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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박찬덕 선교사
예수님의 이슬인(만나)와 기드온의 이슬 머금은 양털
구약 성경에는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아직 오지 않으셨고 하나님께서는 그 실체이신 그리스도를
하늘에서 떨어지는 생명의 양식인 만나와 하늘 이슬로 표현된 이슬로 우리에게 이렇게 교훈으로 말씀하고 계십니다
민수기 11장 9절에 보면 밤에 이슬이 내릴 때에 만나도 같이 내렸다 라고 이 만나의 말씀을 하고 계시는데 이 하늘 이슬로 표현된
이슬은 우리의 영혼을 참 생명으로 공급해 주시고 이슬로 적시어서 거룩하게 하심으로 우리의 영혼의 죄를 씻으시고 의의 옷을 입혀주시고 생명의 피로 구속해 주심으로 우리의 죄악된 본성을 생명의 본성으로 바꿔 주심으로 참 만족 과 참된 누림과 위로를 주시고
참 안식을 주시고자 하는 것이 바로 이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하늘 이슬로 우리의 영혼을 흠뻑 적셔 주심으로 말미암아 생명의 양식이 되시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성령님의 이슬로 표현되고 있는 이슬을 주심으로 말미암아 변화시켜 주심으로 이와 같은 똑같은 방식으로 우리의 영혼을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채워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곧 그리스도의 품성 그리스도의 속성을 우리의 영혼 속에 채워주시고 적셔주시기 위한 것이 하늘 이슬이라는 것입니다.
이른 새벽 깜깜할 때 가장 추운 날씨에 내려지는 이 하늘의 신령한 이 생명의 이슬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는 씻어지고 부정하고 불결한 것은 깨끗해지고 정결해지고 우리의 수치를 드러내는 벌거벗음은 하늘 이슬이 적셔지는 일로 말미암아 가려짐을 당하게 된다 라는 것입니다
죄가 제거가 되고 정결케 되고 생명의 양식인 그리스도의 말씀이 성령님으로 인하여
곧 하늘 이슬로 표현되고 있는 말씀이 진리가 되도록 변화시켜 주시는 일을 통하여 우리가 먹고 마시는 말씀 곧 그리스도의 생명의 양식으로 인하여 우리의 모든 것을 변화시켜
주시며 그 변화시켜주신 것을 견고하고 아름다운 영혼이 되도록 거듭나게 해주고 탈바꿈해 주신 것이 바로 새벽 아침 이슬이라고 표현된 성령님의 역사라는 것입니다.
하늘 이슬만이 우리를 그리스도와 똑같이 능력 있고 정결하고 거룩하고 아름다운 품성을
입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서 내려주시고자 하는 마지막 유언과도 같은 가장 소중한
마지막 한 마디 말을 하여서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축복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그것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후에 유언의 소산으로 기념으로 증표로 영원한
기념물이 되게 하기 위해서내려주신 축복입니다
민수기 11장 9절에 밤에 이슬이 내릴 때에 만나도 같이 내렸다 라고 이 만나의 말씀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부여해 주기를 간절히 원했던 것처럼 야곱이 다시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자신들의 생명을 유지하고
보존시켜주고 생명을 주었던 그 요셉에게 하늘의 보물인 이슬을 요셉에게 내려지길 원한다 라고 얘기했습니다.
그런데 민수기 11장 9절에 보면 밤에 이슬이 내릴때 만나도 같이 내렸더라 이슬과 만나가 같은 것임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이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요 어떤 것이 필요하냐면 우리나라의 기후 분포를 연상해서는 아니 됩니다
여러분 지금 여기는 어딘가요 이 곳 만나가 내리는 이 장소는 시내 광야 입니다 거기에는 낮에 온도와 밤의 온도가
60도에서70도 정도가 차이가 날정도로 아주 극렬하게 차이가 나는 낮에는 너무 더워서 하나님의 구름기둥이 아니면 도무지
살 수가 없는 35도 40도 45도까지 올라가는 강렬한 뙤약볕이 내리 쬐이고 그늘이 없이는 도무지 행진할 수도 없고 일할
수도 없고 살 수도없는 그런 장소
밤에는 너무너무 또 추워가지고 영하 40도 35도 40도 이렇게 내려가니 하나님의 불기둥이 아니고서는 도무지 그 추위에 어린 아이들과 노약자들 뭐 할것 없이 모든 자들이 도저히 살 수 없는 그때인 것을 여러분 기억하셔야 이 만나가 만들어진 생성 과정을 여러분들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출애굽기 16장 13절을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만나가 만들어진 그러한 상황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날 저녁에 메추라기가 날아와서 진 친 곳을 뒤덮었고, 다음날 아침에는 진 친 곳 둘레에 안개가 자욱하였다.』
이말씀을 개역성경으로 읽으면 의미가 잘 와 닿지 않기 때문에 제가 킹제임스 성경으로
다시 읽어 드리겠습니다 킹제임스 성경으로 읽으면 내용이 확실히 와 닿을 것입니다.
