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
내 짧은 26세 일생의 가장 맛있었던 라면은 고3 독서실에서일것이다.
컵라면 왕뚜껑.
친구들과 수다를 떨어가며 벌이는 새벽을 깨우기 위한 라면잔치는 -먹고나면 책상에 엎어져 잠에 취하겠지만서도-웬지 고학생이 된 듯한 늬앙스를 풍겨주어 뿌듯함을 주기도 한다. 그날 도시락을 싸온 친구가 한명쯤 있다면 그날은 아주 행복한 잔치가 될 것이다. 친구의 반찬통에 있는 신김치-신김치 또한 라면의 절실한 친구가 아니던가.
그담으로 맛있었던 라면은 밤낚시에서.
낚시에 낚자도 관심이 없는 내가 삼촌들 낚시를 따라다닌건 순전히 새벽의 컵라면의 그 황홀감을 느끼기 위해서다. 찌가 어떻게 움직여야 고기가 잡힌건지도 모르면서 무슨 엄청난 낚시 전문가인양 입으로 라면을 호호 불고 눈으로 찌를 째지게 노려보면서 먹는 낚시터의 컵라면. 쿠쿠. 생각만해도 라면의 훅훅한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가.
밤낚시 라면 다음으로 꼽는다면 역쉬~술한잔 거하게 꺽고 새벽 편의점에서 먹게되는 라면일것이다. 두말하면 잔소리. 새벽의 허한 위장 가운데다 라면을 넣어 본 경험이 한번쯤 있는 사람이라면 공감하지 않을 수 없을것이다. 그리고-그 광경에서-가장 중요한 것은 배가 빵빵하게 불러 온 한울김치나 종갓집 김치. 일명 꼬마 김치다. 크~꼬마 김치 하나에 왕뚜껑 하나.
컵라면은 유해용기라 하여 3분이내에-독소가 나오기 전에-먹어야 한다는 발표가 있었다. 그래서 종이나 콩으로 만든 용기가 나오기도 하지만. 그 연구발표가 나오기 전 나는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시간당 1.700이라는 페이는 나에게 점심이 밥이 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 제일 만만한 컵라면을 선택하게 되는데, 박봉의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에게 허락되는 특권이 있다. 날계란! 날계란을 컵라면 정 중앙에 떨구고 으흐흐~풀어헤친 다음 전자렌즈에 1분만 돌려주면 기가막힌 국물을 경험할 수 있다. 그것은 왕뚜껑이나 사발면이 아닌 새로운 편의점표 라면이 되는 것이다.
난 그렇게 라면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사실 싫어하는 쪽이 더 강하다. 충청도, 외가집앞에 흐르는 강가에서 하루종일 물장구치고 나와서 부르스터에 끓인 라면을 먹을때를 제외하고는 남들보다 한 젓가락 더 먹을려는 욕심을 내 본 적이 없다. 1년하고도 9개월 된 초보 배우(연극)이지만 밥하는 것보다 훨씬 수월한 라면 끓이기가 -내가 끓이가 싫어서가 이니라-내가 먹기 싫어서 싫다. 특히, 극장셋업하면서 어두 컴컴한 지하극장에서 먼지구댕이와 함께 섞여 김치도 없이 먹는 라면은 차라리 눈물이다.
이쯤되면 생각나는 친구가 있다. 중학교1학년 때인데...유난히 흰 얼굴의 노랑머리 남자애다. 체육시간이였는데 한명이 모자라서 -체육부장인 내가- 찾아다니다가 교실 창 밖으로 산을 바라고 있던 정육점집 아들인 흰얼굴 그 남자애와 마주쳤다. 그냥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괴기스런 모습. 도대체 왜 그러냐는 내 질문에 이 친구는 동문서답을 했다.
"너 칼국수 좋아하냐?"
"그냥..모..왜?"
"난 칼국수가 너무 싫어"
"왜?....먹기싫으면 안 먹으면 되지. 니네집 정육점이잖아. 니가 좋아하는 고기만 배터지게 먹으면 되겠네."
"난 너무너무 가난했다."
"난 지금도 가난한 집에 살아."
