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헤롯은 유대왕이 아니다.
우리는 제1장과 제2장을 통해서 갈릴리왕 헤롯의 측근들이 모두 예수의 측근들임을 알았습니다. 이는 곧 예수가 갈릴리왕 헤롯과 관련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예수가 높을까요? 헤롯이 높을까요? 물론 헤롯이 더 높습니다. 이는 예수가 갈릴리왕 헤롯에 의해 움직였다는 이야기가 가능하고 예수는 갈릴리왕 헤롯을 위해 기적을 행사하면서 갈릴리 사람들에게 교육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그렇다면 갈릴리왕 헤롯은 예수를 통해 갈릴리 사람들에게 어떤 교육을 했던 것일까요? 그리고 왜 갈릴리왕 헤롯은 이러한 것들이 필요 했던 것일까요? 그 답을 찾기 위해서는 갈릴리왕 헤롯이 어떤 왕인지 알 필요가 생깁니다. 여기서 갈릴리왕 헤롯의 족보를 먼저 알아 보겠습니다. 갈릴리왕 헤롯의 정확한 이름은 헤로데 안티파스 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헤롯대왕으로 아기 예수를 죽이는 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갈릴리왕 헤롯을 알기 위해서는 바로 헤롯대왕을 이해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경 역시 헤롯대왕으로 부터 시작되며 헤롯대왕의 문제점이 그의 아들 갈릴리왕 헤롯의 문제점이기 때문입니다.
1. 갈릴리왕 헤롯의 아버지 헤롯대왕
헤롯대왕은 BC 73년에 태어나서 BC 4년까지 살다가 죽습니다. 여기서 잠시 이야기를 하자면 헤롯대왕이 아기예수를 죽이기 위해 1~2살 되는 모든 아기를 죽이는 것으로 성경에 나오지만 헤롯대왕은 BC 4년에 죽기 때문에 아기예수는 1년에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BC 4년 이전에 태어 났다는 것을 의미 합니다. 따라서 예수가 태어난 해를 모두가 잘못 알고 있었다는 것이 됩니다. 완벽해야 할 예수는 그 시작 부터 조작임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돌아와서 헤롯대왕의 아버지는 애돔사람이고 어머니는 나바테아왕국 귀족의 딸이였습니다. 즉 헤롯대왕은 유대인이 아니였습니다. BC 40년 헤롯대왕은 로마로 가게 됩니다. 이후 헤롯대왕은 로마 원로원들로부터 유대왕의 칭호를 받고 로마의 군대를 이끌고 와서 유대의 왕이 됩니다. 헤롯대왕의 아들이며 갈릴리왕이 되는 헤롯 안티파스는 갈릴리 총독으로 있었습니다.
하지만 헤롯대왕에게 문제가 있었으니 유대인이 아니였습니다. 이로 인해 헤롯대왕은 유대인을 다스릴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유대왕족의 딸 마리암과 결혼을 합니다. 그리고 유대인의 유화책으로 예루살렘 성전을 짓는 등 유대인의 마음을 사로 잡기 위해서 많은 업적을 남깁니다. 이러한 많은 업적으로 인해 헤롯대왕으로 칭송을 받고 있는 것이죠. 그러나 여전히 헤롯대왕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그들은 예수가 싫어하는 바리새인들이였습니다. 헤롯대왕이 유대인이 아니라는 것이죠.
헤롯대왕은 BC 4년에 죽게 되고 3명의 아들들은 아버지 헤롯대왕을 이어 왕이 됩니다. 모두 로마로부터 정식왕의 칭호를 받지는 않았지만 편의상 헤롯을 갈릴리왕으로 아르켈라우스를 예루살람의 왕으로 칭하도록 하겠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역사를 배우고자 하는 것이 아니고 이 문서는 성경속에 담긴 또 다른 진실을 찾기 위함이니까요. 왜냐하면 갈릴리왕이라는 의미와 예루살렘왕의 의미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2. 갈릴리왕 헤롯과 빌라도의 출연
이렇게 해서 헤롯대왕의 아들들 중 3명의 왕들은 팔레스타인 지역을 나누어 가지게 됩니다. 이 중에서 갈릴리왕 헤롯 안티파스는 모든 영토를 얻기 위해 예루살렘왕을 내쫗아 프랑스 지역으로 유배를 보내게 합니다.
