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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註) 아래 글은 2024년 12월 12일. 주용민(리노) 교구청 사무처장 신부님 초청 대림특강 전문입니다. 신부님의 대림 특강을 <다글로> 앱으로 받아쓰기 한 녹취록입니다. 신부님 말씀 그대로 못받아 쓴 기계적 오류가 있습니다. 당일 특강에 참석하신 교우분께서는 당시 기억을 더듬어 전후 맥락을 살피면서 강의 내용을 헤아려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화자'는 주용민(리노) 신부님입니다.
주용민(리노) 신부님 대림 특강 전문(全文)
화자 1
00:01
윤회라고 합니다. 윤회라고 하는데 왜 사람으로 태어났을 때 깨달음을 떠야 된다고 이야기를 할 줄 알아요. 개로 태어났는데 뭘 깨달으려고 어떻습니까? 개가 깨달을 수 있어요. 소가 깨달을 수 있어요. 이제 선업으로 내가 기회가 왔어요. 좋은 기회 사람으로 깨달을 수 있는 사람으로 태어났단 말입니다. 이때 비로소 정말 절호의 기회가 왔기 때문에 이때 이 윤회의 골을 끊어버리고 해탈하고 깨달음을 얻는다 그 윤회의 골을 벗어나는 것이 그게 소금물 내지는 해탈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아시겠죠. 넘어가는 그래서 우리는 그런 단어를 쓰면 전생이라는 단어도 쓰면 안 되겠다.
화자 1
01:02
우리가 쓰는 우리가 쓰고 있는 용어들 중에서도 잘못된 용어들이 많아요. 우리나라에 건물의 등급이 있습니다. 들어보셨어요. 건물에도 예 제일 위에 있는 등급의 건물은 전이라고 합니다. 전 임금과 신이 거하시는 곳은 전입니다. 조선시대 임금이 일하시는 곳은 어디입니까? 근정전 그지요 예 그 다음에 내면부 사람들이 거하는 곳은 교태전 동궁전 그렇지 않습니까? 불교에 갔을 때 절에 갔을 때 중간에 제일 큰 건물 중간에 있던 제일 큰 건물이 뭡디까 대웅전 맞아요.
화자 1
01:59
그 옆에 보면 산신각 칠성각이 있어요. 그 다진 궁전이지요 밑에 계시는 분이라고 해서 전하 독촉하여 주시옵소서 전하 전 안에 계신 시각으로 전합니다. 각에 해당되는 것이 청와대입니다. 그래서 대통령 각하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맞습니다. 예 그런 다음에 세 번째 건물이 당입니다. 비로소 당 서당 읍당 예배당 저당 아 누가 이렇게 낮춰놨지 왜놈들이 모르겠어요. 정확하게는 왜 이렇게 낮춰놨는지 당은 세 번째입니다. 우리는 성당 우리는 다시 그 등급을 올려야 됩니다.
화자 1
02:54
성절 신부님 계속 남서동 성당 쓰고 있는데, 지금 다 안 맞고 이런 얘기 양곡동 성당 성 그러는 개념을 이렇게 잡으면 됩니다. 이 전체를 다 성당이라고 하고요. 이 성당 안에 성전이 있고요. 수조원이 있고요. 사제관이 있고요. 교육관이 있고요. 사무심이 있습니다. 됐습니까? 지금 우리가 공적인 예배 미사를 하던 이곳은 뭐라고요. 성자전 맞아요. 예 그 다음 네 번째 건물 루입니다. 루우 영남루 광한루 촉석루 노는 노는 자리라며 큰 노는 집입니다. 건물 그 다음에 농월정 내월정 팔각정 하는데 맨 마지막이 정입니다.
화자 1
03:46
전 그래서 전 각 당 루 정인 이게 우리나라에 옛날부터 내려오던 건물의 등급입니다. 잘 모르고 계셨지요 우리가 쓰고 있었지만 우리 안에 그 숨어있는 의미를 알고 비로소 이제는 바로잡자라는 겁니다. 우리의 우리의 논리로 예 여기는 성전입니다. 하느님께서 어디 계시는데요. 감실 안에 모셔져 계시잖아요. 그지요 네 자 이제 바로 잡고요. 오늘 제가 대림 특강이라고 해서 왔으니 우리 대림 시기가 우리 대림 시기의 제일 큰 대립식이면 뭐하는 뭐하는 식입니까? 요즘 일단 이게 맞습니다. 제가 오늘 뭔가 나누고 싶은 주제네요.