『저녁에는 메추라기가 와서 진영을 덮었고 아침에는 이슬이 군대의 사방에 깔려 있더라』
얼마나 추웠겠어요 햇볕이 나기 전 동 트기 전에 새벽 4시부터 한 5시 반 사이에 가장
극한의 상태 추위의 때일 겁니다. 기온이 급강하한 그런 시점일 겁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신비한 어떤 그런 상황에서 이 하늘 높은 곳에서 수증기가 땅으로
내려와서 이슬 방울이 뭉쳐지고 응집되었을 때 이슬 방울이 어떻게 변화가 되는지
출애굽기 16장 14절에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깔린 이슬이 없어지므로 보라 보라 아니 깔린 이슬이 없어지는 거예요 왜 없어질까요
기온이 지금 급강하 돼가지고 우박 덩어리처럼 미세한 그 덩이가 큰 모래알 처럼 그렇게 생겨서 존재해야 되는데 깔린 이슬이 사라지고는 보라 광야의 진면에 작고 둥근 것이 놓였다 마치 땅 위에 흰서리 같이 미세한 깔린 이슬이 없어지고는 보라 새로운 어떤 이상한 것이 뭐냐 이게 뭐지 정말 도무지 알 수 없는 새로운 어떤 개체가 생겼다는 것입니다
이 만나는 무엇을 상징하고 있습니까? 하늘의 양식인 생명의 떡이 되어 오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 주시고자 하는 그 물과 피의 의미가 무엇인지 이 말씀을 깨닫기 위해서 그에 관한 성경 구절을 찾아 보고 또 찾아
보고 수십번을 읽어보고 찾아 보며 말씀과 씨름을 하느라 하루 종일 아무일도 할수 가 없었습니다
도대체 이 물과 피를 상징하는 이슬이 무엇이며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여러분 이 만나는요 하늘의 양식으로 오신 생명의 떡이 되기 위해서
생명의 떡으로 오신 베들레헴 (생명의 떡집) 이란 뜻이죠 생명의 양식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광야에서 매일매일 떨어뜨려 주는 하늘의 만나는
매일의 삶을 유지시켜 주고 보존시켜주는 양식이지만 성소의 떡상은 제사장이 안식일날
떡상의 떡을 교환하는 것으로 안식일에 허락해 주시는 생명이 양식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하고 있는것입니다
생명의 양식인 만나는 매일 매일 먹어야 하는 생명의 양식이며 성소의 떡상은 7일 제도를
통해 떡을 교환하는 것으로 안식일에 허락해 주시는 쉼과 누림에 대한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한1서 5장5~ 6절에
『5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 6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이시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언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7증언하는 이가 셋이니8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은 합하여 하나이니라』
예수 그리스도 생명의 떡인 예수 그리스도 내 피를 받아 마셔라.
내 살을 받아 먹어라 라고 그렇게 요한복음 6장 전체가 예수님의 피와 살을 받아 먹으라고 간절히 절규하시며 호소하셨던 예수님께서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떡 만나라는 것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 만나가 아침 이슬에 이렇게 내렸을 때 순식간에 그 기온이 급강하한 상태에서
얼어붙어진 응집되어진 그 이슬이 만나로 신비하게 바뀌어진
이런 일들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먼저 이 문제에 대해서 우리는 두 가지를 이렇게 나누어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예수님에 대한 부분과 하나는 우리에 대한 부분 만나를 먹은 우리에 대한 것과
만나 그 자체이신 예수님에 대해서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분 이 이슬은요 사실 우리가 자세하게 과학적으로 어떤 지표면 근처에 있는 공기가
수증기를 머금어가지고 그 머금은 상태가 너무 많으면 위로 올라가 비가 되는 것이고 또
너무 적으면 땅 아래 내려오는 이슬이 되는 것이고 또 어느 정도 보편적인 상태가 되면
안개로 수증기가 변화되는 그 생성된 지점이 하늘이냐 구름아래 안개냐
또는 땅 가까이에 있는 이슬이냐 라는 것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안개는 이슬이 동글동글하게 뭉쳐지기 위해서 거미줄에 뭉쳐 있거나 풀잎이나
나뭇잎이나 꽃잎이나 어떤 큰 토란잎이나 토란 줄기 위에 뭉쳐지기 위해서는
이것이 모아지기 위해서는 아무것도 없이 모아지지 않고 그냥 흩어져버립니다
그런데 티끌이 있을 때 아주 조그만 먼지와 같은 티끌이 있을 때 그 티끌을 중심으로 해서 이슬이 모아집니다
여러분 이것은요 예수님에 대한 부분을 우리가 먼저 생각해 본다면 티끌이 되어 주셔서
이 세상에 오신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으로 육체로 성육신 하셔서 가장 높은 하늘에서 가장 낮은 땅위에 사람으로 서계신
예수님의 모습은 예수님은 바로 우리와 똑같은 티끌의 형상을 지니고 오셨습니다
그리고 이슬은 수증기의 양이 가장 적을 때 가장 부족할 때 생기는 것입니다
이 티끌로 오신 예수님을 보면 여러분 성소가 원래 제가 그 성소에 대한 얘기를
해드리려 했는데 성소의 외형적인 모습이 가장 바깥에 있는 부분이 바깥에서 멀리 이렇게 성소 바깥에서 또는 성소 뜰에서 성소와 지성소에 덮개를 보면 물개 가죽으로 만들어 지어져 있습니다
그것은
내구성이 강해지고 햇볕이나 비나 바람 이런 거에 굉장히 질기고 강한 그런데 그게
물에 젖었을 때는 보기에 그나마 괜찮은데 이 햇볕에 말려진 상태가 되면 아주 보기가
흉측하기도 하고 색깔도 선명하지 않기 때문에 보기에 그렇게 아름답지 못합니다.
바로 사람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외형적인 모습이
볼 품이 없는 그 강보에 쌓여진 목수의 아들
나사렛 출신에 뭐 흠모할만한 가문이나 학식이나
명예나 지위나 이런 것이 도무지 없는 눈을 돌려 보기에
우리에게 호기심을 이끌 만한 그런 것들이 없는
아주 오히려 보통 사람들보다 더 낮은 어떤 그런 가문의 환경에서
태어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안으로 들어가 천장을 보면 세마포로 수를 놓아져 있는 천사들의 염소 털에 피가 묻혀지고 양털이 있고 그다음에 세마포가 그 안에 있고 특별히 희고 깨끗한
아주 정결함과 깨끗함을 상징하는 그 세마포에는 휘장 안을 얘기하는 것입니다.
첫번째 성소안에 들어가면 첫번째 보이는 덮개의 천장 모습이 청색 자색 홍색 실로 천사의 영광이 수놓아져 있는 천사의 모습이 예수님의 아름답고 고운 성품을 말씀 하고 있으며 두번째 덮개인 검은 염소털 가죽으로 만든 덮개와 세번째는 붉은 홍색 양털 가죽으로 만든 덮개 이며 그리고 네번째 가장 마지막 외부에 있는 덮개는 물개 가죽 덮개로 그것은 사단의 어떠한 공격
에도 다 방어하고 보호하고 우리를 도피성 처럼 피난처가 되셔서 이세상 모든 죄와 마귀의 시험을 다 극복할수 있도록
주님께서 덮개가 되어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외형적인 모습은 볼품이 없고 바라볼 것이 없지만
실제 그 예수님의 마음과 품성은 너무나 깨끗하고 정갈하고 흠과 점이 책망받을 것이 없는 의롭고 순결하고 거룩함으로 말미암아 천사들까지도 두 눈을 가리고 법궤를 내려다 보고 있는 겁니다.
