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제일 오래된 고서점, 통문관
통문관은 1934년 서울특별시 관훈동 37번지에 이겸노가 ‘금항당’으로 개업한 후 1945년 관훈동 18번지에 ‘통문관’으로 상호를 바꾸어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다. 통문관은 1963년 관훈동 147번지로 이사하였고, 1969년 옛 건물을 헐고 신축하였다. 1970년 이겸노의 아들 이동호가 가게를 이어받았고, 1982년 이동호의 아들 이종운이 가게를 이어가며 3대에 걸쳐 운영되고 있는 고서점으로 지금은 출판업까지 겸하고 있다.
통문관
제일 오래된 고서점
통문관(通文館)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인사동에 1934년 이겸노가 문을 연 우리나라에서 제일 오래된 고서점이다. 처음 서점 문을 열었을 때 이름은 금항당(金港堂)이었다. 금항당이라는 상호는 일본인이 운영하던 금문당(金文堂)을 인수하여 이겸노가 이름을 바꾼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금문당이 금항당으로 바뀐 것은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단순히 물자가 귀하던 시절이라 ‘문’자를 ‘항’자로 페인트칠하여 바꾼 것이라 한다. 그러다가 광복이 되면서 작명이 마음에 들지 않아 통문관으로 바꾸었다. 통문관은 1945년 관훈동 37번지에서 이사하여 관훈동 18번지로 옮기면서 이름도 바뀌었다. 1970년 이겸노의 아들인 이동호가 가게를 이어받았고, 1982년에는 이동호의 아들인 이종운이 대를 이어 가고 있다. 평안남도 용강 출신의 이겸노는 열여섯 살 때 서울로 왔고, 일본인이 운영하는 서점에서 일을 시작하였다.
통문관
통문관
통문관을 일반적인 고서점이라고 부르는 것이 어울리지 않는다. 보통의 고서점은 옛날 서적을 파는 것이지만, 통문관은 ‘국학(國學)’ 관련 서적이 많이 있어 국학서점이라고 하기도 한다. 통문관은 우리들이 많이 들어본 『월인석보』, 『월인천강지곡』, 『독립신문』, 『황성신보』 등과 같은 서적이 세상에 나오도록 하였다. 뿐만 아니라 『청구영언(靑丘永言)』, 『두시언해(杜詩諺解)』, 『월인천강지곡』 영인본을 출간하여 고서의 수집·보급에 힘써 왔다. 그리고 통문관에는 최남선, 이병기, 이희승(국어학자), 김원룡(고고학자), 최순우(전 국립박물관장) 등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대가들이 출입하며 자료를 찾았고 국학을 연구하였다.
통문관은 이처럼 고서 수집·보급에 애쓴 덕분에 1950년대부터 한국 고서의 보고(寶庫) 역할을 하였다. 통문관은 1969년 옛 건물을 헐고 새로이 5층 건물을 지었다. 통문관은 서점 그 자체로 고서점 전문서점이면서 보존 가치가 있는 우리나라의 고서 연구에 공헌한 문화유산이기도 하다.
물건은 주인이 있다
통문관
통문관
통문관의 주인은 책을 단순한 물건을 파는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 그래서 이종운은 책 매매를 ‘책을 시집보낸다’고 한다. 통문관 주인에게 책은 애정이 많은 수집 보물이고, 아무에게나 주지 않는 자식과 같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이 덧붙이고 있다.
“물박유주(物博有主)라고 물건마다 다 주인이 있더라.
그래서 여기에 물건이 이렇게 들어오다 보면 그런 물건들이 보여. ‘아 이런 물건들은 하찮아도 어떤 교수가 가져가면 빛을 보겠구나’ 이런 물건이 있고, 또 어떤 물건은 귀하고 좋다 보니까 '이거는 개인한테 가는 게 아니라 박물관쪽으로 가는 게 맞겠구나' 하는 이런 느낌이 있고. 제가 가지고 있는 물건이 어떻게 보면 제자리를 찾아갈 때가 제일 뿌듯해. 물론 박물관에 들어가 버리면 앞으로는 그 물건이 어떻게 보면 세상으로, 저희 같은 업종의 입장에서 보면 그 물건이 다시 유통되기 힘들지만 어떻게 보면 최종 목적지라고 할 수 있고, 종착지이기도 해. 반대로 그런 데로 가야 말 그대로 관리도 잘되고 앞으로 계속 보존의 의무, 그런 측면에서 보면 훨씬 좋다고 생각을 한다.”
책이라는 것이 단순히 활자화된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알아본 통문관 주인의 통찰력이 엿보인다. 그리고 책을 단순 매매 물건이 아니라 그 문화적 가치를 인식하고 그 가치를 발휘할 수 있는 주인을 기다릴 줄 아는 안목에 놀라게 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