화자 1
04:49
대림지기는 예수님께서 오시는 것을 기다리는 시기이기 때문에 그렇죠. 사실 기다림이라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왜냐하면, 내가 무엇을 기다리는가가 지금의 내 삶을 규정하기 때문에 그렇습니까? 나는 내 삶을 지금 내 삶의 모습을 그렇게 만들어 놓은다라는 규정한다라는 말 그렇게 예를 들어볼까요? 한 달 후에 적금을 탄다라고 생각을 해봅시다 1년 내지 그 이상 매달 일정 금액을 불입을 했습니다. 이제 더이서 드디어 그 적금을 타는 날이 왔습니다. 적금 타는 그날만 즐거울까요? 아니면 지금부터 즐거울 판이 지금 기분이 너무 더 즐겁기에 조금씩을 파는데 어떻게
화자 2
05:40
드디어 목돈이 생긴다고 우리말로 들었습니까?
화자 1
05:43
하겠어요. 그러나 적금을 타는 날 가까이 올수록 그 기쁨이 계속해서 고조되어 갑니다. 그런데 그 반대로 한 달 후에 대출받았던 돈을 갚아야 하는 날이 다가옵니다. 아닙니다. 그 빚을 갚는 날만큼
화자 2
06:03
지금부터 쓰죠
화자 1
06:04
걱정이 될까요? 당연 상환 날짜가 다가올수록 걱정이 듭니다. 완벽히 상환할 능력이 된다면 걱정이 없겠지만, 어떤 사람이 무엇을 기다리고 사는가에 따라서 지금 그 사람의 삶을 규정하는 것이 맞아요. 예 어떤 예 아들이 군대에 가는 날을 기다리는 어머니와 아들이 제대할 날을 기다리는 어머니의 마음은 완전히 다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나의 인생에서 어떤 삶이 주어지면 행복할까 어떻게 살면 행복할 수 있을까? 하면서 행복을 기다리고 꿈꾸면서 살아갑니다. 행복을 기다립니다. 그렇지만 행복은 기다렸지만 행복이 잘
화자 2
06:57
노화만 옵니다. 기다리지 않았던 노화만 오고 병고가 옵니다. 우짜지예 그 병고 끝에 뭐가 옵니까 이제 죽음이 옵니다.
화자 1
07:10
죽음이 옵니다. 본인의 마지막 날에 모든 것이 소멸하려고 마는 것 끝나버리고 마는 것이 이 죽음입니다. 죽음을 기다리며 사는 사람은 이미 지금부터 죽은 것입니다. 죽음을 기다린다면 예 그래서 사람들은 죽음을 기다리지는 않습니다. 애써 외면하려고 하고 회피하려고 하고 애써서 아직 나와는 상관이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모른 척하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조금만 아파도 생명에는 지장이 있는지 없는지 걱정을 하고 시시각각으로 들려오는 주변의 부모에 안절부절 못하고 불안해하는 것이 우리의 진짜 모습입니다. 맞습니까? 그러나 우리의 우리 신앙인들은 무엇을 자리입니다.
화자 1
08:10
우리의 혼향 원래 우리가 있었던 곳을 가기 위해서 기다린 예수님의 품에 돌아가기를 기다립니다. 우리는 사람이 죽었을 때 그분이 돌아가셨다 죽었다라는 말을 예의를 갖추어서 높이 부르는 말이라고 생각하지만 굉장히 그리스도교적인 표현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온 곳이 있으니 다시 돌아간다는 표현이 쓰여진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온 꽃 곤약은 하느님 나라예요. 모든 것이 끝나버리는 죽음을 기다린다면 그 기다림은 너무나 허무하고 허탈하고 싫겠지만, 신앙인들이 기다리는 돌아갈 날을 기다린다는 것은 희망적인 것입니다. 끝나버리는 죽음을 기다리라 거무합니다.
화자 1
09:04
하지만 우리가 돌아가고 하늘님 나라에서 하느님을 만난다는 그 기대감으로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을 그것은 설레이는 것입니다. 어떻게 기다리는가에 따라서 다르다고 했지요 여러분 듣기 죽음을 타는 기다림이 이곳 있습니까? 생활을 해야 되는 그런 기다림인 곳이죠. 어떻게 내가 마음먹기가 다르지요 우리 그렇게 기다리는 삶이 지금의 우리의 삶의 모습을 규정한다라는 말입니다. 이해되십니까 예 우리는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시기가 이 대림 시기는 2가지를 기다리게 되는데 하나는 예수님께서 첫 번째 오셨음을 기다리는 것 즉 예수님께서 2천 년 전에 인간을 위해서 강생하는 하신 것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것입니다.