그분의 의로우심과 거룩하심과 깨끗하심을 차마 볼 수 없을 정도로 그분은
순결하신 분입니다 그 생애를 사시면서 도무지 죄를 짓지 아니하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요단 강에서 공생애를 시작할 때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자다 라고 선포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이미 30년 동안에
그 생애가 예수님은 그런 완전한 순결한 성결한 삶을 사셨기 때문에 그 요단 강에서 공생애를 시작할 때 그렇게 인을 쳐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30년 동안의 삶은 세상적인 삶이었고 30년 이후에 요단강에서 침례 받으신 후에 성령님께
이끌려서 세 가지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고 금식하신 후에 시험을 받으신 후 그때는 순결한 삶을 사시고 하는 어떤 두 가지 삶을 사신 것이 아니라 천편일률적으로 똑 같은 성결한 삶을 사신 결과 공생애를 시작하셨을 때 하나님이 그렇게 인을 쳐 주신 것입니다
이게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분이 그렇게 깨끗하신 삶을 사셨기 때문에 천사들까지도
이렇게 대면하여 보기를 너무 부끄럽고 너무 황송하고 너무 경외하는
너무 영광이 찬란한 분이었기 때문에 그러니 모세조차도 온 세상에서 가장 온유한
모세조차도 사도 요한이 그렇게 나이 100세가 되어서 그가 얼마나 의롭고 거룩한 품성을
사도 요한이 가졌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인자 같은이를 보는 동안에
엎드려 온몸이 두려워 마비가 되어 죽은 자처럼 되는 그런 현상을 느낄 정도로 예수님의
그 본래 가지셨던 그 영광이 나타나셨을 때 그들은 대면하여 볼 수 없을 정도로 정말
성결 그 자체이셨습니다
이 성결한 그분이 바로 하늘의 양식이 되어서 우리에게 만나를 허락하여 주셨는데 그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 동안 광야 생활을 하면서 먹었던
바로 이슬이 변하여 만나가 되는 그러한 생명의 양식이었습니다
물과 피로 임하신 자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피로 물만 아니라 피라는 것을 계속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반석을 이해하셔야 이 물과 피를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가장 많이 부르고 입에서 가장 많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뭐냐 하면
피의 보혈 그런데 실제 사람들은 이 보혈이 무슨 뜻인지 거의 알지 못하고 잘 모르고
거의 깨닫지 못하고 이야기를 합니다
물과 피 요한복음 19장 34절에 한 군병이 옆구리를 창으로 찌르니 곧 그 옆구리에서
물과 피가 나오더라
예수 그리스도는 만나가 되셔서 밤에 이슬이 내릴 때 만나도 같이 내렸다 아침에는
이슬이 깔렸는데 그 깔린 이슬이 풀어지고는 보라 만나가 나타났다
이 만나 생명의 양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옆구리에서 흘러나온 물과피 반석에서 나온
그 물과피를 이해해야 됩니다.
기드온이 여호와의 사자를 만나고 제물을 드릴 때 반석에서 뭐가 나왔다고 그랬습니까?
불이 나왔어요 왜 불이 나왔을까요? 소멸하는 불 놀라운 신비 입니다
그것 뿐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물이 없다 라고 원망 했을때
한달전에 준비했던 그 많은 물들이 소진되고 사람만 적게는 200만명 많게는 250만명에다
짐승들 때들까지 얼마나 많았겠어요 그런 가운데 물이 없게 됨으로 그들은 원망하기
시작 합니다 그때 모세에게 명하여 반석에서 물이 나오게 합니다
물론 모세가 실수를 했죠
말씀으로 지팡이로 명하여 반석에서 물이 나오게 해야 되는데 너무나 화가 나는 바람에
백성들의 행태를 보니 거룩하신 하나님이 그 생명을 유지해주기 위하여 지금까지 지켜주신 그 은헤와 공로도 모르고 끝없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배도하고 원망하는 그들을 보니
마음에서 거룩한 분노가 나와 지팡이를 두 번 내리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두 번 십자가에 달려 죽게하는 그일로 인하여 모세는 하나의 교감이 되기
위하여 하나의 교본이 되기 위하여 책임자가 그렇게 하나님의 순종치 아니하는 자의 말로가
죽음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하나님은 즉각적으로 징벌을 내리 셨으며 그 벌로 인해
모세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다
그런데 그 반석에서 물을 내셨습니다 그런데
적어야 200만 명이고 많게는 250만 명정도 이었을텐데 200만명이라고.
우리가 한번 유추를 해봅시다. 물만 먹었을 까요 여러분 이 반석에 물을 이해하는 면에
있어서 생각을 폭넓게 가져야 됩니다
여기에는 씻는다 라는 의미가 있어요 여러분 그들이 이 시내 광야 생활을 하면서
얼마나 먼지와 흙덩이 뭐 말할 수 없는
목욕을 한 달 동안 못 했다고 치고요 짐승들이 얼마나 목말랐고 이 사람들이 얼마나 갈증을 느꼈고 그동안에 밀렸던 빨래를 얼마 이거 또 목욕을 또 해야 돼 여러분 물이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그냥 시냇물의 그런 졸졸거리며 흘러내리는 그런 물의 양이 아니에요.
이거는 커다란 골짜기예요 제가 한 2년 전에 시내산에 있는 반석이라고 하는
반석을 모세가 쳐가지고 물을 냈다 라는 그 골짜기를 동영상으로 본 적이 있어요.
그것이 진짜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 깊이 파인 넓은 그 협곡 물길이 얼마나
드 세게 휩쓸려 지나갔는지 그 하얀 돌들 시커먼 돌들이 앙상하게
내 보이는 채로 물이 흘러간 그 줄기가 정말 있더라고요 정말 너무나
크고 광대하다는 것에 제가 너무 첫 번째로 놀랐습니다.
맞습니다. 만약에 그때 그 상황에 반석을 쳐서 물을 내게 했더라면 그 물은
보통 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엄청난 양의 물 기적 중에 가장 큰 기적 이었을 것입니다.
먹고 빨래하고 목욕하고 그동안에 씻지 못한 그런 몸들의 때도 밀고
머리도 감고 짐승들 에게도 마시우고
비축하기도 하고 모든 것을 끝마쳤을 때 이 물이 그쳤을 것입니다.