갈릴리왕 헤롯은 자신이 유대왕이 될 것으로 생각을 했지만 로마 황제는 새로운 총독을 예루살렘에 보내게 되는데 그가 빌라도 입니다. 갈릴리왕 헤롯은 참으로 억울 했을 것 입니다. 힘겹게 아르켈라우스를 내 쫗았지만 자신의 뜻대로 예루살렘의 왕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죠.
3. 갈릴리왕 헤롯의 고민
이제부터 쓰는 내용은 제 개인적인 견해임을 밝힙니다. 그러나 결코 잘못된 생각이 아님을 알 수 있는 것이 헤롯의 아버지 헤롯대왕 역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유대왕족의 딸과 혼인 했다는 것입니다. 갈릴리왕 헤롯에게는 몇가지 문제가 있었는데 첫째는 로마로부터 왕의 칭호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왕의 칭호를 받고 공식적인 유대왕이 되고 싶었던 것이며 또 하나는 자신이 유대인이 아니였기 때문에 바리새인들로부터 지탄을 받는 것였습니다. 갈릴리왕 헤롯은 팔레스타인 지역을 쉽게 다스리기 위해서 유대인이 되고 싶었을 것 입니다. 그러나 그럴수는 없었고 따라서 헤롯은 유대인들이 없어졌으면 하는 생각을 가질 수 있습니다.
갈릴리왕 헤롯은 아버지처럼 유대왕족과 혼인을 하면 유대인들과 바리새인들로부터의 지탄을 줄일 수는 있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바리새인들의 비판을 벗어 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헤롯은 유대인과의 결혼을 포기 합니다. 헤롯에게는 이미 부인이 있었는데 그녀와 이혼을 하고 동생의 아내였던 헤로디아와 재혼을 하게 됩니다.
신약성경에서는 세례요한이 갈릴리왕 헤롯의 결혼 문제를 비난해 헤롯에 의해 죽은 것으로 표현했지만 세례요한의 주장은 아마도 갈릴리왕 헤롯이 유대인이 아니라는 점을 들어 유대인들에게 혁명을 이야기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는 다른 바리새인들도 마찬가지 일것으로 생각됩니다. 이에 대한 설명은 제4장 세례요한에 대한 설명에서 계속 하게 됩니다.
4. 갈릴리왕 헤롯의 유배 그리고 아그립바의 출연
갈릴리왕 헤롯의 아버지는 대왕으로 불리지만 헤롯은 유대인에게 좋지 않은 왕이였습니다. 그는 BC 4년부터 AD 39년까지 오랜 시간 동안 갈릴리왕으로 갈릴리를 통치 합니다. 이 기간 동안 예수의 사도들은 많은 제자들을 모으게 되고 번성하게 되며 베드로는 예수교를 통해 예루살렘에서 왕과 같은 권한을 행사 하게 됩니다. 이 시기가 갈릴리왕 헤롯 시대에서 가장 화려한 시대였습니다. 이는 성경을 통해 자세히 설명 합니다.
헤롯의 절정의 시간이 지나고 AD 37년 이스라엘에 새로운 시대가 다가오기 시작합니다. 그것은 로마에 새로운 황제가 나타나는데 그가 칼리큘라이며 칼리큘라에게는 매우 친한 친구 아그립바가 있었습니다. 아그립바는 헤롯대왕의 손자이면서 갈릴리왕 헤롯의 조카이며 갈릴리왕 헤롯의 왕비 헤로디아의 오빠 였습니다. 칼리큘라가 로마의 황제로 등극하자 아그립바는 빌립보가 다스리던 곳의 왕이 되고 정식 왕의 칭호까지 받게 됩니다.
그리고 아그립바로 인해 갈릴리왕 헤롯은 프랑스로 유배를 떠나게 됩니다. 헤롯의 유배 이후 아그립바는 헤롯과 달리 예수의 사도들을 실질적으로 탄압하기 시작 합니다. 아그립바의 행동을 보면 그동안 헤롯은 예수교를 너무 아껴준 것이 아닌가 하는 또 다른 증거로 됩니다.
여기서 부터는 가설임을 밝힙니다. 예수의 측근들이 더 이상 아그립바의 탄압을 보고 있을 수 없었고 그래서 유대인들로 부터 칭송 받던 아그립바를 사도들이 살해하게 됩니다. 그러나 헤롯은 돌아 오지 못했고 아그립바의 아들 아그립바2세가 어린나이에 유대왕이 됩니다. 아그립바2세는 유대의 마지막 왕입니다. 아마도 사도들을 주축으로 하여 헤롯을 다시 유대왕으로 모시고자 하는 움직임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가져 봅니다.
