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건성건성
황 동 규
코로나 집콕,
반년 넘어서자 책들이 멀어지고
쇼팽과 드뷔시가 한데 물소리 되었다.
입맛이 나가고
건성건성이 집 안에 자리 잡았다,
라고 하고 싶지만 뵈지는 않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무음無音의 둔주곡이다.
오후 두 시, 꽃에 물을 준다.
꽃의 표정도 건성건성. 마스크 꺼내 쓰고 나간다.
후덥지근 장마철 아파트 단지
두 바퀴 돌고 와도 집 안의 표정 그대로다.
건성건성, 이건 고장난 슬픔 같지만
슬픔이라면 새게 할 수나 있지.
참다 참다 땜질 자국 찾아내 납 조각 떼며
죽을 쑤든 엎어버리든 마음대로 해! 하면
새기 시작했어.
건성건성은 소리도 빛도 땜질 자국도 없다.
세 시. 꽃병에 물을 준다.
왜 또? 하지 않고 꽃이 물을 받아 마신다.
잘도 마시는군, 미소 지으려는데, 넘친다!
손수건 꺼내 들고 탁자에 넘친 물 훔치려다 멈칫,
떨어진 꽃잎 하나가 물길을 절묘하게 막고 있다.
중력에 맞서네.
혹시 물 막겠다고 미리 여기 떨어진 건 아닌가.
떨어진 장소와 놓인 각도를 보면
예측하고 떨어진 것 같기도 하다.
아 그 꽃잎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꽃잎 또 하나
물하고 관계없이 건성건성 놓여 있다.
후 부니 뒤집힐 듯 뒤집힐 듯 한 뼘쯤 물러간다.
다시 분다. 이번엔 반 뼘쯤 물러가 버틴다.
한 번 더 분다.
이번엔 흠칫흠칫하다 만다.
계속 버티네! 하긴 버팀만으로도
이 코로나 세상에 남아 있을 격 갖춘 게 아니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