제사장이 어린 양을 죄인이 끌고 와서 죄를 고한 다음에 그 양을 죽였을 때 흘린 피를
그 대접에 그릇에 담아가지고 성소로 가지고 가기 전에 물뚜멍 앞에 딱 섭니다.
손과발을 씻어야 되는 문제가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씻지 않으면 깨끗해지지 않으면 성소에 계신 지성소에 계신 거룩하신 하나님과
만날 수 없습니다 씻지 않으면 하나님과
동행할 수 없다 라는 이야기 입니다(물은 그리스도의 영을 상징하며 피는 죄를 씻어주는 구속함을 가져다 주는 피의 효력을 말씀 하고 있습니다) 굉장히 중요한 말씀 입니다
그냥 씻는다는 의미는 갈증을 해결하는 뜻도 있지만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씻음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하려는 헌신의 의미가 남아
있다라는 것이에요.
헌신 새로운 충성 새로운 삶의 시작
그리고 이 씻는 행위를 통해서 물이라는 것이 반석에서 나왔는데
이 반석에서 나온 그 물과 함께 성경에서 가장 많이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 바로
보혈의 피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이 만나를 얘기 하면서 피는 이야기하고 있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만나 그 자체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 자체가 바로 생명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자체가 생명이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그 말씀을 감춰놓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에 보면 창세기 9장 4절에 그러나 고기를 그 생명된 피체 먹지 말라 레위기
17장 11절에 보면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신명기 12장 23절에 보면 『너희는 크게 삼가서 그 피는 먹지 말라 피는 그 생명인즉
네가 고기와 함께 먹지 못하리니』
히브리서9장에 22절 말씀에 특별히
『율법을 쫓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우리가 구속받은 후에 피의 공급이 없으면 살 수 없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시 요한일서 5장 6절에 보면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이 시니 곧 예수 그리스도 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언하는 이는 성령이니시 성령는 진리니라 』
이렇게 물과 피로 임하셨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6장63절에는 이런 말씀도 있습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
네 그러니까 물과 피는 예수님의 말씀 곧 말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제가 말씀이라기보다는 말이라고 하는 것이 더 우리에게 다가오기 때문에 제가 좀 이렇게 부르기가 좀 어색하긴 하지만
말이라고 제가 칭합니다
예수님의 말은 물과 피입니다 그 안에는 생명이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만 선물을 주신다면 무엇일까요 생명에 관계된
생명이 아니겠습니까 당연히 구약 시대 때 그들은 몰랐기 때문에
하늘에서 내려온 보물 하늘에서 내려온 축복 그것을 이슬이라고 얘기했습니다 이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하나의 축복입니다.
여러분 비나 구름이나 안개 이런 것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구약에서 상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특별히 신명기 32장 2절을 보면 나의 교훈은 내리는 비요
여기서 교훈은 킹제임스 성경에 보면 교리라고 나와 있습니다.
교훈이란 말이 더 좋은 것 같아요.
나의 교훈은 내리는 비요 그다음에 신명기 32장 2절입니다
나의 말은 맺히는 이슬이요 야곱이 요셉에게 마지막 유언으로
가장 하나님께 바라고 구하는 빛을 줄 수 있는 하나님이 주실 수 있는 최고의 하늘의 보물인 그 말을 할 때
나의 말은 맺히는 이슬이요라고 이슬을 하나님의 말씀 예수 그리스도의 말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반석을 통해서 물과 피를 흘려 내려 주셨는데 그 물과 피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 곧 말이요 그 말은 맺히는 이슬입니다
그 이슬은 하늘의 수증기의 양이 가장 적을 때 이 땅에 내려지는 것입니다.
때로는 구름 위로 올라가서 비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안개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그것이 수증기의 양이 없을 때 어떤 의미에서는 가뭄이나 말씀의 기근 이런 것이 있을 때 이 쉽게 찾아질 수 없는
쉽게 소유할 수 없는 이것들을 탐구 하는 자들이 없을 때 갈렙과 같은 기드온과 같은 그런 자들이
있을 때 땅에 내려오는데 그 땅에 내려오는 것이 그대로 쓰러져 없어져 버리는 것이 아니라
티끌 이 이슬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모아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어떤 티끌이 있어야 됩니다
아까 물개 가죽
바다 표범이라고 하나요(이 물개 가죽은 사단의 그 어떤 공격과 시험에도 난공 불락의 우리를 위한 도피성을 의미합니다) 하여튼 뭐 그런 종류의 인성을 가지고 오셨지만 그분은 순결 그 자체의 정말 참 이슬과 같은 그런 존재로 세상에 내려오신 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분은 티끌이 되어서 흙으로 만들어진 인간과 똑같은 분이 되셔서 이 땅에 참 이슬과 참 생명과 물과 피를 만들어 양식이 되게 하여 주시기 위하여 만나가 되게 하여 주셔서 생명의 떡이 되게 하여 주시기 위해 티끌이 되어서 우리와 똑같은 인성을 가지시고 오셔서 이슬을 만들어 주셨던 것입니다.
그 이슬 속에는 피와 생명이 있습니다.
피는 깨끗하게 씻는 행위라면 깨끗하게 씻는 행위가 바로 거룩하신 하나님과 대면하고 동행하기 위해서는
생명을 소유 받아야 된다 라는 그러니까 이 말씀은
다른 말로 말하자면 여러분 왜 보혈의 찬송을 가장 많이 하고 예수님의 피를 가장 많이
함에도 불구하고 이 피가 왜 나하고는 상관이 없는 것이 될까요?
왜 그럴까요? 왜 나에게 생명이 되지 못할까요? 그것은 나사로와 같은 그 예수님의 진리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의도적으로 예수님께서 그 나사로를 병에 걸렸다는 위중한 상태에 빠졌다는 것을 앎에도 불구하고 죽을
병이 아니다 라고 얘기하시면서 그럼 괜찮겠네요 그가 잔다 자면 곧 일어나겠네요 라는
제자들 생각과 달리 예수님은 그 나사로가 이미 죽었음을 아셨으나 미리 가서
살려주지 않습니다.
