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님은 자(字)를 여옥(汝玉), 호를 문암(問巖)으로 쓰셨다.
1915년 (을묘)에 태어나서서, 1978년 4월 24일에 별세하셨으니, 향년(享年)이
64세이셨다. 슬하에 아드님 3형제와, 따님을 한 분 두셨다. 세 아들 중에서 K가
차남(次男)이었다. K의 결혼을 불과 열흘 앞두고서 별세하셨다.
K의 장인되실 어른께서 문상을 오셨고, 집안 어른들과 의논한 뒤에 예정대로
혼인을 진행하기로 하였다. K는 다음 달 5월 5일에 경주에서 결혼하고, 보은읍
삼산리에 신접 살림을 시작하였다.
그 해(1978년) 4월 11일 대전에서 청주로 전보 발령, 4월 15일에 청주에서 다시
보은중계소로 재발령, 4월 17일에 보은중계소 부임 후에 4월 24~26일은 아버님
별세와 장례, 5월 4일에 친족들을 모시고는 경주로 이동, 5월 5일에 경주시 중앙
장로교회에서 결혼, 5월 10일에는 보은의 살림집으로 이사하는 등으로 경황없이
지낸 한달이었다.
K는 사는 집과 거리가 떨어졌지만, 어머님을 모시고 '관기교회'를 출석하며 신앙
생활을 하였다. 고향의 관기교회는 K가 첫 출석하여 신앙생활을 시작한 교회였고,
객지에서의 신앙의 갈등과 방황을 극복하고서, 신앙을 회복한 직후에 두번 째로
다닌 교회, 결혼하여서는 새 가정을 이루고 홀로되신 어머님을 모시고, 세번째로
다닌 교회였다.
참으로 K에게 잊을 수 없는 母 교회였다. 아버님을 여의고 힘드셨던 어머님께서도,
새 며느리와 관기교회를 함께 다니시며 위로를 받으시면서, 안정을 되찾아 가시던
그런 시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