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매 벗이 여럿이다. 이렇게 말하면 바람기 있는 할배같이 들리겠지만, 전혀 무관하다. 단신에다 추남을 겨우 면한 용모에 숫기와 넉살도 없는 나는 젊은 시절 짝사랑은 해도 고백 한 번 못 해봤다. 고백했다가 거절당하면 자존심이 무너질 것 같아 두려웠다. 연애든 중매든 결혼이 성사되는 건 운명적 만남이라 믿었기에 어머니가 혼처를 정해줘 그대로 따랐다. 어머니가 사성을 보낸 후 양복 맞추는 날, 아내 얼굴을 처음 보았다. 미인은 아니지만 수수한 용모가 마음에 들었고 지금까지 오십오 년이 넘도록 한집에 살아도 지겹지 않다.
늙고 보니, 삶이 홀가분해서 좋다. 아내에게 큰방을 넘겨주었고 TV리모컨도 빼앗겼다. 가구주라는 권위도 내려놓았다. 가사(家事)가 절차도 없이 상당한 부분 시부지기 나에게 넘어왔다. 젊을 때 걸핏하면 긁어대던 바가지가 사라지고 핀잔이나 간섭도 없어졌다. 한 가구에 할배와 할매 단둘이 살지만, 불만이나 어려움도 없다. 우리는 여러 말 하지 않아도 제일 잘 통하는 벗이다.
밖에서도 할배, 할매 벗들이 스스럼없이 어울린다. 할매 벗들의 수가 훨씬 많아 할매들이 주도권을 잡는다. 남녀유별이 엄격한 옛 시절에 할배들은 고담준론으로 일 배 일 배, 부일 배 하고 소일했다. 할매들은 며느리 흉보고 아들딸 자랑이나 조잘거리면서 시간을 축내는 경우가 많았다. 이젠 이런 풍조가 사라졌다. 좀 더 유익한 시간을 보내려고들 한다.
직장 선배들이 퇴직 후 다섯 해 전후로 하늘나라로 가는 것을 봤다. 퇴직할 즈음, 덜컥 불안감이 생겼다. 연금 받아 자식들에게 손 벌릴 일 없이 평균수명보다 더 살고 싶었다. 평생 배움을 이어나가는 게 장수비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퇴직이 임박할 때 미리 평생 교육원에 등록했다. 평생 학생들을 가르친 자연과학 분야에는 기본지식 정도는 있다고 자부하나 인문학에 목마름을 느끼고 있었다. 몇 년간 논어를 비롯한 동양고전을 수강했다.
평생 교육원 수강생 중에는 할매들이 월등히 많았다. 수강생 대표를 맡아 인사말을 할 때, 나이 일흔에 이르면 남녀 성별을 차치하고 열심히 공부할 것을 제안했다. 취미활동과 국내외 여행을 수강생들과 혼성으로 하다 보니 모두 즐거워했다. 살아온 내력과 정서가 비슷해 원활하고 소소한 소통이 잘되었다. 더러는 부부의 연을 맺고 노후를 행복하게 보내는 예도 보았다.
할매 동창을 우연히 합창단에서 만났다. 초등학교 4학년 때 한 책상에 가운데 금을 긋고 손이 넘어오면 톡톡 때렸던 여학생이다. 흘러간 육십여 년 세월 탓에 처음에는 알아보지 못했다.
“이 머스마야. 늙어서 잘 모르겠다.”
“아이고, 이 가스냐야. 너도 많이 늙었다.”
첫 인사부터 이렇게 서로 되받아도 아무렇지 않은 게 할배, 할매의 대화이다. 이성의 벽이 사라진 만남이라 편안 하다.
대학 시절에는 여학생이 드물었다. 내가 졸업한 학교에 남학생은 수백 명이었지만 여학생은 다섯 명뿐이었다. 운 좋게 우리 학과에 두 명의 여학생이 있었다. 희소가치가 아니라 실제로 미인이었다. 학과생 스무 명 중 남학생 열여덟 명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졸업 후 수십 년이 지나 할매 대학 동기생을 모임에서 우연히 만났다. 고희였지만 미모가 그대로였다. 어제 일인 듯 옛날이야기를 했다. 나를 포함한 몇 명을 제외하고는 남학생 모두 슬쩍슬쩍 윙크도 하고 쪽지를 살며시 주더라고 회상했다.
“그때 왜 너는 한 번도 안 그랬어?”
“나한테는 과분한 미인이라 자신이 없었다.”