왜냐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만 되는 그 이슬이 뭔지 생명이 뭔지를 알려주기 위한
예수님은 의도적인 행동이셨습니다
이미 죽어서 냄새가 날 정도로 삼일이나 되었습니다
사흘 3이 되는 숫자는 하나님의 진리의
생명이 임하였을 때 사람의 육신에 임하였을 때 어떠한 놀라운 일이 생기는가를 보여주기 위해서 사흘이라는
얘기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무덤에 있는 돌을 치워내라고 하시죠 여러분 죽은 자가 변화되고 생명을 소유받기 위해서는 인간의 협력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우리에게 막혀지고 굳게 닫혀진 움직일 수 없는 그것을 있는 힘을 다해서 마음을 다해 수고와 정성과 뜻을 다해 목숨을 다해 치워버려야 됩니다.
예수님을 영접함에 있어서 생명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듣는 귀가
듣는 마음이 있어야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른손에 엄지
여러분 중심이 어디에 있는냐면 엄지에 있어요
출애굽기29장 20절 말씀에 보면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 너는 그 숫양을 잡고 그것의 피를 가져다가 아론의 오른쪽 귓부리와 그의 아들들의 오른쪽 귓부리에 바르고 그 오른손
엄지와 오른발 엄지에 바르고 그 피를 제단 주위에 뿌리고』
오른발에 엄지 오른손에 엄지 오른편 귓부리에 피를 묻히는 것 같이 이 이슬을 받은 자들은 그런 삶의 길이 하나님을 향한
삶으로 하나님을 향한 선한 일로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듣는 귀로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눈으로 바뀌어지게 하는
놀라운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나사로야 나오느라 하기 전에 돌을 굳게 닫힌 마음의 문을
열게 하기 위해서 인간의 협력을 요구하시는 조건을 먼저 제시하시는
돌을 치워라 돌을 치우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안 되는 일이죠 돌을 치워야 그리스도의 말씀이 생명의 말씀이 전해질 것 아닙니까
이슬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항상 먼지 티끌이 있어야 됩니다.
예수님께서 그래서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티끌이 되셔서 성육신 하셔서 이 땅에 오셔서
참 이슬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나사로야 나오너라
여러분 왜 보혈 찬송을 많이 하고 피를 많이 얘기하고 하는데 왜 우리에게 생명이 없을까요.
그것은 여러분 다름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는 만나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이 우리를 깨끗하게 정결하게 씻어주는 물의 역할을 하고 생명의 역할을
한다는 이걸 모르기 때문에 사람들이 성경을 읽어도 그냥 문자적으로 읽고 마는 거예요
한 마디 한 마디에 예수님 말씀 그 자체가 생명이 있고 물이 있는 겁니다
물로 씻음 받고 생명을 소유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예수님의 말씀인데
그 예수님의 그 말씀이 바로 이슬로 표현되어서 외형적으로 인간이 먹을수 있는
생명의 떡인 만나로 이스라엘 백성들 입속으로 들어가서 살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생명의 양식인 만나를 주신 것은 그 속에 뭘 넣어 주셨어요
물과 피를 넣어주신 거예요 그 이슬 속에는 다름 아니라 깨끗이
씻음 받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가 깨끗이 씻어내야만 되는 그러한 인간의 정욕 과 욕심 그런것들이 있잖아요
그런 것들을 망치로 두둘겨서 막 깨고 부수고 해야 되는데
그게 예수님 옆구리에서 흘러나온 물로 그게 가능하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피가 놀라웁게도 죽은 자를 나사로와 같은 그런자들을 살릴수 있다는 겁니다
나사로야 나오너라 예수님께서 그것을 보여주신 이유가 있습니다.
왜 다른 자들은 살려 주지 않고 나사로만 살려줬나요 그것은 예수의 말씀에는 그런 놀라운 능력이 생명이 천지창조와 같은 그런 놀라운 능력이 따르는 겁니다.
이 세상에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시험해 볼 수 없는
그런 결과를 만들어낼 수 없는 그것을 티끌로 오신 예수님께서
그 말하는 그 말의 파워가 그 힘에는 놀라운 신비의 능력이 담겨 있다는 겁니다
왜 풍랑과 강풍이 몰아칠 때 바다여 파도여 잠잠하라 고요하라
이 말씀을 제자들 앞에서 왜 하셨을까요
에수님의 말씀에는 하늘과 땅도 순종할 수밖에 없는
모든 것을 지배하시는 예수님의 말임을 알려 주시고자 함입니다
여러분들 보세요
그 이슬이 아무것도 없는 깜깜한 때에 가장 추울 때 사람들이 고요히 잠들어 침묵을 지키고 있는
그때에 생명의 양식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갈렙과 기드온 같은 그러한 새벽을 기다리는 자 가장 추울때
역경이나 고난이나 어려움이 많을수록 예수님께서 40일 동안의 금식을 거친 후에 세 가지 시험을 마귀에게 받아 승리한 것 처럼 새벽을 기다리는 자 이슬을 머금은 자들은요
티끌이 응집되어서 이슬로 만들어진 자들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들입니다
새벽을 기다리는 자들이에요 하나님의 섭리 하나님의 만나
하나님의 생명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서 시험 하는 자예요
하나님의 깨끗함을 받기 위해서 씻음 받기 위해서 생명을 소유 받기 위해서 처절히
싸우는 자예요 예수님의 재림을 간절히 기다리고 소망하는 자들입니다
물론 구약 시대 때 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예수님이 아직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그것은 우리들 시대를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나 예수님이잖아요 물과 피로 임하셨으니 물만이 아니라
사람들은 자꾸 물만 생각해요 그런데 이 사도 요한은 강조 하기를
물만이 아니다, 물만이 아니라 피를 얘기하고 있어요.
왜냐면 반석으로 생각하면 꼭 모세가 이 지팡이를 쳐가지고 또는 명하면서 물을 낸거
밖에는 기억이 안 나거든요.
기껏해야 반석에서 불이 나와 가지고 그 기드온 에게 제물이 타 없어지는 그 정도의 능력 (사사기6:21) 또는 모세가 영광을 보여주세요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주세요 했을 때 그 반석 틈 사이에 손으로 가리시고 하나님의 등만 보이게 하시고 나는 여호와로라 여호하로라 나는 자비와 사랑이 인애가 풍성하노라 (출애굽기33:18~23)
나는 진실하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진멸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라
그런데 사도 요한은 이것이 아니다.
