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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神誌秘詞(신지비사).-----15
제 4장. 誓效詞(서효사)의 원문.----7
[2] 三韓章(삼한장).-----2
(1) 三韓章(삼한장)의 원문과 해석 -----2
[원문] 三韓章(삼한장) 100자.
一心存仁孝四海盡光明 眞韓鎭國中治道咸維新
(일심존인효사해진광명 지한진국중치도함유신)
慕韓保其左番韓控其南 巉岩圍四壁聖主幸新京
(모한보기좌번한공기남 참암위사벽성주행신경)
如枰錘極器極器白牙岡 秤榦蘇密浪錘者安德鄕
(여평추극기극기백아강 칭간소밀량추자안덕향)
首尾均平位賴德護神精 興邦保太平朝降七十國
(수미균평위뢰덕호신정 흥방보태평조항칠십국)
永保三韓義王業有興隆 興廢莫爲說誠在事天神
(영보삼한의왕업유흥륭 흥폐막위설성재사천신)
◇ 해설 2 ◇
위의 내용이야말로 고려사, 한단고기, 소도경전본훈,
태조 신도비 각종 풍수도참서의 원본이 되는 내용이다.
이 내용과 여러 자료의 내용의 내용을 종합하여 구성해보자.
① 三韓(삼한)의 역활과 위치.
(가) 진한.
ㄱ. 역활.
"진한은 나라 안을 안정시키고 중일의 도로서 다스리니
만국이 咸寧(함녕)하여 維新(유신)이 이루어지고"라 햇으니
역대 단군께서 직접 통치하신 땅으로 삼한의 중심이 되는 곳이며
저울대로 상징되었고 이를 소밀랑이라 했다.
즉 한단고기의 소도경전본훈에서
"저울의 대는 부소량이다 라고 했으니 이는 곧 진한의 옛 서울이다.
이는 단군조선이 도읍한 곳으로 아사달이니
지금의 송화강가의 하얼빈이다." 라고 한 내용이다.
ㄴ. 위치.
단재 신채호선생의 해설은 扶蘇樑(부소량) ― 合爾濱(합이빈)이니
고사에 扶蘇岬(부소갑), 非西岬(비서갑), 阿斯達(아사달)로
기록된 것이라 했으니 지금의 하얼빈이다.
그리고 단군조선의 上京(상경)이다.
즉 단군조선의 심장부가 지금 만주의 송화강가의 하얼빈이었다는 것이며
이 이름이 역사에는 非西岬(비서갑), 阿斯達(아사달)로 불린다는 것이다.
(나) 마한.
ㄱ. 역활.
"모한(마한)은 왼쪽을 보좌하고"라고 했으니
이는 阿斯達(아사달) 즉 지금의 하얼빈의 왼쪽을 지킨다.
ㄴ. 위치.
단채 신채호선생의 해설은 五德地(오덕지)는 海城(해성), 蓋平(개평)등지이니
고사에 五德地(오덕지) 五備地(오지비), 安地忽(안지홀), 安市城(안시성)으로
기록된 것이라 했고 단군조선의 中京(중경)이라 했으니
安市城(안시성)은 고구려때 당나라와의 격전지로 본다면
요동이나 지금의 북경근처에 安市城(안시성)이 있었다 할 수 있다.
이는 阿斯達(아사달)인 하얼빈의 왼쪽으로 원문과 완전히 부합한다.
그러나 한단고기의 소도경전본훈에서 一十堂(일십당) 李陌(이맥)선생은
번한의 옛 도읍이라고 한점에서 차이가 있다.
번한은 태산을 중심으로 회대지방을 다스렸던 나라로서
阿斯達(아사달)에서 남쪽과 동쪽에 해당되는 방향이며
安市城(안시성)과는 연결하기에 어려움이 있다.
원문의 내용으로는 왼쪽은 마한이며, 마한의 수도는 安市城(안시성)으로서
이를 五德地(오덕지)로 봄이 마땅할 것이다.
이 五德地(오덕지)가 바로 원문의 安德鄕(안덕향)으로서 五備地(오비지),
安地忽(안지홀),安市城(안시성)으로 불리웠던 곳임을 알 수 있다.
즉 우리가 익히 잘 아는 安市城(안시성)인 것이다.