아그립바의 죽음에 대한 내용은 사도행전에 자세히 표현되어 있는데 제가 생각하기로는 예수 측근들이 탄압을 이기지 못하고 아그립바를 살해 하고 충이 먹었다며 종교적으로 표현 한 것으로 보는 가설을 세운 것 입니다. 이에 대한 설명은 예수 부활 후 베드로에 대한 사도행전을 이야기 할 때 다시 하겠습니다.
5. 갈릴리왕 헤롯과 민족 반역자 예수
지금까지 갈릴리왕 헤롯에 대해서 알아 보았고 갈릴리왕 헤롯은 그의 아버지와 같이 유대인이 아니였기 때문에 바리새인들로부터 지탄을 받아 왔습니다. 헤롯의 아버지는 유대왕족의 딸과 결혼을 했지만 헤롯은 동생의 아내 헤로디아와 재혼을 함으로서 더욱 더 많은 지탄을 받게 됩니다. 물론 동생의 아내를 취했다는 것 보다 중요한 것은 헤롯이 유대인이 아니라는것입니다. 어쩌면 갈릴리왕 헤롯이 유대왕족과 혼인을 하고 유대왕족을 보호하려 했다면 역사는 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헤롯대왕은 성전을 지었지만 헤롯일가는 로마군대를 이끌고 와서 팔레스타인 지역을 지배하고 있었기에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당시 유대인의 삶이 어떠했는지 알 수 있는 내용들이 신약성경 곳곳에 나와 있습니다. 먼저 과부라는 단어가 무수히 등장 합니다. 이는 당시에 과부들이 많았다는 이야기가 되며 남자들이 목숨을 많이 잃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그 남자들은 무슨일로 죽어야 했을까요? 그리고 피지배층들은 로마와 헤롯에 많은 세금을 납부해야 했으며 종교적인 이유로 많은 죽임을 당하며 많은 재산을 빼앗겨야 했고 이로 인해 홀로된 여자는 과부가 되었고 살기 위해 창기가 되어야만 했습니다.
지배자로 온 많은 로마병사들과 권세가들은 유대인을 가만히 두었을까요? 그리고 로마와 헤롯에 빌붙어 충성을 하던 사람들이 있었으니 그 중에 하나가 세리들이였습니다. 이들은 같은 유대민족으로 부터 강압적으로 토지와 집을 빼앗아 세금을 납부하고 자신들의 배를 불렸으며 나아가 사채놀이를 통해 더욱 더 많은 돈을 벌어 들이고 있었습니다. 세리들은 한마디로 유대민족의 반역자였습니다.
그렇다면 세리와 창기들이 천국에 먼저 간다고 했던 예수는 어떠 했을까요? 물론 예수도 세리와 창기들을 좋아 했고 그의 설교와 행동 그리고 예수의 제자들을 보았을 때에 예수는 민족 반역자가 맞았습니다. 이에 대한 증명은 이후 제4장 부터 하도록 하겠습니다.
6. 헤롯 일가의 의문점
지금까지 설명한 내용들을 보면 의문점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아그립바1세는 예수교도를 죽이는데 앞장을 섰기 때문에 유대인들로 부터 칭송을 듣게 됩니다. 그러나 아그립바1세는 유대인이 아닙니다. 아마도 아그립바가 유대인과 재혼을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갈릴리왕 헤롯이 칭송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없고 오히려 세례요한이 헤롯을 비난한 것으로 보아 갈릴리왕 헤롯과 아그립바1세는 같은 피를 가졌지만 통치방식이 달랐던 것을 의미합니다. 그 중 핵심이 예수에 대한 태도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헤롯은 예수교도들을 보호했다고 볼 수 있는 것 입니다. 이러한 증거들은 제1장과 제2장에서 예수의 측근과 예수가 유대인을 대하는 태도가 달랐기 때문에 분명하게 인식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세례요한과 바리새인들이 헤롯을 비난한 이유는 우리가 알고 있는 이유가 아니라는 것 입니다. 첫째 헤롯일가가 유대인이 아니라는 사실. 두번째 유대왕족과 혼인하지 않다는 사실. 세번째 형이나 동생의 아내를 취했다는 사실. 이렇게 3가지 내용이 유대인들과 바리새인들에게는 중요한 것이 아니였다는 것 입니다. 유대인들에게 중요했던 것은 예수를 대하는 태도가 달랐다는 것으로 이는 분명한 사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