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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재속프란치스코 야고바형제회 원문보기 글쓴이: 세베리노
일 시 | 행 선 지 | 시간 / 거리 | 비 고 |
2013년 03월 16일. 오전10:00 | 수원역(1번출구) | ||
10:10 | 수원역 환승 | 당일 여건에 따라 성지까지 도보 게획도 있음. 약45분소요. 3.5km | 35,32-5,32-2,16,16-1,16-2.버스환승 |
10:30 | 수원성지 성당 | 20분 / 3.5km | 수원성지, 행궁정류장 하차 |
11:00 | 성지미사참례 | 수원성지 성당 | |
12:00 | 수원화성으로 이동 | 점심식사 | |
12:40 | 화성 순례 | 0시간 / 0km | 성곽길 순례 |
15:40 | 화성순례 | 3시간 / 5.8km | |
15:40 | 행궁참관 | ||
16:40 | 행궁참관 종료 | ||
16:40 | 행궁출발 | ||
17:00 | 수원역 | ||
17:10 | 수원역 출발 | ||
17:20 | 금정역 | ||
17:25 | 4호선 환승 | ||
17:50 | 7호선 환승 | ||
18:00 | 내방역 | 내방역부근에서 결산,회식. |
천주교에 관대했던 정조대왕, 다산을 신하로서 아껴던 대왕은 많은 일을 다산을 통하여 이루려고 하였었다. 다산을 시켜 수원화성을 완성하였으나 반대파들에 의한 무고는 끝칠줄 몰랐다. 정조는 다산을 살리기 위하여 유배를 결정한다. 길고 긴 유배생활을 하면서 많은 책을 저술한다. 천주학을 믿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다산의 일가는 쑥대밭이 된다. 형들이 죽어 순교자의 길을 걷게되며 조카들과 형수가 유배지에서 순교를 당하기도 한다. 그러한 속에서 다산은 신앙생활에서 한발 물러선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실학의 거두였던 다산은 실학과 신앙심을 바탕으로 수원화성을 설계하고 축성하면서 거중기를 만들어 이용하고 서양의 건축기법을 응용하기도 하였다. 그가 축성한 건물 곳곳에 신앙심이 숨어 있다. 그 속뜻을 만물이 소생하기 시작하는 춘삼월에 살피고 싶어 수원화성을 찾아 순례를 하려고 하는 것이다. 또한 다산이 축성한 곳곳에서 후대 박해시기에 수많은 교우들이 천주교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처형되어 순교의 길을 떠나야 했다. 그 자리에 수원지방에 최초로 75평의 연와조 조적조 건물인 고딕양식의 성당건물이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뽈리신부님에 의하여 세워진다. 이 성당 신축비용은 뽈리신부님의 고향의 어머니께서 삮바늘질해서 모으신 돈도 포함되었다. 그러나 성당은 6.25을 거치면서 급격한 노후로 성당기능으로서 유지가 불가능하자 1978년 3월 김남수 주교님의 고별미사를 끝으로 철거되었다. 수원교구에서는 그곳에 수원성지를 선포한 것이다. 수원일대는 한양,경기와 내포를 잇는 신앙이 오고 가는 길이었다. 남양성지와 요당리성지를 순례한 후 동진하여 김대건 신부님과 관련된 은이 - 미리내성지로 방향을 잡아 나가려 하는 것이다.
실학 사상과 학문은 천주교가 조선인들과 교감을 이루는 물고 였다. 그중 수원이란 고을은 새수원으로 거듭나면서 실학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반계 유형원이 새수원에 길을 열었다면 실학의 주체나 다름없던 다산 정약용은 실학의 정신을 실물인 축성으로 남겼다. 당시 급변하는 동북아지역은 외세에 의하여 개방 요구와 함께 서양과학 기술문명이 흘러들기 시작하였다. 그 여파로
청나라를 통하여 들어오기 시작한 각종 문헌과 문물을 기초로한 실학사상이 태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까지 조선사회를 지배했던 성리학은 진보적이였던 남인 지식인들 사이에 구학으로 치급되며 천주교에 대한 정보와 서책은 과학문명과 평등사회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조선말기 사회의 파란을 예고하고 있었다. 정치적 견해의 극심한 대립과 계급사회의 붕괴 등등이 전초가 된 것은 실사구시 정신과 천주교와 실학이 그 중심에 있었던 것이다. 정조대왕의 어명을 받아 다산 정약용이 축성한 수원화성은
둘레가 약 5.8km이고 직경은 약 1.8km가 된다. 동북아 지역에서는 좀체로 볼 수 없는 평지에 축성된 성으로서 1997년 유네스코 셰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수원화성은 천주교와는 연관이 깊은 화성이다. 설계와 시공을 책임졌던 다산은
실학과 천주교와 관계에 있어 뛸래야 뛸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다. 두 형님과 조카 등등이 순교의 길을 걸었으며 축성 시 천주사상을 학문과 신앙인으로서 접했던 그는 수원화성을 신축하면서 건축물 곳곳에 신학사상을 반영시켜 후대인들에게 놀라움을 주지시키고 있다. 신학사상이 반영된 건물로서는 화홍문과 방화수류정이 있다. 구약의 하느님과 인간의 약속을 화홍문이 받치고 있는
호예수문 7개는 신약의 계약표지 7성사를 의미하며, 십자가형 지붕을 만들고 팔각정 기본틀을 무시하고 해가 지는 서쪽방향에
서벽을 세운 후 86개의 십자가 문양을 새겨 넣은 방화수류정은 천주학이 서학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키고 있으며 어두움을 몰아내는 십자가를 석양빛에 빛에 드러 나도록 한 설계와 구조물은 다산이 지니고 있던 신앙의 가치관에 대하여 보여 주고 있다하겠다.
