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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스피스에서의 영적 도움
마리아의 작은 자매회 박 마리아 수녀
( 돈안동 본당 신자들을 위한 호스피스 교육 )
시작기도: 십자가의 고통 중에 있는 이들을 위한 기도
눈울 감아보자. 그리고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려 보자.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보자. 자 이제 그 사람에게 암이 걸렸다고 상상해 보자. 어떻게 그 사실을 받아들이겠는가?
제일 먼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겠는가?
위로인가 ? 어던 위로를 할 수 있을까?
분노인가? 아니면 억울함인가? 여러분의 마음이 어떻게 마구 요동치는가? ( 1분정도 )
다시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 보자 .
자신의 신체 중에 가장 약한 부분을 상상해 보자 . 이제 어느 날 갑자기 심하게 아파서 병원을 찾아갔다. 그런데 말기 암이라고 진단을 받았다고 상상해 보자 , 이병원 저 병원 다녀 보았지만 겨우 3개월 선고를 받았다고 생각해 보자. 당신의 감정은 어떻겠는가 ? 무엇이 가장 두려운가 ? ( 1분 ) 질문
호스피스에서의 영적 관리는 바로 임종의 고통을 겪고 있는 환자와 가족 그리고 유가족등 의 갈등과 번민과 분노와 두려움 속에 있는 영혼에 평화가 오도록 돕고 그 평화 속에 생명력이 솟아 나와 마지막 이 세상에서 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 생명력을 가지고 살아가다가 영원한 생명에로 들어가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평화롭게 해 줄 수 있을까? 이것이 곧 영적 돌봄을 하는 자원봉사자들의 과제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여기서는 자원봉사자로서 어떻게 영적 돌봄을 잘 할 수 있는지 그 영성과 자세 면에 중점을 두고 살펴보되 시간관계상 환자를 돌보는 것만 살펴보고자 한다.
1. 영적돌봄이란 무엇인가?
(1) 영의개념
영(spirt)은 희브리어로 루하르(RUAH), 희랍어로 퓨뉴마(Pneuma)로서 단어의 근본 의미는 공기의 움직임, 미풍, 입김, 바람, 호흡을 뜻하며 생명의 본질이란 뜻으로 쓰인다. 성서에서도 영은 바람, 입김, 숨(요한 3,8 ; 창세기 2,7 ; 사도행전 2,2)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명의 원동력이며 생명을 가져다주는 야훼의 힘이며 권능이다 . 이것은 생명을 비롯하여 인간의 삶의 전체적인 측면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슬픔, 분노, 욕구를 나타날 때 숨결이 거칠어지는 감정, 강력한 바람은 인간의 의지와 용기 등을 내포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2) 영적돌봄
우리의 호스피스 대상자들은 자신들에게 다가온 불행으로 인하여 생명을 불어넣어 주는 역할을 해야 하는 영혼이 메말라가고 있기 때문에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것이다.