물만이 아니다 피가 있다. 그 반석에는 피가 있다 라는 것을 얘기함으로 말미암아
요한복음 19장 34절 말씀을 하고 있는 겁니다.
물과 피가 나오더라
피에는 생명이 있습니다. 나사로를 죽은 자를 살리기 위한 그 피
이 얘기는 지금 무슨 말씀을 하고 있냐면
예수님의 성경 말씀은 능력 파워 생명
놀라운 것이 있다는 겁니다. 놀라운 변화
천지 창조보다도 더 큰 역사를 갖고 오게 하는 그러한 이상한 신비한
그 생명의 힘이 있다 라는 그걸 얘기하고자 나사로를 살리신 거예요
그러니 이 말을 했을 때 오병이어요 지금 요한복음 6장 얘기를 하는 겁니다.
예수님이 거기서 한 5천 명 만 명 1만 5천 명.
아마 남녀노소 어린 아이들까지 부녀자들까지 합치면 장정들만 5천 명이니까
여자들이 참석을 더 많이 했다고 생각할 때 한 육칠천 명 어린 아이들 따라왔겠죠.
한 만 5천 명 이라고 칩시다
그런 사람들을 보고 5개의 보리떡과 두마리의 고기로 그들을 다 먹이시고 열두 광주리나 남았어요
열두 광주리 의미가 있죠 여러분 그런데 그 떡을 만들어 먹이신 일로 인하여 모든 사람들이 추종 하면서 따르면서 환호를 하면서 기적도 봤다고 그러면서 모세보다 더 한 선지자가
나타났다 하면서 환호를 했는데 갑자기 예수님이 말씀을 확 바꿔버립니다
어떻게 바꾸느냐. 피와 살을 얘기해요
내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내 살을 먹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생명이 없다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내 피를 받아 마셔라 내 살을 받아 먹으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너희는 그러면 안 된다 내 피를 받아 마셔라 내살을 받아 먹어라 피에 대한 얘기 살에 대한 얘기를 하니까
이 영생의 얘기를 하니까 그들이 이해를 못하고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이야 갑작스럽게 왜 뚱딴지 같은 소리를 하는 거야 하면서
다 떠나 버렸습니다
그때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너희도 나를 떠나려는냐 착잡한 마음과 슬픈 마음과
한편으로는 고독과 외로움 정말 이루 말할수 없는 형언할수 없는 슬픔의 마음으로
너희들도 나를 떠나려느냐 할 때 그 제자중 하나였던 베드로가 영생의 말씀이 여기에
있는데 우리가 어디로 갑니까 라고 자기도 모르는 상태에서 영생에 대해 말 하는데 그
영생이 바로 피를 얘기하고 있어요
피는 생명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말에는 피가 있고요.
예수님의 말에는 생명 있고요 죽은 자를 살리는 놀라운 일이 있다는 거예요.
그러면 여러분들이 이 말씀을 읽을 때 이런 것을 염두에 두고 있느냐 이 말입니다
그게 아니거든요 그러니 생명이 없거든요
그래서 이 피를 마시지 못하는 거예요 그래서 저도 과거에 37년 동안 제가 하나님의 이런 말씀을 성령님께 인도함 받아서 깨달은지가 얼마 안 되니까
37년 동안 저도 이 말씀을 하나의 문자적으로 그냥 말로 이야기로 이렇게 저도 읽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 한 마디 한 마디에는 예수님의 생명의 피 천지를 창조하신 놀라운 능력이 담겨 있더라고요
여러분 예수님의 물로 씻고 심령을 깨끗하게 한 다음에 그 피를 생명으로 받아 들이고
말씀을 접하게 되면 성령님께서 그 순간에 감동시켜주시고 역사 하여 주셔서 여러분들을
슬픔 가운데서 낙망가운데서 낙심가운데서도 구원하시는 생명의 말씀으로 바뀌어진다 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읽으면 생명의 말씀으로 읽으면 제가 지금 그 이야기를 할려고 합니다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자라 세상을 이긴자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바로 누구냐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자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요한일서5:6)
물로만 아니라 우리가 반석을 생각할 물만 생각해요.
물로 갈증을 해결하고 채웠던 것만 생각하면 아닙니다
외형적으로 만나에서 나타나고 있지 않지만 피가 있습니다
계속 내 피를 받아 마셔라. 내 살을 받아 먹어라
그래서 요한복음 6장에 계속 나를 믿는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요한6장38절)
요한복음 6장 56절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다 생명 곧 피라는 얘기죠
여러분 예수님의 말씀에는 성명이 있습니다.
변화 시키는 능력이 있어요 우리의 고집이요 자존심 자만심 이기심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 그것이 바뀌어집니다 바뀌어 지는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살을 양식을 먹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6장 전체를 보면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게 주는 생명을 주는 것이라. 이 생명은 피를 얘기하는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짐승의 피나 다른 피는 절대 먹지 말라고 이 법을 주신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우리의 피는 우리를 지으신 창조하신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의 피를 흘리시고 우리에게 보여주신
그 물과 피 그것만이 우리의 육과 몸과 마음과 영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것임을 우리가 알아야 될 것입니다
여러분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요한 1서 5장 5절에
예수 그리스도를 생명 양식 만나라고 설명을 하면서 그리고 이 예수 그리스도가 반석에서 십자가에서 옆구리에서
흘러나온 그 피와 물은 물만이 아니라. 반석은 물만이 아니라.
피까지도 있음을 강조하면서 이것을 성령님께서 증거로
부탁하심으로 말미암아 이 물과 피와 성령님은 하나다 라고 말씀을 해 주십니다.
이 이슬이 하나님의 말씀 예수 그리스도 양식 되시는 생명의 떡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곧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제가 왜 자꾸 이 말을 강조 하냐면 성경을 읽을 때 예수님이 말한 부분 그 말한 부분
말하는 것 그 자체가 생명이에요 어떻게 성경에 있는 그 말이 이 글자가 생명이 되느냐
이게 신비예요 성령님께서 성경을 기록한 기자에게 영감을 주었던 것처럼
이 말씀을 받아들일 때 나사로야 나오느라 하기 전에 돌부터 치우는 행위를 우리가
주님의 말씀에 생명을 소유하기 위해서 마음 문을 활짝 열고 나를 살려주세요 라고
부르짖는 외침의 소리가 예수의 귀에 들려지도록 간절히
순전히 절실하게 배고파하고 목말라 하고 갈급해 할 때
예수님은 죽은자인 우리들의 영혼에 대해서 나오너라 하면 바로 살아나는 것입니다
죽었던 우리가 무덤 속에 땅 속에 있었는데 나오너라 하면 그 음성을 듣고 우리가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이 예수님의 말이 물이고 피고
생명인 것을 성령님이 증거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하여 신명기 32장 1~2
놀라운 말씀이 기록되고 있습니다.
