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 두 번째 관광버스 여행이다. 운전을 하지 않아서 몸은 편했지만 생체 리듬을 버스 일정에 맞추어야 했다. 휴게소에서 잠깐씩 주는 휴식은 화장실 다녀오기 바빴다. 단체로 움직이다보니 개별적인 사유를 말하기 어렵다. 아예 사정이 생기지 않도록 미리 조심을 한다. 휴게소 들어갈 때마다 급하지 않아도 화장실은 꼬박꼬박 다녀와야 했다. 남자는 그래도 낫다. 어디서나 휴게소 화장실은 여자들에게 전쟁터다. 길게 늘어선 줄을 기다리며 버스 출발 시간을 맞추려 발을 동동 구른다. 어찌했든 새벽부터 밤까지, 25대 버스가 1000명의 노인과 중년을 먹었다 토해내기를 반복하는 여행을 다녀왔다. 파란 하늘 아래 바스락거리는 단풍 물결이 손짓했지만 나는 사람 풍경에 빠져서 산과 들, 바다는 따라가기 바빴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말, 그만큼 감정은 무섭다. 그런데 지나간 감정이 다가올 감정을 지배한다. 언제나 과거 때문에 현재를 미워한다. 감정은 기억이다. 과거를 정리해서 가장 짧게 요약한 기억. 그리고 행동은 멈추게 할 수 있어도 내 감정은 지배하지 못한다. 그래서 감정이 더 무섭다. 여행하면서 회상, 미움, 질투, 삐짐, 기다림, 유혹, 견물생심, 비움과 채움, 집착을 봤다. 모두 내 속에 있는 감정의 부스러기다.
<귀찮음> 새벽에 일어나 여섯시에 전철을 타고 관광버스가 있는 의왕시까지 갔다. 봄의 경험으로 앞의 버스가 더 시설이 좋은데 이번에도 뒤차를 탔다. 마이크가 없고 물론 DVD도 없다. 지난봄 DVD가 있는 차를 타서 영화 ‘국제시장’을 보고 실망했지만, 부족하게 보이는 차를 타게 된 게 못내 아쉽다. 타자마자 크림 섞인 단팥빵과 베지밀을 줘서 꼬박 받아먹고 잠을 청했다. 어제 밤, 오늘 여행이 낯설어서 잠을 설쳤었다. 애써 잠을 부르는데 뒷자리 아저씨 아줌마 목소리가 멈추지 않고 시끄럽다. 에어컨이 덥다 춥다 아우성이다. 누구에게 기준을 맞출지 안내직원과 운전기사는 쩔쩔 맨다. 거기다 사투리 억양은 더 잘 들렸다. 대부분 부부인데, 한 커플만 데이트 여행인 것 같다. 물론 중년 이상의 나이다. 비윗살이 좋은 양반들의 소리가 자꾸 들려 귀를 막고 싶었다. 나를 복잡한 생각에 빠지게 한다. 나와 상관없이 싫다. 흔들리는 버스가 주는 달콤한 잠을 기어코 놓쳤다. 내가 많이 까다롭다.
<막힘> 주말 경춘 고속도로가 영동 고속도로보다 느리다. 뒷자리 노인은 길이 막힌다고 은근히 코스 탓을 했다. 밀리는 길에 갇혔어도 버스는 꾸준히 움직였다. 출발한지 두시간만에 가평휴게소 안에서 버스가 섰다. 전투 개시! 방광에서 기별이 없는데도 화장실에 가서 옷을 풀었다. 휴게소를 나올 때 아내가 산 옥수수 한 개를 먹었다. 운전을 하지 않으니 그것밖에 할 일이 없다. 차가 다시 움직이니 창밖 단풍이 눈에 들어온다. 잎 끝에 힘이 없다. 사방에서 메마른 느낌이다. 버스가 1시간 반 더 가서 한차례 더 미시령휴게소에 들렀다. 이번에는 천천히 걸었다. 여자들은 모두 뛴다. 함께 움직이는 여행단의 모습이 이제서 눈에 들어왔다. 나처럼 중년 아니면 노인이다. 그러고 보니 풍경의 색깔이 조금 칙칙하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은 남자 스무 살, 여자는 열여덟 아닐까? 따져보지 않고 말한 숫자이고 사람마다 다르지만 그때 아름답다. 늙은 장모님은 아이돌 노는 방송을 즐겨본다. 가을과 겨울에는 봄과 여름이 그립다. 설악산 아래를 지나는 터널을 통과해서 꼬불꼬불한 고개를 내려갈 때 울산바위가 보인다고 했다. 기분이 상쾌하면 그것이 풍경일 텐데 오늘은 아니다. 이유 없이 답답했다. 가을이다.