그러나 정확한 安市城(안시성)의 위치가 어디인가는 아직 불분명하다.
고구려 때의 安市城(안시성)과 단군조선초기의 安市城(안시성)을
같은 곳으로 보아야 할 그 어떤 증거도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마한의 영토가 대륙의 어디에서 어디까지인가도 불분명한 것이다.
다만 安市城(안시성)은 서쪽과 북쪽을 담당하여 북쪽으로 몽고고원을 누르고
서쪽으로 중앙아시아와 통하면서 漢族(한족)의 발흥을 누르기에
가장 적당한 지역으로 보면 무리가 없을 것이다.
최근에는 安市城(안시성)을 황하강 남쪽으로 보고 있지만
이 역시 고구려때의 安市城(안시성)이지
단군조선 초기의 安市城(아시성)이라는 증거는 없는 것이다.
安市城(안시성)은 어쩌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서쪽인지도 모른다.
참고로 한단고기를 주석한 임승국선생은 安德鄕(안덕향)을
山東城(산동성) 陵縣(능현)에 安德(안덕)이라는 지명이 있고
한나라와 진나라 송나라가 이를 安德(안덕)이라 했음을 비추어
이곳이 安德(안덕)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했다.
ㄱ. 역활.
"번한(변한)은 남쪽을 견제하니"라고 했고 阿斯達(아사달) 즉
하얼빈의 남쪽인 지금의 평양(혹은 그 이전의 평양)을 지킨다."라 했으니
단군조선의 동쪽과 남쪽을 견제하는 역활을 담당하며
번한의 서울로서 저울그릇으로 상징된다.
번한세가에는 번한의 영역은 회대지방이라 했으니
황하강 남쪽의 태산을 중심으로 하여 산동반도와 양자강 남쪽의
塗山(도산)등의 지역을 다스리며 동쪽으로 한반도와 일본을
경영했으리라 생각된다.
ㄴ. 위치.
단재 신채호선생은 百牙岡(백아강)은 고사에 백아강, 樂浪(낙랑),
平原(평원), 平壤(평양)은 阿斯達(아사달) 즉 하얼빈의 남쪽으로
모든 기록과 일치한다.
원문에서 번한의 서울로 봄이 타당하다.
즉 동쪽인 산동반도와 한반도와 일본을 향하면서
남쪽으로 확장하는 지역인 것이다.
그러나 과연 이 지역에서 어느 곳이 白牙岡(백아강)
즉 平壤(평양)인지는 알수가 없는 것이다.
平壤(평양)이라는 지명이 단군조선의 역사에 나타나는 것은
44세단군 구물님의 재위기간에 처음 나타난다.
즉 "海城(해성)을 고쳐 平壤(평양)이라고 했다"는 내용이다.
여기서 海城(해성)이란 단재 신채호선생이 安市城(안시성)과 같은 말이라 했다.
이 내용으로 보면 海城(해성)의 시대를 고려하지 않으면
安市城(안시성)도 되고 平壤(평양)도 된다.
즉 번한의 수도인 安市城(안시성)도 되고 마한의 수도인 平壤(평양)이 된다.
고려때의 학자들이 平壤(평양)을 마한의 수도였다고 한 것은
단군조선의 후대의 지명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誓效詞(서효사)가 나온 것은
6대 단군 달문님의 재위기간으로 B.C 2049년이며
44세 단군 구물님의 재위기간은 B.C 425년으로
같은 단군조선시대라도 2049 - 425 = 1624년이라는
어마어마한 시대의 차이가 있다.
따라서 6세 단군 달문님 시대의 영토와 44세 단군 구물님시대의 영토는
또한 엄청난 차이가 있을 것이다.
[한단고기의 소도경전본훈에서 李陌(이맥)선생이 百牙岡(백아강)을
마한의 서울이라고 본점과 마한세가에 百牙岡(백아강)이
법수교와 함께 인용됨으로 한단고기 자체에서 마한과 진한의 위치를 놓고
단군세기의 誓效詞(서효사)와 마한세가및 태백일사가 충돌하고 있다.
그러나 단군세기는 원문이 가장 잘 보존된 역사로서 삼한관경본기와
태백일사보다는 보다 상위적인 내용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