자신들에게 다가온 그 불행이 어디서부터 왔는지 그 궁굼증을 묻기에 앞서 분노와 좌절 속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기에 타인의 돌봄이 필요하다. 물론 영적 돌봄 하면 종교적인 지도자 많이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필자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영적으로 죽어가고 있다는 것은 물론 자기가 믿는 신으로부터 버림받았다는 느낌에서 가장 큰 것이라고 본다. 하지만 우선 질병을 앓고 있을 때는 앓고 있는 자신을 받아들일 수 없다. 또한 자신의 병이 타인 때문에 왔다고 느끼게 되면서 타인도 받아들일 수 없다. 그리고 하느님도 결국 받아들이기가 힘들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자신과 이웃과 하느님과 화해하고 평화를 찾아서 생명력을 찾아가도록 돌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육체는 비록 죽어 가더라도 생명의 근원인 영은 영원히 살아 갈 수 있음을 받아들이도록 함께 해 줌이 곧 영적 돌봄이다. 마치 갈바리 산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던 예수님께서 돌아가실 때 비록 모두가 다 버렸지만 당신을 사랑하는 어머니와 요한 그리고 마리아 막달레나가 함께 있었고, 또 그 힘으로 인하여 ' 아버지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 라고 외치시던 그분께서 '아버지 저의 영혼을 아버지께 맡깁니다. '라고 하시면서 어머니께 제자들을 제자들을 어머니께 맡기면서 돌아가신 것처럼 자신의 이 세상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평화롭게 왔던 곳으로 되돌아 갈 수 있도록 돌보는 것이다. 또한 그 예수님 옆에서 사형을 받던 죄인의 예수님의 말씀 한마디 "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들어갈 것이다. " 라고 하신 그 말씀에 희망을 걸고 죽어갈 수 있었던 것처럼 자신의 모든 억눌려 있던 괴로움과 죄 등에서 해방을 맞이하고 낙원으로 갈 희망을 않고 마지막 숨을 쉴 때까지 최선을 다하여 살아가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2. 환자의 영적 상태는 어떠하며 그 돌봄은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
(1) 임종자의 영적 고통
임종자의 영적 돌봄에 관한 문제는 대부분이 영적 고통을 어떻게 해결해 나가도록 도아 주느냐가 관건이다. .
카르베니토는 영적 고통을, 힘과 희망의 근원이 되는, 믿음이나 가치체계의 붕괴를 경험하는 위험한 상태라고 하였으며 이러한 영적 고통은 죄의식, 종교의식을 수행할 수 없는 것 , 종교적 /영적 믿음과 처방된 건강 관리법의 모순 , 자신의 삶과 실제 처하고 있는 환경에 대한 의미감 결여, 하느님과의 관계가 붕괴되는 것 , 의미 있는 사람을 용서하지 못하는 것과 관련된다고 하였다. 더욱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자기 자신을 수용하지 못하는 마음
* 이웃이나 가족과 화해하지 못한 불안감
* 삶과 죽음의 의미에 대한 불안감
* 하느님에 대한 혹은 자신이 믿어왔던 신에 대한 분노,
* 왜 나에게 이런 고통을 하는 고통의 의미에 대한 분노 .
* 믿음에 대한 내적 갈등의 표현
* 자신의 존재 의미에 대한 의문
* 영원한 삶에 대한 갈망
* 종교 지도자에 대한 분노의 표현
* 자기 자신을 비난하거나 가족들을 비난하는 자기 자신에 대한 죄의식.
* 하느님의 용서에 대한 불 신앙
* 육체의 소멸에 대한 두려움
* 죽음에 대한 두려움 ( 미지에 대한 두려움이 가장 클 것이다. )
* 자신의 죄로 인해 오는 죽음 후에 올 벌에 대한 두려움 등
결국 신과 자신 그리고 이웃과 자신 그리고 자신과 자신 사이에서 오는 불안한 관계와 죄의식 속에서 영혼은 생명력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럴 때 영적 돌봄을 자신과 화해하고 타인과, 이웃과 화해하고 그리고 신과 화해하도록 심리적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돌보아 주어서 영혼의 평화를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
(2.) 영적 돌봄을 어떻게 할 것인가?.
호스피스 인들의 정신은 곧 모든 것을 품어 안아줄 수 있는 어머니 마음이어야 한다. 호스피스 대상자들이 결코 버림받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도록 사랑을 느낄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최대한의 사랑을 느낄 수 있도록 하여야 한고 그들의 고통과 번민의 마음을 들어주고 그 멍에로부터의 자유로워지도록 하려면 봉사자 자신이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하고 건강한 정신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가. 호스피스봉사자의 정신
1) 성모님의 마음을 본받아야 한다.