화자 1
10:04
그리고 그것을 재현하면서 기다림 초를 1개 천년 초가 2개 2천 년 초가 3개 3천 년 그래서 4천 년을 기다려왔다라는 것을 이렇게 상징을 하지요 상징하지 상징이라는 것은 색깔이나 숫자나 모양으로 합니다. 빨간색의 치마 여자 파란색의 바지 남자 상징은 그렇게 해놨죠 우리도 신부의 제2 색깔을 보면서 색깔로 상징을 합니다. 보라색은 희생과 절제와 고속을 의미하며 흰색은 기쁨과 환희와 영광을 이야기합니다. 녹색은 평화를 이야기합니다. 빨간색은 불과 피를 상징합니다.
화자 1
10:59
그래서 순교자의 주길과 성령에 관계되는 죽일 때는 빨간색을 맺습니다. 초의 개수도 초의 개수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의 미사였던 것 평일미상 축일 대축일 그렇죠. 이렇게 구분 짓습니다. 개수가 그래서 빨간 우리가 불자동차를 흰색으로 하면 이상하잖아요. 야는 불 끄러 가야 빨간색으로 표현하지 않습니까? 그렇죠. 상징 참 중요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뭔가를 싸움을 할 때는 어느 군대가 토끼 같은 것을 방패에다가 데리고 나가는 데는 없어요. 그지요 전부 다 힘세고 센 동물들을 칩니다. 프로야구 하나 보십시오. 롯데 자이아츠 거인입니다.
화자 1
11:55
거인 삼성 라이온스 사자입니다. 기아 타이거스 코레임 부산 베어스 곰입니다. 그저 한화 이글스 복숭입니다. 그런데 우리 그리스도교의 상징 동물은 뭡니까? 비둘기예 오메 어린 양 어린 양 그냥 양이 아니고예 와예 왜요 예수님 어린 양은 구약시대 때 이미 쓰여졌잖아요. 하라오의 손에서 데리고 내려 나올 때 우리는 어떤 호실을 하면 죽으면 세력이 지나가겠습니까? 이러는데 어린 양의 피를 문서주에 발라놔요 그런데 그 어린 양은 죄가 있어서 죽습니까? 아니잖아요.
화자 1
12:56
그래서 하느님의 은이냐 우리가 하느님의 어디 보라 하느님의 어디냐 보라 하느님의 어디냐고 둘 누구를 상징합니까? 예를 들어 있소 예 왜냐하면, 당신이 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대신해서 죽었잖아요. 남의 죄를 대신해서 죽었다 우리 인간들의 죄를 대신해서 죽어 돌아가신 분이 예수님이시기 때문에 하느님의 어린 양 아누스데이라고 믿습니다. 그렇게 이해되십니까 우리는 우리의 상징은 성령의 상징은 믿을지 비둘기 모양으로 볼일기의 수컷 이 스톤은 어린 양이지 어린 양을 꼭 그냥 앞에 하고 싶지 않은 겁니까?
화자 1
13:46
그죠 바깥에서 그렇게 상징은 바깥의 이 세상에서는 크고 웅장하고 강하고 용맹한 것을 하지만 결국은 더 큰 것은 무엇입디까 힘없고 아무런 힘이 없는 것 같지만 정말 그것이 힘이 없이 무능해 보였던 것이 결국은 사람을 이것이 반전이죠. 그렇지 않습니까? 성당이 막 웅장하고 크고 막 세고 이런 겁니다. 그게 발성장한 성당은 아닙니다. 미어터지는 성당이 좋은 성당도 아닙니다. 그 자리에서 꿋꿋하게 잘 지키면서 살아가는 그 성당이 진짜 탄탄한 원동자라고 생각합니다. 후 불면 날아가는 성당들 많아요.
화자 1
14:43
껍데기만 그러면 그 성당은 왜 후 불면 날아갈까 왜 조그마한 바람에도 날아가는 나무는 왜 그렇습니까? 뿌리가 없어서 뿌리가 없어서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 안 쓰고 보이는 것에 더 신경을 쓰기 때문에 이파리를 크게 하고 더 넓게 하고 웅장하게 보이는 것입니다. 이렇게 클지언정 밑바닥에 안 보이는 어둡고 침침하고 깜깜한 곳은 내일 가면 뿌리 뻗기를 싫어하는 공동체는 결국은 넘어지고 마는 공동체가 되는 것입니다. 아시겠지예, 예 결코 외적인 것으로 본당을 판단하지 마십시오.