"매일 매일 칼국수만 먹었어. 밀가루 사다 반죽해서 일주일 내내 칼국수만 먹었어. 너무너무 토하고 싶었어. 근데, 라면이 먹고싶었어. 아빠한테 라면 사달라고 했다가 디지게 맞았지. 그때 술을 드셨었나봐. 아무튼 난 칼국수가 너무 싫어"
얼마전 라면 사달라는 아들을 때린 아빠가 돌아가셨다 했다. 아마도 난 체육샘한테 얻어맞을 각오를 하고 그날 그 친구옆에서 같이 밖을 바라 보며 같이 땡땡이를 쳤던 기억이 난다. 흰얼굴 남자애에게 난 그 라면도 싫다고 말 했던가 안 했던가.....
전에 사귀던 수 많은(?) 남자친구들 중 어떤이는 정말 라면을 사랑했다. 라면을 돈 주고 안 시키는 나와 만나 정말 -라면 먹고 싶은 욕구를 자제하느라-고생이 심했을 것이다. 이제는 헤어졌으니까 라면 실컫 먹고 있겠지...........................................아무튼. 그의 어릴적 기억중 하나는 -긴 면발의 라면을 호로록 먹기위해 식탁위로 올라갔다는 것이다. 상상이 가는가? 라면을 한번에 쪽~빨아먹기위해 양발 벗고 식탁위로 올라간 남자아이가. 목격한 바에 의하면-10살된 자기조카에게 그렇게 먹는 방법을 전수하고 있었다. 그의 기억속의 라면은 행복한 장난 혹은 맛있는 장난의 창고에 있겠지.
라면 하면 또 생각나는 선배님이 한 분 계신다. 겨울만 되면 가스난로 배기구에 라면을 구어먹는-그것이 라면 땅이였던가- 참 맛있는 간식이다. 시골 골방에서 이모들과 함께 [전설의 고향-구미호]를 보며 뿌셔먹던 삼양라면이 생각난다. 스프를 너무 많이 얹으면 순간적으로 무쟈니 짠게 라면 스프인데, 한창 종횡무진 날라다니고 할퀴고 다니는 [구미호]의 명 장면을 물뜨러 가다가 놓칠까봐 스~~스~~거리며 참고 또 참았던 기억이 난다. 지금도 입에 침이 고인다.
난 라면을 끓일때 네 등분으로 자르는 것에대해 굉장히 분개감을 느낀다. 그것은 라면의 성질을 도통 모르는 사람들의 처세다. 라면의 면발은 쫄깃함이 그 생명일진대 뚝뚝 많이 끈어 버리면 그 쫄한 면발이 부르트는 시간이 더 빨라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통 라면은 원래 포개져 있던 상태 그대로 한번만 자르는 것이 기본이다. 그리고 물은 세컵 반. 끓기 시작하면 스프를 먼저 넣고 대파를 숭숭 썰어 넣는다. 그러면 끓던 물이 약간 기가 죽는데 곧 다시 살아 날 때쯤 한번만 자른 면발을 넣어주고 계란을 국그릇에 푼다. 흰자의 노른자가 잘 섞였을 때쯤 꼭, 반드시, 국자로 계란을 떠서 라면에 면발을 돌리면서 회오리 치는 냄비안으로 저어준다. 그리고 부르르 끓었을때 아주 찬 냉수를 1/3컵 준비 해 두었다가 -일명 쇼킹워터라고 하는데-라면이 끓는 절정의 순간에 찬물로 휙~껴안기는 거다. 그러면 갑자기 찬 물을 만난 면발들이 긴장해서 압축되어 더욱 쫄깃 해 진다는 꽤 근거있는(?) 비법이 있다. 그리고 곧바로 아까전에 썰어 놨던 신김치와 함께 냄비뚜껑에 면발을 받치고 후르륵~크~~계란쪼가리가 널려있는 국물에 밥을 말아 김치-특히 총각김치-를 우적우적 먹는다면 세상에 둘도 없는 500원짜리 만찬이리라.
얼마전 맥주를 거나하게 마시다가 함께 있는 사람들과 라면이름 대기 게임을 했다.
너구리 한 마리 잡아가세요-너구리
매울 신 -신라면
진한국물 -진라면
매운 콩 -콩라면
네모난 -도시락
얼큰한 -육개장
뚜껑 -왕뚜껑
큰 -사발면
김치- 김치라면
오랜전통의 -삼양라면
그때 누군가 외쳤다. 짜장범벅! 기억하는가. 아주 작은 용기의 범벅들을..짜장, 카레.....