<비움과 채움> 출발한지 다섯 시간 지나서 화진포에 도착했다. 버스가 내려준 곳은 호수를 둘러싼 작은 길이다. 양쪽에 논과 밭이 널려 있다. 벼는 모두 수확해서 논은 텅 비었고 밭에는 수수나 조가 수확을 기다리며 서있다. 내릴 때 준 도시락을 덜렁덜렁 들고 먹을 자리를 찾았다. 가뭄 때문에 땅이 바싹 말라서 아무데 앉아도 자리가 됐다. 사람들이 하나둘씩 길가에 앉아 식사를 한다. 눈에 들어오는 것은 혼자 온 사람들이다. 많지 않았지만 신경이 쓰인다. 뭔가 정상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소수자는 어디서나 그런가 보다. 아줌마들만 잔뜩 앉아 있는 곳에 자리를 잡고 밥을 먹었다. 나중에 일찍 자리를 떠야했다. 아줌마들이 방뇨를 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지난봄 갈대 파라솔 아래서 바다를 눈요기하면서 먹었는데 오늘은 구질구질하다. 그래도 입맛은 살아 있다. 국물과 남은 반찬 부스러기를 밭둑에 슬쩍 버려서 짐을 줄였다. 1차 목적지 역사 안보 전시관까지 부지런히 걸어갔다. 둘레길 걷기 시작이라 제대로 복장을 갖춰야 했다. 안경을 썬글라스로 바꾸고 모자를 더 썼다. 산과 들을 띄엄띄엄 지키고 있는 인가 울타리 안에서 단감들이 주렁주렁 시위를 한다. ‘그냥 봐달라고.’‘그래서 어쩔 거냐?’ 가물어서 잘 되는 게 감이다. 꽃 필 때 비가 안 왔고, 지하수가 얕으면 감이 잘 안되는데 비가 오지 않아 깊은 땅 속에만 물이 있다. 어느 해보다 감이 잘 되었으리라. 이 정도면 전문가적 분석이다. 들어주는 사람은 없다.
<삐짐> 산길에서 약간 큰 길로 나가니 목적지가 멀리 보인다. 부지런히 걸었더니 옷 속에 땀이 뱄다. 겉옷을 벗어서 배낭에 넣으려 멈춰 섰다. 아내가 기다리지 않고 의리 없이 혼자 간다. 꾸물거리며 배낭에 옷을 집어넣었는데 많은 사람속에서 아내가 안 보였다. 통제하지 못하는 감정이 일어난다. ‘날 기다리지 않고 갔어.’ 삐졌다. 나는 잘 삐진다. 그때부터 나는 그냥 앞만 보고 걸었다. 생태전시관까지 갔는데 아내가 없다. 중간에 나를 찾느라 뒤쳐진 것을 미처 보지 못하고 내가 그냥 갔던 것. 삐지면 뭔가 복수심에 불타서 옆이 안 보인다. 전화를 하지 않고 그냥 매표소에 줄을 섰다. 아내가 그때 전화를 했다. 볼멘소리를 내가 했으리라. 화장실이 급하대서 다녀오라 하고 벤치에 앉아서 스마트폰을 들여다봤다. 그때 웬 아줌마가 초콜릿을 먹으라고 준다. 기분이 안 좋았는지 싫다고 했다. 두 번 더 권했지만 이번에는 아내와의 의리 때문에 거절했다. 햇볕을 피하는 그늘 자리였지만 그 여자 옆에 계속 앉아 있기 거북했다. 햇볕으로 나가 서성거렸다. 할 일이 없어서 아내가 간 화장실 쪽으로 갔다. 후후, 내가 불쌍하고 외롭게 보였나?