박해시기에 수원과 그 주변일대에서 체포된 천주교인들은 대부분 수원 화성으로 압송되어 고문과 함께 처형되었습니다. 처형당하는 순간에도 오히려 박해자들을 입교시키려하고 그들을 위한 기도를 하면서 죽어간 순교선조들의 처형지는 수원화성 안 중영, 이아, 행궁, 남암문, 팔달문, 장안문,종로사거리, 동장대 등등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수원교구에서는 2000년 대회년에 최덕기 바오로 주교님에 의하여 수원성지 성당으로 구 수원성당을 수원성지 성당으로 78 위의 순교자와 무명순교자들을 현양하는 성지로 선포하셨습니다.
(일부 사진은 수원성지 사진을 capture하였습니다.)
2013년 성지순례 계획 | |||||
분기 |
월 일 |
성 지 |
트레킹 |
비 고 |
Km / 인원 |
1 |
1 / 01 |
풍수원 |
대관령 – 선자령 |
일출. 트레킹 |
10.04/20 |
1 / 19 |
삼tkatk성산 |
관악산 둘레길1.2 |
성지순례와 트레킹 |
10.36/21 | |
2 / 16 |
담배골(수리산) |
수리산,-성지 |
최양업신부님 |
4.8 /21 | |
3/ 16 |
수원성지 |
화성 종주 |
신앙심과 다산의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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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4 /20 |
남양성지 |
십자가의 길 |
최방제신학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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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18 |
요당리 성지 |
앵베루주교피난처 |
경기- 내포 천주깃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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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01 |
용소막 |
태백- 유일사 |
철쭉맞이 트레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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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15 |
은이- 미리내 |
삼덕고개 |
김대건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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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
7/ 20 |
양평 글라라의 집 |
유명산계곡트레킹 |
여름계곡 돋자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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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03 |
성심원 |
지리산 둘레길 |
포르치운쿨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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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17 |
갑곶돈대,진무영,일만위 순교자현양동산 |
함헌동천 |
박바오로, 박순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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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21 |
금강공소 |
대관령 옛길 |
강릉지역 천주교거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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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
10/ 19 |
배론성지- 묘재- |
박달재 –배론 |
최양업신부,황사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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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02 |
인월-금계-동강/향적봉 |
지리산 또는 덕유. |
단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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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16 |
배티성지 |
배티-서운산- 성지 |
최양업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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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21 |
교육회관 성당 |
숙정문-인왕산-경교장 |
결산, 송년모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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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색 칸 내용은 번개입니다. 일기 또는 사정에 따라 변경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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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바 트레커들은!
“걸으면서 자연의 세계를 보고 순교 성인들의 거룩하고 겸양된 삶을 본받으며 그것들이 얼마나 중요한지 성지참례와 창조적 질서를 통하여 하느님께 감사 드린다.
걸음의 속도를 늦추며 그릇된 생각을 침묵시키고 영성적 수련과 헌신적 삶과 사물의 아름다움을 더 많이 만나려 노력하고 오감을 통하여 대자연과 호흡하며 대자연속에서 진정한 마음으로 하느님과 형제들, 이 세상과 소통하기 위하여 새로운 눈으로 세상 보기 결심을 선언한다."
1. 항상 자신의 마음을 열고 신중하며 겸손한 자세로 소통에 임하며 인간과 인간이 아닌 생명체들의 번영은 그 자체로 고유의 가치를 갖으며 평화를 지향한다.
2. 성프란치스코의 영성적 수련을 통하여 지식의 한계를 인정하고 지속적인 헌신을 결심하며, 지구상 생명 형태들의 풍요로움과 다양성은 고유한 가치를 가진다. 인간의 문화 형태도 여기에 포함된다.
3. 인간은
4. 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