라면의 이웃사촌 짜장라면이 떠 오르면서 참 행복해진다. 짜파게티, 짜장박사, 사천 짜장...일요일은 짜 짜 랏짜......짜~파게티~! 요리사! 단무지 보다 역시 총각김치가 더 어울린다는 것은 짜파게티의 진수를 아는 사람만이 느낄수 있는 미(맛)이다.
이쯤 두서없이 라면에 대한 잡다한 단상들이 끝날때쯤 뭔가 참 아쉽다....비키니 옷장과 골드 스타 선풍기 속에서 찌그러진 냄비에 원댕이가 순진한 이브를 꼬여 라면을 먹는다지..
라면의 애로타즘..........
:일단 라면은 그 면발의 곡선이 잘~ 빠져야 한다는 거다. 일자로 뻗는 라면 보았던가. 그럼 그게 칼국수지, 라면이더냐- 올록볼록 들어왔다 나왔다가 잘 빠진 라면. 크. 쪼옥~빨아먹고 싶은 생각이 확~
:이 라면은 식기전에 먹어야 한다는 거다. 라면은 식으면 다시 뎁힐 수가 없다. 면발이 불어 터져 버린다는거지. 불기전에. 면발이 쫄깃쫄낏하고 탱탱할 때 확~먹어버려야 한다는거다. 그런데 그런데 빨리먹겠다고 급한마음에 마구 입에 쑤셔 넣으면 참_입천장이 다 디고 만다는거다. 아무리 급해도 호호 불어가며. 식기전에. 면발을 달래서 먹어야 한다. 체하지 않게. 국물도 마셔가며...
: 한 음식에 이렇게 다양한 종류의 가짓수가 있던가. 농심 ・삼양・오뚜기 등등 회사마다 다른 종류의 다른 이름들을 붙여 색색이 다양한 라면들. 그리고 김치를 넣으면 김치라면, 계란을 넣으면 계란라면, 깻잎라면, 치즈라면, 크림라면 등등등. 내 입맛에 맞는 라면으로 골라 먹을 수 있다는 거다. 내 입맛에 맛는...ㅋㅋ 세상은 넓고 라면-여자- 은 많다...
:결정적으로 행복한 사실은 라면에는 곱빼기도 있고 따따블도 있다는 거다. 한꺼번에 끓일수 있으니까. - 꺼번에 다양한 라면들과의 데이트- 하하하하하지만! 다른 종류의 라면을 오징어다리 개수 이상 함께 끓이면 개개인의 본래의 성질이 사그라진다는 거다. 크크
: 그런데 아무래도 인스턴트 식품이다 보니 먹을땐 좋은데 먹고나면 속이 더부룩한 것이 몸-특히-위장엔 쥐약이라는 사실이다. 나도 위장이 약한 편인데 라면 잘 못 먹었다가 배알이 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거덩.
:마지막으로 한가지만 더 야그하자면 라면은 날로 먹을 수 있다는 거다. 으적으적~부지직~그런데 중요한건 익히지 않고 날로 먹으면 결코 한기의 식사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다만 스쳐지나가는 간식으로 존재할 뿐이지...
라면.....이제 라면 하면 또 다른 사람과 사건이 생각나겠구먼. 주린배를 움켜쥐고 북부수도 사업소에서 설문조사 아르바이트 나와서는 오도가도 안 하는 이 차가운 건물 로비에 앉아 열기가 차 올라있을 연습실을 그리워하며 원댕이의 라면에 대한 단상들을 적어내려가다. 아~~~~~배거프다. 근데, 아! 그래..라면은 배고플때 먹으면 더 맛있다는거다. 크크.............
이런 문자를 받은적이있다.
[순복아~ 뭐 내가 맨날 애로비됴 빌려보는줄 알아? 난 그 돈 있으면 라면 사먹을 놈이야]
애로비도와 라면을 선택하라면 당신도 역시 라면인가?
라면의 후끈한 애로티즘을 쥐어짜며
첫댓글 라면을 여러 맛으로 즐기는 또하나의 방법. 약간 덜 익었을 때 불을 꺼라.그러면 먹으면서 점점 익어가는 라면의 다양한 면발의 맛을 느낄 수 있다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