화자 1
15:29
노자의 건너격에 이런 말이 있으며 세한 연후에 지송백구조라 이게 무슨 말이냐면 세월이 흘러서 찬바람이 불고 나면 비로소 잣나무와 소나무가 푸르다라는 것을 알게 된답니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여름에는 활엽수가 훨씬 더 잎이 푸릅니다. 그렇지요 그래서 상록수들이 잣나무가 소나무가 소리 나는 것이 별로 안 드러납니다. 그런데 이제 가을이 돼서 찬바람이 싹 나고 나면 그 낙엽들이 이제 화재수들은 다 떨어져 사람이 사람에게 있어도 평소에는 그 사람의 질가는 드러나지 않습니다.
화자 3
16:23
우리 조상님이 억수로 열심히 하지 뭐 또 직책도 하고 그래서도 열심하고 막 한데
화자 1
16:31
오늘날 잘못돼 갖고 구도를 맞았어요. 구도를 맞았어요. 그렇게 열심히 했던 그 자매인데 순식간에 모든 걸 다 싸들어지고 성당을 안 나온대요 왜요 하느님이 그러실 줄 몰랐다 나는 이때까지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데 열심히 봉사했는데 하늘께서 이것이 준비하고 나는 하늘을 원망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많이 봐왔어 그렇게 열심히 했던 그것이 물거품이 되고는 사람에게 있어서도 그 인생의 된서리를 한번 받고 나면 그 사람의 진가가 그때 들어갑니다. 평소에는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보는 이것이 전부 다라고도 생각도 하시지 마십시오.
화자 1
17:29
기다리나 기다려야 되는가 어떻게 기다려야 되는가 깨어서 기다린다 깨어서 기다린다는 것은 내가 윤리적으로 죄와 선악 선과 악을 구분하면서 우리 인간들만이 하느님께서 주신 위대한 선물이자 위험한 선물을 갖고 있습니다. 아세요. 우리가 위대하고도 위험한 선물이 이겁니다. 이성 동물들은 본능대로만 살아갑니다. 그죠 예 본능대로만 살아갑니다. 인간에게 이성이 주어졌기 때문에 이성으로 선택합니다. 그래서 또 발전을 합니다.
화자 1
18:24
너무 발전하다 보니까 머리가 비상하다 보니까 또 교만한 거야. 하늘이 필요 없어 내 머리 믿어 하늘이 필요 없어 이러는 거예요. 인간만이 선과 악을 구분합니다. 선과 악을 아는 사람에게만 죄를 또한 물을 수가 있어 악귀가 칼을 가지고 놀다가 타인에게 상의협처를 입혔다고 봅시다 이는 모르고 지은 죄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을 때 죄를 지을 확률이 높습니다. 모르는 것에는 죄지을 확률이 적습니다. 창세기에서 인간이 선악화를 까먹어서 원죄가 우리에게 돌아왔다. 인간이 이성이 생김으로 인해서 비로소 인간은 자기 행동에 책임을 지게 되죠.
화자 1
19:21
천명성체 교리를 하고 일반 망과 성체를 구분하게 될 때 천연성체란 그 즉 천영성체는 그때 합니다. 세례를 받았지만 그 전에는 왜 성사를 보지 않고 성체를 못 멈췄는가 그것은 이성이 충분히 발달하지 못해서 죄를 구분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 우리 인간들은 약 7만 년 전에 이미 어떤 기후 위기였는지 엄청난 생명의 위협을 느낀 사건과 그 위기 상황이 왔기 때문에 사람들이 굉장히 머리막대 발달해 나옵니다.
화자 1
20:04
그러면서 땅에 땅의 역사를 연구하는 지질학자들과 함께 연구하면서 그 고비를 넘긴 인류가 고등적인 사고를 하기 시작했다고 추측을 돌 바위 위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6만전 전이라고 추측을 하는데 이 고기를 지난 뒤에 그 다음부터 이제는 그냥 따 먹고 않고 이러한 그를 떠나서 농사를 짓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이전까지는 주워먹고 나무를 잡아먹었습니다. 농사를 짓지 않았지요 창세기에 보면 인류를 창조하시고 하느님은 인류에게 낱알을 맺는 풀과 열매를 맺는 나무를 너희에게 준다. 라고 나와 있습니다. 그것이 너희의 양식이 될 것이다.
