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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사진 서상진 세계잡지연구소장
종합잡지 '現代' 창간호. 표지화 변종화 화백(서상진 소장본) ⓒ천지일보 2023.03.31.
<현대(現代)>는 1957년 11월에 창간한 종합 잡지다. 필자가 소장한 서책은 1호부터 6호까지인데 창간호의 서지사항은 다음과 같다.
창간호 서지사항 ⓒ천지일보 2023.03.31.
2호에서 6호까지의 면수는 326면에서 340면 사이로 당시로는 두꺼운 잡지다. 우선 표지화가 눈에 띈다. 그도 그럴 것이 변종하, 장욱진, 김훈, 박고석, 백영수, 최영림, 유경채, 김영주, 이충근, 이준, 윤중식, 김기창 등 당대 최고의 화가들이 표지화와 컷, 삽화를 그렸기 때문이다. 지금 봐도 각 표지가 주는 느낌이 다르다. 화가의 붓질이 생생하게 와 닿아 집어 들고 펼쳐보게 하는 힘이 있다.
지금이야 인쇄술과 미디어의 발달로 모든 미술이 생활 속으로 들어왔지만 당시는 그들만의 리그가 아니었던가. 그런 만큼 그들의 리그는 생활의 어려움이라는 당면한 문제가 있었다. 표지화는 그 문제를 해결해 주는 방편이었다. 해서 소장한 이런저런 잡지들의 세월이 스며든 얼굴들을 보고 있노라면 “언제 이런 얼굴(표지)들을 모아서 전시를 해볼까?” 하는 욕구가 생기기도 한다.
화가의 그림을 살 만한 경제적인 여유가 없던 일반인들은 무심히 한번 보고 폐기했을지도 모른다. 그들이 무심히 보았을 그 표지화가 훗날 유명한 화가의 작품이었음을 알게 된, 혹 나 같은 이는 흡사 고대유적을 발견한 듯 손 떨리는 기쁨을 맛보지 않았겠는가.
이 작품들은 화가들이 잡지 표지, 컷, 신문 삽화로 생계를 이어가던 때의 유산으로 남겨진 것들이다. 현재 미술시장에서 제일 고가로 거래되는 수화 김환기 화백도 잡지에 최소 500점 이상 그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왼쪽) '현대' 창간호 목차 a면(서상진 소장본), (오른쪽) '현대' 창간호 목차 b면 목차화 장욱진 화백(서상진 소장본) ⓒ천지일보 2023.03.31.
'현대' 창간호 판권란(서상진 소장본) ⓒ천지일보 2023.03.31.
창간호 목차를 살펴보면 소설이 많고 시, 수필은 당시의 잡지로는 적게 실린 편이다. 연재소설에 김동리, 박영준, 정한숙의 작품이, 단편소설에는 김이석의 작품이 있다. 시에는 미당 서정주, 수필로는 이양하와 피천득의 글을 실었고 육당 최남선의 遺稿(유고)를 실어 의미를 더했다. 건축가 김중업의 <설계자의 항변>도 눈에 띈다.
'현대' 2호 표지화 김훈 화백(서상진 소장본) ⓒ천지일보 2023.03.31.
2호에 양주동이 ‘六堂回憶육당회억(육당선생과 나)’를 기고하여 최남선의 죽음을 애도하였다. 그리고 대한민국 초대 대법원장인 가인 김병로의 <민법안의 근본정신>과 가람 이병기의 <시조론>을 실었고, 특집으로 <後進性의 諸問題(후진성의 제문제)’, <과학자가 말하는 내일의 세계> 등 외국석학의 글을 실어 의미를 더했다.
'현대' 3호 표지화 유경채 화백(서상진 소장본) ⓒ천지일보 2023.03.31.
3호인 1월호는 시인 박두진의 <다시 부르는 1월의 노래>로 시작한다. 그밖에 단편소설로 선우휘의 <사나이>’, 수필로 조지훈, 김영주, 장만영, 천경자, 복혜숙(여배우)의 글이 실렸다.
