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旅行)
오랜만에 여행을 다녀왔다. 동생부부가 중심이 되어 편성한 팀에 들어가 7박 9일의 시간을 즐겁게 지냈다. 항상 여행은 갖 가지 사연이 깃들기 마련이다. 많은 화제들이 하나로 모여 각자가 꿈꾸는 생각은 다를지라도 과정의 즐거움은 모두를 뭉치게 하는 독특한 매력이 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여행은 생활에 큰 활력소를 주고 삶을 윤택하게 만든다.
이번에는 「키르기스스탄」과 「카자흐스탄」을 다녀왔다. 아직은 그나마 덜 알려진 여행의 명소인데 한 마디로 자연 그대로의 풍광이 살아 숨 쉬는 천혜의 땅이다. 더구나 얼마나 순박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지 마치 자연과 한 쌍을 이루어 거스르지 않고 순응하는 옛 사람들을 만난 느낌을 주었다. 더구나 살아가는 형편도 마치 우리 사회의 오래 전 모습을 그대로 보는 듯하였다.
여행은 다양한 사연에 따라 이루어지는데 이번에는 작년에 선행(先行)하여 다녀 온 지인의 소개 글과 영상을 보고 가게 되었다. 얼마나 아름답고 웅장하면서도 눈과 물과 꽃이 어울러졌는지 반드시 현장을 보고 싶다는 욕망을 충동하였다. 그런 마음과 마음들이 모여 20명이 한 팀으로 구성된 것이다. 자칫 내부 이견으로 다툼으로 인한 혼란이 없으니 얼마나 편안한 시간을 보냈는지 모른다. 모두가 평소에 친분이 두터운 관계인지라 서로를 배려하고 대우하는 모습이 보기에도 좋았다. 물론 아무리 친소관계가 원만하다 한들 간혹 조그만 이견으로 불필요한 시간을 낭비하기도 하였다. 어차피 모두의 식욕이 다르고 음주 습관이 다르며, 관점을 두는 시야가 상이한 차이는 극복이 가능한 사소한 일이었다.
원래 유목민의 생활은 그야말로 유랑의 삶이다. 오랜 역사에 비해 문화의 깊이는 천박(淺薄)한 편이다. 그렇다고 그들에게도 전통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인류 문명의 모퉁이에서 변방족(邊方族)으로 살다보니 문화의 종주국은 되지 못한 지리와 환경을 이야기하는 것일 뿐이다. 유랑을 하다보면 어찌 제대로 쓸 만한 물건인들 보존할 수 있겠으며 그 기술 또한 제대로 전승할 수 있었겠는가.
여행의 또 다른 진미는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벌어지는 각양의 실수다. 이번에도 어처구니없는 에피소드를 남기고 말았다. 『송쿨호수』에서 유목민의 체험을 하느라 그들의 전통 가옥인 「유르타」에서 1박을 하였다. 다소 추위가 심한 가운데 모두 서둘러 하산 길을 재촉하였다. 10여 분 남짓을 가다가 여권이 들어 있는 가방을 확인하니 보이지 않았다. 어제 늦은 밤에 침대머리 맡에 걸어두고 깜박한 것이다. 일행은 지천에 널린 야생화와 어우러져 풍광 사진을 찍도록 하고 서둘러 되돌아갔다. 짧은 시간이지만 복잡한 생각들이 머리에 가득하였다. 다행히 더 멀리 떨어져 발견했다면 참으로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는 상황이었다. 통신도 전혀 통하지 않고 오직 인편으로만 소통이 가능한 곳이라 늦게 인식을 했더라면 전체 여행을 망치기 안성맞춤인 상황이었다. 아무리 저명한 사람일지라도 한 순간의 실수가 고문관의 딱지를 씌우기는 쉬운 일이다.
돌이켜보니 여행 중에 여러 가지의 사연이 떠오른다. 먼저 「로마」의 『콜로세움』을 구경하다가 사진을 찍어 달라고 부탁한 사람이 「007 가방」을 훔쳐간 일이다. 처음부터 우리 일행을 노리고 입구에서부터 따라다니던 일당을 관광객으로 착각하고 있는 사이에 허점을 노린 것이다. 얼이 빠져 나오는데 다시 2차의 습격을 받았다. 어린 소년 두 명이 내게 다가와 신문을 들려대면서 동시에 외투 주머니에 들어오는 손을 뿌리치며 발길질을 하니 도주하였다.