화자 1
20:54
라고 말씀하셨는데 과인과 곡식이 원주명을 짓고 난 다음 부끄러움을 알게 되고 무언가를 가리게 되고 강인과 아벨테에 이제 너희는 피땀을 흘리지 않으면 땅에서 소출을 내지 못할 것이다. 이건 농사를 지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다음부터는 이제 농사를 짓고 계절이 바뀌면서 그 지은 것들을 저장을 해놓고, 저장해 놓은 용기가 필요했고 그래서 그 비싼 무늬 토끼가 있다. 강아지가 있다. 뭐 이런 겁니다.
화자 1
21:29
그런데 누가 보면 사람들은 두 마리밖에 수확을 못해도 저는 열 마리를 수확인데 아이고 우리 이래 먹어 먹고 살겠냐 보소 밤에 오지 하면 저 사람들 조지든지 하면 가서 막 떼 들어오소 그래서 바보야 우리 저기 옆 옆에 동네 들로 갔잖아. 그러면서 그러면 저 틀리니까 한번 틀리고 나서 틀리려고 하겠어요. 이제 장정들 전부 다 지키이소 고쳐 쓰이소 다음 확을 파이소 하면서 성씨끼리 저거 부족 국가가 그때부터 생깁니다. 자 여기서 제일 힘센 사람 뭡니까? 내장 내가 지금 막아냈구만 그러면 당신이 대장하이소 이러면서 서서히 서서히 인간들이 나라를 해온 것을 맞추어 가기 시작하죠.
화자 1
22:26
하나 크면 클수록 이제 이제는 동네끼리 싸움하다가 집안끼리 싸움을 하다가 이제는 나라끼리 싸움을 하는 거예요. 그죠 그래서 인간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죠 그중에서도 우리나라도 숱하게 당했지요 저 섬나라 왜놈 쪽바비들이 와서 당해지다가 원나라 모든 계속해서 우리를 괴롭히지 않았습니까? 딱 지정학적으로 우리는 당하기 쉬운 나라다 그래서 많이 당했어요. 그렇죠. 우리나라보다 훨씬 더 심한 나라가 있습니다. 거기에 예수님께서 떠나신 이 스라엘이 지금도 파마스하고 전쟁하지 않습니까? 예 그래서 계속해서 왔다 갔다 왔다 갔다 싸움을 합니다.
화자 1
23:19
이 딱 중간에 있어서 왼쪽으로 가면 아프리카하고 유호는 그리스도 그래서 여기서 메소포타니아라는 나라가 요 북아프리카를 치러 갈라면 길목이었습니다. 또 이 아이들이 또 여기를 치러 갈라면 또 길목인 거예요. 맨날 여기서 집이 바뀌고 찌빠빠가 내버려요 그러니까 예루살렘이라는 이름이 뭡니까? 얼마나 얼마나 평화를 반했으면 평화의 도시라는 뜻입니다. 예루살렘 우리 찰롱 샤롬 샤롬하고 노래하지요 평화 아니면 이 말과 아랍말하고 비슷합니다. 신의 평화가 당신과 함께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제가 이야기하지요 이게 이슬람 사람들의 인사말입니다.
화자 1
24:17
알라이팅 신의 평화가 당신과 함께하는 리입니다. 라는 것이 그래서 이 사람들은 그렇게 많이 당했어요. 당하고 난 다음 이로써 예수님 시대에도 계속해서 당했습니다. 예수님 시대에는 이스라엘은 어느 나라의 식민지였어요. 로마입니다. 그래서 참 이스라엘은 힘든 나라였습니다. 제가 오늘 유료가 많은 것을 이야기를 하려니까 자꾸 원고가 안 넘어갑니다. 이것만 말씀을 정확하게 주저리 주저리 많은 것을 해드리는 것보다는 정확하게 뭔가 하나가 집을 집어서 오늘 이것만 들고 가세요. 이거 하나만 말씀을 드릴까 합니다.
화자 1
25:21
신앙인들이 있는데, 저는 저 사람이 신앙 제가 여러분들의 머리를 들어 감본 적도 그죠 그런데 중요한 것은 중요한 사실 하나는 종교심과 신앙심을 좀 구분을 했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을 합니다. 종교심과 신앙심 종교심은 절대자가 있다라는 것은 압니다. 그런데 그 절대자에 대해서 있다라는 것은 알지만 그분이 명확하게 어떤 분이다.