<덤덤함> 생태전시관의 전시물은 어디서나 볼 수 있다. 아이들을 키울 때는 빼놓지 않고 들르던 곳인데 지금은 꼭 피하는 장소가 되었다. 화장실만 쓰고 김일성 별장에 들어갔다. 외벽은 원래 그대로라고 한다. 내부만 리모델링해서 전시관으로 쓰고 있다. 남쪽을 등지고 북쪽과 바다 쪽을 비워둔 곳에 자리를 잡고 있다. 지형이 을씨년스럽다. 건물 규모가 생각했던 것보다 크지 않다. 6.25 이전에 지은 건물이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나 보다. 이름 있는 건축가가 설계해서 만든 건물이라 그런지 탄탄한 구조가 돋보인다. 그때 김일성은 여기서 무엇을 했을까?
<독창적> 옆에 이기붕 별장은 들어가지 않고 화진포 해수욕장을 걸었다. 모래가 곱다. 발이 땅속으로 푹푹 빠졌다. 신발에 흙이 들어갈까 천천히 걸었다. 바다에는 파란 파도가 밀려왔다가 다시 돌아간다. 구부러진 파도가 물결을 만들고 물결은 다시 부딪혀서 잘게 부서졌다. 한참 보았더니 하얀 것은 빙수였다. 바다에 빙수가 떠올랐다가 가라앉는다. 가을 바다에서 빙수를 봤다. 파도가 부서지는 모습을 빙수라고 말할 사람이 나 말고 또 누가 있을까?
<화해> 말없이 더 걸었다. 화진포 호수를 낀 둘레 길의 끝이다. 다리가 나오고 거기가 이승만 별장이다. 전설의 이화진(?) 며느리 동상 옆에서 사진을 찍었다. 포토 존이 있다. 왜 그럴까? 사진 찍는데 감흥이 없다. 심드렁하게 사진을 찍고 가져온 오징어땅콩 한 봉지를 까서 먹었다. 짭짤하고 고소했다. 아무래도 다 먹을 것 같아서 나머지를 아내에게 줬다. 내가 삐진 것을 들키지 않았을까? 요즘 아내는 알면서도 모른 척한다. 그것이 기특해서 내 맘이 아프다. 얄미워야 내 속이 편한데. 사진 찍다가 썬글라스를 두고 왔다고 아내가 이화진(?) 며느리 동상 쪽으로 되돌아갔다. 속 좁았던 죄가 있어 흔쾌히 따라가서 함께 찾았다.
<음해> 이기붕 부통령 별장 쪽에서 이승만 대통령 별장 쪽으로 가는 길에 다리가 있다. 원래 바다로 끊겼던 곳이다. 다리 표지석의 설명을 보니 김대중 대통령 때 만들어졌다. 감회가 새롭다. 왜냐? 사람들이 김대중은 다 좋은데 한을 품고 살았기 때문에 대통령이 되면 보복을 할 거라고 했었다. 힘이 제법 있는 사람들은 더 큰일 날 것처럼 말했었다. 김대중 씨는, IMF가 터졌고, 이인제 씨가 분열을 일으켜서 김종필 씨 바짓가랑이 잡고 간신히 대통령이 된 사람 아닌가? 빨갱이(?)라서 복수할 사람이 극우의 원조인 두 사람의 별장 터 통행을 좋게 하기 위해서 왜 다리를 놓았을까? 이런 것이 보복인가 보다.
<회상> 버스를 타고 졸다보니 거진항에 도착했다. 상점마다 건어물 더미가 쌓여 있는데 신선해 보이지 않는다(건어물이라서 그랬다.). 오늘처럼 버스와 사람이 한꺼번에 많이 몰려온 적이 없었다는 말을 이 동네 사람일 것 같은 사람에게 들었다. 하늘과 땅 사방에 비린내, 생선과 물 썩는 퀴퀴함, 꼬불꼬불하고 좁은 길, 충충한 건물만 보인다. 내 눈이 도시의 눈이라 그렇게 보였으리라. 31년 전 그때 왔던 동네다. 내가 그곳으로 갔다.
