 관련 시설을 설치하느라고 5개월 정도 드나들다가 결국 눌러앉게 되었다. 풀무학교와 인연을 맺기까지 몇년간의 기나긴 과정을 짧게 정리하면 그렇다. 이 과정에 영향을 끼친 사람이 홍순명(64) 교장인데, 홍순명 선생은 이 짧은 지면에서 감히 몇줄로 설명하는 것이 실례가 될 만큼 훌륭한 어른이다. ‘이 바닥에서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분이니 너절한 설명을 생략하는 게 오히려 예의이다.
“유기농업은 ‘순환’이 가장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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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람들을 만나면서 놀랄 때가 바로 이런 순간이다. 남들이 보면 대단하다고 느낄 수밖에 없는 일들을 하는 사람들이 한결같이 자신들은 결코 대단하지도 않고 투철한 의식이 있는 것도 아니며 “그냥 살다보니 그렇게 되었다”고 손을 내두르는 것이다. 겸손이라는 단어는 바로 이럴 때 사용해야 한다.
“일반학교와 비교할 때 교사 대우는 어떠냐?”는 나의 궁금증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정민철씨는 잠시 생각하는 눈빛이 되더니 “당연히 적지요. 그렇지만 이 학교에 온 지 3년밖에 안 된 제가, 30년씩이나 이 학교에 계신 다른 선생님들을 제쳐두고 그것에 대해 함부로 답할 수는 없지요”라고 말을 삼갔다. 마주 앉은 사람이 열등감을 느낄 만큼 신중한 인품이다. 이런 사람을 두고 윤영희가 감히 내 인터뷰에 응할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은 당연했다. 어렵게 뵌 김에 유기농업에 대해 한수 가르침을 부탁했다.
“유기농업이란 순환(cycle)이 가장 중요한 테마예요. 보통은 인풋(input)이 있어야 아웃풋(output)이 있는 시스템이지만 유기농업은 그런 개념이 아니에요. 순환이 이루어지는 거지요. 추운 겨울에 기름 때고 병충해에 농약 치면서 하는 게 아니라 자연의 시스템에 적응해가면서 농사를 짓는 겁니다. 흔히 유기농업이라고 하면 무공해농법만을 연상하기도 하는데 그건 기술적인 부분만 협소하게 보는 거예요. 정부에서 추진하는 것처럼 수억원의 돈을 투자해서 큰 규모로 해야만 하는 것도 아닙니다. 농가에서 작게 시작해서 충분히 정착할 수 있는 것부터 해보는 겁니다.”
정민철 선생이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조혜진(여·19) 학생과 이야기를 나눴다. 조혜진 학생은 풀무학교의 고등과정을 마치고 전공과정에 진학한 이 학교의 이른바 ‘정통파’이다. 풀무학교 홈페이지(www.poolmoo.net)의 ‘우리들의 학교일기’ 게시판에서 이 학생의 글을 읽어보면 조혜진 학생이 풀무학교를 “숨통 트인다는 단어의 뜻이 무엇인지 느낄 수 있는 학교”라고 표현한 이유를 알 수 있다. 정민철 선생님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편해요. 서로 농담도 할 만큼 친하게 지내는 분에 대해서 칭찬하려니까 그게 오히려 이상할 정도예요. 가식이 절대로 없고요. 일은 또 얼마나 추진력 있게 잘하신다고요.”
장래의 희망에 대해 조혜진 학생은 “농촌의 소외된 부분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답했다. 그런 학생을 가르치는 정민철 선생은 행복하다.
농촌 시스템 따라간 학기 시스템
풀무학교는 일반학교와 달리 3학기로 나뉘어 있다. 농촌의 시스템을 그대로 따라간다. 첫 학기는 3, 4, 5월인데 농번기와 마찬가지로 제일 바쁜 때이다. 두 번째 학기는 6, 7, 8월로 흔히 “제초작업을 하면 하루가 다 간다”고 표현한다. 마지막 학기는 9, 10, 11월로 다른 농사와 똑같이 열심히 거두는 때이다. 12, 1, 2월이 겨울방학이고 여름방학은 없다.
그런 풀무학교의 교육과정 속에서 정민철 선생은 “농촌을 위한 일을 농촌에 머물면서 할 수 있는 사람”을 길러내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종자를 개발하는 일을 도시의 종자회사에서 하지 않고 농촌에 머물면서 할 수 있는 사람”을 찾는 것이다.
정민철씨와 같은 배경을 가진 사람이라면 흰 가운을 걸치고 연구소에서 일을 해야 어울릴 것이라는 세속적 편견을 갖고 있는 나는 “연구소에서 일하지 않고 풀무학교에 있는 것을 후회해 본 적 없었느냐?”는 질문을 할 수밖에 없었다. “대덕연구단지에도 있어봤습니다. 미련없습니다.” 칼처럼 자르는 답변에 질문한 사람이 오히려 머쓱하다.
우문현답(愚問賢答)의 행진은 계속된다. “장래 꿈은 무엇인가요? 20년이나 30년 뒤에는 자신이 어떤 모습이었으면 좋겠어요?” 정민철 선생은 잠시의 여백도 없이 거의 자동적으로 답했다. “이 학교에 계속 있겠지요.”
“지금 당장 바라는 꿈은 뭐예요?” 그 질문에는 잠시 생각하다가 답했다. “학생들이 많이 왔으면 좋겠어요.” 여러분, 풀무학교로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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