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의상의 화엄사상
한국 화엄의 이해는 자장(慈藏)에서부터 시작된다.
선덕왕대에 중국에 유학했던 자장은 오대산 문수신앙의 감응을 얻고
이를 전해왔으며, 신라에 돌아온 후 자신의 집을고쳐
절을 만든 낙성회에서『화엄경』을 강의하였다.
후대의 윤색이 가해진 설화이지만 삼국시대 말에 신라에
『화엄경』이 전래 소개 되었으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신라 불교철학이 정립되는 통일신라기에 화엄사상을 주도한 것은 의상(義相, 625~702)이었다.
의상은 화엄일승(華嚴一乘) 법계연기(法界緣起)의 핵심을 언어의 절제 하에 210자의 법계도시로 엮고
이를 상징적으로 형상화한 법계도인을 만들어 그 내용을『일승법계도(一乘法界圖)』로 정리함으로써
화엄일승 사상을 체계화 하였다.이 저술은 지엄을 계승하면서도 이전의 지론교학에 영향을 받았고
초기선종과도 연관성을 갖는다.
이 독특한 사상을 형상화한 법계도는 처음과 끝이 이어지는 상징적인 효과를 위해 당시 유행하던
회문시(回文詩) 형식을 채용하여 최신 기술이던 목판 인쇄에 다라니를 강조하여 담아 낸 것이었다.
(石井公成, 1996)
『일승법계도』는
화엄 법계연기설의 핵심인
일중다 다중일과
일즉다 다즉일의
상입상즉(相入相卽)의 연기법을
수십전(數十錢) 등의 비유로 풀이하였다.
그리고 그 내용으로
일다(一多)의 상입상즉,
미진(微塵)과 시방(十方),
일념과 무량겁,
초발심과 정각 및
생사와 열반으로 이루어진
다라니 이용(理用)·
사(事)·
세시(世時)·
위(位)의
4가지 범주로 구성하였다.
의상은 이들 자리행에 이타행과 수행문을 추가하여
강한 실천적 성격의『일승법계도』를 완성하였다.
법계도가 의상의 저술이 아니라 지엄의 저술이고,
의상이 이에 대해 해석한 것이『일승법계도』라는 견해가
제기되었으나(姚『일승법계도』에서나타난
의상의화엄사상은
교판설,
심식설(心識說),
이이상즉론(理理相卽論)과
십현육상론(十玄六相論),
단혹(斷惑)과 수도론등으로 분류된다.
이중에서 의상 화엄사상의 독자적인 면모는
다라니법의 강조와 수십전설과 육상의 등에 나타난다.
의상은 교판과 십문현(十門玄)의 연기론 등은 지엄의 학설을 계승하였으나
수십전설과 육상설을 중도의(中道義)와 함께 연기설의 중요한 교의로 정착시키는
독자적인 관점을 열었다.
의상의 화엄사상은 실천행을 중시하였고 이는사상과 문도 형성으로 이룩한 화엄종단에서
경설에 토대를 둔 관음과 미타신앙을 전개하는 것으로 나타나 통일기 신라
사회가 지향하던 사회 안정에 부응하였다.
의상 화엄사상의 중심을 이루는 일과 다의 상입상즉의 법계연기는
평등과 조화를 상징하는 논리로서 의상 화엄교단에서 사회적으로 실천되었다.(정병삼, 1998)
의상이 강조한 연기실상다라니법은 실천 중시의신앙적 성격을 보여주는 것이다.
의상 사상의 특징인 중도의는 일승과 삼승을 중도와 이변(二邊)으로 인식하는 핵심이며,
모든 상대법이 각자의 형식을 지니면서 그대로 중도임을 인정하는 중층적 구조를 보였다.
이 중층 구조는『화엄경』에 대한 이해가 심화되어가는 과정을 상징하며,
보현에서 부처로 점차『화엄경』의 심오한 부분으로 들어가최종적으로
법성에 귀착하는 구조를 보이는 것이었다.
의상의 특징적인 이이상즉설理理相卽은 일반적인관점처럼
이(理)의 무분제(無分齊)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개개의 사(事)에 있어서의 본래성을 나타내려는 것으로서,
화엄연기에서 모든 사물은 융통함을 말하기 위한것이었다.
의상에게 법계연기란 사와 이의 무분별을 인으로 하여
일어나는 상즉상융(相卽相融)이고,
상즉을 중시하지만 상입은 중시하지 않는다.
해인삼매에 있어서의 육상원융한 연기관이라는 점에서
의상의『법계도』는 실천적이며 종합적으로 화엄경에
기초한 해인삼매의 정신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성기(性起)사상의 관점에서 보면 의상의 연기법은
실성(實性)의 성기세계를 드러내고자 한 법계도의
실천적 구조와 밀접하게 연관을 맺으며
법성관과 구래성불설(舊來成佛說)과
해인삼매론에 연계되어 구성된 것이었다.
의상은
법성과 불성,
총상과 별상,
시공의 중도를 제시하여
중도적 공관(空觀)을 보였다.
의상의 융합사상은
성기취입적인 성향을 가진 횡진법계관(橫盡法界觀)의 논리로
구조된 원융사상으로관음신앙과 연결된 실천수행적 신앙을 지닌 것이었다.
의상의 원융사상이 전제왕권을 중심으로 한 중압집권적 통치체제를 뒷받침하기에
적당하다는 관점도 있지만,『법계도』의 일과 다의 상입상즉한관계는 조화와 평등이
강조되는 관점에서 이해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