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맥산과 맥산공원]
대지면에 있는 모산 마을 맥산공원을 소개한다. 대지면은 동쪽으로는 고암면, 창녕읍, 서편으로는 유어면, 북쪽으로는 대합면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넓은 들이 비옥하여 오래 전부터 사람이 살기 좋은 곳으로 소문이 난 곳이라 한다.
<창녕 맥산 조감사진 ◎표는 시조 묘>
모산리는 대지면의 중앙부로 면사무소와 우체국, 치안센터, 농협지점이 있는 마을이다. 이지역의 지명 유래에는 보리와 잉어가 등장하는데 보리알과 같이 생긴 바위들이 많아서 모산, 맥산이라는 지명을 가지고 있으며 마을 뒷산이 잉어와 같이 생겼다고 하여 부리산, 어두산으로 불리우고 있다고 한다.
**맥산공원의 표지석은 개인이 증정했다고 하는데 받침돌에 2006년11월 5일 성정경“증” 이라고 새겨져 있다.
맥산공원이 있는 모산마을은 대지면의 면사무소 소재지로 보리미의 행정 리 명이다. 그리고 창녕 성씨의 세거지이다.
모산마을은 보리미, 보리뫼, 부리뫼라고도 불리는데 한자로는 모산 외에 맥산으로 쓰기도 한다.
마을 뒤에 부리산 또는 맥산이라 불리는 산이 있는데 여기는 창녕 성씨의 시조묘가 있고 맥산재 (성씨대종재)가 있다.
대대로 이어져 온 창녕 성씨 문중의 이야기를 간직한 공원이라는 생각이 든다.
[출처] 대지면 모산리 맥산공원 / 작성자: 창녕군 2020. 9. 20.
<2>[ 맥 산 론]
맥산(麥山)의 행룡(行龍)(주1)은 현풍 비슬산에 이르러 남쪽으로 뻗어서 창녕 화왕산(火旺山)이 되었는데, 처음 한 줄기가 떨어져 동쪽에서 서쪽으로 달려 왔는데 중간에 높은 봉우리가 하늘 높이 솟아 있다. 한번 돌아 임갑룡(任坎龍)이 되었는데 여기서부터는 한 가운데에서 떨어져 나와 혹은 갑묘(甲卯) 혹은 경태(庚兌) 혹은 병정룡(丙丁龍)으로서 용세(龍勢)(주2)가 굴곡하여 천태만상으로 되었다.
청산원(靑山院) 위에 태양 금성(金星) 한 脈(맥)이 평지로 떨어져 관로(官路)(주3)가 되었으며 갑자기 봉우리 하나가 일어나 마치 호로박 같이 생겼다. 여기에서 다시 크게 끊겨 평지로 된 것이 칠십여 보(步)인데 한 언덕이 들 가운데에 일어나 몸을 뒤쳐 해좌(亥坐)로 되었다.
1) 유어농파형(遊魚弄波形):풍수에서 墓자리와 겉모양과 생김새가 물고기가 물결을 희롱(戲弄)하고 헤엄치는 형국(形局)이라는 것(물고기가 파도를 희롱하며 노는 형상)
2)창녕성씨 시조 성인보의 묘-- 호랑이가 점지해 준 명당이라는 설화를 간직한 묘이다. 호랑이는 산신령의 화신인 만큼 천기와 지기가 조화된 명당이라는 상징을 지닌 곳이다. [출처]김규순 풍수에디터
수세(水勢)(주4)는 화왕산에 나오는 여러 물이 혈(穴) 앞에 모여 만궁형(彎弓形)(주5)이 되어 다정스럽게 정축(停蓄)(주6)되어 있으며 서쪽으로 십 여리로 펀펀히 완만하게 흐르는데 들 가운데 독산(獨山) 수구(水口)를 딱 막고 있다. 안대(案對)(주7) 밖에는 오성체(五星體)(주8)가 모여 길성(吉星)이 전부 모여드니 비록 본신(本身)의 청룡 백호는 없지만 보기에 기이하다.