김광석 노래처럼
그곳으로 가네
흰 갈매기 춤추고
푸른 파도 넘실대는 곳
그곳으로 가네
검은 고래가 숨쉬는 곳
그곳으로 가네
대진항 지나 금강산 가는 길
고라니는 가지 못하게
철조망으로 막아놓은 곳
그곳으로 가네
단풍잎이 손짓하는 곳
까투리와 장끼만 넘는 곳
그곳으로 가네
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곳으로 가네
삼십 일 년 전 크리스마스 이브에 여행을 갔다. 그날 펄펄 눈이 내렸다. 대관령을 간신히 넘고, 고속버스와 완행버스를 이어타고, 강릉, 속초, 거진, 대진까지 가서, 옆방에 바다가 우는 창과 담벽이 붙은 버려진 여인숙에서 소주병을 깠다. 그날 함께 탄 고속버스에는 내 또래 여자 탤런트가 애인과 도발적인 여행을 감행하고 있었다. 그녀 때문일까 파도 소리 때문일까 밤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다. 오늘은 화진포와 거진까지만 갔다. 더 가고 싶었지만 내가 밟고 있는 땅은 이미 섬이다. 갈매기는 푸른 파도 위로 날아갔다. 금강과 설악의 단풍은 손짓하면서 이별을 통지한다. 장끼와 까투리는 철조망을 넘지만 두발 달린 나와 네발 딛는 고라니는 갈 수 없다. 김광석 노래처럼 바람만 혼자서 갔다. 오늘, 그때 으스스한 영동고속도로 간이정거장이 생각난다. 버스에서 깜깜하게 내릴 때 그녀의 목도리를 고쳐 매주던 그 모습, 아직 보인다.
버스 기사가 중간에 급브레이크를 몇 번 밟았지만 무사히 집에 왔다. 샤워를 하고 하루를 탈탈 털었더니 밤 열시 반이다. 조용한 관광버스 여행을 주최 측이 고수한다면 내년에 또 관광버스 여행을 할 생각이다. 질투, 시기, 견물생심은 여기서 뺐다. 그것 말고도 감정의 부스러기는 더 많았다. 내가 지나치게 쫀쫀하다. 아! 모든 것은 에로틱한 감정이 말라서 그렇다. 2015년 10월 17일
첫댓글 저도 화진포에 몇년전에 가봤는데 참 좋았던 기억이 있읍니다~~ 고즈녁하고 쓸쓸한 느낌이랄까^^ 묘한 조화를 느껬던 생각이 납니다 바람이 불어오는곳 노래하구도 너무 어울리죠
저도 화진포 그곳으로 갔었네요. 글보며 그곳 그림을 떠올려봅니다.
여행를 별로 하 지 않는 편인지라, 관광버스 여행의 불편함을 잘 알지 못합니다. 기회가 되면 일반버스가 닿는 곳들로 전국을 나홀로 한 번 다녀보고 싶다는 '여망'은 있습니다만...
삐짐... 을 읽다보니 누구와 닮아있네요. ㅎㅎ
섬세하게 기록하다 보니...그 사이에 유머가 틔어나오네요..삐짐에서 초콜릿 이야기나 화해에서 오징어 땅콩...너무 웃겨요~의도 하지 않고 웃기는 게 가장 힘든 데...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관광버스 여행의 진면을 잘 보여주었네요...삐짐을 읽으며 아내에게 보호받고 싶은 마음을 읽을 수가 있네요
재미있게 잘 읽었어요...덕분에 화진포에도 가 본듯 합니다..여행은 둘이서 오븟하게 다니는 게 최고인 것 같아요...
지나간 감정이 다가올 감정을 지배한다. 이 글귀가 와닿아요. 앞으로 느낄 감정에 충실해야 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