화자 1
26:07
라는 것은 예를 들어서 요망친 과학이 발달하지 않은데 어부들의 배를 뒤집어 놓을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용왕님이 용해서 그랬다 용왕님은 큰 힘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용왕님께 돼지목을 잘라서 과일로 놓고 빕니다. 절대자예요. 힘이 있는 그 어떠한 절대자에게 비밀 산에도 신이 있다. 해서 산신제를 돌리며 어디 가면 노제를 지금 계속해서 어디 부엌에 가면 신도 있고 어디 장독강에 물 뜨면 비입니다.
화자 1
26:55
비나리가 비 근데 비기는 하는데 그 빈다라는 의미는 당신의 힘이 세니까 고요워하시지 말고 당신의 힘으로 우리를 좀 보호해 주십시오. 우리를 우하도록 좀 낫게 해주십시오. 라는 청을 드리는 거죠. 근데 그분이 어떠한 말을 말도 안 해주냐 그냥 있다라는 가정 하에 있다라고도 검증도 안 됐어요. 그렇지요 그냥 그럴 것이다. 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거기까지만 와서 딱 비고만 갑니다. 내 빈 것을 빌었던 것을 안 들어준다고 해서 원망도 안 합니다. 그냥 거기까지만 왔다가 갑니다. 하지만 신앙심은 어떤 것이 신앙 그분을 압니다. 어떻게 알겠어요.
화자 1
27:49
그분의 계시로 그분의 가르침으로 그분의 행적으로 그분의 말씀으로 우리는 그것을 기억을 한다. 역사 안에서의 하느님의 모습을 구약성서를 통해서 담아놓았지 않습니까? 이스라엘 사람들을 구원하신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우리는 절대 잊으면 안 된다. 절대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해주셨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하고 성불을 이마에 넣고 다니지 않습니까? 이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맞아요. 그래서 신앙이라는 것은 종교심은 거기까지만 왔다가 가는 것인데 신앙심은 자기를 내음을 던지는 것을 말합니다. 완전히 의탁합니다. 미쳤나 뭐 의탁하고 자 자매님 여기서 제가 여기 기적이면은 넘어집니까 앞으로 꼬그라집니까 아니면 걸어서 저까지 갈 수 있습니까? 응원해 봅니다.
화자 1
28:50
못 가고 꼬라지죠 당연히 밑에 그렇지 않습니까? 그런데 내 눈으로는 지금 안 보이는데 하느님께서 만약에 여기를 발로 밟아라 그러면 밟을 수 있어야 됩니까? 하느님 내 밑에서 지금 순교자들은 많은 사람들이 여기 있을 때 왜 네가 네 목숨을 내어놓은 것까지 네가 죽어야 되고 바보 같은 짓 하지 마라 사람 사는 게 더 중요한 것이다. 아니다. 사람은 잠시 산다 하지만 나는 영원을 택할 것이다. 우리의 하드님께서는 우리의 죽음을 절대로 헛되게 하지 않는다. 나는 그 영원한 것을 주는 그 우리 죽임을 안 보인다 그래서 나는 하나도 안 한단다 이런 말입니다. 다른 사람 누군가 다른 사람들이 볼 때는 그 순교자들의 행동들이 바보들의 행진으로 보일 수밖에요. 안 그래요.
화자 1
29:50
예 그렇게 믿고 내어 맡기고 던지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이 시간입니다. 그런데 내가 어느 정도 빌고 가는 사람이 종교심을 가졌는데 그 종교심을 가지고 신앙심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여러분들 분명하게 구분하시기를 나는 종교심을 가지고 있는가 신앙심을 갖고 분명하게 이제 빌고만 가고 에 하드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이 없으면 나는 절대로 그것을 내어 던지지 못합니다. 그러면 어떤 기도가 되는 줄 압니까 주민 제가 너무 춥습니다. 그래서 저쪽에 있는 난로가 내 앞으로 오게끔 주님께 간절히 간절히 기도합니다. 주님께 간절히 기도하는 게 나쁜 거예요.
화자 1
30:48
하지만 지는 안 움직이고 하느님을 이용합니다. 난로가 앞으로 오기를 기도합니다. 내가 따뜻한 저녁을 하느님께서 이렇게 이야기하셨어요. 얼마나 답답했으면 하도 그렇게 딱 먹어봐서 얘기하고 다리가 없고 니는 다리가 있다. 내가 걸어가면 내가 걸어가야 따뜻해지는 거예요. 나는 안 움직이고 뭔가가 움직이게 해달라 이거 마치도 하느님을 요슬램프의 지니메크로 비나이다. 비나이다. 무엇을 도와드릴 건지 주님이라고 하면서 마치로 자판기의 하느님처럼 자판기에 100원을 넣고 커피가 나옵니다. 내가 한 만큼 뭔가 나와야 된다.