이것은 바로 눈 속에 호랑이의 발자국으로 찾아낸 명당(明堂)으로서 하늘의 조화였지 인력으로 찾아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 이상하게 여긴 아들이 호랑이 발 자국을 따라 가보니 끝 간 곳이 맥산이었다. 희한하게도 그 곳엔 아버지 시신과 함께 墓 하나 쓸만큼 눈이 녹아 있었다. 이에 아들은 하늘이 점지해준 자리라 여기고, 그 곳에다 아버지 시신을 모시게 됐다고 한다. >
후손이 지금 이십여대가 되었는데 문과에 급제한 자가 백여명이며 경상(卿相)(주9) 유현(儒賢)(주10)과 문장(文章) 절의(節義)의 사람을 이루 다 기록할 수 없을 정도이다. 이 산 이름은 맥산(麥山)으로 옛부터 유어농파형(游魚弄波形)(주11)이라고 전해온다.
간룡(艮龍)(주12)에 임감입수(任坎入水)(주13)이고 해좌사향(亥坐巳向)(주14)이며 묘득미파(卯得未破)(주15)이다.
<좌측 O표시한 곳이 호랑이 무덤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옛날에는 맥산 앞 뒤의 물이 산소 서쪽으로 모였는데 중년 이후 부터는 산 뒤에 있던 연못이 전부 백성들의 논이 되었기 때문에 산 뒤에 있는 물이 서(西)쪽으로 흐르지 않으므로 용맥(龍脈)을 끊어 수로(水路)를 내어 물을 끌어다가 산소 앞으로 들어가는데 술자(術者)는 불길하다 한다.
그러므로 모든 후손들이 볼때마다 이를 금지하며 혹은 내(川)를 막았으나 얼마 가지 못했으므로 파(破)(주16)가 금기하는 곳에 당(當)하게 되었다.
(출처: 창녕성씨 족보, 대종회보 61호. 2019.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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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1.행룡:낮았다 솟았다 하며 멀리 뻗어 나간 산맥
2.용세:산의 형세
3.관로:官의 도로
4.수세:穴 주위를 둘러싼 하천의 形氣를 말한다.
5.만궁형:활같이 굽은 형세
6.정축:머물러 쌓여
7.안대:안산이나 조산의 봉우리와 무덤의 방향을 일치시키는 좌향법
8.오성체:풍수에서 산의 가장 근본적인 형체를 오성으로 분류하고 혈 주변에 파도 로 출렁이는 수성체, 화성체, 목성체, 금성 체. 토성체
9.경상:재상, 삼정승과 육판서
10.유현:유교에 정통하고 행적이 바른 사람
11.유어농파형:풍수에서 묏자리와 겉모양과 생김새가 물고기가 물결을 희롱하고 헤엄치는 형국이라는 것
12.간룡:산줄기가 간좌의 방향으로 뻗어 나감
13.임감입수:임은 북방을 나타낸다. 감은 물을 상징하고 있는 주역의 괘로서 북쪽 을 나타낸다.
14.해좌사향:산소의 좌향에서 시신의 머리 방향이 해좌이고 발의 방향이 사향이라 는 것
15.묘득미파:혈에서 보아 물이 빠져나가는 곳이 미 방향이라는 것
16.파: 물이 빠져 나가다.
(출처: 대종회보 61호. 2019.10.1)
<3> [하국근의 풍수기행]
<55> 창녕군 성씨 시조묘
매일신문 2010.4.19.
평평한 들판에서 산이 솟아나려면 웬만한 힘으로는 불가능하다. 사람이 누웠다 일어서는 것과 기댄 상태에서 일어날때를 비교하면 되겠다. 그래서 평지에서 돌출된 혈(穴)은 힘이 더 강하다고 본다.