“이이고, 그때 사랑한다고 넌지시 고백했다면 너를 택했을 건데.”
깍쟁이 같았던 여학생이 이렇게 농담할 정도로 능청스러운 할매로 변해버렸다. 우리 모임의 홍일점으로 매주 월요일에 산과 들을 같이 쏘다녔다. 오래 살아남은 몇몇이 매월 만나 젊은 시절 피곤했던 삶을 되새김질하며 나누는 담소가 즐거웠다.
수필아카데미에서는 젊은 글 벗들과 수강을 하니 나도 젊어진 듯하다. 나보다 일찍 등단한 선배들로 배울 게 있는 글 벗들이다. 다들 반듯한 용모에 맨드리가 곱고 인성도 좋아 수강이 즐겁다. 내 나이가 제일 많아 언행이 조심스럽지만 서로 편안하게 대한다. 지금은 예비 할매들이지만 훗날 할배 벗들과 어울려 레저활동을 하면 황혼의 즐거움을 알게 되리라.
화요일 오후에는 실버합창단에 간다. 우리 합창단은 할배 열여덟 명, 할매 아흔 명이 구성원이다. 비슷한 노령에 상대적으로 할매가 많으니 분위기가 밝고 편안하다. 할배 수가 적어 활동과 역할이 열세지만 희소가치에 흐뭇함도 있다. 평생 교육원, 동창회, 등반동아리 회장도 할매인데 여기 합창단장도 할매, 총무도 할매다.
창단 연주회를 앞두고 보충 연습을 강행했다. 평균연령 일흔여덟에도 아랑곳없이 세 시간 연속으로 연습했다. 이주원 작사 작곡의 노래 가사에 율동을 맞추었다.
“둘이 서로 바라보며 웃네, 먼 훗날을 위해 내미는 손..........”
손잡고 마주 보며 수시로 미소를 짓다 보니 할매들과 가까워진 기분이다. 내숭이 약간 보이지만 별로 싫지 않은 기색이다. 노래에 몰입하다 보면 하루가 쉬 저문다.
하루는 몇이서 김해 쌈지공원으로 산책하러 가는 길이였다. 경전철 안에서 회장보다 연하로 보이는 초로의 신사가 종이쪽지를 회장에게 건넸다. 넌지시 보니 핸드폰 번호를 적어 주면서 짬을 내어 커피 한잔하고 싶단다.
“와! 회장님 러브레터 받았네.”
내 말이 떨어지자마자 일행이 박수로 축하했다.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손자 손녀가 여섯 명인데 러브레터를 받았으니 웃음거리로 받아들인다고 하면서도 환한 미소가 만연했다. 피부가 곱고 얼굴에 주름살이 없는 지장보살 같은 할매 벗이 한마디 했다.
“여기 할배들 짜들 놔놓고 어디로 눈 돌릴끼고?”
할배들의 박수와 함성에 함박웃음이 터졌다. 중창단 일원으로 KBS 아침마당에 출연했을 때 얼굴을 익혀둔 것 같다고 했다.
노년기를 초로(初老). 중로(中老). 말로(末老)로 나눠본다. 초로는 아직 자식들 필혼(畢婚)을 못했고, 남녀가 어울리기에는 약간 염려스러움이 있다. 중로는 부모의 임무를 완수해 삶이 여유롭다. 남녀가 어울려 여행과 취미활동이 자유롭다. 한방에서 전등불을 켠 채 머리를 맞대고 숙박을 해도 어색함이 없다. 어수선한 시대를 견디며 살아온 동질감에 동병상련으로 늙바탕을 함께하는 벗들이다. 말로에는 건강한 사람도 있지만 쇠락한 몸을 지팡이에 의지해 보행하고, 심하면 요양원 신세를 지는 경우가 많다. 떠나야 할 때가 근접한 세대다.
세월은 이길 수 없다. 다들 멀리 가는 길은 예외가 없다. 영원히 살 것 같이 아끼고 쟁여도 모두 버리고 떠나야 한다. 나는 중로에 오래 머물고 싶지만 다 부질없는 소망일 뿐이다.
퇴직 후 수십 년간 학생 신분으로 사는 게 무한정 즐겁다. 문학의 한 장르에 어쭙잖게 등단했고 취미활동으로 시작한 동래학춤 경연에서 금상을 수상했고 합창도 배운다. 아내를 포함한 할매 벗들과 건강하고 유쾌하게 지낸다. 이만하면 나도 장수비결을 실천하고 있는 셈이라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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