화자 1
31:45
내가 길었으니 뭔가 하느님이 들어주셔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이것은 기도 아닙니다. 하느님을 상대고 할 거대입니다. 종과 주인이 거래를 할 수 있습니까? 없어요. 도대사 하느님을 상대로 거래를 한다. 말이오 그건 거래입니다. 기도 아닙니다. 하느님 내가 이만큼 했으니 들어주이소 합니다. 거래입니다. 저는 우리는 마땅히 해야 되는 일입니까? 아니면 거래를 해야 됩니다. 주님께서 주셨으니 우리는 되돌려 드리는 거예요. 아닙니까 예 주님께서 주셨으니 제가 아이들한테 이런 내가 니가 그 한 아이를 보자면 니가 억수로 부자라고 가정을 하지 억수로 부자입니다.
화자 1
32:43
그래서 니가 좋아하는 사람한테 그 사람 통장에다가 일주일에 168만 원씩을 꼬박꼬박 넣어줬어요. 일주일에 중급이 168이면 얼마나 비싼 높지요 적은 돈 아니지요 68 곱하기 4라면 아직 계산은 안 되겠죠. 상수를 못해서 꽤 높습니다. 600만 원 정도 되지만 맞아요. 적은 돈이니까. 많이 적지 않습니다. 나는 이 사람을 좋아해서 이 상대를 좋아해서 매주 168만 원씩을 줬는데 저 사람은 나한테 1만 원짜리라도 하나 선물하지 않았으니 고맙단 소리도 한 번도 안 해 내가 내가 돈이 많은 사람이라면 그 아무것도 모르는 체하고 탁 모르는 체하면 그 사람한테 돈 주고 싶다. 죽겠습니까? 안 주고 싶겠습니까?
화자 1
33:44
안 주고 싶어예 하느님은 우리한테 일주일에 168시간 주세요. 일주일에 168시간 주십니다. 그런데 한 시간도 못 드려요 1시간도 되돌려 듣지 못한다.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늘님은 출신이고 살아있다라는 것은 시간이 있다라는 시간은 내 것입니까? 아닙니까 텍스트 체크 한번 해볼까요? 시간은 내 겁니까? 아닙니까 그렇지요 내한테 시간 내줄래 니한테 줄 시간 없다. 시간이 지크라면 자기 시간이래요. 예 나한테 주어진 시간입니다. 주어진 시간이지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시간은 사실은 아닙니다. 돈이 있어서 막 돈이 있어서 그 시간을 살 수는 있습니까? 능력이 있어서 그 시간을 만들 수가 있습니까?
화자 1
34:44
시간을 빌려줄 수 있습니까? 빌려 올 수 있습니까? 아무것도 안 돼 내 돈 같으면 내가 오늘 24만 원이 있으면 18만 원을 남겨놓고 통장에 넣어놓을 수 있어요. 하지만 24시간 중에서 나는 오늘 18시간만 쓰고 6시간은 내일 써야지 되나요? 안돼요. 아무것도 안 돼요. 우리한테 받은 거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가 받았기 때문에 그 시간 위에서 우리는 먹고 마시고 잠자고 일하고 봉사하고 돈 벌어가고 다 합니다. 그 시간을 제가 이 재배 위에 보가 흰 고가 있고 초가 두 개 있고 경본대가 있습니다. 제가 잡아드리면요 날 안 합니까?
화자 1
35:41
바로 서 있을 수 있어야 없지요 하느님께서 우리의 시간이라도를 확 당기면 우리가 살아나왔던 모든 것은 무너지곤 합니다. 맞아요. 하느님께서 주시는 그 시간 위에서 우리는 누리고 있어요.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오늘도 눈을 떴을 때 여러분들 당연하게 주어졌다고 생각하시지 마십시오. 이게 착각입니다. 이것이 바로잡아야 될 필요가 있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까 용어를 바로잡는 것처럼요 늦지 않습니까? 오늘 오늘은 어제 죽은 사람이 그토록 맞이하고 싶어서 내일입니다. 오늘도 오늘 아침에 눈을 뜨면 주님 오늘도 화들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당신이 주신 그 시간 안에서 열심히 살아가겠습니다. 중요한 것부터 할게요 나는 중요한 게요 묶는 거 하고요. 그다음에 꾸미는 거 하고요.