들판에선 바람도 지면을 따라 불어온다. 풍수에선 바람을 무서워 하지만 평지의 돌혈(突穴)은 이에서 제외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지기(地氣)는 물을 만나면 멈춘다. 대부분의 명당은 산자락 끝 머리에 형성된다. 산과 물이 만나는 지점이다. 들판에선 산이 끝나는 곳이 분명치 않기 때문에 물길을 비중있게 본다. 일반론이지만 물길이 명당을 둥글게 감싸 안는 지점이 중요하다. 이런 형태는 산 자락이 흐르는 방향을 나타내기도 하고, 산이 끝나는 지점을 나타내기도 한다.
성인보 묘 주변은 들판이다. 나지막하지만 들판에서 솟은 산이다. 지기가 강하다는 의미이다. 앞 물은 둥글게 묘역을 감싸고 흘러들어와 나가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흘러 나간다. 나가는 물이 보인다는 것은 곧 재물이 샌다는 것을 의미한다.
묘 주변은 봉긋봉긋한 봉리들이 유난히 많다. 금산(金山)이다. 관주산(貫珠山)이란 산 이름까지 있는 것을 보면 짐작할 만하다. 멀리 조산(祖山) 뾰족뾰족한 화산(火山)형태도 보이고 일자(一字)로 쭉 뻗은 토산(土山)엔 문필봉도 아름답게 솟았다. 주위 산세에 포진한 오행(五行)이다.
오행사상은 풍수학의 근본이 된다. 묘소가 있는 맥산을 부리산(浮鯉山)이라고도 한다. 지형을 물 위에 뜬 잉어로 형상화한 것이다. 지도에서 찾아보면 영락없다. 묘가 있는 동쪽, 즉 둥근 산봉우리 쪽이 물이 흘러드는 곳으로 잉어 머리가 되고 꼬리 부분이 서쪽으로 물이 나가는 방향이다.
그러고 보면 물살을 헤치며 잉어가 상류로 올라가는 형상이다. 이는 풍수로 따져 문중이 창성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볼 수 있겠다.
이 꼬리 부분엔 인공으로 판 연못이 있다. 언젠가부터 물길이 바뀌어 마을 앞으로 흐르게 되자 대신 꼬리 부분에 연못을 조성, 잉어가 필요한 물을 공급해주는 역할을 담당케 했다 한다.
모자람을 채우는 것, 곧 비보풍수(裨補風水)다. 전해내려오는 풍수 형국도 유어농파형(游魚弄波形. 물고기가 물결을 일으키며 뛰노는 형국)이다.
옛날 성인보가 개경으로 신년 향리 모임에 갔다가 병사(病死)했다. 아들 송국(松國)이 아버지의 시신을 지고 천리 먼 길을 걸어 고향으로 돌아왔다. 고향 가까이 이르러 날이 저물어 쉬어 가게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밤새 눈이 쌓였는데 아버지의 시신은 간곳이 없고, 그 위로 호랑이 발자국만 어지러이 찍혀 있었다.
이상하게 여긴 아들이 호랑이 발 자국을 따라 가보니 끝 간 곳이 맥산이었다. 희한하게도 그 곳엔 아버지 시신과 함께 墓 하나 쓸만큼 눈이 녹아 있었다. 이에 아들은 하늘이 점지해준 자리라 여기고, 그 곳에다 아버지 시신을 모시게 됐다고 한다. 풍수학계에 전해지는 성인보 묘에 관한 얘기다.
풍수에선 적선을 최고로 친다. 명당을 얻으려면 그만큼 덕을 베풀어야 한다. 그 다음이 명당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의 몫이다.
행동은 개차반이면서 좋은 땅을 구하려 한다면 어불성설이다. 비록 일시적으로는 가능할지 모르지만 결국엔 그 재앙이 스스로에게 닥친다. 좋은 땅은 하늘이 낸다고 했다. 풍수는 순리(順理)를 중시하는 학문이다.
(출처: 명리풍수연구원 희실재 원장 chonjjj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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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수집 및 종합편집, 성범모(회곡파 26세 / 前 서울.경인지구화수회 회장 / 경제칼럼니스트) >