『1 하늘이여 귀를 기울이라 내가 말하리라 땅은 내 입의 말을 들을찌어다
2 나의 교훈은 내리는 비요 나의 말은 맺히는 이슬이요 연한 풀 위에 가는 비요 채소
위에 단 비로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이 부분이 처음이에요.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씀하고 있는 겁니다.
나의 말은 뭐라고요 맺히는 이슬이요 여러분 예수님의 말은 피요 생명이요 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반석에서 나온 것은 물만이 아니요 피요 생명이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이슬로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하늘의 보물인 이슬을 가지고 오신 우리의 첫 번째 모범자 이십니다
만약에 이분이 이러한 하늘의 참이슬을 가지고 오지 않으셨다 라면 우리에게 어떻게 이슬이 되어서 우리를 이슬을 머금게 하고 이슬을 먹게 하고
이슬로 뭉쳐져서 그리스도의 용사 기드온과 갈렙과 같은 자가 될수 있겠습니까
이슬이 만들어지기 위해서 아까 제가 티끌이 되어야 된다고 그랬죠.
이 티끌은 아무도 없을 때 조용할 때 아무도 찾지 않는 그 시간에 이 만나가 만들어지는 생성 형성을 생명을 보기 위해서 깨어 있는 자가 기도하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징조를 바라보기 위해서 하나님의 섭리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인지를 알기 위해서 붉은 용과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 생명을 받기를 간절히 처절하게 천국을 침노하여 얻기 위해서 빼앗는 자입니다
수증기가 이 땅에 가장 가까운 곳에
티끌에 있을 때 그곳에 모아져서 이슬이 하늘의 양식 만나로 변화된 것입니다
그 만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반석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실려 하는 것은 바로
물과 피 와 이슬입니다
그 이슬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사사기 6장36~40절 말씀을 읽어 보겠습니다
『36. 기드온이 하나님께 여쭈되 주께서 이미 말씀하심같이 내 손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려거든 37. 보소서 내가 양털 한 뭉치를 타작마당에 두리니 만일 이슬이 양털에만 있고 주변 땅은 마르면 주께서 이미 말씀하심같이 내 손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줄을 내가 알겠나이다 하였더니 38. 그대로 된지라 이튿날 기드온이 일찍이 일어나서 양털을 가져다가 그 양털에서 이슬을 짜니 물이 그릇에 가득하더라 39. 기드온이 또 하나님께 여쭈되 주여 내게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말하리이다 구하옵나니 내게 이번만 양털로 시험하게 하소서 원하건대 양털만 마르고 그 주변 땅에는 다 이슬이 있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40. 그 밤에 하나님이 그대로 행하시니 곧 양털만 마르고 그 주변 땅에는 다 이슬이 있었더라』아멘
여러분 이 이슬은 이 부족하고 연약하고 아무것도 아닌 먼지 흙으로 만들어진 이 티끌 같은
존재인 우리가 하늘의 양식인 만나인 예수 그리스도를 닮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먹는 자들입니다 이슬은 위로부터 내리는 하나님의 말씀인데
이 하나님의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와 똑같이 되기 위해서 그 믿음과 그 신앙과 그 품성과 똑같이 되어
정말 순수하고 깨끗하고 정결하고 생명을 소유하는 자가 됨으로 말미암아 마지막 싸움
붉은 용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자들로 만들기 위해서
준비된 자들 새벽을 기다리는 자들 기도하는 자들 하나님의 징조를 보기를 원하는 자들
생명을 소유하여 정말 예수님과 같은 기드온과 같은
두려움과 무서움이 있었던 그가 아버지가 책임자로 있는 그 바알 신상을 다 때려부쉬고
오히려 그곳에 불쏘시개로 만들어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던 그런 삶을 살 수 있기
위해서 씨름 한 자들 그런 자들이 이슬과 같은 자들입니다.
이슬은 기드온과 300명과 같은 자들입니다. 이 삼백명은 열두 지파에서 나온 자들입니다.
300 곱하기 12는 3600입니다.
이 3600의 사람들이 새벽을 기다리고 추울 때 그 추위를 이기고 그 만나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알기 위해서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생명을 소유하기를 간절히 간절히
원하고 소원하고 절실하게 찾았던 예수님이 가졌던 생명을 갖기 위해서 예수님의 말씀을
뚫어져라 묵상했던 그러한 자들 300명입니다
그들이 그런 그 시련과 시험과 고난과 어려움의 때를 극복한 그들
이 300명의 기드온 군사와 같은 자를 만들기 위해서 이슬을 맺히게 했던 것입니다.
티끌이 있어야 됩니다. 자기의 부족함을 아는 자들이 있어야 합니다
이들을 대표하고 있는 기드온이
하나님 내가 한 번만 더 징조를 보여 주기를 청합니다
양털 한뭉치를 내가 타장마당에 둘 것인데 이번에는 양털은 마르게 하시고
그 주변 땅은 이슬이 있게 해주세요 그러면 제가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해 응답하여
내가 싸워 이기겠습니다
붉은 용과의 싸움에서 우리가 이기기 위해서는 이런 징조가 필요한데 이 징조를 기드온이라는 자가 이미 우리를 대신해서 대표자가 되어서 책임자가 되어서 가졌습니다
처음에는 양털에만 이슬이 있게 해달라고 했고 두 번째는 땅에 이슬이 있게 해달라 했습니다 지금 이슬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어요
이 말씀은요 지금 과거 기드온과
그 미디안 족속 동방 족속들이 쳐들어오는 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기드온과 그 기드온의 용사 300명을 통해서 적들을 물리친 이야기입니다
지금 이 말씀은 현대 시대 우리 마지막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앞으로 우리는 무슨
전쟁이 남아 있어요.