화자 1
36:40
쇼핑하는 겁니다. 내가 니 시간 갖고 니가 그래 일어납니다. 주님 저는 제일 소중한 것도 하겠습니다. 당신께 먼저 가족에 대한 감사의 기도를 먼저 드리고 그 다음에 일어나고 일도 하고 하겠습니다. 신앙인은 그 시간을 또한 무엇을 제일 중요하게 쓰는 사람인가도 구분이 됩니다. 그지요 그래서 그렇게 쓰시길 부탁드리고요. 우리가 말하는 우리가 기다리는 예수님 우리가 갈려고 하는 하느님 나라 구원 영원한 생명 다 똑같은 말입니다. 맞죠. 같은 개념이지요 그러면 그 하느님 나라는 우리는 죽어서 가는 나라라고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화자 1
37:41
여러 개 있는 사람이나 지옥에 있는 사람이나 죽은 사람들입니까? 죽은 사람입니까? 죽은 사람이 무슨 벌을 받습니까? 지옥이 고통을 받습니까? 여기에서도 살아 있고 중앙 거기서도 살아 있습니다. 하느님 앞에서 꼼지락꼼지락 다 살아 있어요. 죄를 받으면서 벌을 받으면서 살아 사느냐 영원한 공약을 누리면서 사느냐 그겁니다. 우린 죽었다고 끝난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아닙니다. 그러면 그 하느님의 나라라고 도대체 어떻게 규정 짓느냐 독도는 우리나라 땅입니다. 맞아요. 왜 독도가 우리나라 땅입니까? 우리나라에 힘이 끝까지 미치고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는 응 우리나라에 힘이 미치고 있기 때문에 하느님의 나라는 그러면 뭡니까?
화자 1
38:41
하느님의 힘이 미치고 있는 나라가 하느님의 나라예요. 여기에 우리 신자분들이 다 앉아계십니다. 하느님의 힘이 미치는 신자가 있고 하느님의 힘이 미치지 않는 신자들이 있으며 여기 있어도 독도 아닌 것처럼 사는 신자들도 있다. 라는 사실이기에 하느님의 능력이 안 오는 하느님의 능력대로 하느님의 뜻대로 안 살아가는 겁니다. 예 지금 좀 보내신 분한테 좀 답답했던 게 영성책으로 잠시 묵상하시겠습니까? 잠시 침묵 중에 예수님과 일치라는 시간을 가지고 갖겠습니다.
화자 1
39:26
이러면 전부 다 일치를 살짝 할라다가 대중에는 갖다 틈을 던지고 당첨입니다. 정말 우리는 딴 걸 하고 나면 제발 일치를 하라면 모든 걸 나누고 우리가 우리가 하는 것부터 먼저 하고 했으면 좋겠다.
화자 1
40:02
이런 생각을 오늘 두서없이 제가 용어에 대해서 그다음에 우리의 개념에 대해서 하느님 나라와 상징 여러 가지들을 말씀을 드렸는데 종교와 종교심과 신앙심 이런 것들을 말씀드렸죠 하나하나 조각조각이지만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는 다시금 한번 점검해 봐야 되는 단어들이고 개념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어떤 새로운 사실을 가지고 온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고 그냥 벌로 들고 지나갔던 어떤 그런 숨어 있던 것들을 여기에 보물들이 있었지 않습니까?
화자 1
40:53
우리가 하면서 다시 거집을 내서 닦아갖고 이거를 다시 한번 쳐다보자는 것 그런 의미에서 오늘 여전히
화자 6
41:03
용어와
화자 1
41:04
이런 개념들을 올라와서 가지고 와서 여러분들에게 다시금 여러분들이 기억하고 있는 그 단어들을 닦아서 이 여기에 여러분들에게 들려드렸다고 생각을 합니다. 아까 어떻게 기다리는 것이 내 삶을 규정짓는다라고 말씀을 드렸지요 네 우리는 적금 타면서 적금 탄 날을 기다리는 사람이든지 상환하면서 기다리는 사람이 꼭 기억하시면서 기쁜 마음으로 준비를 하시고 예 아 자식을
화자 6
42:03
그렇죠.
화자 7
42:08
그래서 이제 계신 여인 중에 목대시며 태중의 아들 예수님 또한 목되신 아이가 전주에 전부 말이라니 이제 와 저희 죽을 때 너희 집에 이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화자 6
42:26
승부와 승자와 성명이 유전도죠
화자 5
42:31
고맙습니다. 늦은 밤까지 조심히 돌아가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