이 외에도 「파리」에서 탔던 택시에 카메라를 두고 내려 잃어버린 일, 「독일」의 남녀 혼탕에 처음으로 들어갔던 일, 「그리스」에서 유람선에서 들은 사회자의 한국어와 노래, 「모스크바」에서 「페테스부르그」까지 가는 기차에서 여 승무원에게 200루불을 주니 침대칸으로 자리를 바꿔주던 일, 「하노이」의 유람선에서 바가지요금을 요구하던 가이드를 2층 선상으로 불러 혼내주던 일, 「프랑스」의 고성(古城)에 투숙하여 옛 성주처럼 지내던 일 등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무엇보다 지금도 아찔했던 일은 「스폐인」에서 「모르코」의 『탕헤르』로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갈 때의 경험이다. 직선 단거리로는 약 14km의 바다를 건너는 시간은 35분이면 가능한 거리다. 그날따라 쾌속선을 타고 가고 있는데 갑자기 비바람이 강하게 몰아치며 배가 멈추는 것이 아닌가. 폭풍우는 잠자는 바다를 깨워 거세게 높은 파도를 일으키니 선내의 물건들이 뒹굴고 사람들의 비명과 기도하는 소리가 동시에 터져 나왔다.
순간에 나도 모르게 이대로 이 세상을 떠나게 된다는 절망의 그림자를 보았다. 조용히 아내의 손을 잡고 두고 온 아이들과 부모님을 생각하며 희망을 구하는 기도를 올렸다. 마치 절망에 처한 「요나」가 물고기의 뱃속에서 하느님 야훼께 올리는 기도와도 같았다. 다행히 비바람이 멈추고 시동을 끈 채 표류하던 선박이 목적지에 다다르니 무려 3시간 이상이 소요되었다. 그야말로 죽음 일보 전에 살아나 감사의 기도를 절로 올리던 경험은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나온 감사와 새 희망의 부활이었던 셈이다.
이 곳의 자연 풍광은 아무리 칭찬을 해도 지나치지 않다. 어느 곳에 있어도 사방을 둘러보면 설산(雪山)이 아름답게 비춘다. 특히 남과 북의 천산산맥(天山山脈)으로 들러 쌓인 『이식쿨 호수』의 맑고 투명한 모습은 마치 바다와도 같다. 규모는 작지만 역시 천산산맥의 품에 안겨있는 『송쿨호수』도 이에 못지않은 명승지이다. 『알틴아랴샨』에 이르는 길에 다량의 설산에서 흘러내리는 냇가 주변의 풍광 역시 그 어느 곳과 비해도 손색이 없다. 잠시나마 『이식쿨 호수』에 발을 담그고 여행의 피로를 달래던 순간도 지나고 보니 잊을 수 없는 추억의 단상으로 다가온다.
이에 더하여 4천 년 전부터 조성된 『암각화』를 보면서 당시 동물 사냥을 하면서 생활하던 선사시대 사람들의 생활상을 살펴보고, 실크로드 상에 조성된 도시에 있었던 『부라나 탑』을 구경한 일은 좋은 공부가 되었다. 물론 군데군데 만들어 놓은 박물관 역시 이 지역과 문명사를 간파하는 실마리를 제공해 주었다.
이 지역은 과거 「구소련」의 지배를 받던 지역이다. 가는 곳마다 과거 전쟁에 동원되어 목숨을 바친 전몰장병에 대한 추모탑이 많이 있다. 강대국에 복속된 국가의 젊은이들이 속절없이 죽어 간 기억들이다. 더구나 이 지역에는 『스탈린』 치하에서 연해주로부터 강제로 이주한 고려인 후손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 일제의 압박을 피해 고향을 떠나 국경지역에 살았던 동포들이 영문도 모른 채 또 다시 먼 길을 떠나 아예 조국과는 영영 이별한 채 살아가고 있는 현실은 가슴이 아픈 일이다. 다시는 이런 역사의 저주를 받는 일이 없도록 정신을 바짝 차릴 위정자들의 책임이 크다는 진실을 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천혜의 자연경관을 살펴보고 중앙아시아 지역의 역사도 공부하는 보람 있는 여행이었다. 이런 기회를 갖도록 수고한 『문혜성』, 『이수월』 부부의 노력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동시에 불만 없이 묵묵히 잘 따라 준 모든 일행에게 감사드린다. (2023.6.22.)
※ 6월 13일에서 21일 까지의 간단한 여행기록입니다. 함께한 일행에게 보낸 것으로 독자님들에게 참고용으로 보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