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찾는 이가 적음이라" (마7:13,14)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눅13:24)
죤 번년은 그의 걸작 "천로역정"에서 마태복음에 기록된 "좁은 문"을, 앙드레 지드는 그의 "좁은 문"에서 누가복음에 기록된 "좁은 문"을 상상하고 글을 전개했습니다.
존 번년에게 있어서 "좁은 문"은 "좁고 협착하다"란 표현이 암시하듯이 그 문으로 들어가는 데에도 고통스런 결단의 여정이 있을 뿐 아니라 좁은 문으로 들어가서도 험난한 여정이 남아 있음을 암시합니다.실제로 주인공들(크리스챤과 크리스티아나)은 "좁은 문"을 통과한 후부터 고난이 시작되었습니다.
앙드레 지드는 조금 다릅니다.그에게 있어서 "좁은 문"은 "구원의 문"과도 같습니다.엘리사 뷔콜랭은 자기를 사랑하는 사촌 동생 제롬을 위해 제롬의 사랑 고백을 받아주지 않음으로써 둘이 들어갈 수 없는 "좁은 문"을 사랑하는 사람 제롬 만이 들어갈 수 있게 길을 열어 줍니다.
"좁은 문"에 대한 두 성경 구절이 이처럼 다르게 보이는 듯하지만 사실상 같은 맥락입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야 구원으로 인도될 수 있다는 원칙에 있어서 두 성경구절이 같은 의미를 나타내고 있습니다.그리고 그 "문"을 찾는 이도 매우 적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구원의 문은 좁고 그 길이 협착하다고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구원의 문이 넓은 것으로 착각하며 살고 있습니다. 서양의 교회는 문닫기 직전이며 ,심지어 멋스럽고 큰 교회가 텅텅 비어가고 있다고들 합니다.그런데도 서구인들 중 많은 사람들은 자기가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합니다. 우리 한국 교회도 예외는 아닙니다. 많은 분들(심지어 저조차도) 내 맘속에 예수님이 계시는데 굳이 일요예배에 참석할 필요가 뭐있는가 라고 말합니다.그래서 맘놓고 일요일에 여행을 떠납니다.일요예배에 반드시 참석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 대해 율법주의자들이라고 비아냥도 합니다.
주님은 분명히 '좁은 문"으로 가야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이 문으로 가는 길도 협착하고 이 문을 통과한 후 가는 여정도 좁고 험한 길 뿐입니다.그런데 왜 많은 그리스도인이라고 고백하시는 분들이 이 길을 가기를 거부하고 있을까요? 쉬운 길을 선택해 가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얼마전 장로교 합동측 목사 두 분이 이권 문제로 심각하게 다투다가 한 목사 분이 다른 분을 칼로 찔러버리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칼로 찌른 분은 합동측 총회에서 총무까지 맡았던 교계의 지도자급이었습니다.2015년 10월에 발생한 황규철 박석구 목사 사건입니다. 정말 있을 수없는 사건이 발생한 것입니다.
2년 여 전 장로교 합동측 동도교회를 두고 담임 목사인 옥광석 목사를 쫓아내고 그 교회를 접수하려는 총회장 길자연 목사와 김진하 목사가(제가 이 시점에서 목사님이란 호칭을 부여하기 좀 애매해서 그냥 "님"자를 생략합니다) 온갖 세상적 방법을 다 동원했던 진흙탕 싸움이 있었습니다.결국 김진하 목사측은 몇억 되는 자금을 확보하게 되어 절반의 성공을 거두고 사건은 마무리되었습니다. 동도교회는 총회에 상회비로 5천만원씩이나 낼 정도로 재정이 탄탄한 교회였기에 돈에 눈이 어두운 사람들의 눈에는 매우 좋은 먹잇감이었습니다.
이들은 좁은 문이 뭔지도 모르는 파렴치한 사람들입니다. 교회의 지도자들이 이럴찐데 성도들이야 오죽하겠습니까?
"좁은 문"은 십자가를 지고 가는 문입니다. 내가 죽고 오직 그리스도만 존귀케되는 십자가의 길입니다.철저히 내가 죽지 않으면 이 "좁은 문"은 통과할 수도 통과해도 그 길고 긴 여정을 갈 수도 없습니다.이 여정은 우리의 힘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아닙니다.
죤 번년은 이 길이 너무 힘들기에 나중에 순례 길을 떠난 "크리스티아나" 일행이 "담대"라는 인도자와 동행하여 고난을 극복하게 되는 것으로 묘사했습니다.
우리에게는 주님의 성령이 계십니다. 아무리 힘들고 지칠 때에라도 주님의 성령께서 우리를 좁은 문으로 인도도 해주시며 협착한 고난의 길도 즐겁게 갈 수 있게 인도해 주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타깝게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이 문과 길을 택하지 않고 "내가복음"의 길을 갑니다. 그러면서 자기의 길이 맞다고 우기기까지 합니다. 저도 다시 성령충만으로 주님의 부르심을 받지 않았다면 똑같은 길을 아직도 걷고 있었을 겁니다.
제가 몸담았던 장로교 합동측에서 발생했던 두가지 치부를 드러낸 것은 좁은 길을 가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그리고 더욱더 우리 자신을 채찍질하여 좁은 문으로 가게 하기 위함입니다.
이 글을 읽는 형제 자매님들이여! 성령충만이 아니고는 좁은 문, 좁은 길을 갈 수가 없습니다.성령충만 받으면 그 좁은 문이 넓게 보이고 그토록 힘들게 보이던 길이 감사와 찬송을 부르며 즐겁게 갈 수 있는 길임을 깨닫게 됩니다. 함께 이 문을 통과하고 이 길을 갑시다. 이것이 주님의 뜻을 행하는 길입니다.
첫댓글 아멘 할렐루야
좁은길 십자가의 길 !
함께 좁은 길 ,십자가의 길을 가는 기도의 동지가 있어서 외롭지 않습니다.
할렐루야 아멘!
수고 많았습니다.좁은 문을 향해 더욱 정진합시다.
ㅎ 저를 주님께로 올바르게 인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자극히 짝은 문. 할렐루야 아멘
주의 은혜가 나바호 광야에 넘치길 기도드립ㄴ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