갈바리 산상에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발치에 계신 성모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골고타 언덕을 만진창이가 되어 십자가를 지고 와서 그 십자가에 못 박혀서 죽어가고 있는 사랑하는 아들을 바라보는 어머니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것도 구경꾼이 지켜보며 조롱하는 가운데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존재처럼 서 계신 성모마리아를 바라보면 임종환자들을 어떻게 돌보아야 하는지 가르쳐 준다.
"아버지 어찌하여 저를 버리시나이까 " 외치며 고통스러워 할 때 어머니는 그 아들의 눈만을 응시하며 그냥 서 있을 뿐이다. "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가장 위대한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 장한 모습이다. 마치 아들과 함께 십자가를 지고 있기라도 하듯이 .....아니 아들 예수님의 영혼 속에 들어가 있기라도 하듯이 ........
어떤 때에는 환자를 방문하고 와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 때문에 봉사자들이 괴로워 할 수 있다. 그러나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때 함께 하면 사랑을 보여줄 때 가장 큰 힘이 된다는 것을 늘 기억해야 한다.
2) 세례자 요한이 되어야 한다.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께서 오실 길을 닦아 놓으시고 그분이 오시자 그분의 자리를 바로 내어 드리는 겸손한 분 이셨다.
우리도 환자의 임종시 가족들의 자리를 차지한다든지 혹 하느님의 자리를 차지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3) 성령의 도우심을 청해야 한다.
자신이 다 하려는 마음은 버려야 한다. 성모님께서 하느님의 활동을 막지 않으시고 그 고통을 받아들이시며 십자가 밑에 계셨던 것처럼 그렇게 성령의 도우심을 청해야 한다.
4) 하느님의 자비를 청해야 한다.
환자는 죄의식 속에서 생명을 잃어가고 있다. 그 죄의식 속에서 해방되고 하느님의 자비하심으로 환자가 평화를 누릴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한다.
5) 단죄하지 말아야 한다.
가끔씩 환자의 영적인 상태가 인간이 판단하기에 죄받을 만 하다라고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단죄하시는 분은 하느님이시며 용서해 주시는 분도 하느님이시니까 단지 우리는 그 환자를 하느님께 데리고 가는 역할을 하여야 할뿐이다.
"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 저들은 자기들이 하는 일을 모르고 있습니다.
오늘 너는 나와 함께 낙원에 들어갈 것이다.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해야 한다.
6) 그들 하느님의 사랑 받는 자녀임을 인식하고 그들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정신을 가져야 합니다.
메리포터수녀님은 어느 영혼도 혼자 죽어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하였다. 사랑 받는다고 느끼는 환자는 비록 몸은 혼자 있을지라도 마음은 혼자가 아님을 느끼며 평화로울 것이다. 봉사자들의 사랑의 표현이 그들을 외롭게 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사랑은 곧 생명력 이기 때문이다.
나. 영적 돌봄의 자세
1) 우선 자기 자신이 영적으로 튼튼해 있어야 한다.
자기 자신이 영적으로 튼튼해 있지 않으면 환자를 오히려 더 불안하게 할 수 있다.
2) 환자의 종교를 존중해 주어야 한다.
영적 돌봄은 개신교나 가톨릭 신자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고 모든 종교를 가지고 있는 이들에게 필요하고 또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영적 갈등을 겪고 있기 때문에 환자가 믿는 종교를 존중해 주어야 한다.
3) 기본 모델이신 갈바리산의 성모님을 본받는 태도이다.
침묵할 때 침묵할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
4) 우리가 만나는 환자들을 마치 그리스도를 대하듯이 혹은 자기가 가장 사랑하는 이를 대하듯이 하는 것이다.
환자는 우리보다 앞서 우리가 왔던 곳으로 갈 스승이다. 그러므로 그 스승이 힘들어 할 때 옆에서 함께 하며 힘을 주는 정도의 모습도 아주 중요하다.
5) 환자의 영적 감정에 빠져 들어가지 말아야 한다.
환자의 상태를 있는 그대로 받아 주기는 하되 객관적인 입장이 되어야 한다.