'현대' 4호 표지화 김영주 화백(서상진 소장본) ⓒ천지일보 2023.03.31.
4호에서는 단편소설 김광주의 <유언도 없이 여인은 가다>와 소설가 헤밍웨이의 당시 최근작인 <암흑 2화>가 독자들을 유혹한다. 또 <학원의 자유·학문의 자유를 말한다>라는 유진호, 김선기, 홍종인 3인의 좌담회를 실어 당시 ‘서울문리대학생 필화사건’의 궁금증을 해소하는 발 빠른 기획을 한 것도 돋보인다. 그리고 변경삼이 쓴 <박태선 장로는 과연 병을 고치는가(무료요법으로 보는 신비경험의 정체)>에 지면을 할애해 1950대 최고의 신흥종교를 해부하였다. 이 전도관은 훗날에 신앙촌이라는 신흥종교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현대' 5호 표지화 이준 화백(서상진 소장본) ⓒ천지일보 2023.03.31.
5호에는 특집으로 ‘새로운 성도덕을 모색한다’라는 주제 하에 이어령, 김우종, 홍승면, 조연현, 정충량 등의 글을 수록하였다. 거기에 독립선언 33인 중 유일한 생존자인 이갑성 선생의 <반백머리에 끓어오르는 추억>으로 의미를 더했다. 그리고 ‘국산영화는 왜 관객에 실망을 주는가’를 주제로 조미령, 김동원, 오영진, 유현목, 유한철, 정비석 등이 진행한 토론을 싣는 등 영화산업의 발전 모색에 지면을 할애하여 우리에게 화두를 던졌다. 또 단편소설인 김광식의 <가난한 연기>와 추제의 <귀촌>을 실었다.
'현대' 6호 표지화 윤중식 화백 (서상진 소장본) ⓒ천지일보 2023.03.31.
6호는 ‘한국의 (매스.코뮤니케이슌)’을 특집으로 임태권, 변시민, 성인기, 서재관, 박권상, 오영진, 문윤곤, 송건호, 변우경의 글을 1편씩 실어 언론의 길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던졌다. 단편소설로는 곽학송의 <완충지대>와 오상원의 <사이비>가 창간 때부터 연재된 소설들과 함께 실려 있다. 수필로는 시인 김상옥의 <봄과 여인>, 목일신(동요 자전거의 작사가)의 <제자가 진학 했을 때 그 기쁨을 위하여>와 나병 시인 한하운의 <天刑詩人의 悲願(천형시인의 비원)>이 실려 있다.
1950대는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정국이 어지러울 때다. 저마다 피난지 부산에서 제 목숨 하나 부지하기에도 급급했을 법한데도 외려 출판물들은 더 많이 쏟아졌다. 언뜻 생각하면 의아스러운 일이나 이것 또한 생명의 자연스러운 발로가 아닌가 싶다. 나무가 생존에 위기를 느끼면 더 많은 열매를 맺어 후손을 남기는 것처럼 전쟁의 위기는 더 많은 출판욕구를 불러온 듯하다.
물론 잡지도 많이 나왔다. 하지만 60여 년이 흐른 지금 가장 기본이 되는 ‘1950년대의 잡지목록’ 조차 없다. 잡지 소장가로서 안타깝기 그지없다. 학문을 연구하려 해도 이런 기본적인 자료가 없으니 연구자들이 먼저 자료를 수소문 하는 탐험가의 발품부터 팔아야 한다. 그러니 품질 좋은 연구가 나올 리 만무하다. 소장자로서 ‘소장 목차집’이라도 학계에 발표하고 싶지만 개인에게는 연구비가 지급되지 않는 어려움이 있다. 그렇다면 정부기관인 국립도서관 등에서 장서로 소장하길 바라본다.
삼대 기본 학문인 사전학, 고증학, 서지학이 발달한 미래의 대한민국을 기대하며 아쉬운 대로 서가에서 뽑아놓은 잡지표지를 바라보며 우린 차 한 잔에 감상을 더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