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17 창세기 3장 15절의 의미가 무엇이기에 프로토에방겔리움(Protoevangelium)즉 원(原) 복음이라 불리는가?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창 3:15)
'여자와 뱀',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 양측이 '원수가 됨', '발꿈치를 물고 머리를 상하게 함. 이는 성경 기록상 최초로 언급되는 적의와 싸움에 관한 묘사이다. 그리고 이 각각의 실체에 대해 다양한 해석이 제시되며 신학적 관심의 대상이 되어 왔다. 특히, 기독교 역사 초기부터 신학자들은 이 구절을 최초의 복음이요 메시아에 대한 첫 예언으로 간주하였다. 그 정점이 마르틴 루터가 이 구절을 프로토에방겔리움(Protoevangelium), 즉 '원(原)복음'이라고 명명한 것이다. 그 이후로 이 구절에 관한 논쟁은 이 구절이 과연 그러한지, 그러하다면 그 근거는 무엇인지로 논점이 모아졌다. 흥미로운 것은 이 구절을 어떻게 해석하든 성경에서 이 구절이 차지하는 중요성에 대해서는 의견을 같이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어떤 신학자는 창세기 3장 15절 이전은 그 구절의 서론이고, 그 이후는 그 구절에 대한 해설이라고까지 표현하였다.
이 구절에 나타난 해석상의 논란의 초점은 '후손' 혹은 '자손’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제라가 문법적 형태는 단수이지만 의미는 복수인 '집합적 단수로 사용된다는 점에서 기인한다. 집합적 단수란 예를 들어, '우리 가족은 건강하다'고 할 때 '가족'이란 단어는 문법적으로는 단수이지만 의미는 가족구성원 모두를 의미하는 복수인 것과 같은 경우이다. 특별히 이 구절에서는 '뱀의 후손이 단수가 아닌 것처럼 '여자의 후손'도 단수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니 이 구절은 한 사람 메시아에 대한 예언이 아니라 집단적인 의미의 후손 곧 한민족의 운명을 예언한 것으로 해석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말할 것도 없이, 유대인 학자들은 이 구절을 유대 민족이 여러 다른 민족으로부터 받게 될 고난과 최후의 승리에 대한 예언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이 구절을 문법적으로 좀 더 세밀히 분석해 보면 그렇지 않다. 이 구절은 대표 단수로 시작하였다가 집합 단수로 확대되고, 다시 집합단수가 대표 단수로 집약되는 그런 형태이다. 히브리어 문장의 어순을 따라 문장을 분해하여 다시 기록해 본다.
15: 그리고 내가 증오를 놓을 것이다.
15b: [[단수/뱀, 즉 사탄]와 여자단수/하와] 사이에
15c: 그리고 너의 제라[복수/사탄의 추종자] 여자의 제라[복수/하나님의 백성들] 사이에
15d: 그것[단수/여자의 제라] [단수/뱀, 즉 사탄]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15e: 그리고 단수/뱀, 즉 사탄]는 [단수/여자의 제라]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 구절에서 제라는 단수만도 아니고 복수만도 아니다. 이 구절은 단수로 시작하였다가 복수로 확대되고, 그 복수가 다시 단수로 바뀐다. 성경에는 이런 형태의 메시아 예언이 종종 나타난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요한계시록 12장이다. 거기에 묘사된 용과의 전쟁은 '여자가 낳은 아이'으로 시작하여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로 이어지고, 다시 '여자의 남은 자손으로 이어진다. 단수와 복수가 오고가는 것이다. 이런 방식은 그리스도에 대한 사탄의 도전으로 시작된 싸움이 선과 악의 세력들 간의 싸움으로 확대되고, 그것이 종래는 사탄에 대한 그리스도의 승리로 마무리된다는 소위 선과 악의 대쟁투를 묘사하는 메시아 예언의 특징이다.
그러니 히브리어 제라가 집합 단수라는 이유만으로 이 예언이 메시아에 대한 예언이 아니라고 하는 것은 너무 단편적이고 성급한 결론이다. 그렇다. 이 구절에서 '여자의 제라는 단수와 복수를 모두 의미한다. 메시아와 메시아를 따르는 무리들을 가리킴이다. 구약에 나타난 제라의 용례도 집합적 복수의 경우(창 9:9; 12:7; 13:16, 15:5, 13, 18; 16:10;
17:7~10, 12:21:12: 22:17~18)와 개인적 단수의 경우가 다 있다(삼하 7:12: * 89:5).
그런데 이 구절에서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그 제라가 '남자의 씨가 아니라 '여자의 씨'라는 점이다. 이 사실이 메시아 예언의 핵심이다. 심지어 남녀 통칭을 가리키는 '사람의 씨'도 아니다. 오직 '여자의 씨'이다. 제라는 헬라어로 스페르마로 번역되고 이를 직역하면 '씨'이다. 성경은 이때부터 여자의 씨에 대한 약속을 반복한다(사 7:14). 예수는 남자와 상관없이 탄생하였고(마 1:18~21; 눅 1:26~38), 바울은 예수를 가리켜"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갈 4:4셨다고 말한다. 예수는 인간의 거듭남도 마치 자신이 남자와 상관없이 성령으로 잉태한 것처럼 성령으로 태어나는 것이라고 하였다(요3:5). 요한은 하나님의 자녀는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요 1:12, 13)이라고 하였다. 여기 '사람'이란 남녀 통칭인 안쓰로포스가 아니라 '남자만을 의미하는 아네르이다.
여자의 후손은 뱀의 머리를 상하고 뱀의 후손은 발꿈치를 상하게 한다는 말은 여자의 후손의 고난과 궁극적 승리를 예언하는 말이다. 신약의 여러 구절들이 메시아적 예언으로서 창세기 3장 15절을 반향하고 있다(롬 16:20; 히 2:14; 계 12장). 예수의 십자가는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한 '운명의 날'(D-day)요, 예수의 재림은 그의 머리를 상하는 '승리의 날'(V-day)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