6) 겸손해야 한다.
환자가 눈으로 보기에는 비록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영적으로는 하느님과 아주 가까운 사람이다. 이제 곧 갈 사람이기 때문이다. 퀴불러 로스는 모든 임종환자들은 죽음에 대한 우리의 스승이라고 말 하였다.
6) 인내롭고 꾸준하게 방문해야 한다.
( 경찰병원의 한 환자 )
7) 환자나 가족이 한 말이나 행동 때문에 상처받지 말고 죽어 가는 화초에 물을 주는 농부처럼 그들의 영혼에 샘물을 불어넣어 주어야 한다. 그것은 그들의 말이나 행동에 귀를 기울이고 인정해주되 개관적인 자세를 취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8) 시간을 정확히 지켜야 한다. 환자에게 1분은 영원한 시간이 될 수 있다.
9) 영적 도움을 주기 위한 사람들은 특별히 안전 지대가 되어 주어야 한다.
영혼을 다루는 일인만큼 신중해야 하며 평화로워야 한다. 마치 어머니의 자궁처럼 ....
10) 마음 밭 , 영혼 밭이 되어 주어야 한다.
3. 결론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호스피스 인으로서 영적 돌봄은 저 내면 깊숙한 곳에 있는 환자의 존재자체의 괴로움을 함께 하면서 자신과 이웃과 가족과 그리고 하느님과 화해하고 평화롭게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음을 확인시켜서 죽음을 평화롭게 맞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즉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잘 극복하고 하느님이 결코 자신을 버린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는 희망이 있음을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마지막 까지 최선을 다 하다가 인간답게 죽어갈 수 있도록 그리고 새로운 세상 즉 하늘나라로 기쁘게 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어떤 신부님은 말씀하셨다.
우리는 세 번 태어나고 두 번 죽음을 체험한다고 .....
한번은 어머니 뱃속에 잉태되는 자궁 안의 세계에 태어나는 것이고 세상에 태어날 때 자궁 안에서 세상밖에 태어날 때 죽음을 체험하기 때문에 울음을 터트리고
두 번째는 이 세상을 하직할 때 역시 새로운 세상 하느님 나라에 대해서 잘 모르기 때문에 두려움 속에서 죽음을 맞이하지만 하늘나라에 새로 탄생하면 어머니 자궁 속에서 이 세상에 올 때 어머니 뱃속이 최고인지 알고 두려워했던 것처럼 세상이 최고인 것처럼 두려워서
그렇게 죽기 실어 한다고 .......
갈바리아의 네 번째 십자가
가장 위대한 사랑의 행위는 사랑하는 이를 위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때입니다.
마치 마약중독으로 희망을 잃고 헤매는 아들을 위해서
간절히 손길을 뻤는 어머니와 같습니다.
그리고 헌신적인 의사인지 아닌지를 알아보는 시금석은
가망 없는 환자를 위해서 계속 최선을 다 하는 것이듯
마리아는 바로 이 같은 위대한 사랑의 상징입니다.
마리아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아들을 위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마리아는 그곳에 그냥 서 있었을 뿐입니다.
그러나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것이 모든 것을 의미합니다.
마리아의 사랑은 갈바리아 언덕에 우뚝 솟은 네 번째 십자가입니다.
이로써 마리아는 진실로 하느님을 더욱 영화롭게 합니다.
* Daum 검색중 불루우 베일에서 옮긴 글입니다.
첫댓글 지난 시간이 주마등처럼 지나갑니다 첫 호스피스 대상자 손을 잡아주었을 때의 애절하고도 간절한 그 눈빛을 잊을 수가 없군요 그 후로는 망자의 손도 자연스럽게 얼른 다가가 잡아줄 수 있었고..어디서 부터 나온 용기인지.. 건강하게 살다가 편안히 눈 감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같은 마음을 느끼셨네요. 반갑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