아마겟돈 전쟁 거의 모든 예언들은 다 이루어졌고요
이제 예수님의 재림이 있기 전에 몇몇 예언들만 성취되지 않았을뿐 나머지는 다 성취가
되었습니다
그때 우리는 붉은 용과 악한 영 곧 타락한 천사들과 악인들과 함께 모두
모여 소수인 우리 이슬을 가진 자들과 하나님의 표가 아닌 짐승의 표를 가진 자들과
대치하여 싸울 것입니다
총과칼이 아니라 진리와 말씀 생명을 가지고 그리스도의 품성을 가지고 믿음을 가지고 우리는 그런 방법으로 싸울 것입니다.
그러면 이 붉은 용과 그 수하들과 그 마지막 전쟁을 치름에 있어서 우리가
어떻게 싸우고 어떻게 이겨야 되는가를 보여주는 것이 이 양털과 이슬에 대한 얘기입니다.
여러분 이 마지막 전쟁을 위해서 이슬을 머금고 이슬을 가진 자를 곧 씻음과 물과 반석에는 뭐가 있다고 그랬죠 씻음과 피가 있다고 그랬죠.
피 분명이 있다고 그랬죠 이 예수의 말씀을 통해서
정결하게 되고 생명을 소유한 자들이
부대가 되어서 기드온의 기둥과 같은 큰 용사 싸워서 이기는 자가 될 수 있다라는 것을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붉은 용과의 싸움에서 절대 져서는 안 되는 자들입니다. 이것을 계시록에 14장 1절
말씀에는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 양이 시온산에 섰고 그와 함께 14만 4천 명이 섰는데
그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과 함께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더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온산에 서 있습니다
아직 우리는 승리하여서 하늘에 올라가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하늘에 올라간 것처럼 이미 승리한 자들로서 예고하고
보여주시고 있습니다.
근데 아직은 우리는 준비하고 싸움을 기다리는 현상입니다 물론 이렇게 보였지만요
여러분들 이러한 전쟁을 치르기 위해서 예수의 말씀
예수의 말은 우리를 깨끗하게 하는 능력이 있구나
죽은 자도 살리는 이러한 생명 천지를 명하였을 때 순종하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있구나
예수의 말씀에는 그렇다면 이 말씀을 내가 그냥 그대로 읽어서는 아니 되겠네
라고 해서 그 말씀을 생명으로 받아들인 자들에게는
양털의 그 이슬이 우리 갈렙과 기드온의 300명과 같은 자들이 그 양털에만 뭉쳐지는 것입니다. 양털은 누구를 상징하고 있죠 예수님입니다
그러니 이슬이 그 반석에서 나온 물로 씻음 받고 피로 생명을 받은 자들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하나로 모여 있는 것입니다
양털에만 있잖아요 땅에는 없어요
이슬비 갈렙과 기드온 300명처럼 14만 4천 명처럼 준비된 자들 어떤 자들이요
반석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옆구리에서 나온 물과 피로 씻음 받고 생명을 소유받아
예수님과 같은 믿음을 소유한 자들은 예수님의 양털에만 있는 것입니다
하나로 뭉쳐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이슬들이 어떻게 돼요
두 번째 징표를 통해서는 하나님 이번에는요 양털만 마르고
땅에만 이슬이 있게 해주세요
아까는 진리를 가진 자들 생명 가진 자들이 예수님께 모여서 보고 듣고 교제 함으로
말미암아 이러한 똑같은 시간을 가짐으로 말미암아 자꾸 우리가 생명을 소유받고 소유받고 함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예수님 안에 군사로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번에는 양털은 마르고 땅만 적셔주세요 라고 이슬이 땅으로 가는 현상은 뭘까요
우리는 진리와 생명 정결케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통해서 날마다 배우고 날마다 준비하고
날마다 묵상하고 날마다 생명을 받아들이는 일을 합니다 그때 우리는 성령님을 통하여
예수님과 같은 능력이 나오겠죠
이러한 능력이 나온 자들은 예수님께 이끌려서 예수님을 통하여 만들어진 자들은
이제 하나가 되었습니다. 위에 하나가 된 이슬 같은 것이 뭉쳐지죠.
그 물이 티끌로 조그마한 그 만나처럼 된 그 이슬이 뭉쳐지고 또 이슬이 뭉쳐지고 뭉쳐지고 하면은 이 조그마한 이슬들이 모여서 무리를 이루겠죠. 커다른 이슬
다시 한 번요 개인적으로 준비되고 만들어지고 깨끗해짐과 성령님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생명의 피를 수여받은 자들 예수님 안에서 하나가 된 자들 진리를 소유하고 생명을 소유하고 능력을 소유한 자들 깨끗하게 정결하게 된 자들이 하나씩 하나씩
모아서 모아서 모아졌을 때 이 이슬들이 모아서 하나의 단체 무리를 이르겠죠.
그것이 14만4천 입니다
이들이 진리로 생명으로 예수님 안에서 하나된 자들이 세상에 나가서 세상에 퍼져야 된다는 겁니다.
세상에 녹아져야 돼요. 세상에 주어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 붉은 용과 악한 사단의 무리들과 싸울 때 예수님 안에서 생명을 소유함 받은 이들은
그 생명을 소유함 받은 하나의 커다란 무리 지금은 각각 흩어졌어요.
우리는 지금 여기에 모여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생명을 소유받은 무리가 예수님의 이름이 이마에 인쳐진 무리가
세상 속으로 나가서 짐승의 표를 받은 자들에게로 나가서 땅을 적시어 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진리와 생명을 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나를 버리는 것이며 나를 죽이는
것이며
이 진리 안에 예수님 안에 있었던 이슬이 땅 속에 퍼져 없어져 사라져 죽음으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복하는 것입니다.
이슬이 아무나 이슬이 되는 게 아닙니다
새벽을 기다리는 자 밤을 지세운 자
시련과 고통과 예수님처럼 40일 동안 또 이스라엘 백성들의 40년이나 긴 세월을 거쳐간 자들만이 이 이슬을 먹고 이슬을 보고 이슬을 소유하고 참 이슬 되시는 예수님과 같은 삶 신앙 믿음 이러한 능력 생명을 가져야 세상을 이길 수가 있는 겁니다
그들이 14만 4천명 300명의 용사입니다
여기까지 오늘 교제를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